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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쟁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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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쟁이
작품등록일 :
2016.01.10 21:43
최근연재일 :
2016.01.29 08:0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12,839
추천수 :
257
글자수 :
109,885

작성
16.01.19 14:30
조회
445
추천
7
글자
7쪽

1. 영원의 돌(19)

DUMMY

‘주문에 적중당하면 온몸이 뻣뻣해지고 굳어오면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체 활동이 멈춘다.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현상 때문에 석화 마법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표현이다. 허나 정말 몸이 돌로 변하는 석화 마법은 현재 쓸 수 있는 마법사가 없고 그 주문법도 전해져 내려오지 않아 마법에 무지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식 교육을 받은 마법사들 중에서도 석화 마법이라고 부르는 자가 많다. 단순해 보이나 타인의 신체 대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마법이므로 그 수준이 대단히 높고 섬세하다. 기록으로는 과거 엘프마법사들이 전쟁포로를 다룰 때 이 마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집중력과 요구 조건이 대단히 높은 반면 유지 시간이 짧고 주문만 풀리면 별다른 해가 없어 익히고 있는 마법사가 매우 드물다.’


이리나는 이론 수업에서 석화 마법에 대해 공부했던 부분을 기억했다. 잠시동안 기억을 더듬어본 그녀는 힘이 빠졌다. 수업내용 어디에도 석화 마법에 걸렸을 때 푸는 방법은 없었다. 몸이 축 처졌다. 아니, 처지는 느낌만이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단단히 굳어있고 남들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객관적으로 절대 좋지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리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석화마법에 걸린 이리나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흔히들 보이지 않으면 캄캄하다는 표현을 한다. 눈을 감아도 캄캄하고, 가끔 빛이 들어오면 옅은 붉은끼가 돌곤 한다.


하지만 아예 눈의 기능이 멈춰지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이리나는 그녀가 보고 있는 게 무슨 색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여지껏 눈을 떠 사물을 보고 눈을 감으면 어둠을 보아왔다. 지금은 아니다. 처음엔 깜깜한 줄 알았지만 그것은 그녀의 무의식의 발현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냥’ 정신만 존재했다. 그녀는 공간인지도 모를 공간에서 시간이 정지한 듯 존재하고 있다. 감각이 모두 죽었기 때문일까, 심심하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아마 유령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둠이 그녀의 마법을 풀어줬는데도 얼마간 멍하니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봐, 당장 정신 차려! 뭐하고 있는 거야!”


“으.. 음? 어?”


그녀를 깨운 건 아둠의 짜증 섞인 속삭임이었다. 그 뒤론 뺨에 훅 닿는 차가운 밤공기가 느껴졌다. 자신을 잡고 거칠게 흔드는 아둠의 팔이 느껴졌다. 오감으로 수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20년간 당연하다고 느껴왔던 것들이나 지금은 낯설다. 잠깐 혼란스러워 이리나는 눈을 꼬옥 감았다 떴다. 이제 좀 적응이 됐다.


정신을 차리자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수십 명은 될 법한 사람들의 고함소리였다. 이리나가 물었다.


“이건 무슨 소리죠?”


“조용히 해결 못해서 나는 소리.”


아둠이 짧게 대답했다. 그 순간 횃불을 든 서너 명의 남자들이 슥 지나갔다. 이리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으나 자신을 무시하는 걸 보고 아직 투명 마법이 걸려있음을 알았다.


“조용히만 하면 절대 들키지 않아. 저쪽은 마법사도 없어.”


아둠이 그녀의 맘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그 이후로 몇 사람이 더 지나갔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어느정도 안정을 찾은 이리나가 소곤소곤 속삭였다.


“일은 어떻게 됐어요?”


“원하는 정보는 찾았다.”


“다행이네요.”


“게쉬타크는 영원의 돌을 알아본 건 아니었다.”


“영원의 돌이요?”


“네가 가져간 돌을 말하는 거야.”


“아...”


“게쉬타크가 너한테 사기를 친 이유는, 그 돌이 굉장한 품질의 마나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놈은 마나석의 마나 밀도가 한계치 이상 높아지면 그 빛깔이 역으로 흐려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놈은 영원의 돌의 진정한 가치는 모른 채 피샨이란 마법사에게 팔았다더군.”


“잠깐, 피샨이라면...”


“윈드러너 학파의 전투마법사. 마법 학교의 교수, 맞지?”


“이번 학기에 그분 수업을 듣기도 했어요.”


