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쓰는새벽 님의 서재입니다.

시간아 멈춰라.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글쓰는새벽
작품등록일 :
2019.08.10 07:15
최근연재일 :
2019.08.17 14:55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707
추천수 :
209
글자수 :
107,748

작성
19.08.11 00:26
조회
400
추천
12
글자
13쪽

Hour 03. <면접 보는 날.>

DUMMY

02.


허민은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매우 자신감 있게 똑바로 쳐다본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내 표정이 뭐가. 왜.”

“엄청 긴장한 표정인데요? 저랑 이야기 하고 시간 돌린 거 아니에요? 그 사이에 무슨 일 있었나 봐요?”


눈치 존나 빠르네 진짜.


“됐고. 니들 조직은 대체 뭐야?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곳이야?”

“그, 뭐랄까. 굉장히 좋은 곳이죠? 복지도 좋고 월급도 빵빵하고. 세상 좋은 일도 하고. 직원들끼리도 가족처럼 지내요. 삼성이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하던데, 에이~ 거기랑은 비교도 안 돼요.”

“아니. 그런 거 말고.”


굉장히 헛소리를 하는데 그 와중에 삼성을 언급한 건 조금 신경 쓰인다. 저 발언은 농담인 척 하는 진담인 것 같다. 자기네 조직은 삼성보다도 훨씬 규모도 크고 파워도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거겠지.


“정확히 어떤 걸 물어보는지 모르겠네요. 설령 제가 대답을 한다고 해도 그게 진짜라는 보장도 없잖아요? 믿을 수 있겠냐 이거죠. 그리고 한 가지 더.”

“뭔데.”

“죄송한데 입 좀 헹구면 안 될까요? 이대로 두면 치약 말라서 입에서 냄새날 텐데.”

“아이 씨.”


아까 그랬던 것처럼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건넸다. 허민은 물로 입을 헹구고 대충 바닥에 뱉었다. 똑같은 장면을 다시 보니까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

일단 뭐라도 물어보자.


“야.”

“네?”

“혹시 나 말고도 다른 능력자가 있냐? 시간 능력자라거나, 아니면 뭔가 또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거나.”

“글쎄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하, 이를 어쩐담.”


슬슬 열이 받는다. 아까부터 계속 헛지랄을 떨어대는데 더 이상 그 모습을 봐주기 힘들다. 참지 못 하고 결국 그녀의 허벅지를 쐈다.


탕!


다리를 맞은 허민은 발라당 자빠졌다. 아까 전까지 온갖 콧소리를 내며 여유를 부리던 허민은 새파랗게 질렸다.


“아아······ 끄윽. 허으어아아.”

“야, 내가 우습냐? 적당히 봐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너 진짜 뒤져 볼래?”

“흐으윽. 사,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허민은 목 놓아 소리쳤다. 발발 거리며 힘겹게 바닥을 기었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괴로워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통쾌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찝찝하고 더럽다.


허민은 피를 흘리며 계속 바닥을 기었다. 상당히 아픈지 신음을 내고, 심지어 울기까지 했다. 엉엉 목 놓아 울더라.


“살려줘! 아, 아파! 아파!”

“진짜 못 들어주겠네.”


께림칙한 기분을 도저히 어찌 할 수가 없더라. 권총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속이 메스껍다. 영화 같은 거 보면 나쁜 놈들은 죽여도 주인공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귀를 찌르는 비명부터가 소름이 끼친다. 안 될 것 같아서 시간을 되돌렸다.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입에 칫솔을 문 허민이 욕실에서 나온다. 나를 보고 놀란다.


“누구세요?”


칫솔을 물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칫솔을 뺐다. 그녀의 작은 손에 물통을 들려줬다.


“일단 입 헹궈.”

“네?”

“입부터 헹구라고.”

“어어, 네.”


허민은 착하게도 시키는 대로 했다. 물통을 따서 입 안을 헹구고 바닥에 뱉는다. 입에 물이 들어갈 때면 뺨이 빵빵해진다. 복작복작 대는 소리가 들린다.


