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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너드 님의 서재입니다.

개화기 무림의 대마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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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메이너드
작품등록일 :
2022.10.2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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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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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11.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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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중원으로 향하는 마법사들

DUMMY

해가 높이 떠 있었다.

이런 날씨에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영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살갗이 타기까지 몇 분이나 걸릴지 실험이라도 해 보려는 게 아니라면야.

설령 그늘만 골라서 돌아다닌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았다. 사방의 바다에서 올라온 뜨거운 습기는 선실 바깥 어디에서든 치명적일 터였다.

그러나 메이너드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배 위에서, 선실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메이너드가 그에게 주어진 개인실을 벗어난 것은 삼일 차부터였다. 그나마도 그리 긴 여정은 아니었다. 옆구리에 저술 중인 책 한 권을 끼고 갑판 위의 카페테리아로 향한 게 전부였다.

그래도 그 짧은 외출이 영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게 누구야. 메이너드 경 아닌가."


카페테리아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반기는 목소리가 있었다. 웬 노인의 목소리였는데, 메이너드는 그것의 주인에 대해서 퍽 잘 알았다.

푸덕한 인상에 머리가 조금 벗겨진 노인은 앉아서 커피와 담배를 만끽하다 메이너드를 막 발견한 참이었다.

그는 홀로 앉아 있었는데 마침 좋은 말상대를 찾았다는 듯이 반갑게 웃고 있었다.


"마스터 생틸레르. 배를 타본 적이 있으십니까? 꽤 편안해 보이는군요."

"허허! 메이너드 경은 섬나라 사람이 영 맥을 못 추는구만. 이럴 때는 내 불민한 자식놈을 보는 것 같으이. 내 이래 봬도 나이를 헛먹진 않았네. 소싯적엔 배를 타고 이곳저곳을 탐험했었지."


어째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간 그의 모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분위기였다. 그러나 메이너드는 그를 피하지 않았다. 이 노인이 무슨 이유로 저 멀리 상나라를 향해 가는지, 그도 궁금하던 차였다.


"시원한 물에 희석한 커피를 한 잔 주게. 아, 얼음이 있으면 넣어 주면 좋겠군."


메이너드는 점원에게 주문을 하고는 그의 건너편에 착석했다.


"얼음을 넣은 커피라니. 경의 식성이 영 특이하단 얘기는 들었네만, 생각보다 더하구만그래. 내 보기엔 경은 상 제국에서도 아주 잘 적응하겠어."

"글쎄요. 제 식성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저도 이걸 처음 마셨을 땐 질색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아주 중독이 되어 버렸지만요."

"세상에나. 어디서 그런 식성을 배운 겐가? 내 소싯적에 전 세계 36국을 돌아다녔어도 그런 커피는 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안 계신 분께 배웠습니다."


저런···. 노인이 작게 중얼거리더니 성호경을 그었다. 그러나 정작 장본인인 메이너드는 별 생각이 없었다.

메이너드는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가 들고는 주제를 바꿨다.


"세계 36국이라. 상나라에도 가 보셨습니까?"

"아니, 이번이 처음일세. 그 당시에는 상 제국 앞바다가 여간 혼란스러운 게 아니었다네. 어딜 가나 해적들이 들끓었으니···. 크흠!"


순간 시선이 모여드는 것을 느끼고 그가 말을 끊었다.

아마, 함께 탄 해군 장교들의 시선일 것이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외국 배만 보면 신이 나서 해적질을 해댔다고 하니, 그들 입장에서도 신경쓰이는 얘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 앉은 장교들의 눈초리에도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혹여나 문제가 생길까 싶어 메이너드가 주제를 바꿔야 했다.


"그럼, 상 제국에는 무슨 일로 가십니까?"

"왜. 의회의 늙은이들이 알아 보라고 시키던가?"


정답이었다. 그러나 설령 그것이 뻔한 정답이라고 할지라도, 이 노인도 깡이 참 대단했다. 그 얘길 대놓고 꺼내 버리다니.

