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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J뮤엘 님의 서재입니다.

수십년만의 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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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SDJ뮤엘
작품등록일 :
2020.08.11 19:54
최근연재일 :
2021.02.05 18:08
연재수 :
9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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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57,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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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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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 - 사냥꾼과 구출대(3)

DUMMY

호수 위 신전 터에서 볼라스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망원경에서 눈을 뗀 채 말했다.


“그런 식으로 나온다 그거지? 그럼······ 음?”


그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슐츠가 사라져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기에 그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금방 깨달았다.


사냥꾼은 사냥감과 떼래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그것도 동료를 해친 상대라면 더욱이.


“멜로이. 거기 있어?”

“있어.”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헌신자 무리 중에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헌신자 몇 명이 옆으로 비켜주어서야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까지 흘러내리는 밤색 머리에 푸른색의 소박한 드레스를 한 소녀였다. 그녀는 종 달린 용머리 장식이 달린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왔다.


“불렀어, 대장?”

“아무래도 내가 너무 싱겁게 생각했나 보다.” 그는 천천히 소란이 일어나는 근원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대충 보니 길드 놈들 본대가 후퇴한 쪽으로 가고 있나 봐. 덫만으론 안 되겠어.”

“바로 추격할까? 바람 마법 준비할게.”

멜로이가 물었다.


“역시 멜로이는 이해가 빠르다니까. 부탁해.”


볼라스는 다시 망원경에 눈을 파묻었다.

현재 그의 명령을 따르는 헌신자와 군단의 연철부대는 아직 숲 자체에서 발을 빼지 않은 이세계인 집단인 길드 본대와 대적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이나 격렬한 전투를 이어나가고 양측 다 세 번 이상 죽은 이가 나올 정도로 피해가 컸다. 다섯 번이나 죽은 덕에 정신력이 바닥나 미쳐버린 이가 있을 정도였다.


그 희생이 있었기에, 이곳에 그들의 왕국기가 신전 터에 나부낄 수 있었다.


이미 이곳을 뺏긴 적들이기에, 시기가 적절해진다면 미련 없이 퇴각할 게 분명했다.

볼라스 역시 철수할 생각이었다. 다만 이 셋만큼은 사로잡을 생각이었다.

분명, 수십 년 만에 나타난 새 이방인과 그 못지않게 오랜 시간 사라졌다가 나타난 페어리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거기다 사사건건 성가시게 충돌하는 그 붉은 머리 이세계인은 덤이었다.


“아! 그리고 우리 아버지도 좀 부탁해.”

“슐츠 아저씨?”

“응.”


멜로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유쾌한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어차피 우리보다 잘 싸우실 텐데 뭐.”


그녀는 수긍하자마자 눈을 감고 주문을 읊조렸다. 수도사 같은 손짓과 점점 그녀 주변으로 모이는 바람에 생명초 잎들이 땅을 떠나 그녀의 지팡이 주위에서 춤췄다.

곧 지팡이의 용머리 장식의 입이 열리고 종이 딸랑거렸다.


바람이 입을 벌린 용머리 장식으로 모여들었다. 응축된 바람은 여의주처럼 용의 입속으로 둥글게 말렸다. 그녀가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백금룡의 숨결!”

그녀가 드디어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외쳤다. 그러자 그 작은 바람 구체가 다시 퍼졌다. 곧 눈에 보일 만큼 세게 부는 바람이 헌신자들의 손과 발을 휘감았다.


평소처럼 그들이 한 발씩 내딛자 엄청난 바람이 일었다. 눈 한 번 깜빡일만한 틈 만에 멜로이를 비롯한 헌신자들 전체가 사라져 있었다.

그저 생명초 잎만이 다시 땅을 향해 떨어졌다.


*


남자는 뒤돌아볼 여유가 있다면 더 힘을 다해 뛰라는 아리엔의 말을 잘 따랐다. 하지만 페어리는 아니었다.

날아가기엔 느리고 자기 발로 가기엔 애매한 페어리로선 그저 유난을 떠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었다.


“으아! 뒤에! 뒤에서 다시 줄이 돋아난다!”

“다시 날아오는 겁니다.” 남자가 정정했다.

“쌍으로 이상한 소리 말고 뛰어요!”


다시 한번 버클러를 휘두른 아리엔이 소리쳤다. 그들은 거대한 거미소굴처럼 줄이 얼기설기 엮어진 숲을 계속 돌파했다.

