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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씹어먹는 연기천재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고서귀™
작품등록일 :
2023.10.24 13:23
최근연재일 :
2023.11.07 13:30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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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2
추천수 :
198
글자수 :
78,448

작성
23.11.0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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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대본 씹어먹는 연기천재 13화

DUMMY

- 강산. 그 배우 어떤 사람이에요?


거실에서 차를 마시던 황대영은 조금 전 걸려 온 전화를 떠올린다.

최창묵 감독에게 온 전화였다.

어떤 의도로 묻는 것인지 몰라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 함께 극단에 있을 때 연기 어땠어요?


강산과는 오래 함께 알고 지낸 사이라는 관계이지만 연기가 썩 좋은 동생은 아니었다. 열심히 노력하고, 누구보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노력과 열정을 뒷받침해 줄 연기에 대한 재능은 없는 아픈 손가락 같은 동생이었다.


- 처음 봤을 때는 보통 사람보다 조금 잘생긴 사람이다. 정도가 제 평이었어요. 그런데 대화를 나눌수록 사람이 달라 보이더라고요. 황 배우가 어떤 말을 해 줬는지 모르겠는데 시나리오를 해석, 아니 해체하는 수준으로 분석해 왔더라고요.


최창묵 감독은 술을 마신 듯 주저리주저리 혼잣말을 뱉어냈다.


- 크크, 시나리오를 쓴 나보다 주인공 캐릭터를 세세히 알고 있더라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황대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강산의 부탁으로 몇 번이나 그가 출연했던 작품의 책을 가져다준 적이 있었다. 한 번은 그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양아치 시나리오를 읽고 있는 것을 봤다.

그때 강산의 손에 들린 시나리오는 얼마나 많이 봤는지 너덜너덜하다는 표현해야 할 정도였다.


- 영화를 통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알고 있더라고요. 연기를 시켜 봤죠. 크크크.


말을 하던 최창묵 감독이 혼자 낄낄대며 웃는다.


- 오디션장도 아니고, 어디 사무실 같은 곳도 아닌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연기를 해 보라고 주문했어요.


문득 얼마 전 강산과 함께 한 술자리가 떠오른다.


- 연기해봐.

- 아놔, X발. 정말 X같아서······.


자신의 말에 스위치를 켠 것처럼 곧바로 연기에 몰입하던 강산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 사실 별 기대 안 했거든요. 그만큼 제 작품, 회색도시의 주인공 성하의 연기 난도가 높아요.


황대영도 직접 시나리오를 읽어 봤기에 잘 알고 있다. 자신이라면 성하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해야 할까 고민해 보기도 했었다.

연기력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자신조차도 성하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재현해 낼 자신이 없었다.

최창묵 감독이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영화 제작에 필요한 투자금도 확보한 상태에서 아직 촬영을 시작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 성하를 연기할 배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런데, 별 기대 안 했는데. 그걸 그냥 해 버리데요.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성하가 내 눈앞에 떡 앉아 있었다니까요.


최창묵 감독이 신이 나 떠든다.

도대체 어떤 연기를 보여주었기에 깐깐한 최창묵 감독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걸까?

강산이 해석한 성하 캐릭터가 어땠을지 궁금하다.


- 딱 한 마디였어요. 대사 한 마디. 그 한 마디를 들었는데······ 정말 숨이 멎는 줄 알았다니까요.


궁금증을 참지 못해 최창묵 감독에게 강산이 어떤 대사를 했는지 물었다.


- 면도해 드릴까요?


황대영도 알고 있는 대사다.

회색도시에서 주인공 성하가 사람을 죽이기 전에 내뱉는 주문과도 같은 말이다.


- 그 눈빛, 표정. 감정이 실리지 않은 음성. 당장이라도 날카로운 면도칼이 목을 훑고 지나갈 것 같더라니까요.


“하, 하하. 그랬다고? 우리 강산이가?”


다시 연기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반갑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다.

극단 여명에 속한 단원들 모두가 다 소중한 인연들이지만 강산은 조금 특별하다.

강산의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재능이 없어 평생 단역 배우로 전전하던 무명 배우.

강산에게 배우라는 꿈을 심어 준 이가 바로 아버지였다.

황대영이 씨익 웃는다.


“짜식. 거봐. 하면 되잖아.”


***


- 강산 씨. 아니, 우리 주연 배우님. 우리 같이 좋은 작품 만들어 봐요.


최창묵이 보낸 메시지다.


“아들. 뭐 좋은 일 있어?”

“네?”

“웃고 있길래.”

“제가요?”

“그래. 아주 환하게 웃고 있어. 무슨 일인데 그래?”


궁금하다는 듯 묻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는다.


“좋은 일 있어요. 저 주연 배우 될 것 같아요.”

“응? 우리 아들. 만우절 되려면 아직 몇 개월 남았잖아?”

“진짜예요. 이거 보세요.”


최창묵에게 온 메시지를 보여드린다.


“독립 영화이긴 하지만 저 정말 주연 배역 따냈어요.”

“정말? 진짜로?”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뜨신다.


“정말로요. 진짜로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옷을 걸치고 집을 나선다. 인근 마트에 들러 몇 가지 물건을 구입한 후 집으로 돌아온다.


“뭘 사 온 거야?”


들고 온 봉지를 앞으로 내밀며 어머니에게 말한다.


“우리 삼겹살 파티해요.”

“호호. 파티 좋지.”


주방으로 간 어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신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집에 좋은 일이 생기면 지금처럼 세 식구가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곤 하였다.

TV 옆 가족사진 속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고 계신다.


“아부지. 아들 주연 배역 따냈어요. 대단하죠?”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차지해 본 적 없는 주연.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돈, 명예?