아닌 척 경청하고 있던 이들이 슬쩍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적어도 이 배 위에서 유혈 사태가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치, 외교적 분쟁 따위는 그들 둘 다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런 데 관심이 있었으면 본국에 남아 정치라도 하고 있었겠지. 그들 모두 서로가 다른 목적이 있기에 이 먼 길을 떠났다는 사실을 대충 알고 있었다.


"뭐, 거창한 목적은 없네. 마법사가 마법을 찾으러 가는 게지. 그게 아니라면 무엇하러 이 먼 길을 떠나겠나. 어때. 어떤 마법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글쎄요. 불편하시다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듣기에는 상 제국의 무림이란 곳에 반로환동이란 기예가 있어 늙은이가 젊어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네. 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마지막 도전으로는 어울리지 않은가? 하하하!"


글쎄. 아무래도 잘 몰라서 이러는 것 같은데. 지금부터 아무리 죽어라 내공을 쌓아도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닐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노인이라면 또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려 공화국에 10명뿐인 그랜드마스터 중 한 명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의 여정에 흥미가 생기는 것도 같았다. 잘하면, 그의 연구 결과를 슬쩍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메이너드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자고로 노회한 마법사의 말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되는 법이니. 그에게 무슨 다른 목적이 있다 해도 별로 놀랍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시작부터 쉽지 않구만, 내 나름 상나라 말을 배웠는데도 도무지 이 기초 마법 서적조차 이해하질 못 하겠어."


그가 상 위의 책자를 덮으며 불평했다. 책자의 표지에는 멋들어진 상나라 문자로 삼재기공三才氣功이라고 적혀 있었다.

삼재기공? 메이너드가 삼재기공은 몰라도 이와 유사한 검법은 하나 아는 게 있었다.

이 양반, 걷기도 전에 뛰려고 했네. 메이너드는 슬쩍 미소지었다.

딱히 비웃은 건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자신도 비슷한 처지였으니.


상 제국. 그중에서도 무림의 무학은 그 존재가 서방에 알려진 지 채 몇 년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헤매는 것도 당연했다.

문제는 서책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번역해 온다 해도, 그 기저에 깔린 동양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모르고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불교, 도교, 유교의 여러 사상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그들의 상식은 서방인에게 너무 이질적인 것이었으니까.

사람의 상식이 서로 들어맞지 않는데, 무슨 교류가 가능하겠는가.


"아무래도 학문의 토대가 아예 다르니까요. 직접 보고 연구한다면 모를까, 서적만으로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야 할 겁니다. 제게 다른 기본 서적들도 있습니다만, 한 번 보시겠습니까?"

"오오! 책을 빌려 준다면 언제든 환영이지. 하물며 이 한가로운 망망대해 위에서라면야."


이렇게 되면 서로 윈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메이너드가 촉망받는 천재이며 무림에 대한 상식이 좀 있다고 해도, 그랜드마스터 급 대마법사의 학식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둘 사이의 대화가 시종일관 화기애애하자 지켜보던 사람들도 곧 긴장을 풀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외국인 노인은 문제를 일으킬 만한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어디로 튈지 모를 대마법사이니만큼 경계는 계속해야겠지만.


거대한 증기선에서 가장 좋은 방을 차지한 것은 바로 선장이었지만, 이는 선장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진 않았다. 이는 단순히 선장의 방은 유사시 다른 용도로도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

선장의 방을 제외하고는 메이너드의 방이 가장 넓고 바람도 잘 들었다.

두 사람은 그 방 안에서 함께 상나라 서적들을 연구하다가, 가끔 심심하면 카페테리아에서 잡담을 나눴다.


"그나저나 자네처럼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가 무슨 일로 이 먼 길에 올랐는가? 섬나라 의회 놈들이 자네만한 인재를 해외에 유출할 만큼 어리석은 자들이 아닌데."