“하, 씨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입을 다 헹군 허민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아요?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존나 힘들어.”

“기운 내세요.”


진짜로 힘들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닥에 고여 있는 관상용 물에 세수를 했다. 그 사이에 허민이 기습할지도 모르지만 그냥 했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해.


생각 같아서는 당장 이 년을 쏴죽이고 싶은데 그건 너무 역겹다. 내가 진짜 나쁜 새끼라고 생각했는데 순진해 빠진 생각이었다. 살려달라고 목 놓아 우는 소리를 들으니 심장이 벌렁 벌렁 하더라.


문제는 이 악물고 얘를 죽인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거다. 대장이 죽으면? 새로운 대장이 그 자리를 차지하겠지. 결국 또 제자리다. 그렇다고 얘 말마따나 이 빌딩에 있는 전부를 죽인다? 못 해. 난 못 해.


“왜요? 뭐가 잘 안 됐어요?”

“야. 그냥 좀 솔직하게 답해주면 안 되냐? 니네가 이미 이긴 게임이라며. 그럼 다 말해줘도 되잖아.”

“아핳핳. 제가 그 말도 했어요? 와, 짱 신기하다.”


허민은 애교 섞인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전 아직 질문을 못 들었는데요? 일단 질문을 들어야 대답을 해주죠. 그게 순서잖아요?”

“그냥 너네 조직이 뭐 어떤 건지 설명해달라고.”

“아아~ 난 또 뭐라고.”


허민은 분홍빛의 입술을 더듬으며 말했다.


“근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응?”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고요. 반드시 알아야 할 만큼. 솔직히 아니잖아요? 그쪽의 목적은 우릴 무너트리는 거 아니었어요?”


솔직히 그렇기는 하다. 이 망할 놈의 조직이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는 사실 알 바 아니긴 하지.


“몇 가지 궁금한 요소가 있기야 하겠지만 솔직히 상관없잖아요? 그런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개인적인 호기심에 매달린다는 건 결국 사람을 죽이기 힘들어서 그러는 거잖아요. 그쵸?”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이 필요 없었다. 그녀는 내 심리를 꿰뚫고 있었으니까.


“그러지 말고 그냥 우리 조직에 들어와요. 그럼 다 해결되는 문제 아니에요? 쫓길 일도 없지, 살해당할 일도 없지, 누굴 죽일 필요도 없지. 한 편이 되면 자연스레 조직의 역사나 시스템도 알 수 있을 거고요. 혜택 짱짱하잖아요? 이런 기회 흔치 않아요. 기회를 잡아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근데 아까보다는 솔깃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상대를 죽일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방법을 찾아낼 짱구도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면 차라리 놈들과 손을 잡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더 이상 쫓길 일도 없고 편하겠지. 자동으로 취직도 된다. 어렴풋이 상상만 해봤던 대기업에 취직이라니. 솔깃한다.


“에이~ 빼지 말고요.”

“하. 애시당초 날 죽이려고 만든 조직인데 이제 와서 날 섭외를 하겠다?”

“몇 번이고 암살에 실패했으니 계획을 바꾸는 거죠. 플랜 B. 당신처럼 엄청난 능력을 지닌 사람을 계속 적으로 두느니 차라리 아군으로 두는 게 더 낫다 이거에요. 대표 이사 쯤 되는 위치에 있으면요, 융통성이 있어야 하거든요. 생각이 유연해야 돼요.”

“그럼 조직의 목표가 없어지는 거잖아.”

“오면서 건물 이름 못 보셨어요? 민 인터내셔널이잖아요? 위장 기업이지만 실제로도 기능하고 있거든요. 대기업의 대표 이사면서 시간 능력자를 친구로 두면 무서운 게 없겠죠?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아주 아주.”


가만히 허민을 바라보았다. 언뜻 보면 귀염상이지만 눈빛이 의심스럽다. 전형적인 속이 검은 사람이다.