가면 갈수록 그들이 거미처럼 쳐 놓은 촘촘한 간격이 얇아졌다.

이윽고, 그들은 거미줄에 벗어난 나비처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이 추격전을 포기하고 물러난 것이다.


“마구 달려들지 않는군요. 분명 우리보다 수가 많을 텐데.”

“겁쟁이들이네! 아니지, 내가 겉으론 귀엽지만 위험한 존재란 걸 안 거야!”


페어리가 까불거렸다. 아리엔은 주위를 훑어보며 말했다.

“그게 더 무서운 거예요. 놈들은 항상 철저하게 사냥하죠. 아마 곧 다른 방법으로 우릴 공격해올 거예요.”

그녀는 이 잠깐의 여유를 틈타 지도창을 열었다. 남자는 생각에 잠긴듯 천천히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숲을 벗어나면 제 동료들이 머무는 거점이 있어요. 그들에게만 가면 안전할 거예요.”

“우릴 순순히 보내줄 만큼 친절해 보이진 않던데요. 최소한 우리가 벗어나려 한다면 죽이려 들지도 모르지요.”

“차라리 놈들이 그래준다면 바랄게 없죠.”

그녀의 말에 처음으로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죽임당하는 게 좋은 일인 건가요······?”

“포로로 붙잡히는 것보다 100배는 더요.”

그녀가 씁쓸하게 웃었다.

“물론 그들이 우릴 절대 죽이려 들진 않겠지만요. 그들이 직접 덤비기보단 덫을 쓰는 이유기도 하죠. 어차피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죽게 되면 알아서 길드에서 다시 살아나니까요. 정 안 되면 꼼수가 있고요.”

“그렇다면 위험할 때 같은 편끼리 서로 죽여도 되는 거군요. 왜 안 그러시죠?”


그러자 아리엔은 일말의 주저 없이 투창으로 남자를 찔렀다. 엄청 아플 거라 예상하고 얼굴을 찌푸린 남자의 준비와 달리 가슴엔 아무런 통증이 없었다.

투창은 그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몸이 유령인양 찌른 쪽이 반투명해진 상태로 통과했다.


“이제 알겠죠?”

“적어도 아군을 실수로 죽일 수는 없는 세상이군요.”


아리엔이 한숨을 쉬었다.

“수십 년이나 이 일을 해왔는데. 당신처럼 특이한 유저는 처음인 거 같아요.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 번도 당황하지도 않잖아요. 그렇다고 뭐 만화나 영화처럼 대단한 힘을 숨기고 있는 것도 아니어 보이고요.”

“수십 년? 그렇게 늙어 보이지 않는데 말이죠.”

“이제 슬슬 궁금증은 아끼세요. 요새에 도착하면 온갖 사람들이 말 좀 나누자고 덤벼들 테니까요.”


이번엔 페어리가 궁금증을 휘둘렀다.

“요새? 아, 숲속 그 돌무더기 같은 거? 어떻게 생겼어? 여기보다 커?”

“어차피 넌 가지도 못할 곳인데 뭐가 그리 궁금해?”


아리엔이 퉁명스레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못가?”

“그야······” “페어리는 언제나 이세계인과 함께 탄생하지.”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대답한 건 나무 위쪽의 중후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세계인이 이곳을 떠나면 페어리는 영원히 여기에 묶이게 된다. 끝까지 네 옆의 이방인들에게 이용되고 버려지는 운명인 거다. 우리도 한땐 그랬고 말이다.”


나무 위에서 목소리의 주인공이 떨어졌다. 그의 발이 고양이의 발처럼 가벼운 바람 소릴 내며 착지했다. 아리엔은 물론, 남자에게도 익숙한 복장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연철부대의 제식 무장인 방패와 장검이 아닌, 작은 연발 석궁과 외날도였다. 뭣보다 일반 연철부대원에게서 느껴질 수 없는 중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헌신자도 아니고 고작 연철부대 한 명? 그녀는 당황했다. 그녀의 오랜 경험상 연철부대를 비롯해 군단병들은 단 한 번도 혼자 다니는 걸 본 적 없었다.

오늘처럼 자신이 쌓아온 경험이 색 바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냥 우릴 보내줄 생각은 없습니까?”

와중에 눈치 없는 남자가 정중히 물었다.

“무기를 버리고 그대로 가만히 있어준다면 생각해보겠다.”

