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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채

마신이 심부름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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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채
그림/삽화
가채
작품등록일 :
2020.05.20 18:03
최근연재일 :
2020.05.25 19:15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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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추천수 :
13
글자수 :
44,837

작성
20.05.22 19:00
조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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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재판

DUMMY

우웅-.


“이제 오십니까? 이 재수탱이들.”


나와 아가레스가 소환진에서 나오자마자 본 것은 마계의 제2 마왕이자, 곧 제1 마왕이 될 아몬이었다.


“집 잘 지키고 있었네? 아몬.”

“짜증 나게 별 볼 일 없는 네놈 영지에 또 도움만 주는 꼴이지 않습니까, 아가레스.”

“아하하, 고맙다.”


허구한 날 일도 하지 않고 탈옥수만 주구장창 잡아 오는 아가레스가 제1 마왕인 이유는 사실 아몬에게 있었다.


외출할 때마다 아가레스의 영지를 맡는 건 아몬이었으니, 아가레스의 영지의 반은 아몬이 만들어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알 님께선 신계로 가셔야지요? 연락 넣었으니 다들 모여계실 겁니다.”

“그래, 고맙다.”


내 마력구 안에서 저항하고 있는 이 귀찮은 것들을 빨리 없애버리기 위해선 다시 신계로 가야 했다. 높으신 형제 신들은 지루해하며 날 기다리고 있을 게 뻔했다.



* * *



“마신 바알 님, 들어가십니다.”


회담 때와 같이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던 보초병이 나를 들여보냈다. 여전히 밝게 빛나는 곳이었다. 이에 비하면 헤르만의 저택도 지지 않을 듯한데.


거대한 문이 무겁게 열리자, 눈부시게 빛나는 샹들리에와 나머지 신들이 회담장으로 들어오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중에서도 눈도 마주치기 어려울 만큼 반짝이는 주신, 아르카디오가 고상하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바알, 네가 본 중간계의 모습은 어떠하였느냐?”

“루그두눔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라면,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흠···. 그래. 잘 해주었다. 카일, 만족하느냐?”


주신이 천신 카일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그러자 카일이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마력구를 해체해 루그두눔을 풀어주라는 뜻이었다.


나는 즉시 마력을 거두어 카일의 앞에 갇혀 있던 루그두눔 일족을 내팽개쳤다.


“큭! 무례한, 마신 놈!”


지금 누가 제일 무례한지는 알고 하는 말인가.


푸른 머리칼의 루그두눔이 나를 실컷 노려보았다. 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카일을 향해 턱짓하였다. 잘 봐라, 누가 네 앞에 있는지.


“마틴.”

“···헉. 시, 신이시여.”


이름이 마틴이었구나.


카일이 주저앉은 마틴을 포함한 나머지 루그두눔을 내리깔며 신력을 방출했다. 여전히 어마어마한 신력이었다.


“이, 이유가 있었습니다. 죽이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닥치거라.”


마틴이 무릎을 꿇고 싹싹 빌며 해명을 시도했지만, 매정하기 짝이 없는 카일이 눈매를 사납게 올렸다.


“아버지, 재판을 요청합니다.”


화가 단단히 난 카일이 아르카디오를 향해 고개를 휙 돌리곤 말했다.


아르카디오가 끄덕이며 손을 들어 올리자, 회담장이 곧 재판소로 바뀌었다.


회담장이 재판소로 변하자, 카일을 제외한 모든 신이 어디 변명이라도 들어 보자, 는 식으로 행동하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목격자로서 재판에 참여하게 되었다.


판결은 카일이 하기로 하였다. 그는 중간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어하는 듯했다.


“시작하겠다. 우선 바알, 중간계에서 무얼 봤지?”

“시체 산. 직접 본 것은 그뿐입니다. 나머지는 문서로만 알았고요.”


그러니 빨리 좀 보내주지 않으련.


카일은 내 말을 듣고는 곧 마틴을 바라보았다. 한치의 설명도 없었지만, 마틴은 진술하기 시작했다.


“···어떤 인간이 신을 모욕하였습니다. 다른 신도 아닌, 천신 카일 님을요. 오랜 과거, 저희를 거두어 주신 카일 님을 욕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마틴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잘못한 걸 자각은 해서 다행이다.