이 녀석들을 몇 번 상대하면서 느낀 건데. 이 자식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놈의 플랜이 오지게 많다. 전철에서 등을 떠밀어서 죽일 계획인데 실패하면 총을 쏜다, 총이 통하지 않으면 폭탄 조끼를 이용하고 그마저 안 통하면 집으로 유인해서 집채로 날려버린다는 플랜을 짜는 놈들이다.


내가 여기에 오는 것까지 예상을 하고 플랜을 짜는 녀석들이니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욕심이 많다. 욕심이 많다.

“아핳핳, 너무 솔직했나요?”

“야. 그럼 하나만 물어보자.”

“질문 참 좋아하신다. 어떤 건데요?”


허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까는 왜 자살을 했냐?”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던 허민의 표정이 굳었다. 웃는 얼굴로 굳었다가 점점 당혹감이 서린다. 미소가 어색해진다. 저건 처음 보는 표정이군.


“······자살? 제가요?”

“그래. 마빡에 총 겨누니까 갑자기 내 손 당겨서 자살하더만. 그렇게 욕심 많은 사람이 왜 자살을 해?”

“그야 그쪽이 시간을 돌려서 다시 나를 살릴 테니까요. 그냥 허세 좀 부려본 거예요. 기억은 없지만 아마 그랬을 거예요. 제 말 틀려요? 제가 죽었어도 시간 돌려서 다시 살려냈을 거잖아요?”

“안 돌렸으면?”

“아니. 돌렸을 거잖아요!”

“내가 너라면 안 돌렸을 가능성도 생각 했을 걸. 그렇게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지면서 플랜 따지는 사람이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그딴 멍청한 짓을 해? 너는 러시안 룰렛 돌리는 재벌 본 적 있냐?”


허민은 양 허리에 손을 얹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결국 거절하겠다고?”

“그딴 뻔한 거짓말에 속을 거 같냐?”

“알았어. 싫다는데 별 수 있나.”


그녀는 목 근처를 더듬었다. 이제 보니 목걸이를 차고 있더라. 목걸이를 힘줘서 눌렀다.


“그거 뭐야.”

“별 거 아니야. 그냥, 잘 가라고.”

“시발, 어디서 또 개수작이야?”


다급히 손가락을 튕겨서 시간을 멈췄다. 이미 버튼을 눌렀지만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폭탄은 아닌가? 곧장 반응하는 게 아니라면 뭔 자신감으로 잘 가라고 한 거람? 잘 이해가 안 가는데.


“격발 불량인가?”


분명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시간도 멈췄는데 긴장이 된다. 내가 겁이 많은 건가? 그런데 그 때였다.


벽인 줄 알았던 곳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


키가 크고 말끔하게 생긴 남자였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들어오더니 허민과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너 뭐야······.”


그러니까 저 인간 지금. 시간을 멈췄는데도 움직이고 있다. 옆에 있는 허민은 목걸이를 잡은 채로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 있었다. 그야 당연히 시간을 멈췄으니까.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니,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설마 저 새끼도 초능력자인가?


“움직이지 마!”


녀석을 향해 총을 겨눴다. 놈은 생전 처음 보는 방패를 들고 있었다. 투명하고 가벼워 보이는 방패다. 사람 키보다 위 아래가 약간 짧긴 한데, 자세를 숙이면 완벽하게 가려진다. 진압 방패 비스무리한 건데, 저런 건 보통 쇠로 되어 있지 않나?

놈은 방패를 세우더니 슬금 다가왔다.


“움직이지 말라고, 개새끼야!”


시간을 멈춰도 움직인다니. 놈을 향해 고민하지도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방패가 투명한지라 방탄 효과가 있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총알은 방패를 뚫지 못 했다. 방패를 든 녀석은 충격을 받은 듯 움찔거리긴 했지만 그게 전부다. 놈은 방패를 앞세워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어이가 없어서 손에 들린 권총을 멍하니 보았다. 아끼지 않고 모두 퍼부은 탓에 총알을 다 써버렸다. 쓸모가 없어진 권총을 내다 버렸다.


