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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씹어먹는 연기천재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고서귀™
작품등록일 :
2023.10.24 13:23
최근연재일 :
2023.11.07 13:30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6,683
추천수 :
198
글자수 :
78,448

작성
23.11.05 13:30
조회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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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12쪽

대본 씹어먹는 연기천재 14화

DUMMY

“어서 오세요.”


남자, 손님은 이발소 내부를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의자 쪽으로 걸어온다.


“여기 앉으면 되나요?”

“네.”


남자의 목에 천을 둘러준다.


“깔끔하게 다듬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가위와 빗을 든다.

그리고······.


사각- 사각-


***


“어?”


최창묵 감독 뒤에서 모니터하던 조감독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정말 자르는데요?”


성하, 아니 강산이 진짜로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본래라면 머리를 자르는 연기만 하면 된다. 가위질 소리와 잘린 머리칼은 따로 연출할 예정이었다.


“멈춰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됐어.”


최창묵 감독은 짧게 말한 후 화면을 주시한다.

빗질하고 같은 길이로 자르는 가위질, 그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잘······ 자르는 것 같은데요? 강산 배우가 미용을 따로 배운 적 있는 거 아닐까요?”


최창묵 감독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다.


‘정말 미용을 배운 건가?’


단순히 연기를 위해 짧은 시간 배운 솜씨가 아니다. 덥수룩했던 배우의 머리가 점점 단정하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카메라 한 대는 강산을 측면에서, 다른 한 대는 거울을 촬영하고 있다.


“으으, 눈빛이 아주 그냥-.”


조감독이 질린다는 듯 말한다.


‘그래. 저 눈빛이지.’


- 면도해 드릴까요?


강산을 처음 만난 날.

연기를 보여달라고 하니 강산이 보여 주었던 연기.

강산은 지금 화면 속,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빛으로, 역시나 감정 없는 음성으로 대사를 날렸다.

최창묵은 화면 속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몸을 바짝 당긴다. 조금이라도 자세히 강산의 연기를 보고 싶은 것이다.


‘미쳤네.’


***


사각- 사각-


가위가 움직일 때마다 손님의 머리카락의 길이가 짧아진다.

거울로 좌우 대칭이 잘 이루어지는지 확인한다. 거울 속에서 손님과 눈이 마주친다. 회색으로 물든 눈동자다. 아니, 거울 속 손님의 전신이 회색이다.

그리고 그 뒤에선 나 역시 회색이다.

하지만 나와 손님을 제외한, 거울 속 다른 풍경은 색을 가지고 있다.


‘잠시 후면······.’


점점이 변해 갈 것이다.


“면도해 드릴까요?”

“네, 해주세요.”


의자를 뒤로 눕힌 후 수건을 가져다 손님의 눈을 가린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라 볼륨을 조금 올려도 될까요?”

“그러세요.”


음악 소리를 키운 후 출입구에 붙은 팻말을 ‘close’로 바꾼다. 커튼을 치고 뜨거운 수건을 가져다 손님의 얼굴에 올린다.

손님이 ‘으으’하며 기분 좋은 신음을 흘린다.

잠시 손님을, 정확히는 손님의 목덜미를 바라보다 몸을 돌린다.

새로운 면도칼을 끼운 후 손님 뒤에 선다.

얼굴을 덮었던 수건으로 턱과 목을 닦는다.

그리고 크지 않은 음성으로 말한다.


“금방 끝날 거예요.”

“네. 빨리 끝내주세요.”


앞이 보이지 않는 손님이 짧게 대답하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손님은 왕이다.

손님이 원하니-.


“빨리-. 알겠습니다.”


들어줘야 한다.


***


“컷! 오케이! 좋습니다! 아니, 최곱니다!”


최창묵이 큰 소리로 외친다.

하지만 들뜬 그와는 달리 주변은 조용하기만 하다.

이발소 문을 열고 나오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모인다. 몇몇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강 배우. 수고 했어요. 연기 죽이던데요. 이거 봐요. 닭살 돋았다니까. 내가 그렸던 성하가 모니터 속에 떡 등장하는데 하마터면 숨넘어갈 뻔했어요. 하하하.”


최창묵이 막 촬영한 영상을 보여 준다.

모니터 속의 내가 등장한다.

아니, 성하가 등장한다.