“아무튼 난 다시 마법학교로 들어가야 돼. 그 피샨이라는 마법사, 심상치 않아. 상황이 급해서 게쉬타크 자식에게 자세한 얘기는 듣지 못했지만, 아주 예전부터 거액의 뇌물을 주며 그런 마나석을 발견하면 즉시 자신에게 갖다달라 했다는군. 놈이 무슨 짓을 벌이려고 영원의 돌을 찾았는지 한시라도 빨리 확인해야 한다.”


아둠은 거기서 말을 그치고 이리나를 봤다. 아둠은 아직도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리나는 아둠의 시선에 담긴 뜻을 알아챘다.


“저도 데려가주세요.”


“...”


“지금 마법학교는 제 전부에요.”


“내가 너라면 얌전히 숨어있겠다. 너 따위가 가봐야 내게 방해만 될 뿐이야.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네가 마법학교를 다시 다닐 순 없다.”


그녀는 아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방에는 아둠에게 죽임당한 암살자의 시체가 굳어가는 중이다. 지금쯤이면 누군가 이미 시체를 발견했을 것이다. 어쩌면 암살자의 시체에서 흐른 피가 문틈으로 새어나가 복도를 적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귀족의 여식이라도 그런 상황에선 쫓겨나는 게 정상이다. 하물며 평민인 그녀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학교에 다니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녀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어요. 최소한... 최소한 짐이라도 갖고 나와야죠.”


아둠은 이리나를 쳐다봤다. 이리나도 피하지 않고 아둠을 마주 보았다. 그녀는 아둠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기분 탓일까, 처음 그녀의 방에서 보았던 얼어붙은 표정보다는 한결 따뜻해보였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아둠이 입을 열었다.


“좋을 대로.”


그러더니 그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또 들쳐 업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이리나도 두 번째 당해 당황하거나 소리를 지르진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가슴은 아프고 몸 전체가 들썩거렸다.


‘어? 왠지 아까보단 덜 아픈 것 같은데?’


조금은 편안해진 승차감을 그녀는 기분 탓으로 돌렸다.


작가의말

읽으면서 궁금한 점, 설정 오류, 맞춤법, 단순 감상 등등 어떤 것도 좋습니다. 모든 종류의 댓글은 항상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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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 가시를 뽑은 용(3) +4 16.01.27 409 3 12쪽
27 2. 가시를 뽑은 용(2) +4 16.01.25 438 2 10쪽
26 2. 가시를 뽑은 용(1) +2 16.01.24 337 2 11쪽
25 1. 영원의 돌(22) 챕터1 마지막화. +10 16.01.21 371 9 9쪽
24 1. 영원의 돌(21-3) +3 16.01.21 419 4 6쪽
23 1. 영원의 돌(21-2) +1 16.01.21 321 6 7쪽
22 1. 영원의 돌(21-1) +3 16.01.20 333 4 6쪽
21 1. 영원의 돌(20) +5 16.01.19 375 7 13쪽
» 1. 영원의 돌(19) +3 16.01.19 446 7 7쪽
19 1. 영원의 돌(18) +3 16.01.19 406 8 12쪽
18 1. 영원의 돌(17) +3 16.01.18 519 7 10쪽
17 1. 영원의 돌(16-2) +4 16.01.17 386 10 9쪽
16 1. 영원의 돌(16) +4 16.01.16 532 10 6쪽
15 1. 영원의 돌(15) +1 16.01.15 473 7 3쪽
14 1. 영원의 돌(14) +1 16.01.15 534 10 7쪽
13 1. 영원의 돌(13) +2 16.01.15 464 10 11쪽
12 1. 영원의 돌(12) +4 16.01.14 373 11 14쪽
11 1. 영원의 돌(11) +4 16.01.14 492 13 10쪽
10 1. 영원의 돌(10) +3 16.01.14 413 11 13쪽
9 1. 영원의 돌(9) +1 16.01.13 390 10 3쪽
8 1. 영원의 돌(8) +3 16.01.13 430 11 7쪽
7 1. 영원의 돌(7) +3 16.01.13 458 10 8쪽
6 1. 영원의 돌(6) +2 16.01.12 408 9 3쪽
5 1. 영원의 돌(5) +1 16.01.12 597 13 8쪽
4 1. 영원의 돌(4) +3 16.01.12 665 16 9쪽
3 1. 영원의 돌(3) +1 16.01.12 423 15 8쪽
2 1. 영원의 돌(2) +6 16.01.11 470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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