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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술사의 박물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세라턴
작품등록일 :
2018.05.13 22:38
최근연재일 :
2018.07.1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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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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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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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08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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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죠르주-1

DUMMY

"하아암, 오늘은 이상하게 좀 피곤하네."


유노가 크게 기지개를 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더니 아직 아침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로즈마리의 부탁을 받아서 일단 삼하인까지 오기는 했는데, 정작 조사의 진행이 막막했다. 유노 역시 마녀의 일축으로서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조사라는 것은 단지 머리가 좋다든가, 체력이 좋다든가 하는 차원 이전에 근성이 중요한 문제였다. 유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일단은 조사의 정석답게 길드에 드나들었지만, 이상하리라 만큼 삼하인의 길드는 매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길드는 그 도시의 경제에 관련된 일이라면 빠짐없이 손을 대는 것이 보통인데, 이런 경우는 유노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침 일찍 노예 시장에 발을 들여서 저녁에 장이 폐할 때까지 뺀질나게 드나든 것도 일주일 째, 이제는 노예 상인들이 먼저 유노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 올 정도였다. 유노에게는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그냥 다 날려보낼까."


자꾸만 능력을 사용하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하지만 음지에 어떤 어둠이 자리잡고 있는지 확실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바깥에 드러난 환부부터 도려내다간, 정작 도시 뒷편에서 지금도 몸을 팔고 있는 소년, 소녀들을 구할 수가 없게 된다.


결국은 유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또 다시 뭔가 정보가 없나 노예 시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뿐이다.


"아으으으···."


참다못한 유노가 축 늘어진 채로 걷고 있었더니 문득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저 사람은···.'


붉게 물들인 머리,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근깨, 여차하면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두건까지. 어쩐지 굉장히 사악해보이는 옷차림을 한 청년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다만 유노가 남자를 주목한 이유는 옷차림 때문이 아니었다. 그 남자의 허리춤에 걸린 작은 단검, 그것도 톱니 날을 가진 날카로운 단검이었다.


도시에서 당당히 허리에 칼을 차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세 종류밖에 없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도시를 지키는 보안관들, 둘째는 시장의 허가를 받고 주변 지역에서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이다.


남자가 사용하는 단검은 그 둘 중 어디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마지막 하나,


'시정잡배다.'


노예 시장 역시 돈이 오가는 곳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충돌이 발생한다. 큰 문제라면 길드 단위에서 개입해서 분쟁을 해결하지만, 이른바 자리다툼처럼 크고 작은 문제들까지 전부 길드의 손을 빌리기는 곤란하다.


그러니까 그런 경우에 분쟁을 해결해주고, 대신 상인들에게서 불법적으로 돈을 거두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저 남자 역시 그 패거리 중 하나일 것이다.


유노는 남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중간 중간 남자가 갑자기 달리는 일이 있어도 유노는 서둘러 뒤쫓지 않았다. 시야에서 놓치지 않을 정도, 그 안에서라면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남자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어느 낡은 신전이었다.


"흐음···."


교회에서 사용하는 장소는 아닌 것으로 보이고, 아마도 옛날에 지역신을 섬기던 장소인 것 같다. 교회의 세가 커지면서 이렇게 쓰이지 않게 된 폐건축물이 꽤 많이 있었다.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고 해도 일단 명목상 신을 섬기는 장소이므로, 결국은 이렇게 어딘가에서 관리되지 않고 버려져 방치.


그런 건물들을 불법적으로 점거하는 세력이 있다면 십중팔구 집이 없는 부랑배거나 아니면 불법적으로 구성된 무력집단, 즉 도적들이다.


도시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있지 않으면서도 시의 관리에서 벗어난 장소, 그리고 실제로 사람이 드나든 흔적까지···. 유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뚜벅뚜벅, 유노는 일부러 숨지 않고 정면으로 당당하게 걸어서 내부로 진입했다. 이미 본거지를 알아낸 이상 모습을 감출 이유가 없었다.