‘아쉽네.’


연기를 보며 내내 느낀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시나리오 회색도시의 세상 속에서 보았던 성하와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다. 내가 보았던 애초에 감정을 지니지 못한, 지녀보지 못한 성하의 눈빛, 그리고 음성이 아니다.


“이 눈빛 어떻게 할 거야. 미치겠다, 진짜.”


최창묵 감독의 생각은 나와 다른 듯하다.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어요. 나중에 편집할 때 고민이 많아질 것 같아요. 러닝 타임을 맞출 수 있을까요?”


촬영분에 흠뻑 빠져 있는 최창묵 감독을 뒤로한 채 몸을 돌린다.


“수고했다. 연기 죽이던데.”


윤정현이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형님.”

“언제 그렇게 연기가 늘었대? 재철 형님에게 듣기는 했지만 직접 보니 말이 안 나올 정도네. 대영이가 왜 극단에 다시 가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됐다.”


윤정현은 다 마신 종이컵을 구긴다.


“너 다시 돌아왔으면 주인공 독식했을 거 아냐?”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아니거든. 니 연기 미쳤거든. 보는 내내 소름이 다 돋더라.”


윤정현이 장난스레 손바닥으로 팔을 문지른다.


“이번 영화 개봉하면 우리 강산이 빵하고 터지겠네. 제2의 황대영 되는 것 아니냐고.”

“하하,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뜨고 나서 모르는 척하지 마라.”

“그럴 리가 있나요.”

“그럴 리도 있더라고.”


윤정현이 음성이 딱딱하게 변한다.

아무래도 극단에 무언가 일이 생긴 듯하다.


“태수 알지?”

“당연히 알죠.”


나보다 두 살 어린 극단 환희 소속 배우다.


“태수 자식 아리수하고 계약했다.”

“우와-! 정말요? 잘됐네요.”

“잘됐지. 우리도 그 소식 듣고 엄청 축하해줬지. 극단 환희 출신으로 제2의 황대영이 되라고 축복도 해 주고. 그런데······.”


윤정현이 인상을 찌푸린다.


“그 자식 바로 손절하더라.”

“손절이요?”

“그래. 아리수 들어가고 바로 드라마 조연 배역 따냈나 봐. 축하 좀 해 주려고 전화했더니 반응이 영 그렇더라. 그냥 컨디션이 안 좋나 싶었는데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단원들한테 전부 그랬더라고. 수정이한테는 앞으로 전화하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더라.”


오수정은 스물두 살로 극단 여명의 막내 배우다.

연기도 곧잘 하고 선배들을 살뜰히 챙겨 오수정을 싫어하는 단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이 바닥 좁은 줄 모르는 거지. 나중에 너 빵 터지고 태수 자식 만나면 콧대 좀 눌러버려.”

“형님이 직접 하시면 되죠.”


윤정현이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친다.


“크크, 나는 안될 것 같아서 그러지. 아무튼 너는 태수처럼 하지 마라.”

“네, 형님. 안 그럴게요.”


이재철과 황대영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극단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극단 여명은 내 젊은 시절 대부분의 추억이 담긴 곳이다.


‘태수야. 왜 그랬니?’


***


촬영을 마친 후 윤정현의 차를 타고 이동 중이다.


“이번 영화 빵 터져서 인센티브 받으면 이 붕붕이 먼저 바꿔야지.”


윤정현의 말에 피식 웃는다.

윤정현이 차를 바꿀 정도의 인센티브를 받으려면 적어도 관객이 백만 단위 이상은 영화를 봐야 한다.


“너 출연료 얼마나 받았어?”

“5백이요.”

“워-, 많이 받았네.”

“하하, 그렇죠?”


황대영이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 받는 개런티가 5억에서 7억 사이다. 그것에 비하면 정말 작은 돈이지만 내게는 5억 이상의 가치를 가진 돈이다.


“그냥 같이 가자.”

“그게 좀-.”


오늘 극단 여명 단원들이 조촐하게 회식을 한다고 한다.

지난 주말 올렸던 연극이 마무리한 것이다. 두 달 동안 무대에 올린 연극이 끝났으니 단장인 이재철이 단원들을 위해 회식을 마련한 것이리라.


“너 온다고 뭐라 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 오랜만에 형님들, 동생들 보면 좋지.”


