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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쟁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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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쟁이
작품등록일 :
2016.01.10 21:43
최근연재일 :
2016.01.29 08:0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12,843
추천수 :
257
글자수 :
109,885

작성
16.01.15 15:18
조회
534
추천
10
글자
7쪽

1. 영원의 돌(14)

DUMMY

이리나는 처음 경험해보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녀는 평민의 여식이고 곱게 자라지도 않았다. 적어도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기절하거나 벌벌 떠는 게 해결책이 아니란 사실은 알고 있는 여자였다. 방에 들어와 피투성이 아둠에게 붙잡히고, 쓰러진 그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낼 때도 침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공포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얼음같이 앉은 아둠이 누르고 있는 들끓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이리나는 멍청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더듬더듬, 두서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전에서 아둠의 주머니를 뒤진 일, 영원의 돌의 초라한 겉모습에 속은 일, 보석상 게쉬타크에게 돌을 넘기고 140골드를 받은 일, 자신은 그 돌이 그렇게 귀한 물건인지 몰랐다는 해명 등이 뒤죽박죽 쏟아져 나왔다.


“정말... 그렇게 귀한 돌인 줄 몰랐어요... 그것도 모르고...”


아둠은 화가 났지만 이성을 잃진 않았다. 이리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머리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그녀의 해명이 끝나자 아둠은 그의 가설을 정리했다. 이제 그 가설을 확인해볼 차례다.


아둠은 일어섰다. 그가 뚜벅뚜벅 걸어간 곳은 옷장 옆에 쓰러진 복면의 남자였다. 가까이서보니 온몸이 다 불어터져있었다. 특히 얼굴은 심각해서 복면으로 가리고 있는데도 부은 게 확연히 드러났다.


아둠이 말했다.


“널 보낸 자는 그 게쉬타크란 놈이겠지.”


“큭큭큭...”


복면은 쓰게 웃었다. 아둠은 그 웃음을 무언의 긍정으로 해석했다.


“처음보는 평민 여자에게 140골드씩 퍼주는 장사꾼은 들어보질 못했다. 그 게쉬타크란 놈은... 영원의 돌을 알아본 모양이군.”


복면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어쩌면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입 안이 부었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이해가 안되던 구석은 왜 네놈을 보내 이년을 죽이려고 했냐는 거지. 어차피 싸구려 보석인 줄 알고 팔았다면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는데.”


“큭큭큭...”


“그러다 이 여자가 마법학교학생임을 기억했다. 혹시라도 그 때 자기가 판 보석이 실은 어마어마한 가치의 마나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곤란하겠지. 사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보이지만 이 여자가 배움을 계속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하찮은 평민 한명 죽여 입을 막는 걸 택한 거군. 어차피 마법학교도 가난한 평민 여학생의 죽음은 신경쓰지 않을테니, 혹은 적당히 뒷돈을 먹이던가.”


아둠은 복면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어 앉았다. 그리고 거칠게 복면을 벗겼다. 원래 크기보다 두 배는 부은 얼굴이 드러났다. 얼마나 부었는지 원래 모습을 쉽사리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둠은 남자의 눈을 쳐다봤다. 살덩이에 파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 눈이었다.


“내 말이 틀린가?”


“큭큭큭...”


“게쉬타크의 위치만 알려주면 네놈 목숨을 고려해보지.”


“흐흐흐... 내겐...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남자는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웃기 위해 근육을 움직이는 것마저 고통스러울텐데도 웃었다. 아둠은 더 볼 필요도 없는지 아까 떨어진 단검을 주웠다. 3시간 전 자신을 찌른 그 독 묻은 단검이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남자의 가슴에 꽂았다.


푹.


남자는 아무 저항도 비명도 없이 조용히 숨을 거뒀다. 그의 부은 몸뚱아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마치 낡은 공에서 바람이 빠지듯.


아둠은 이리나를 봤다.


“너.”


“네?”


그녀는 뭐가 뭔지 정신이 없어 보였다. 22살 처녀가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고 멀쩡할 리가 없지만 아둠은 배려할 여유따위 없었다.


“게쉬타크가 있는 곳을 알고있나?”


“보석을 판 가게는 알지만... 그의 집은 몰라요.”


“쳇.”


이 늦은 시간까지 가게에 남아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 그것이 게쉬타크처럼 탐욕스러운 상인이라면 더더욱.


아둠의 판단은 빨랐다. 다음 목적지는 정해졌다.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일은 이미 이곳에서 영원의 돌을 회수하지 못했을 때부터 틀어졌다. 나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창틀에 매달려 떨어지고 마법담장을 뚫고 나가면 끝이다. 들어올 때만 무섭지, 나갈 때야 나중에 들키던 말든 대놓고 뚫어 도망가면 그만이다.


아둠은 마음을 정했다. 실행에 옮기고자 창문틀로 첫 발걸음을 딱 내딛는 그 때, 그의 눈에 이리나가 잡혔다.