신전에 대한 유노의 첫 인상은 천장이 무척이나 드높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높은 위치에 천장을 지었는지 유노는 새삼 궁금했지만 깊게 캐고 들어가진 않았다. 그녀는 파슬리처럼 전생, 고고학자가 아니었으니까.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다소 뜨내기 같은 걸음걸이로 걷다보니 어느새 복도 끝에 도착해있었다. 복도 끝은 양쪽으로 갈라져있었는데, 그 중 왼쪽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씨익, 유노는 웃으면서 성큼성큼 왼쪽 복도로 걸어갔다. 워낙 자신감에 넘쳐있는 상태여서,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야 유노는 마녀니까.


그런데 코너를 도는 순간 다른 사람이 나타나 부딪히는 것은 유노가 계산한 일 밖이었다.


"아이코!"


유노, 그리고 유노와 부딪힌 사람이 서로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코너에서 몸이 부딪혀서 자세히 얼굴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아까 보았던 불량한 붉은 머리는 확실히 확인했다.


유노가 예상하지 못한 일은 또 있었는데, 그건 바로 불량해보이는 붉은 머리 남자가 넘어진 유노에게 손을 내밀어왔다는 것이다.


"이봐, 너 괜찮아?"



"매춘을 알선하고 있냐고? 참나, 너처럼 대놓고 당당하게 묻는 녀석은 또 처음이군."


붉은 머리의 남성은 자신의 이름이 조르쥬라고 했다. 조르쥬는 직설적인 유노의 화법에 어이가 없었는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뒷목을 긁어댔다.


"뭐···. 말로 아무리 아니라고 해봤자 믿지도 않을 테고, 직접 보는 편이 빠르겠어."


그렇게 말하고 조르쥬가 안쪽 복도를 가리켰다. 유노가 그쪽으로 가서 안을 바라보았더니 여러 사람들이 복도를 오가고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조르쥬처럼 부랑배는 아니고, 대부분 나이 든 노인이나 젖은 언제 뗐을까 싶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전쟁 난민···."


유노가 혼잣말을 했다.


"그런 거지, 우리들은 전쟁에서 있을 장소를 잃어버린 사람들 모임이야."

"하, 하지만 당신 허리춤에 걸린 칼···. 그건 대체?"

"아, 이거? 이건 도적처럼 보이려고 차고 다니는 칼이야. 이런 거라도 하고 다니지 않으면, 다른 부랑자들에게 얕보여서 공격당하거든."


헛다리를 짚었다는 생각에 유노는 완전히 맥이 탁 풀려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좀 둘러보고 갈래?"

"예?"

"너도 미련의 여지를 남겨두면 마음 속으로 상쾌하지 않겠지? 그러니까 납득될 때까지 충분히 둘러보란 의미야."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정말로 이 조르쥬란 남자는 뒷세계 매춘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사실이 밝혀진 이상 여기에 더 머물 이유도 없고, 유노는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니야, 방해해서 미안해."

"둘러보지 않는 거야?"

"내가 여기에 있으면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 같거든."


아까부터 주변에서 유노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웠다. 낯선 유노가 방문한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유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노예 매매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이지 불쌍한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유노의 관점에서는 지켜야할 사람에 속했다.


"아···."

"실례했어, 그리고 실력을 과시하는 건 좋지만 그런 칼 차고 도시까진 들어오지 않는 것이 좋아. 보안관들이 보면 바로 체포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유노는 신전 바깥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큭큭, 바보 녀석. 미행이 붙은 걸 알아채고는 깜짝 놀랐어. 꼼짝없이 체포되나 했다니까."


죠르주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대장님, 그 녀석은 누구입니까?"

"몰라. 젠장, 들키지 않도록 신중하게 매춘을 해왔는데 어떻게 냄새를 맡은 거지?"


죠르주가 바닥의 돌을 걷어차자, 여자아이 하나가 돌멩이에 맞아 이마에서 피를 흘렸다. 죠르주는 전혀 개의치 않고 부하와 대화를 계속했다.