윤정현의 계속되는 설득에 회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오후 7시가 막 지날 때 대학로에 도착했다. 극단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근처의 술집으로 이동한다.


“주향은 오랜만이지?”


극단 여명에 속해 있을 때 자주 찾던 전통 주점 주향.

언제나 그랬듯 오늘 회식 장소도 주향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큰소리로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극단 여명의 단원들이 보인다.


“여어-! 이게 누구야! 우리 삼천리 금수만도 못한 강산이 아니야!”

“아, 제발 쫌. 그렇게 부르는 건 대영 형님 하나로 충분하다니까요.”


황대영이 주변 사람들을 다 물들여 놓았다.


“어서 와라.”


단장 이재철이 웃으며 반겨준다.


“오늘 촬영이라고 했지? 정현이도 고생 많았고.”


이재철이 잔을 채워준다.


“오랜만에 산이도 왔으니 거국적으로 한잔하자.”


이재철이 일어나 잔을 내밀자 단원들이 일제히 잔을 든 손을 앞으로 쭉 뻗는다.


“우리도 언젠가-!”


이재철의 선창에 나와 단원들이 큰 소리로 후창한다.


“천만배우!”

“하하하하!”


주향 내부에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좋은 사람들, 평생 함께 갈 줄 알았던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웃으며 술잔을 나눌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


“산아. 축하한다.”

“산이 오빠. 잘 되면 나 좀 끌어줘야 해.”

“우리 주연 배우 산이!”


단원들이 차례로 내 자리를 방문해 축하의 말을 건넨다.


“산이 연기가 미쳤더라니까요. 오늘 촬영장 난리도 아니었어요. 산이 연기 보고 감독님 방방 뛰어다니고. 배우들은 완전히 절어 있었어요.”

“하하, 그 정도였어?”


이재철과 윤정현이 나누는 대화가 들린다.


“산이 녀석 연기 장난 없더라고요. 언제 이렇게 연기가 늘었는지 모르겠어요.”

“전에 대영이하고 셋이서 술자리 했는데 그때 연기 보여 준 적 있는데 정말 잘하더라. 대영이가 아무리 우리 단원이라고 해도 연기에 대해서만큼은 냉정한 것 알지?”

“그걸 모르는 여명 단원이 어디 있어요?”

“그런 대영이가 산이 연기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웃기만 했다니까.”

“정말요?”


윤정현이 팔로 내 목을 감는다.


“바른대로 고하거라.”

“뭘, 뭘 고해요?”

“도대체 어떤 좋은 것을 혼자 먹었기에 이리 연기가 늘었단 말이냐? 어서 이실직고하거라.”


윤정현이 팔을 풀어 어깨를 감싼다.


“그 좋은 것 좀 나눠 먹자는 말이지. 한잔하자.”


소주를 마시고 안주로 육전을 먹는다.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주향은 사장님이 직접 안주를 만드는데 손맛이 일품이다.


“술을 부르는 맛이네요.”

“그렇지?”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며 단원들과 어울린다. 단원들은 이번에 끝낸 연극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다.

그들의 말을 듣는 게 너무 행복했다.

그 장소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워! 우리 여명이 낳은 대배우님께서 TV에 나오시네.”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벽에 붙은 TV로 향한다.

‘한밤의 연예가 소식’이 방영 중이다.


“이번에 들어가는 작품 때문에 출연하는 것 같네.”


이재철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 대영 씨. 같은 시기에 촬영하는 영화들이 제법 된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 영화들 중 가장 기대되는 영화가 있다면 어떤 영화일까요?


MC의 질문을 받은 황대영이 말한다.


- 모든 작품들이 다 기대되지요.

- 에이, 선수끼리 왜 이러실까? 그중 하나만 딱 꼽으라면?


잠시 뜸을 들인 황대영이 말한다.


- 잘 아는 감독님이 계세요. 조감독 생활 오래 하시다 이번에 독립 영화로 감독 데뷔하세요. 연출이 아주 뛰어난 감독님이세요. 그리고 그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도 기대되고요.

- 배우요? 저도 아는 배우인가요?


황대영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 아마 모르실 거예요. 하지만 곧 그 배우가 어떤 배우인지 알게 되실 거예요.


황대영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진다.

그때 이재철이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산아. 저거 니 얘기 아니야?”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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