서로 모순된 제안이었다. 남자는 그가 절대 자신들을 보내줄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슐츠가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그는 작은 연발 석궁과 외날도를 든 두 손을 교차시켰다. 그의 태도는 명확했다.


도망치게도, 무작정 달려들게도 허락지 않겠다는 자세였다.


뒤로 물러선다면 석궁볼트가, 근접해 온다면 준비된 그의 외날도가 춤을 출 터였다.


“정보창.”


아리엔은 천천히 읊조렸다. 그러자 게리와 대면할 때처럼 앞에 있는 슐츠의 정보가 드러났다.


-요정의 숲의 사냥꾼 슐츠 베네딕트-


요정의 숲의 안내자이자 시작의 마을 최고의 사냥꾼. 먼 세계에서 부름을 받고 온 용사여, 그대가 석궁과 검을 다루고 싶은 이라면 분명 그는 그대를 가르치리#%&%$*^%(&#$%@#%$^#$^#$^%^&$^


레벨 : 100


체력 1200

마력 0

믿음 0

힘 20

민첩75


‘나와 같은 민첩 부류네.’ 아리엔이 판단했다.


NPC든 인간형 몬스터든, 무엇보다 유저도 이 게임 안에선 레벨 100 이상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그건 곧 스탯 100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체력의 경우엔 1스탯 당 10이 올라가는 시스템인데, 그럼에도 그의 체력이 150이 더 많다는 건 그가 어떤 장비를 꼈거나, 아니면 일시적으로 체력 한도를 상승시켜주는 포션이라도 마셨는지 몰라도 특수 효과일 게 분명했다.


여하튼 이 의미는 곧 상대의 스탯을 본다면 곧바로 무슨 전투방식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아리엔은 그렇게 했다. 지금 숨겨둔 수를 꺼낼 때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가장 까다로운 상대와 싸우고자 검을 뽑았다.

금빛 벨트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하얀빛이 살기등등한 슐츠의 기세를 잠시나마 누그려뜨렸다.


“좀 떨어져 주시겠어요? 말려들지도 몰라요.”


그녀가 말했다. 남자는 천천히 그녀의 등에서부터 멀어졌다. 그녀가 엄중한 어조로 말했다.


“번개 방출.”


슐츠의 말대로 그녀의 장갑과 함께한 글라디우스는 번개가 치는 검으로 변했다. 장갑에서 흘러나온 검은 지지직거리는 소릴 내며 검신을 감쌌다.


“재밌군. 헌신자들이 놓은 덫을 되려 무기로 이용한다는 건가?”

“과연 민첩 75짜리가 번개보다 빠른지 보자. 하지만 먼저 성가신 것부터 제거해야겠지?”


아리엔은 이제껏 본 적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건 게임을 게임으로 즐기던 시절 강한 상대와 맞부딪혔을 때의 즐거움이 깃든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웃음기를 거뒀다. 여유롭게 즐길 때가 아니었다.


아리엔은 땅에다 버클러를 꽂고는 그 위에 글라디우스를 꽃았다. 버클러와 글라디우스가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듯 합쳐졌다.


그녀가 곧바로 합체한 무기를 위쪽으로 휘둘렀다. 버클러에 달린 사슬 손잡이가 거인의 팔처럼 하늘을 향했다. 아리엔이 소리쳤다.


“번개 방출!”


촤르르르륵! 추홬!


한순간, 이 일대 전체가 섬광에 휘말렸다. 남자와 페어리, 슐츠의 시야가 돌아온 뒤에 보게 된 것은 그들 주위로 숲에 퍼져가는 불길이었다.

번개로부터 태어난 불은 배고프다는 듯 순식간에 숲의 나무들을 게걸스레 먹어댔다.


“그걸 믿고 여유를 부리고 있었군.”


눈에서 팔을 뗀 슐츠가 말했다. 지금쯤 이곳으로 몰려들었을 헌신자들이 갑작스런 불길에 휘말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눈앞 적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최대한 빨리 승부를 봐야 했다.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헌신자들은 바싹 붙어 추격할 것이었다.


이제 막 이 잔인한 세상에 진입한 기억 잃은 뉴비의 인생이 그녀 자신에게 달려있었다.

아리엔은 자신의 의무를 곱씹었다.

구출대로서의 사명. 저 그래픽쪼가리들로부터 살아있는 사람을 지키는 것.


그게 수십 년 동안 그녀의 정신을 지탱한 삶의 이유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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