"썩어빠진 제국의 개가 여기까지 사람을 보낼 리가 없어. 누군가가 사람을 시켜서 조사하고 있는 건가? 어쩌면 슬슬 여기를 떠야할 수도 있겠어."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죠르주는 빠르게 상황을 분석해 정답 근처에 도달했다.


"이제 슬슬 터를 옮길 준비를 할까요?"

"그래야 할 것 같아. 여자들은 안쪽에 잘 가둬놨지?"

"예. 바깥에서 들리는 소란을 듣고 제가 윽박질러서 묶어놨습니다."

"그래, 잘 했어."


죠르주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여자가 끝까지 신전 내부를 조사하겠다고 나왔으면, 일이 엄청나게 귀찮아질뻔했잖아."

"무력으로 제압하면 되지 않습니까?"


죠르주가 부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바보 녀석. 노예가 아니라 자유민에게 함부로 손을 댔다간 어떤 귀찮은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죠르주의 말마따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신전을 조사했더라면, 결과는 분명히 크게 뒤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신전에서 억지로 몸을 팔던 노예들은 해방되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삼하인에서 어둠을 걷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유노는 분명히, 한 번 올바른 정답에 도달했었다. 이 도시에 칼을 차고 다니는 부랑배가 있다면 그건 분명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춘을 조장하는 악당이라는 진실에 도달했었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이르러서, 유노는 죠르주와의 심리 싸움에서 져버렸다. 신전 내부를 보겠냐고 죠르쥬가 물었을 때, 유노는 자신의 직감을 믿기보다는 눈으로 진실을 확인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지금 이 신전에서 불법적으로 구속된 수많은 사람들은 구원받았을 것이다.


반면 죠르주는 최대의 위기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만들었다. 신전 가까이 이르러서야 겨우 미행이 있단 것을 깨닫고,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 오히려 당당하게 먼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을 끝까지 관철해왔다.


물리적으로도, 지식적으로도 유노는 죠르주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이 사소한 차이가 유노의 패배를 만들었다. 누군가와 말싸움을 한다면 반드시 끝까지 진실을 물어뜯고 놓치지 말아야한다. 유노는 아직 그 사실을 몰랐다.


만약 파슬리였다면 결코 하지 않을 실수였다.


"안녕하십니까, 죠르주 씨?"

"누, 누구야?"


배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죠르주가 고개를 돌렸다. 파슬리와 알루카드, 샬롯, 바티스타. 네 사람이 서서 죠르주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는 제국 경찰 특무지원과 소속 파슬리 류트라고 합니다. 묻고싶은 것이 있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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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취객 18.07.12 68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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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너에게 가는 길 18.07.02 87 0 7쪽
52 해피엔딩 18.07.01 89 0 5쪽
51 추론 18.07.01 134 0 7쪽
50 진노의 날-3 18.06.28 81 0 8쪽
49 진노의 날-2 18.06.28 102 0 7쪽
48 진노의 날-1 18.06.26 95 0 8쪽
47 집행자 리더-2 18.06.25 111 0 6쪽
46 집행자 리더-1 18.06.24 111 0 12쪽
45 평야 전투 18.06.23 97 0 6쪽
44 주교 피에르 18.06.21 88 0 10쪽
43 계획 18.06.20 101 0 5쪽
42 단서 18.06.18 111 0 6쪽
41 차선책 18.06.17 118 0 6쪽
40 기정사실 18.06.17 118 0 7쪽
39 정의 18.06.16 124 0 7쪽
38 블랙 윙 18.06.16 133 0 5쪽
37 데이트 18.06.15 120 0 11쪽
36 막간극 18.06.12 119 0 5쪽
35 마녀의 밤 18.06.10 118 0 6쪽
34 키스 18.06.10 130 0 7쪽
33 마녀 유노의 부탁 18.06.09 178 0 6쪽
32 이정표 18.06.09 137 0 6쪽
31 죠르주-2 18.06.09 168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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