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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너울

겁쟁이 형사에게 귀신들이 몰려온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방탱
작품등록일 :
2024.03.28 15:35
최근연재일 :
2024.05.29 08:25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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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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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작품을 완성하고 싶어요 (1)

DUMMY

세번째 줄, 세 번째 칸에는 민우기가 한 말처럼 정말 뒤집어진 책 한 권이 있었다. 책이라고 하기엔 조금 얇았다.


꺼내보니 책처럼 된 일기장이었다.


민우기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민우기는 살인을 저지른 과정, 그 후의 증거물 처리 방법, 공하연과의 감정까지 모두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유서가 적혀 있었다.


유서는 진부했다. 죄송하다, 원치 않았던 살인이다, 죽어서 반성하겠다.


그 사람의 인생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욕심으로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생각 밖에는.


"이제 장례를 치르시는 겁니까?"


희민 선배는 민우기의 유서를 읽고 있던 이명희에게 다가갔다.


"네. 범인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명희는 두 손을 모은 뒤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꼭 처벌 받게 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저는 범인이 누구인지, 우리 남편은 죄 없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걸 밝혀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마 그이도 그럴 겁니다."


나와 희민 선배 역시 명희에게 고개를 숙였다.


민우기의 사건은 며칠 뒤, 세상에 모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죽었지만 많은 사람에게 돌팔매질을 당했다. 죽어도 싼 사람은 없지만 사람들에겐 죽어도 용서할 수 없는 파렴치한 살인범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민우기가 죽고 난 후 볼 수 없었던 공하연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상태가 양호했던 공하연은 이튿날부터 악화돼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정말 민우기의 말대로 그가 데려간 걸까.

너무나 허무하게 끝난 살인 사건의 결말이었다.


"이건 뭐 범인을 잡은 것도 아니고, 안 잡은 것도 아니고."


"그러게요. 찝찝하네."


경찰서 안의 분위기도 내내 가라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범인이 죽었으니 된 거 아니냐고 하지만 죽음으로는 절대 죗값을 다 치를 수가 없다. 그저 도망간 것 뿐.


"오늘 문정수 원장 장례식에 길거에요?"


아리가 다가와 물었다.


"이명희 씨가 우리 수사에 도움을 많이 주기도 했고, 가봐야지."


희민 선배가 턱을 괴고 말했다.


"너희는?"


"저희도요. 같이 가요 이따."


피해자의 장례식을 가는 건 흔한 일도, 흔하지 않은 일도 아니다. 나와 희민 선배는 대부분 피해자의 장례식을 찾아갔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이 조금이라도 외롭지 않게.


#


민우기의 사건이 잠잠해질 무렵이었다.


서에서 당직을 서고 퇴근을 하는 중 아파트 앞 경비실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


"아저씨!"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던 사람은 902호 성만 아저씨였다. 오랜만에 만난 아저씨는 경비 유니폼을 입고 계셨다.


"와, 아저씨. 여기서 일하시는 거예요?"


"아이고. 재혁이 오랜만이네.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사건 때문에 바빴어요."


그때 옆에서 백구가 꼬리를 흔들더니 날 알아봤는지 왕하고 나를 불렀다.


아저씨는 백구를 데리고 경비실 밖으로 나왔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백구를 끌어안았다.


"백구야. 잘 지냈어? 요놈 토실토실 살 오른 거 봐라."


백구는 부잣집 애완견 마냥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라 있었고 털에서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요놈 잘 먹이려고 취직했지. 하하."


"자리가 있었어요?"


"응. 여기 계시던 분이 따님 따라서 지방으로 내려가신다더군. 그래서 공고 올라오자마자 면접 보고 일 시작했지."


"잘 됐어요. 집도 가깝고. 아니지, 아저씨 집을 아저씨가 지키시는 거죠. 하하. 유니폼이 너무 멋지신데요?"


"허허. 그런가? 이제 자주자주 보자고."


나는 경비실 앞에 서서 30분 넘게 아저씨와 밀린 수다를 떨었다. 아저씨의 혈색도 지난 번 보다 훨씬 좋아졌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먼. 나는 순찰 다녀와야 해. 백구랑 같이."


"제가 너무 시간을 뺐었죠? 자주 올게요. 아저씨."


"응. 그럼 또 봐 재혁이!"


나는 아저씨와 백구가 가는 걸 보고 나서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집엔 이미 낯선 사람이, 아니 귀신이 와 있었다.


"사람도 없는데 먼저 들어와 있어서 죄송합니다."


먼저 들어와 있던 남자는 얼굴이 퀭하고 안경을 쓰고 있었다. 키는 작지 않았지만 워낙 마른 몸이라 유난히 작아 보였다.


"아니요. 오늘 오시는 줄 몰라서 제가 늦었습니다."


나는 남자와 인사를 나눈 후 소파에 앉았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을까요?"


"순번이 제 차례인데 언제쯤 와야 하나 고민하다 일단 무작정 왔습니다. 조금 급하기도 해서.."


"아 서로 서로 알려준다고 들었는데 못 들으셨군요?"


"네."


남자는 죽은 망자지만 꼭 다시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의 사인은 영양실조 이었을까?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신가요? 제가 다른 건 못해드려도 드시고 싶은 건 사드릴 수 있는데."


"아니요. 먹고 싶은 건 없습니다. 그보다······."


남자는 자세를 고치고는 두 주먹을 각 무릎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며 부탁합니다, 라고 말했다.


