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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쟁이
작품등록일 :
2016.01.10 21:43
최근연재일 :
2016.01.29 08:0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12,842
추천수 :
257
글자수 :
109,885

작성
16.01.15 10:52
조회
464
추천
10
글자
11쪽

1. 영원의 돌(13)

DUMMY

아둠은 깨어났다. 아니, 아까부터 계속 깨어있었는지도 모른다. 귀울림소리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둠은 눈을 뜨려 했지만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다시 닫을 수밖에 없었다.


눈 사이로 들어오는 것은 액체였다. 아둠은 조금 입을 벌려 그 액체를 맛보려 했다. 그러나 아둠은 이미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액체는 아무 맛도 없었다. 어쩌면 미각이 익숙해져서 맛을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몸은 희미하고 나른했다. 아둠은 액체가 물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아둠이 조금씩 몸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이 끈적끈적함은 물이 아니었다. 아둠은 입으로 바람을 불어 봤다.


뽀글뽀글. 눈 앞에서 위로 올라가는 방울들이 보인다. 아둠은 한번 더 불어 보았다.


뽀글뽀글. 아둠은 더 오래 불고 싶었지만 온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 더 힘을 낼 수 없었다. 거품소리에 자극을 받아서일까. 아둠은 좀 전보다 정신이 맑아지는 듯 했다. 천천히 알을 깨는 새끼처럼, 아둠은 다른 자극에 목말라했다.


그는 눈을 뜨기로 결정했다. 두려웠지만 앞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더욱 컸다.


깜빡. 처음 눈을 뜨자마자 액체가 들어오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감고 말았다. 두 번째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 번째, 네 번째가 되면서 그 기간은 점점 길어졌다. 몇 번을 시도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 번째 시도에, 아둠은 마침내 눈을 뜨는데 성공했다. 기쁨도 잠시였다. 아둠이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감고 있을 때처럼 온통 검은색이 아닌 게 위안이었다. 아둠이 보는 세상은 노을진 음침한 숲처럼 어두운 올리브색이었다.


그 때 어떤 소리가 들렸다. 아둠은 잔뜩 집중했다. 거품소리 외에 다른 소리를 들어보긴 처음이었다. 집중하고 시간이 지나자 소리는 조금씩 커졌다. 하지만 제대로 알아들을 만큼은 아니었다.


“아직도.... 실망...”


아둠이 처음으로 알아들은 말소리였다. 저음의 목소리인 듯 잘 들리지 않았다.


“연구... 바친... 부족... 재료...”


이후 아둠이 들은 단어는 고작 이 정도였다. 저음 목소리의 주인은 다른 대화상대가 있는 것 같았다. 아둠이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소리밖에 없었고 다른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 듣고 싶어 아둠은 점점 앞으로 나갔다. 미약하게 손을 허우적이며 앞으로 나가려 했다. 아둠은 앞으로 손을 뻗었다. 자연스레 자신의 손이 보였다. 아둠의 동공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됐다. 그 순간


쨍그랑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강한 자극이었다. 그 찢어지는 소리와 자신의 머리에 이는 강한 압박은 거의 동시에 느껴졌다. 갑작스레 들어오는 빛은 너무도 눈부셨다.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기엔 아둠의 감각 체계가 부실했다. 아둠은 온몸을 퍼덕거리며 발버둥쳤다. 더 이상 몸은 끈적이지 않았지만 너무 추웠다.


쿵.


그는 처음으로 고통이란 걸 알았다. 고통을 견디며 눈을 뜨려 노력했다. 몹시 딱딱한 어느 면에 충돌해 누워 있다. 아둠의 몸을 감싸던 액체는 사라졌다.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지만 차가웠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아둠은 다른 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게 큰 기쁨이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색들이 뒤섞여 무지개처럼 보였다. 아둠이 눈을 크게 뜨고 조금이라도 더 보려는 찰나,


콱!


아둠은 몸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자신의 몸을 무언가가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견디기 힘든 무게였다. 그는 애처롭게 바둥거리며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려 했다. 뿌옇게 보이는 무언가가 자신을 짓밟고 있었다. 울부짖는 것만이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근거림이 멈추더니, 그 어느 소리보다 크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패작, 쓰레기일 뿐이다.”


아둠이 정확히 들은 최초의 말소리였다.