당연하지만, 이리나는 여전히 두려운 표정이었다. 아둠은 고개를 휘 돌려 방안의 광경을 둘러봤다. 한 구의 시체와 곳곳에 튀어있는 핏자국들, 어지럽혀진 짐까지. 난장판이다.


그리고 다시 이리나를 봤다. 정확히는 그녀의 두려움에 떠는 눈을 봤다. 아둠은 복면의 남자가 결코 입을 열 인물이 아니란 걸 알고 죽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둠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녀가 아직 새파란 여자라서?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그녀도 죽여야 할까?


‘죽여?’


아둠은 스스로 되뇌였다. 의외다. 그는 잔인한 사람은 아니지만 결코 목숨을 끊는데 망설이지도 않았다. 죽여야 하면, 죽인다. 그리고 이리나는 아둠의 기준으론 역시 죽어야 하는 여자다.


지금 그가 그냥 가버리면 이리나는 어떻게 할까? 스스로 시체를 치우고 방안을 정리해 증거를 인멸한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학교생활을 할까? 웃기는 일이다. 결국 그녀는 이 사건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고문을 받으며 분명히 아둠의 이야기도 꺼낼 것이다. 살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으로 아둠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걸 떠벌릴 것이다.


결국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그녀도 죽이고 떠나는 것이다.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마법학교는 평민 여식의 죽음 따위 적당히 묻어 버릴테고, 게쉬타크는 이리나가 죽었으니 만족할 것이다.


‘이년을 죽인다고?’


머리는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아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눈만 깜빡이며 아둠만 쳐다보고 있다.


신전에서 눈을 뜬 일이 생각난다. 앙증맞은 말투로 씌여진 편지. 그녀의 빈 시약병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자신이 기절했을 때 사람을 불렀다면 어떻게 됐을까? 저 누워있는 시체가 내가 되진 않았을까?


멀쩡해졌던 머리가 다시 지끈지끈 아파왔다. 아둠은 이런 우물쭈물하는 상황을 정말 싫어했다. 판단은 신속했다. 아둠이 말했다.


“너.”


이리나는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온 신경을 집중했다.


“소리지르면 죽는다.”


“네? 꺄...”


이리나는 비명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하지만 비명을 질러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명을 질러야 정상이다. 말이 끝나자마자 아둠이 다가오더니 그녀를 들쳐 업었다.


아둠은 창문에 발을 디디고 훌쩍 뛰어내렸다. 몸이 붕 꺼지자 이리나는 또 비명이 나올 뻔한 걸 꾹 참았다. 기숙사 뒤 정원에 착지한 아둠과 이리나의 모습은 곧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작가의말

이 쯤이 대략 챕터1의 5분의 3정도? 지점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챕터1이 끝날 시점에선 모든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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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 가시를 뽑은 용(2) +4 16.01.25 438 2 10쪽
26 2. 가시를 뽑은 용(1) +2 16.01.24 337 2 11쪽
25 1. 영원의 돌(22) 챕터1 마지막화. +10 16.01.21 371 9 9쪽
24 1. 영원의 돌(21-3) +3 16.01.21 419 4 6쪽
23 1. 영원의 돌(21-2) +1 16.01.21 321 6 7쪽
22 1. 영원의 돌(21-1) +3 16.01.20 333 4 6쪽
21 1. 영원의 돌(20) +5 16.01.19 375 7 13쪽
20 1. 영원의 돌(19) +3 16.01.19 446 7 7쪽
19 1. 영원의 돌(18) +3 16.01.19 406 8 12쪽
18 1. 영원의 돌(17) +3 16.01.18 519 7 10쪽
17 1. 영원의 돌(16-2) +4 16.01.17 386 10 9쪽
16 1. 영원의 돌(16) +4 16.01.16 532 10 6쪽
15 1. 영원의 돌(15) +1 16.01.15 474 7 3쪽
» 1. 영원의 돌(14) +1 16.01.15 535 10 7쪽
13 1. 영원의 돌(13) +2 16.01.15 465 10 11쪽
12 1. 영원의 돌(12) +4 16.01.14 373 11 14쪽
11 1. 영원의 돌(11) +4 16.01.14 492 13 10쪽
10 1. 영원의 돌(10) +3 16.01.14 413 11 13쪽
9 1. 영원의 돌(9) +1 16.01.13 390 10 3쪽
8 1. 영원의 돌(8) +3 16.01.13 430 11 7쪽
7 1. 영원의 돌(7) +3 16.01.13 458 10 8쪽
6 1. 영원의 돌(6) +2 16.01.12 408 9 3쪽
5 1. 영원의 돌(5) +1 16.01.12 597 13 8쪽
4 1. 영원의 돌(4) +3 16.01.12 665 16 9쪽
3 1. 영원의 돌(3) +1 16.01.12 423 15 8쪽
2 1. 영원의 돌(2) +6 16.01.11 470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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