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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시대의 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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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진한
작품등록일 :
2022.05.1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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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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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쏴아아아ㅡ

마치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숲속에는 비가 내렸다.


“음, 감지로는 마지막 위치가 여기 어디였었는데.”


한 남자가 울창한 우림을 큰 힘들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고 있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높다랗게 자란 수많은 나무의 뿌리들도 그것을 전부 흡수하지 못하고, 흙과 뒤섞여 질척거리는 진창이 되었음에도.


철퍽철퍽.

키와 덩치가 꽤나 커다란 그 남자는 한걸음에 한 마디씩, 다리를 멈추지 않는 것처럼 입을 쉬지 않고 연신 투덜거리며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빗소리에 묻히지 않았다면, 분명 꽤 시끄러웠을 터였다.


하필 리스폰을 내가 있는 곳에 할 게 뭔데ㅡ


그는 이 빌어먹을 날씨에 비를 맞으며 밖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운도 더럽게 없네... 음? 저거 기절해 있는 건가? 그래도 잡는 수고는 줄겠네. 근데 잠깐만, 왜 이렇게 눈에 익지?”


이 시험에서 얼굴을 아는 사람이라 해봤자 두 명, 아니 조금 애매한 하나까지 쳐준다고 하더라도 고작 셋인데...

그러니 좀 떨어진 거리에 쓰러져 있는 저 여자를 내가 익숙하게 느낄 이유는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저 착각했다 여기는 게 맞았다.


그러나.


“이런.”


거리가 좁혀질수록, 더 확실해져 갔다.

내가 저 여자를 알고 있다 느꼈던 것.

그거 아무래도 착각이 아닌 것 같다.


툭.


오른손에 한쪽 끝을 뾰족하게 갈아 만든, 충분히 사람에게 위협이 될 만한 나무창 하나를 들고 걸어온 남자가 창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타닥. 거의 달리듯이 빠르게 다가가서는, 몸을 굽혀 무언가를 확인했다.

툭툭. 조심스럽게 뺨을 쳐보고, 숨은 제대로 쉬는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내 상황이 그리 위급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는지, 조금 여유로워진 태도로 몸을 다시 일으켜선 허리에 양팔을 짚은 채로 고개를 휘휘 내저으면서,


그 남자, 펠릭스가 말했다.


“아니, 얘가 왜 여기 있어?”


그것도 이 모양 이 꼴이 되어서는.



*



사람은 참 간사하다.


‘추워...’


분명, 지난 며칠간 대부분의 깨어있는 시간을 끔찍한 열기에 시달리며 보냈다.

비록 시계가 없어서 재보지는 못했지만, 더위와 추위 중 압도적으로 더 오랜 시간을, 더 버티기 힘들게 만든 것은 전자였다.


사막의 밤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온기를 나눌 짐덩이.. 아니 사람도 하나 있었고, 의식이 있을 때는 괴로울지언정, 한 번 잠에 빠져들기만 하면 밤이란 깨어있을 때처럼 버티어야 하는 시간이 아닌 유일한 휴식의 시간이었으니까.


반면 낮의 열기는, 그 이름모를 항성이 떠 있는 시간은 명백히 인내하고, 살아남기 위해 버티며 항상 긴장되어 있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건 표현하기 어려운 괴로움이었다.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만이 전부가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서 하르는 마모되어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을 그저 견디라는 잔인한 강요.

그러나 살고 싶으면 그 강요를 그저 수용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더위에서, 타는 듯한 열기에서 해방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랬는지 모른다.

이것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몇 번이지 다 셀 수가 없다.


시원하고, 청량하고, 깨끗한 물.

그 물을 얼마나 마시고 싶었는지, 얼마나 그 위를 헤엄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너무 추워서... 몸이 얼어버릴 것 같아...’


그렇기에 사람은 참 간사하다.


그 더위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시원한 물을 맘껏 마실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감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하르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투둑, 투두둑, 투두두둑ㅡ

쏴아아아ㅡ


대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제는 조금 예민해진 감각으로 등을 비롯한 전신에 쏟아지는 빗줄기를 느끼고,

차갑게 식어가는 몸과 그에 비례해 뼛속까지 시리도록 치밀어오는 한기에 신음하는 한 명의 약하고 비겁한 사람뿐이었다.


