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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 2018

절대숙수(絕對熟手)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남규
작품등록일 :
2015.11.13 15:48
최근연재일 :
2015.12.11 23:26
연재수 :
5 회
조회수 :
386,011
추천수 :
16,056
글자수 :
13,358

작성
15.11.17 17:05
조회
18,654
추천
495
글자
8쪽

1. 배은망덕 태천비 (1)

DUMMY

빡-! 빡-!

방망이로 빨랫감을 사정없이 후려치던 청년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한 번 닦아내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

나직이 탄식을 내뱉어 보인 청년의 시선은 자신의 머리 위를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는 한 무리의 새 떼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청년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대체 언제쯤 저 새들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내 몇 번의 고갯짓으로 이러한 상념들을 털어내 보인 청년이 다시금 빨래방망이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가 내려쳐대기 시작했다.

빠악-! 빠악-!

다시금 우렁찬 타격 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저 사소한 기우(杞憂)일지는 모르나, 그 소리가 괜스레 구슬프다 여겨질 뿐이었다.

태천비(太天飛).

이것이 바로 입술을 앙 다문 채 빨래를 하고 있는 이 청년의 이름이었다.

그는 단일계승 ‘숙수’문인 진미문(眞味門)의 계승자로서, 지난 십 오년의 세월을 이곳 ‘관백산’에서만 보내왔다.

이제 갓 약관(弱冠:20세)의 나이를 넘긴 그였으니, 일평생 중 사 분지 삼을 관백산 산자락에서만 보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십 오년.

태천비는 그 긴 시간동안 늙은 스승에게 진미문에 대대로 전승되는 독문 조리법들을 전수받아 왔다.

또래 아이들이 따뜻한 햇볕아래에서 뛰놀 무렵, 태천비는 주방 화구의 뜨거운 열기 앞에 마주서서 볶음 판의 손잡이를 쥐었던 것이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스승의 밑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태천비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세간에 알려진 모든 조리법들에 통달하였다.

그 뒤로 딱 삼 년,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는 진미문에 대대로 전승되는 백여 가지의 독문조리법들까지 완벽히 숙지하게 된 것이다.

헌데 그 긴 시간동안 전수받은 것이 오직 요리뿐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주 철저한 오산이라 할 수 있다.

태천비는 비단 요리 뿐 아니라 온갖 집안일(청소, 빨래, 설거지 등…)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가 스승의 휘하에 들어 온 십 오년 전부터 지금까지 쭉, 모든 집안일을 홀로 도맡아왔으니 일가견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리라.

더군다나 무릇 숙수가 건강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건강한 육신이 필요하다는 스승의 지론 하에 간단한(?) 무공수련과 체력단련까지 겸해왔다.

“간단하기는 개뿔이…….”

나직이 중얼거려 보인 태천비가 다시금 손에 쥐고 있던 빨래방망이를 더욱 꽉 쥐어보였다.

이 ‘간단하다.’는 표현은 그의 스승이 매일같이 사용하는 표현을 잠시 차용한 것으로, 무공수련과 체력단련을 마친 태천비의 몸이 겨울철 사시나무보다 더욱 세차게 떨린다는 사실을 감안해본다면…

적어도 ‘간단하다.’는 말로 포용할 수 있는 수위의 수련과 단련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이내 태천비가 냇물 위에 흐릿하게 비치는 제 모습을 한 번 바라보았다.

‘내 신세… 참으로 애처롭다…….’

지긋지긋하기 짝이 없는 일상만이 무한히 반복된다.

낮에는 집안일을 하고, 정오가지나면 요리를, 또 해가 질 무렵부터는 무공수련과 체력단련을 한다.

달이 차오를 시간쯤이면 몸은 이미 녹초가 되어있고, 눈 한 번 깜빡이고 나면 다시 아침이 밝곤 하는 것이다.

다시 반복, 반복, 또 반복…….

그런데 왜 관백산에만 있는 것이냐고?

어째서 하산하지 않는 것이냐고?

태천비라고 하여 이제 하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적이 어찌 없겠는가?

태천비가 그간 스승에게 ‘이제 하산하겠습니다.’하고 제 의사를 밝힌 횟수를 꼽자면, 손가락 열 개를 다 접고 발가락 열 개 까지 마저 접어야 간신히 헤아릴 수 있다.