“뭐 어떻게 생겨 먹은 방패야.”


놈은 방패를 앞세워서 탄탄하게 방어를 하는 한편, 품을 뒤져 권총을 꺼냈다.


“시발.”


총을 보는 순간 부리나케 달아났다.


탕! 탕!


도망가는 동안 놈이 몇 발 쐈지만 다행히도 맞지 않았다. 도망칠 때 허민 근처를 지난지라 조심하느라고 못 맞춘 것 같다. 도망친 곳에는 형형색색의 술병이 진열된 바가 있었다. 그곳으로 숨었다.


“어떡하지.”


생각해 보니까 권총을 괜히 버린 거 같다. 방패가 총탄을 막긴 했지만 시간을 돌리면 다시금 탄환이 보충 될 테니까. 에이 씨. 내가 그걸 왜 버렸지.


살짝. 아주 살짝 고개를 들어서 바깥을 살폈다. 엘리베이터가 간신히 보인다. 엘리베이터는 20층에서 층수가 멈춰 있다. 밑에서 누가 호출을 했나 보다.


엘리베이터 말고 다른 출구는 없나? 아까 녀석이 들어온 곳은 그냥 맨들맨들한 벽이다. 분명 저기가 비밀 통로이긴 한데, 어떻게 여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총 든 상대가 눈을 부라리고 있어서 알아볼 여유도 없고.


“왜 이렇게 조용하지. 불안한데.”


영화 같은데 보면 이런 상황에서는 악당들이 마구 총을 쏜다. 그럼 진열 돼 있던 술병들이 마구 깨지고, 밑에 숨어 있는 주인공에게 파편이 쏟아지고. 대충 이런 광경이 연출된다. 그런데 녀석은 전혀 쏘지 않았다.


“뭐하는 거야.”


궁금해져서 슬금 고개를 드는 순간, 멀찌감치에 있던 녀석은 방패를 틀어 내게 총을 쐈다.


“왁!”


놈은 조금 다가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멀리에 있었다. 신중하게 천천히 접근 중이었다.


“저 새끼는 대체 뭐야! 왜 안 통하는 건데!?”


능력이 통하질 않으니 머리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 전에는 생각이라는 게 필요가 없었으니까. 능력에 도취 되어 이런 상황을 대비하지 못 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초능력도 안 통하고.

방탄 방패를 들고.

실탄이 든 권총을 들고.

전문적인 전투 훈련을 받은 것 같고.


이런 사람을 맨 손으로 어떻게 상대해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간아 멈춰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원 감사합니다. 19.08.19 66 0 -
17 완결. <또 다른 선택의 시간.> +7 19.08.17 221 15 14쪽
16 Hour 06. <시간의 경계.> +1 19.08.16 182 10 16쪽
15 Hour 06. <시간의 경계.> +1 19.08.16 198 9 15쪽
14 Hour 06. <시간의 경계.> +3 19.08.15 230 10 14쪽
13 Hour 05. <부활.> +1 19.08.15 239 9 14쪽
12 Hour 05. <부활.> +2 19.08.14 265 13 14쪽
11 Hour 05. <부활.> 19.08.14 296 8 14쪽
10 Hour 05. <부활.> +1 19.08.13 320 12 15쪽
9 Hour 04. <생일 축하합니다.> 19.08.12 328 14 14쪽
8 Hour 03. <면접 보는 날.> +3 19.08.11 372 10 14쪽
» Hour 03. <면접 보는 날.> +1 19.08.11 401 12 13쪽
6 Hour 03. <면접 보는 날.> +2 19.08.10 486 15 15쪽
5 Hour 02. <불타는 효자.> +1 19.08.10 487 12 14쪽
4 Hour 02. <불타는 효자.> 19.08.10 521 16 13쪽
3 Hour 01. <플랜 B.> 19.08.10 560 15 13쪽
2 Hour 01. <플랜 B.> +1 19.08.10 665 11 14쪽
1 Hour 01. <플랜 B.> +1 19.08.10 928 18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