쏴아아아아ㅡ


거세어지는 빗줄기에, 그녀는 의식을 더는 유지하지 못하고 그만 정신을 놓아 버렸다.

이대로 계속 비를 맞는다면 저체온증 등의 이유로 목숨을 잃게 될 것이란 걸 멍해지는 머리로도 떠올릴 수 있었지만, 그녀에겐 생각대로 몸을 움직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안 돼. 안 되는데... 너무, 너무 졸려...’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의식 속에서,


‘...어?’


문득,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분명 꿈속의 착각일 거라고, 빗줄기 속에 방치된 자신이 온기를 얻을 수단은 없다고 내심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있는 힘껏 그 온기에 달라붙고, 밀착하고자 노력했다.

실제로 몸이 움직였을 리는, 아니 애초에 느꼈던 온기가 진짜일리는 없겠지만.


그녀는 그 온기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



밖은 여전히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그러나 나는 아늑하고, 따뜻한 내 오두막 안에 있었으니 비로 인한 문제는 일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이런 걸 다 상정하고 만들었던 거니까.


당장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니 좀, 떨어져라!”


나는 꽤 오랜만에 진심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힘은 또 쓸데없이 세 가지고! 좀 놓으라고!”


나는 내 등에 업힌 상태로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하르 벨루가를 내려놓기 위해 끙끙대고 있었다.

아니, 업는다는 건 내가 들 생각이 있을 때나 쓸 법한 말이니, 지금 상황은 그냥 저 녀석이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안 놔준다고 표현해야 옳겠다.


의식도 찾지 못할 정도로 아픈 애를 정신 차리라고 한 대 칠 수도 없고 정말.


과연 벨루가 가문이라는 걸까.

겉으론 운동 한 번 해본 적 없어 보이는 귀족가 아가씨지만, 달라붙은 팔과 다리에서 느껴지는 압박이 장난 아니다.

떼어내려 할수록 더 세게 붙어대는데, 슬슬 숨이 막힐 지경이야.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 하나를, 그것도 제정신 아닌 애 하나를 힘으로 못 이겨 낑낑대는 상황이 참... 뭐랄까.

이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긴 하지만 자존감이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기분이다.


“아이 씨, 해야 할 것도 많은 데 업은 채로 할 수도 없고...!”


이 녀석,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당장 목숨이 간당간당할 정도로 최악은 아니지만, 그 바로 전 단계는 충분히 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놀란 것도 그 부분이었다.


“대체 뭔 짓을 하면 신체 능력도, 마나 입자량도, 심지어 생존을 위해 준비 물품들까지 단단히 챙겨간 사람이 고작 며칠 만에 비쩍 마른 고목처럼 변할 수 있는 건데?!”


무조건 편하게 버텨내리라 생각했던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생존할 장소는 랜덤으로 배치되니, 운이 나쁘다면 어떻게 항거할 수도 없이 한 두 번의 죽음은 겪을 수도 있었다.


근데, 그런 경우에는 이렇게 몸이 극한으로 혹사 되면서, 장기간 영양 섭취를 못해 삐쩍 마르지는 않는단 말이다.


“운이 나빠서 한두 번 죽더라도, 그 정도에 의지가 꺾일 녀석도 아니고.. 완치는 아니어도 죽음에 이르게 한 치명적인 부상 정도는 어느 정도 치유된 채로 랜덤 리스폰 시키는 이 공간의 특성상, 이 녀석이 이렇게 몰릴 상황이 나올수가 없는데...”


모르겠다.

깨어나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한 번 들어볼 필요가 있겠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아무튼 지금은, 이 녀석의 몸 상태를 고려해 필요한 조치를 할 때였다.

말했듯이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어도, 조금만 이 상태로 방치된다면 죽을 정도로 심각해질 것이었다.


우선 젖은 옷부터 좀 어떻게 해서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따뜻한 공간에서 쉬면서 의식을 찾게 해야 한다.

깨어나면 먹을 환자식 ㅡ그래봐야 물을 많이 넣고 부드럽게 끓인 죽 따위가 전부겠지만ㅡ 도 미리 준비해놓는 게 좋을 테고.


‘깨서 배고파할 때가 돼서야 부랴부랴 먹을 걸 준비하기보다야 미리 준비하는 게 기다릴 필요도 없고 좋겠지.’


음, 따뜻하게 데운 물이라도 조금 마시게 할 필요가 있다.