정신이 들었다. 눈을 뜨기 싫다. 몸이 나른한 게 이대로 조금만 쉬자고 속삭이는 듯하다. 마치 게으른 철부지처럼...


‘게을러?’


아둠은 벌떡 일어났다. 자신은 게으를 수 없는 존재였다. 지나치게 큰 목표를 짊어진, 그래서 쉴 수 없는 존재 아닌가. 아둠은 잠시나마 나약한 생각을 했다고 자책했다. 그는 두 손으로 꽉 쥔 이불을 보고서야 왜 그토록 일어나기 싫었는지 이해가 됐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본지도 한참 예전 일이다.


‘여긴?’


그녀의 방이다. 아둠은 그제서야 모든 게 기억났다. 분명 자신은 독에 중독된 채 과다출혈로 뻗었는데...


“일어났네요.”


여자의 목소리, 아둠은 고개를 돌렸다. 의자에 앉아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이십대 초중반 정도? 소녀티를 벗은 여자였다. 아둠이 물었다.


“네가 이리나냐?”


“당신은 제가 업어줬던 아저씨네요.”


“난 아저씨가 아니다.”


이리나는 기절한 아둠을 신전으로 데려간 일을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리나라는 대답 아닌 대답이었다.


그 일을 떠올리자 아둠은 화가 치밀었다. 그녀가 자신을 내버려뒀다면 이 모든 일이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녀의 행동이 선의에서 나온 걸 알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고 말았다.


맘 같아선 당장 그녀의 목을 조르고 싶었지만 그녀는 자신을 구해주었다. 두 번이나 호의를 베푼 것이다.


‘제길...’


아둠은 이마를 감쌌다. 어지러웠다. 이리나가 말했다.


“피를 많이 흘려서 그래요.”


그녀의 말에 아둠은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팔과 가슴의 상처는 찢어진 옷이 붕대삼아 묶여있다. 통증만 참는다면 자잘하게 움직이는데 지장은 없었다. 이리나가 앉은 의자 옆에는 온통 새빨간 수건이 걸려 있었다. 보나마나 자신의 피다. 그녀는 기절한 아둠을 간호해준 것이다. 아둠은 뭐라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독은?”


“네?”


“난 분명 독에 중독됐는데?”


“그.. 글쎄요, 그건 저도...”


그녀는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아둠의 눈이 그녀의 책상 위의 유리병으로 향했다. 유리병에 희미하게 말라붙어있는 붉은 액체, 거기다 코를 자극하는 익숙한 냄새. 짙은 피냄새에 가려지긴 했지만 분명 아둠에겐 익숙한 냄새다.


“회복약을 먹였군.”


“네?”


“포션 말이다.”


그제서야 이리나는 알아들은 표정이었다. 아둠은 대충 이해가 됐다. 독과 상처로 자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떨어진 체력 상태가 회복약 덕분에 자생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된 것이다. 그 이후엔 몸이 스스로 해독 작용을 했으리라.


“실습 때 만들어놓은 거예요. 하급 포션이지만 혹시나 해서...”


이번엔 진짜로 생명을 구해줬다. 그녀는 진정한 의미로 아둠의 생명의 은인이 된 것이다.


“크크큭...”


갑자기 옷장 옆에 쓰러져있는 복면이 웃었다. 그러나 아둠과 이리나 둘 모두 위협을 느끼진 않았다. 복면의 웃음소리에는 허탈함과 고통스러움이 묻어있었다. 아둠과 다르게 그는 쓰러진 상태 그대로였다.


“저놈은 내버려뒀군.”


“절 죽이려 했고... 복면 쓰고 칼도 들고 왠지 악당같아서요.”


그녀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아둠은 쓴 웃음이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나온 웃음이었다.


“내가 얼마나 오래 누워있었지?”


“이제 3시간 정도 됐어요.”


“3시간...”


그 대답만으로 아둠은 복면의 상태가 짐작이 갔다. 자신처럼 칼에 찔린 것도 아니고 두들겨 맞았는데 3시간동안 일어나지 못한다. 보통 심각한 상태가 아니다.


‘놔두면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군.’