“옛날에도 같은 일이 있었지.”


잠자코 보고 있던 아르카디오가 말했다. 동시에 다른 신들도 표정이 조금 굳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이상하게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나를 발견한 그는 설명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마틴에게로 다가갔다.


“저 아이처럼 어리석은 아이가 하나 있었다. 내 밑에서 일하던 충실한 천사였지. 인간이 주신을 모욕했다며 나 대신 신벌을 내렸다.”


과연, 마틴과 같은 경우였다.


계속해서 아르카디오가 말했다.


“그 인간은 죽임당하지 않았으나, 결국 난 그 아이를 신계에서 쫓아내 마계의 감옥에 가두었지. 카일, 잘 생각해보고 판단하거라.”

“예, 아버지.”


뜻밖이었다. 주신이면 그만큼 느끼는 모욕감도 크지 않았을 텐데, 소멸시키지 않고 쫓아내기만 하다니. 너무 가벼운 선처였다.


그런데 감옥에 천사가 있던가?


감옥엔 도통 가지 않으니 내가 잘 모르는 거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우선 재판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틴은 여전히 바닥에 엎드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조금 전 주신이 한 말을 듣고 더욱 겁에 질린 것이었다.


“마틴. 네가 잘못을 뉘우쳤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는 지금쯤 예상했겠지.”


카일은 여느 때보다 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밤하늘의 차가운 공기를 목소리에 담은 듯했다.


“난 너희를 중간계로 쫓아내겠다. 그곳의 바다에서 살며 중간계의 수호자 중 하나가 되거라.”

“···!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틴을 포함한 루그두눔이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얼핏 들으면 선처였지만, 사실은 무엇보다 끔찍한 벌이었다.


인간들은 겉모습을 가꾸는 것에 환장한다. 그런데 루그두눔 일족은 반짝이는 고운 머릿결을 가지고 태어난다. 또한, 그들의 눈알은 인간들에게 매우 희귀한 보석으로 여겨졌다.


즉, 그들이 중간계로 내려가 인간들의 눈에 띄면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간접적 살해였다.


천신 카일. 생각보다 잔인한 신이었다. 나만 하네.


다른 신들도 그런 카일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판은 이걸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르카디오 님.”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공적인 장소에서 주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던 카일은, 이성을 되찾고 제대로 예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주신 아르카디오는 말없이 인자한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재판은 끝인 났다.



* * *



“바알, 잠시 이리 오거라.”

“···? 예.”


재판이 끝난 후, 재판소는 다시 회담장으로 변하였다. 상황이 끝나고 자리를 물러나 돌아가려던 바알은 주신의 부름으로 멈춰 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직 나의 심부름을 듣지 못하였다, 바알.”

“아···.”


나는 깊이 탄식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란다, 라니.


아르카디오는 그런 나를 보고 빙긋 웃더니 손을 한번 휘저었다. 그러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무언가 가득 차는 느낌도 들었다.


당황스러웠다. 낯설지만 꼭 전부가 그렇지는 않은 기억이 마구잡이로 흘러들어왔다. 순서도 뒤죽박죽이었다.



* * *



삐빅, 삐빅, 삐-.


가습기 냄새만으로 가득했던 이 병실은 이제 의사와 간호사의 땀 냄새로 뒤덮였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나는 줄곧 병원 신세를 해왔으며, 과학의 힘으로 연명해오던 나는 결국, 조금 전에 죽었다.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점차 희미하게 멀어져갔다.


아, 허무한 인생이었다. 일평생 병원 신세만 지내다 죽다니.


아니, 사실 죽고 싶지 않았다. 매일 생사를 오고 가는 삶을 살아왔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만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새카만 어둠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다시 태어난다면 죽지 않는 몸으로 태어나기를.


내 인생 처음으로 신에게 빌었던 것은 죽음이 다가왔을 때였다.


* * *



‘어라, 눈이 떠진다.’


분명 나는 죽었는데.


눈을 뜨니 보이는 건 따스한 햇살이었다. 나를 둘러싼 풀들이 바람에 살랑거려 몸을 간지럽혔다. 아, 어딘가에 누워있구나.


나는 몸을 가볍게 일으켰다. 어, 가볍게?


항상 병을 달고 살던 내게 ‘몸이 가볍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말 중 하나였다. 그야 항상 무거웠으니까.


