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치즈롤의 서재입니다.

아베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중·단편

완결

치즈롤
작품등록일 :
2016.11.20 22:42
최근연재일 :
2016.11.24 18:30
연재수 :
8 회
조회수 :
1,222
추천수 :
9
글자수 :
24,279

작성
16.11.22 18:30
조회
136
추천
1
글자
10쪽

3화

DUMMY

광분한 전사들의 괴성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여기저기서 함성소리가 터졌고, 세차게 부딪히는 금속음하며 칼을 맞은 병사의 비명소리.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핫산은 눈 앞에 있던 한 명을 베고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전진했다. 쓰러진 병사의 피가 후끈한 김과 함께 솟구쳐 그의 얼굴을 적셨지만 그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미 오랜 전투로 신경이 무뎌져 버린 것이다.

‘이번엔 두명? 할 수 있을까?’

그는 도끼를 잡은 손을 고쳐쥐었다. 피로 얼룩진 손잡이가 미끄럽지 않게 붕대가 감겨있었다. 다른 용병들도 애기(愛器)의 손잡이에 붕대를 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만약 손이라도 미끄러진다면 그 땐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갈색 군장을 한 두 명의 병사가 대검을 끌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대검보병 두 명이라면 여간 힘겨운 상대가 아니었다.

‘야압!’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왼쪽 병사의 대검이 강하게 그를 내리쳤다. 그는 도끼로 힘겹게 대검을 막아내곤, 그대로 누르듯이 앞으로 돌진했다. 이런 저돌적인 공격은 다른 한 명의 병사에게 공격할 틈을 주지 않기위한 것이었다.

그는 앞의 병사를 쓰러뜨려버리곤, 강렬하게 도끼를 휘둘러 오른쪽의 병사를 공격햇다. 과연, 뒤를 노리려 했던 병사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그의 공격이 닥쳐오는 바람에 대검과 함께 머리를 잃고 말았다. 커다란 대검이 저만치에 떨어져 흙과 뒹굴었다.

그가 다시 쓰러진 병사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어디선가 또 하나의 대검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를 공격하던 병사는 둘 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저히 피할 겨를이 없었다.

도끼가 손에 들려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자세를 바꿔 막을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질리는 것만 같았다.

그 때, 그림자 하나가 재빠르게 그의 앞을 막아섰다. 장검 하나로 대검을 지탱하고 있는 뒷모습은 산처럼 커다랗게 느껴졌다.

“핫산! 남은 한 녀석을!”

그는 그제서야 정신이 문득 들어 그를 노리고 찔러오는 또다른 병사의 검을 도끼로 쳐냈다. 그 바람에 탕!하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대검이 힘없이 부러졌다. 그리고 그의 날카로운 도끼가 반원을 그리며 병사의 머리를 두조각 내었다. 시원한 피보라가 뿌러졌다.

그를 막아주었던 남자도 이미 상대를 처리한 모양이었는지 그가 시선을 돌렸을 때엔 검에 묻은 피를 수건으로 힘겹게 닦고 있었다. 핫산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남자를 불렀다.

“대장! 살아있었구나!”

대장이라 불린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온몸에 마치 비라도 맞은 것처럼 피를 잔뜩 뒤집어 쓴 것이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입가에 그려진 미소는 투명한 유리잔 같았다.

그는 한 쪽을 물끄럼히 바라보았다. 의식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버릇처럼 다른 곳을 쳐다보곤 했다.

“강철의 여신이 점점 가까워지는구나.”

나즈막한 중얼거림은 전장의 비릿한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비릿한 핏내음이 엄습해오는 가운데 대장이라 불린 남자는 살아남은 자신의 부하들을 집결시켰다. 남자 세명, 여자 한 명. 한 소대에는 소대장을 포함헤 다섯명이 정원이다. 다행이도 모두 무사했다.

로즈라는 이름을 가진 소대의 유일한 여자는 대장에 대한 신임이 각별했다. 그녀는 핫산을 꾸짖었다.

“핫산 이 바보녀석아. 우리 대장이 그렇게 쉽게 죽을줄 알았냐? 괜히 ‘불사신 얀’이란 칭호가 붙은게 아니란 말야!”

핫산은 멋적은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커다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얼굴을 붉히자 다들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얀은 핫산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로즈, 그만해둬. 모두 무사했으니 그걸로 된거야!”

그의 밝은 웃음엔 사람을 이끄는 강한 힘이 있었다. 로즈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더 이상 전투가 없을 것 같으니까, 막사로 돌아가서 쉬도록 하자.”

그늘진 석양 때문인지 병사들의 피 때문인지 땅은 붉게만 보였다. 그들은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으로 본영에 돌아왔다.

본영이라 해봤자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단지 군수물자를 잔뜩 쌓아놓은 임시 창고와, 임시로 만들어놓은 병사들의 숙소가 있었을 뿐이다. 레바논의 주력이 용병들이어서 그런지 여자용병들도 많았기 때문에 여성용 숙소가 한켠에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외에는 소대별로 텐트를 치거나 불편한 야전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잤다.

얀의 소대는 언덕 밑턱에 자리를 잡았다. 벌써 깊은 밤이 되었는지 본영 내부는 숨소리도 나지 않고 조용했다. 얀은 텐트 밖으로 조심스레 나왔다. 발소리가 들려 다른 소대의 병사들이 깨어나기라도 하면 보통 실례가 아니었다. 한 손에는 등불이 들려 있었다.