물구덩이에 반쯤 파묻혀있던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탈수증상도 있는 것 같았으니.


흔들흔들.


“...놔라, 좀.”


근데 이 녀석이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양손을 모두 동원해 한쪽 팔을 풀고 다른 쪽으로 넘어가려 하면 휙 하고 다시 잡아버린다.

자력이 강한 자석에 붙어있던 철 쪼가리를 억지로 떼어놓자마자 다시 끌어당겨 붙어버리는 것처럼.


...너 진짜 깨어있는 거 아니냐?



*



다시 눈을 뜨긴 싫었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지금 이대로가 계속되었으면 했다.


‘...따뜻해.’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이 썩 괜찮았기 때문이다.


땀이 미칠 듯 흐르다 제 열의 스스로 메마를 정도로 끔찍하게 몸이 뜨겁지 않다.

뼈조차 시리다 못해 제멋대로 턱이 덜덜 떨릴 만큼 심한 추위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최근에 언제 이렇게 상태가 좋았나 싶을 정도로 편안하고, 아늑하다.

전신이 부드러운 실크에 둘러싸인 것처럼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고,

왼손이 힘을 꼭 주어 무얼 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온기에 마음 깊숙이까지 녹을 것만 같다.


‘...벗어나기 싫어.’


그렇기에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눈을 뜨면, 지금의 따뜻함이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직시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잠시의 안식을 뒤로 하고, 지난 며칠간 그리했듯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혹독하게 몰아쳐야 할 테니까.


하르는 자신이 이렇게 약한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이 잠시간 현실에서 눈을 돌릴 뿐,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해결할 수는 없는 도피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벗어나기 싫을 줄은 몰랐어...’


질끈.

이미 감겨 있어 어느것도 시야에 담지 못하는 눈을 더욱 질끈 감는다.

그리하면 지금이 영원히 계속될 거란 것처럼.


“...”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은 하르 그녀가 제일 잘 알았다.

두루뭉술하게 좋고, 편안하고 따뜻하단 정도로만 느껴졌던 몸의 감각들이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잠깐의 휴식을 끝마치고 다시 움직일 때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그렇다면 조금만, 조금만을 외치며 가능한 뒤로 미루는 것보다는, 언젠가 찾아올 현실을 빠르게 맞이하리라.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흐우우우...

그녀는 속으로 아쉬움을 삼키며, 마음을 굳게 먹고 눈을 떴다.


“....헤?”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에서 어느 것 하나 들어맞는 게 없는 풍경이었다.


‘여기 어디야?’


바깥에서는 그녀가 눈을 감고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들었던 빗소리가 여전히 줄기차게 들렸다.

그러나, 그 외에는 어느 것 하나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 뿐이었다.

나무 재질로 만들어졌음이 한눈에 보이는, 화려하진 않아도 단단해 보이는 실내, 한쪽 구석에는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는 돌 재질의 난로, 자신이 누워 있었던 곳에는 잘 마른 풀 무더기 위에 종류를 알 수 없지만 부드럽다는 것만은 확실한 가죽, 자신이 덮고 있던 것도 털이 빽빽해 걸쳐진 것으로 만도 따뜻해질 수밖에 없을듯한 가죽.


킁킁.

흐아아아...


숨을 들이쉴 때 맡은 것만으로, 저도 모르게 입에서 칠칠치 못한 신음을 흘려버리게 만든,

수일 굶은 사람에겐 자극이 너무나도 강한 스프의 냄새.

체면 차릴 새도 없이 어릴 적 키웠던 반려견처럼 킁킁대며 냄새가 풍겨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아까 눈에 슬쩍 담고 지나갔었던 화로 위에 나무껍질 같은 것으로 만든 듯한 큰 냄비, 아니 거의 솥에서 김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꼬르르륵...


저도 모르게 배에서 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솥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스스로에게로 돌리고 이게 무슨 일인지 생각해보려 한 그때.


“깼냐?”


조금 피로한 듯이 가라앉은, 부드럽고 굵은 목소리.

분명 그녀가 무척이나 잘 아는 목소리가 자신의 머리 바로 위에서 들려왔다.


‘...어?’


펠릭스?


작가의말

하르가 많이 굴렀으니, 조금 쉬게 해줘야겠죠.

...더 굴릴까요?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추천도 괜찮으시다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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