복면에게도 응급처치가 필요했다. 뼈는 물론이고 상황으로 봐서 내장이 다쳤을 가능성도 있다. 자연치유도 희박할뿐더러 된다 하더라도 자칫 뼈가 뒤틀린 채 붙어버릴 위험도 있다. 그럼 자객으로선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아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괴한이야 죽던 말던. 자신의 목숨을 노린 자다. 아둠은 관심없었다. 자신이 이 위험한 학교에 들어와 처음보는 암살자와 대결을 벌이고 죽다 살아난 모험을 겪은 이유는 따로 있다.


“영원의 돌은 어디있지?”


“네?”


“네가 훔쳐간 물건, 어디있냐고!”


“......”


이리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의미하는 불길한 미래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부정했다.


“그 물건은... 네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귀중한 물건이다... 지금 당장 돌려주길 바란다...”


아둠은 자신이 이렇게 침착하게 말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분명히 마법학교 담장을 뚫을 때만 해도 그의 머릿속엔 이리나를 향한 온갖 물리적 강제수단과 협박, 분노와 조급함만이 꽉 차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을 몰아내고 스리슬쩍 침착함이 들어왔다. 머리로는 기가 막혔지만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을 살려준 그녀에 대한 분노는 제법 수그러들었다.


이리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역시 그것 때문일 줄 알았어요.”


뒤로 갈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작아졌는데 아둠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둠은 재차 물었다.


“가지고 있겠지?”


“......”


이리나는 또 말이 없었다. 아둠은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줘 말했다.


“이. 리. 줘.”


머리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당장 내놔’였지만 마음에서 순화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아둠은 곧바로 후회했는데, 이미 말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녀는 머뭇머뭇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티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아둠은 그녀가 영원의 돌의 가치를 알기에 주지 않으려 한다는 희박한 가능성도 떠올렸으나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다. 아둠의 바람과는 별개로 그의 머리는 이리나의 우물쭈물한 태도를 보며 이미 결론을 내렸다.


“없어요...”


실제로 그 말을 들은 후, 아둠이 당장 그녀를 때리지 까닭은 그녀가 지금껏 베푼 호의와 허탈감 때문이었다.


“말해봐.”


매우 힘겹게 나온 듯, 그 한마디는 무거웠다.


“왜 없는지...”


겉으로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둠은 이리나를 노려본다거나 주먹에 힘을 주는 행위도 하지 않았다. 아둠의 몸이 지나친 흥분과 분노 때문에 저절로 부들부들 떨렸다.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해명을... 해봐”


작가의말

아둠... 화났다... 영원의 돌... 내 꺼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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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 영원의 돌(22) 챕터1 마지막화. +10 16.01.21 371 9 9쪽
24 1. 영원의 돌(21-3) +3 16.01.21 419 4 6쪽
23 1. 영원의 돌(21-2) +1 16.01.21 321 6 7쪽
22 1. 영원의 돌(21-1) +3 16.01.20 333 4 6쪽
21 1. 영원의 돌(20) +5 16.01.19 375 7 13쪽
20 1. 영원의 돌(19) +3 16.01.19 446 7 7쪽
19 1. 영원의 돌(18) +3 16.01.19 406 8 12쪽
18 1. 영원의 돌(17) +3 16.01.18 519 7 10쪽
17 1. 영원의 돌(16-2) +4 16.01.17 386 10 9쪽
16 1. 영원의 돌(16) +4 16.01.16 532 10 6쪽
15 1. 영원의 돌(15) +1 16.01.15 474 7 3쪽
14 1. 영원의 돌(14) +1 16.01.15 534 10 7쪽
» 1. 영원의 돌(13) +2 16.01.15 465 10 11쪽
12 1. 영원의 돌(12) +4 16.01.14 373 11 14쪽
11 1. 영원의 돌(11) +4 16.01.14 492 13 10쪽
10 1. 영원의 돌(10) +3 16.01.14 413 11 13쪽
9 1. 영원의 돌(9) +1 16.01.13 390 10 3쪽
8 1. 영원의 돌(8) +3 16.01.13 430 11 7쪽
7 1. 영원의 돌(7) +3 16.01.13 458 10 8쪽
6 1. 영원의 돌(6) +2 16.01.12 408 9 3쪽
5 1. 영원의 돌(5) +1 16.01.12 597 13 8쪽
4 1. 영원의 돌(4) +3 16.01.12 665 16 9쪽
3 1. 영원의 돌(3) +1 16.01.12 423 15 8쪽
2 1. 영원의 돌(2) +6 16.01.11 470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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