탐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워낙 없이 살았기에, 어머니를 힘들게만 했기에 돈도 많이 벌고 싶다.

하지만 돈이나 명예보다 탐나는 것이 있다.


“최고의 배우가 될 거예요. 응원해 주실 거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주방에서 어머니가 부르신다.


“아들!”

“네, 어머니.”

“그런데 무슨 역할이야?”

“그게······.”


차마 미치광이 살인마 사이코패스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


주연 배우가 결정되자 최창묵 감독은 영화 ‘회색도시’의 본격적인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나와 만나기 전 이미 다른 배역들은 모두 섭외가 끝난 후였다. 영화에 필요한 투자와 스태프들 구성도 마친 상태다.

한 마디로 주연 배우만 캐스팅되면 곧바로 크랭크 인이 가능한 상태였던 것이다.

촬영장은 구리시였다.

크지 않은 마을에 캠프를 마련했는데 이미 마을 주민들과도 협의가 끝난 상황이라고 한다.


“강 배우 왔어요.”


촬영장에 도착하니 최창묵 감독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대본 리딩도 하고 배우들끼리 인사도 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예산이 너무 빠듯해서요.”

“별말씀을요.”


거창하게 대본 리딩까지 하는 독립 영화가 몇이나 될까?

최창묵 감독의 말대로 독립 영화를 찍는 감독들은 적은 예산 탓에 촬영 내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한다. 독립 영화를 다른 이름으로 저예산 영화라 부르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아참, 그리고 배우들 중에 반가운 얼굴 있을 거예요.”

“네? 반가운 얼굴이요?”


최창묵 감독이 말하는 반가운 얼굴이 누구인지 곧바로 알게 되었다.


“산아.”

“어? 정현 형님?”


함께 극단 여명에서 활동하던 윤정현이 웃으며 다가온다.


“정현 형님도 이 영화 출연하시는 거예요?”

“그래. 박 형사가 나다.”

“아-!”


영화 회색도시에서 성하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배역이 바로 박 형사다. 성하에게 이상함을 느끼고 주변을 맴돌지만 결국 성하를 잡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다.

윤정현의 품에 개 한 마리가 안겨있다.


“형님. 원래 개 키우셨어요?”

“이 개? 내가 키우는 개 아닌데. 그리고 그냥 개가 아니라 배우님이시다.”

“배우님이요? 아-! 그 개에요?”


회색도시에서 주인공 성하의 심경 변화의 원인.


“오늘 처음 봤는데 사람을 엄청 잘 따르네. 이봐. 좋아 죽잖아.”

“그래 보이네요.”

“강 배우. 스태프들 소개해 줄게요. 이쪽이 강 배우 멋지게 화면에 담아 줄 촬영 감독님.”


최창묵 감독이 스태프들을 소개해 준다.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그가 졸업한 대학의 후배들이었다.

스태프들과 인사 나눈 후 의자에 앉아 윤정현과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대배우들이 속속 등장한다.

오늘 촬영할 씬에 모든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첫 촬영이기에 최창묵이 연락을 돌린 듯하다.


“간단하게 고사 지내겠습니다.”


크지 않은 상에 돼지머리와 몇 가지 과일이 올려져 있다.


“······ 부디 아무 사고 없이 촬영 마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회색도시 대박 나게 해 주십시오.”


최창묵이 절한 후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내 돌돌 말아 돼지 콧구멍에 꽂는다.


“자-, 다음은 주연 배우님.”


조감독이 내 등을 떠민다.

돼지머리 앞에서 절한 후 오만 원을 꺼내 입에 물려준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차례로 절한 후 고사는 빠르게 마무리된다.


“강 배우. 오늘은 첫날이니까 두 씬 정도만 촬영할 거예요. 1번 씬하고 36번 씬. 어때요? 괜찮겠어요?”

“36번 씬이요?”


1번과 36번은 회색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두 씬이다.

한 씬은 영화의 오프닝이고, 다른 한 씬은 주인공의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는 씬이다.

최창묵 감독이 한쪽에 모여 있는 배우들을 힐끔 바라본다.

대부분 배우들이 단역 배우 출신의 무명 배우들이다. 윤정현이 연극판에서 10년 가까이 구른 베테랑이긴 하지만 영화 쪽에서는 무명 배우인 것은 마찬가지다.

최창묵 감독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주연 배우의 포스를 한 번 보여주자고요.”


***


안식 이발소.


회색도시에서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는 장소이자 주인공 성하의 직장.

검은 정장 바지, 하얀 와이셔츠, 그리고 이발사들이 입는 하얀 옷.

의상을 갖추고 메이크업을 받은 후 안식 이발소에 들어선다.

카메라 두 대가 대기하고 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눈썹을 움직여 보고, 코를 찡긋거리고, 입술을 삐죽거린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의 움직임들을 모두 지운다.

완벽한 무표정.

마지막으로 눈 속의 감정을 지운다.

거울 속 내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알 수 없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회색도시의 세상에서 거울에 비친 성하의 눈빛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빛이 그렇게나 섬뜩하게 느껴질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강 배우. 준비됐어요?”


천천히 몸을 돌린다.


“네.”


짧게 대답한다.

기분 탓일까?

최창묵 감독이 흠칫하는 것 같다.

오프닝에서 나와 함께 합을 맞출, 아니 주인공 성하에게 죽을 배우가 들어온다.

정돈 안 된 머리와 거칠게 자란 수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40대 중반의 남성이다.


‘잘 골랐네.’


회색도시의 세상 속 오프닝에서 봤던 남자와 이미지 매칭이 잘 되는 배우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조감독의 외침에 주변이 조용해진다.

카메라와 조명, 마이크의 체크가 끝난 후 최창묵 감독의 외침이 들려온다.


“레디- 액션!”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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