허나 그럴 때마다 돌아온 스승의 답은 한결같았다.


< 이 놈아! 너는 아직 부족해. >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거야?”

그 답을 들을 때면, 꼭 삶은 달걀 수십 개를 연속으로 꾸역꾸역 삼켜낸 것 마냥 답답하기만 했다.

차라리 그럴싸하다 여길만한 답을 내놓거나,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를 일러주면 그냥 체념하겠는데, 매번 그저 ‘아직 부족하다.’는 말로만 일관하니 그냥 붙잡아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생길 지경이었던 것이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태천비가 눈을 지그시 감아보이고는 다시금 고개를 휘저었다.

‘그래, 어차피 이런 생각들은 아무리 해봐야 쓸 모 없지.’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차라리 즐기며 하는 것이 낫다.

사실 이 외에는 달리 답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 하여 뭐, 도망치기라도 할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라?’

이내 애꿎은 빨랫감들에게 화풀이를 해대던 태천비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올리고는 나직이 되뇌었다.


“그러게? 차라리… 확 도망쳐버릴까?”


*



“아이고… 삭신이야.”

빨래를 마치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태천비가 나직이 중얼거려보였다.

스승은 오늘도 한결같았다.

이들이 기거하는 관백산 민가(民家) 마당에 자리한 잘려나간 나무 밑동 위에 앉아, 신선마냥 유유자적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

이것이 스승의 일과 중 가장 주된 일과라 할 수 있었다.

‘정말 얄밉군…….’

낡은 무복차림, 하얗게 샌 머리와 잔뜩 굽은 허리. 거기에 빼빼 마른 몸까지.

특색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고, 그저 볼품없기만 할 뿐인 이 노인네가 바로 태천비의 스승 되는 자라 할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태천비가 나직이 건넨 말에 스승이 눈길 한 번 조차 주지 않은 채 단호하게 답했다.

“그래. 밥해라.”

이내 태천비의 미간에 팔(八) 자가 드리웠다.

이른 아침부터 청소와 빨래를 하고 돌아온 제자를 따뜻하게 반겨주지는 못할망정, ‘그래, 밥해라.’라니!

허나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태천비는 치밀어 오르는 노기를 노련히 속으로 갈무리했다.

“예! 얼른 아침상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직이 말해보인 태천비가 씽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참으로 비굴한 웃음이었다.

일전에 태천비는 한 차례 ‘사춘기’라는 핑계를 필두로 하여 스승에게 크게 대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날, 태천비는 몇 가지 큰 깨달음들을 얻을 수 있었다.

가령 예를 들자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는다.’는 말의 참뜻이 무엇인가라든지…, ‘복 날에 개 패듯 팬다.’는 말의 오의가 무엇인지 하는 것들 말이다.

쉬이 말하자면 죽도록 맞았다는 것이다.

벌써 몇 해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그날의 여파가 남아있어 비가 오는 날이면 곳곳의 관절들이 시큰거리는 탓에 인상을 찡그려야만 했다.

물론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스승에게 대들지 않았고 말이다.

‘오늘 노인네 기분이 별로인 것 같으니 처신을 잘 해야겠어… 괜히 심기 건드리는 일 없도록 해야지.’

이내 태천비가 아침 찬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스승이 다시금 태천비를 불러 세웠다.

“야.”

“예?”

갑작스런 부름에 태천비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내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인 스승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 찬은 ‘그게’ 좋겠다.”

“그거요? 아침부터요?”

태천비가 미간을 살짝 좁히며 되묻자, 스승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보이고는 단호하게 답했다.

“그래, 그거.”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인 태천비가 이내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런… 아침부터 힘쓰게 생겼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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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배은망덕 태천비 (4) +11 15.11.20 14,342 461 7쪽
4 1. 배은망덕 태천비 (3) +9 15.11.19 14,683 456 7쪽
3 2. 배은망덕 태천비 (2) +8 15.11.18 15,542 473 8쪽
» 1. 배은망덕 태천비 (1) +9 15.11.17 18,655 495 8쪽
1 +17 15.11.16 18,966 4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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