그는 등불을 언덕에 기대어놓고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었다. 구겨지고 빛바랜 편지였지만 소중하게 간직해놓은 것이 분명했다. 편지를 펼쳐서 한글자 한글자 머릿속에 새겨놓는다.


친애하는 얀에게. 얀, 잘지냈어요?

오늘도 갬비트는 평화롭기 그지없어요. 전쟁이 벌어진 곳과 멀리 떨어져있어서 그런지 마을사람들도 전쟁에 대해선 별 신경도 쓰지 않아요. 평화롭지만 조금 따분하죠.

일주일에 한번씩 수도에서 데이빗 씨가 와서 전쟁 소식과 함께 편지를 전해줘요. 그가 얀의 편지라도 전해줄 때에는 너무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른답니다. 벌써 얀이 떠난지 2년이 되었어요. 그 동안 당신과 주고받은 편지만해도 스무 통이 넘는 것 같아요. 정말 질리지도 않고 꼬박꼬박 편지를 썼어요.

아버지는 당신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지만 그 분도 당신이 돌아올 것을 믿고 있어요. 아무도 모르게 레드블러드 한 병을 찬장 밑에 숨겨놓았거든요. 돌아온 당신의 몫이라면서... 말이에요.

마을에 새로운 가족이 늘어어요. 의사였던 톰씨의 가족이 마을로 이사왔어요. 또, 이웃집에 새로 이사온 안젤라와도 친해졌답니다. 한동안 몸이 안좋아서 톰씨에게 신세진 적도 있어요. 정말 좋은 분이죠.

그런데 그만 톰씨의 아들이 사고를 당하고 말았답니다. 2층에서 떨어져서는... (중략)

그만 줄여야할 것 같군요. 너무 내 얘기만 써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 만큼 당신에게 제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저는 계속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편지를 모두 읽은 얀은 다시 접어서 품 안에 넣었다. 그 때 누군가가 그의 옆에 웅크리고 앉았다. 다름아닌 로즈였다.

“잠이 안와서요... 잠깐 밖에 나왔어요.”

그녀는 고개를 수그리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흘러내린 붉은 머리카락이 더욱 붉게 타올랐다. 그녀는 용병이 되지 않았다면 무희라도 되었을 법한 화려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노래도 많이 알고 있었다. 얀은 그녀가 용병이 되지 않았다면 가수나 무희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중한 편지인 것 같군요. 그렇게 색이 바랠 때까지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얀은 그녀의 쓸쓸한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내겐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야. 편지가 끊긴지 벌써 세 달...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도무지 걱정이 그치질 않아.”

얀은 언덕에 팔배개를 하고 기대듯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검은 비단에 푸른색을 수놓은 듯 파란 별빛이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별무리는 달보다도 환하게 빛났다.

“아마 내일은 힘든 하루가 될거야. 왕이 직접 선두에 서서 요새를 공략할 예정이라더군.”

그는 눈동자를 움직여 별을 세었다. 별이란 사람이 샐 수 없을 정도로 무한히 많았지만, 그만큼 무한한 꿈을 나타내는 것과도 같았다. 그는 누워서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세는 것을 즐겼다.

전쟁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치열함을 제외하면 모든지 부풀어있는 꿈으로 가득차 있었다. 때로는 그 공상들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예를 들자면 죽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전사라던가 사로잡은 적장에게 인정을 베풀어 놓아준다던가 하는 것은 아름다운 광경으로 칭송받았다.

얀도 한가지 꿈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에 대해서... 그것은 ‘아베스'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전설적인 위대한 용병에게만 주어진다는 영광의 칭호. ‘아베스’는 그의 꿈이자 전투에 임하는 마음가짐이기도 했다.

과연 군계일학이라고 했던가. 그런 원대한 꿈을 가진 얀은 뛰어난 전투력과 리더십으로 금새 두각을 드러내었다. 여러 전투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한 소대를 맡게 되었던 것이다.

단지 한 자루의 장검만을 가지고 적진을 종횡무진 누비는 그의 모습은 경이롭다고 해야 할까.

로즈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왕의 호위대는 용병들 중에서 뽑는다던데... 혹시 우리가?”

“맞아. 게다가 잘 훈련된 말도 준다는군.”

그녀는 다시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그런 말따윈...”이라고 중얼거리며.

“그건 그렇고. 어째서 핫산에게 그렇게 차갑게 대하는거야? 핫산 녀석... 로즈를 꽤 걱정하고 있다구.”

얀은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녀에게 조용히 물었다. 어차피 시선을 돌리더라도 고개를 파묻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 녀석이 단지 걱정이 되서... 멍청해서 언제 죽어버릴지 모르니까요!”

얀은 살며시 눈을 감듯 미소를 떠올렸다.

“로즈도 핫산을 좋아하는구나?”

“아, 아니에요! 단지 그냥 동료로서...”


작가의말

3편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베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에필로그 16.11.24 140 1 2쪽
7 7화 16.11.24 125 1 3쪽
6 6화 16.11.24 128 1 6쪽
5 5화 16.11.23 115 1 16쪽
4 4화 16.11.23 134 1 6쪽
» 3화 +1 16.11.22 137 1 10쪽
2 2화 +1 16.11.22 150 1 6쪽
1 1화 +1 16.11.21 292 2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