‘몸이 가볍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풀썩-.


아무래도 난 한참을 누워있던 것 같았다. 갑자기 몸을 일으키니 머리가 핑 돌며 결국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곳에 와 있는 걸까.



[다시 살고 싶다 하지 않았느냐?]


그때 어디선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음, 말이라기보단 머릿속에 직접 전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데요···.”

[나에겐 다 같은 말이다.]

“아, 예···. 근데 누구세요?”

[나는 이곳의 신이다.]


···내가 몸이 많이 안 좋긴 했나 보다. 죽고 나니 이런 일도 겪고. 나는 자칭 ‘신’이라는 자의 목소리를 가볍게 무시··· 하려 했으나,


[믿기 싫으면 믿지 말거라. 네게 주어진 이 기회도 놓치고 싶다면 계속 무시하고.]


차마 무시할 수가 없었다.


“기회라니요?”

[다시 살 수 있는 기회 말이다.]

“다시 살 수가 있습니까? 그··· 끔찍한 병원에서요···?”

[누가 그 병원에 보낸다고 하였더냐? 기회를 줄 터이니,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거라.]

“다른 세계?”


다른 세계라. 흔히들 말하는 ‘이세계에서의 삶’인가.


병원에서 살면서 나는 심심풀이로 게임이나 독서, 공부 등 여러 가지를 해왔다.


살아있던 시절, 나의 형과 누나는 병원에서 혼자 외로워할 나를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을 선물로 가져다주곤 하였다.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면 책을 이만큼 사 와주기도 하였고, 게임이 하고 싶다면 종류별로 게임기를, 책이 읽고 싶다면 말만 하라며 하나뿐인 막내를 위해 퍼부어주었다.


그런 그들 덕분에 여러 가지 책을 읽었는데, 그중 주인공이 이세계로 전송되어 모험하는 이야기가 꽤 재미있던 거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걸 내가 진짜 경험하다니. 말도 안 돼. 설마 사람들이 모두 죽으면 이 세계로 오는 건가?


[그렇다. 다만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지.]

“아, 깜짝아. 신호 좀 보내고 말해주세요.”

[실례했군. 어쨌든 동의할 테냐?]

“음···. 만약 제가 태어난다면 저도 전생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는 건가요? 그리고 뭐로 태어나죠?”

[특별히 원하는 게 있나?]


원하는 거라, 있기야 하다만 이 신이 들어줄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들어줄 터이니 말해 보아라. 너는 꽤 안타까운 삶을 살아온 듯하여 불쌍해서 말이지.]


아무래도 이 신은 진짜 신이 맞나 보다.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니.


“그렇다면···, 죽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은데요. 아픔도 없고 다치지도 않을 그런 강한 몸을 가지고 싶고, 또···.”

[또?]


정말 이곳이 내가 아는 그 판타지 세계라면 혹시 마법이 있지 않을까.


“마법 같은 게 있나요?”

[있고말고.]


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렇다면 제일 강한 마력을 갖게 해주세요.”

[네가 원한다면, 그리 해주겠다. 그 대신, 이 몸을 거스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예?”

[내가 사라지면 이곳의 모든 생명이 사라지게 된다. 이 세계는 내가 창조해 낸 세계이다.]


훅-.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며 촛불이 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르카디오. 이 이름을 기억하거라. 그리고 네 이름은 바알 제로아딘. 주신 아르카디오가 직접 내리는 이름이다.]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말소리는 여전히 내 머릿속에 닿았다. 왠지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럼 앞으로 잘 살아가거라. 이 몸은 항상 널 지켜보고 있으니.]


그 말을 끝으로 툭 끊기는 소리가 나더니, 다시 시야가 밝아졌다.


이번엔 조금 달랐다. 싱그러운 풀들이 살랑거리고 있었고, 햇살을 그렇게 뜨겁지도 않았으며, 바람은 차가움과 따뜻함 그 중간의 온도로 살살 불어왔다.


그 평화로움 가운데 나무로 된 작은 집이 우두커니 홀로 서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집이 내 집이구나.


작가의말

이제부터 주인공의 과거가 밝혀집니다. 참고로 전생의 주인공의 이름은 이재형, 형은 이재훈, 누나는 이재희랍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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