그의 질문은 나름 타당한 것이었다. 그 말대로 메이너드는 자진해서 이 배에 올랐으니까.

하하. 메이너드는 멋쩍게 웃고 나서야 대답했다.


"상나라 옆에 '화령국'이란 나라가 있다는데, 그곳 음식이 참 입에 맞더군요. 그래서 그 근처로 가기로 한 겁니다."

"음식이라고? 세상에나! 경은 나보다 더하군! 고작 음식 때문에 자네에게 보장된 그 모든 영광을 포기했단 말인가?"

"영광이야, 실력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얻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만한 말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마법사는 어딜 가나 대마법사니까.

노인은 메이너드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이 허무맹랑한 말을 그냥 믿는 척만 해주기로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신에게 맹세코, 메이너드는 진심이었다.


그는 날 때부터 전생을 기억했다. 대한민국의 번창한 도시 서울에서 과학을 공부하던 나날들. 나중에 미국에 유학을 가서도 서양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더라지.

이왕이면 학문과 관련된 기억만 떠올랐으면 참 좋았겠지만, 세상 일 쉬운 것 하나 없었다. 하필이면 먼 이국 취향의 식성이 함께 옮아붙은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부귀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반찬 투정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느글느글한 본국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김치를 찾던 그에게, 귀족이었던 부모는 먼 외국의 딤채라는 음식을 찾아다 주었다.

이는 먼 이국에서 말로만 전해 들은 음식을 상상력을 동원해 재현해낸 것이었다. 당연히 그를 만족시켜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일말의 가능성을 보여 주기엔 충분했다.


화령국. 이름도 그의 기억과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어차피 이 세상은 마법조차 존재하는 일종의 평행 세계. 이 작은 가능성이 그에게는 유일한 희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제국령의 부총독으로 부임하는 거니 그렇게 나쁜 조건은 아니지 않습니까. 전 화령국 음식만 매일 먹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습니다."


해외 영토의 부총독도 경력은 경력이다. 나중에 본국에 복귀할 때 오점으로 남을 일은 아니었다.

몇 년이나 이 자리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즐길 거 다 즐기다가 화령국 요리를 기가 막히게 하는 요리사를 데리고 돌아가면 출세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허. 자네라면 내각의 차관 자리도 도전해볼 만은 했을 텐데. 아쉽진 않은가?"

"네. 차관 자리야, 몇 년쯤 늦어지더라도 저는 아직 젊으니까요."


무려 서른의 나이로 제국 내각의 중심부까지 올라간 천재가 바로 그, 메이너드다. 말 그대로 급할 게 없었다. 그러니 일단 향수병부터 고치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노인은 아직도 의문스러운 눈치였지만 그 화제를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

그 본인부터가 공화국에 10명뿐인 그랜드마스터 자리를 내려놓고 온 것이니 어찌 보면 둘은 닮은꼴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내 아들놈이 자네 반만큼이라도 했더라면 아무 걱정도 없었으려마는···."

"이지도르 말씀이십니까? 그 녀석도 상나라에 있다고 하셨죠."

"그렇네. 그 녀석은 자네와 달리 사고 치고 떠나갔네만. 무어, 그 덕에 환골탈태에 대해서도 전해 들었으니 나야 좋지만, 녀석 인생은 영 엉망으로 꼬이고 있단 말이지···."


천하의 그랜드마스터에게도 자식 농사는 어려운 법이다. 그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메이너드 경. 먼 이국에선 이방인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찾아오시게. 내 성심껏 돕겠으니."


타이밍상 그 뒤에 자기 자식을 잘 부탁한다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송이 마법사 하나 뒤치다꺼리하는 것쯤은 대마법사에게 도움받는 것에 비해 값싼 대가였다.


몇몇 항구에 기항할 때마다 이국적인 정취가 강해져 갔다. 제국령 바라트를 지나 마침내 플라우란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그간 열심히 익힌 상나라 말이 간간이 들려오기도 했다.

상나라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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