앞 뒤 설명 없이 다짜고짜 고개를 박는 그를 보고 나도 덩달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무슨 일인지.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해드릴 수 있지만······."


"상당히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아니,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남자의 대답은 난해했다.


"말씀해 보세요."


남자는 두 손을 마주 잡고는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작가 입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어요. 각종 공모전과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작가의 글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출판사에 투고도 해봤고요. 형편이 넉넉지 않아 글을 제대로 배워보지는 못했어요. 그게 아직까지 한이 됐죠. 아,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떠나지 못한 건 아닙니다.

저는 계속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어요. 글만 쓰다 보니 생활도 넉넉하지 못했죠. 그때 한 선배가 제게 웹소설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했었어요. 하지만 저는 웹소설은 절대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웹소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정통 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돈을 버는 상술일 뿐이라고. 그런데 그 선배가 추천한 글을 읽고 난 후 생각이 완전 달라졌습니다.

문장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어요. 제가 가진 선입견 중 하나가 웹 소설은 가볍다, 아무렇게나 쓴다, 이었거든요. 전혀요. 정말 전혀 아니었습니다. 탄탄한 스토리, 빠른 전개, 생각해보지도 못한 소재들. 순문학만 문학이라고 생각했던 제가 어리석다고 느낀 순간이었죠. 그래서 웹소설을 연재하려고 비축하고 있었어요."


"비축이라니요?"


남자는 비축분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 미리 연재할 글을 써두는 거라 했다. 보통 짧게라도 비축 분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그는 서른 편 정도를 비축하고는 연재도 시작하기 전에 죽어버렸다. 사인은 심장마비. 갑자기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죽었다는 것도 몰랐다고 했다.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으니까.


다만, 글을 쓰면서 제때 먹지 못했고 컴퓨터 앞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던 게 심장마비의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억울한 죽음이긴 했지만 죽음을 인지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했다. 하지만 비축해 놓은 글을 연재 한 번 해보지 못한 건 억울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제 글을 좋아할지, 싫어할지 조차 모르겠어요. 딱 50화까지만 연재해보고 반응이 없으면 미련 없이 떠날 겁니다."


"그럼 제게 글을 써달라는 말씀이신가요?"


"우선 30화 까지는 비축 분을 메일로 보내놓았었습니다. 보통 작가님들은 컴퓨터에 저장하는데 저는 저장한 후 한 회 한 회 따로 메일을 모두 보내놔요. 혹시나 컴퓨터가 없는 곳에서 갑자기 수정할 내용이 떠오른다던가 하면 어디든 컴퓨터만 있으면 수정할 수 있게 말이죠. 그게 또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어요."


"그럼 30화 까지는 써두신 걸 제가 옮겨 연재를 한다고 해도 그 다음 분량들은요?"


"제가 불러드리는 거죠."


"네??"


그럼 그가 불러주는 내용을 내가 받아 적어야 한다는 건가? 퇴근하고 몇 시간을? 그것 까지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제가 현업이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형사님이시잖아요. 형사님 귀찮게 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구상을 해올 겁니다. 바로 읽을 수 있게요. 그리고 형사님은 그 글을 타이핑해서 올려주시기만 하면 되는데······. 안될까요.."


선뜻 해드리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남자의 말대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썩 내키지는 않았다.


"부탁드립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고 싶어요. 딱 50화 까지 입니다."


"만약 반응이 좋아 더 연재를 해야 한다면요?"


"그렇게 된다면······. 그래도 더 이상은 형사님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제 글이 가능성이 있나 없나를 확인해 보고 싶은 거니까요."


"그래도 만약에 연재하다 멈추면 독자들이 작가님을 무책임하다 생각하지 않을까요?"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글을 인정받고 싶지만 연재를 중단했을 때 독자들의 반응 또한 신경이 쓰이긴 한 것 같았다. 한참을 생각하던 남자는 결심한 듯 말했다.


"그럼 50화안에 완결이 나도록 하겠습니다. 반응만 보고 접는다는 건 형사님 말대로 무책임한 짓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살아 있지도 않은 귀신 주제에 더 많은 걸 바라는 것 또한 욕심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남자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50화안에 꼭 완결을 내겠다고 약속 하고 계속 고개를 숙이는 남자에게 싫다는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알겠습니다."


남자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글을 올리려고 하는 플랫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플랫폼은 자유, 일반, 작가 연재 등으로 나뉘어져 있고 이미 짧은 글을 몇 편 올려 일반 연재로 승급이 된 상태라고 했다. 그나마 자유 연재라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본다고 했다.


자신이 이미 적어둔 30화를 정리해 예약 설정을 해달라고 했다. 그러면 30화 까지는 마우스만 몇 번 움직이면 자동으로 올라갈 거라고.


문제는 남은 20화 이었다.


"제가 35화 까지는 이미 정리해두었습니다. 그걸 타이핑만 해주시면 돼요."


"음. 그럼 이렇게 하죠. 내일 저녁에 30화를 모두 저장해 예약을 걸어두죠. 그러고 나서 그 다음 날부터 매일 7시부터 10시까지 조금씩 다음 내용들을 정리할게요. 만약 제가 일이 있는 날은 미뤄두고요. 매일 하나씩 올라가면 한 달 정도는 여유가 있네요."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저녁에 다시 오겠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쉬세요."


이야기가 마무리 되자 남자는 빠르게 자리를 정리했다.


남자가 떠난 후 나는 남자가 알려준 플랫폼을 둘러보았다. 남자의 말대로 정말 많은 작품들이 있었고 그 중 한 작품에 빠져들어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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