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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꽁장

재난으로 회귀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SF

dob002
작품등록일 :
2020.01.07 12:22
최근연재일 :
2020.03.03 18:05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12,358
추천수 :
183
글자수 :
190,805

작성
20.01.07 15:10
조회
802
추천
13
글자
11쪽

1.궁류 총기 연쇄 살인 사건 - 순경 구범곤

DUMMY

“아오, 머리야.... 미치겠네...”


지끈지끈한 머리를 붙잡고 백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사님, 박사님?”


아무리 외쳐도 박사의 기척은 없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방금 전 있던 박사의 창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칠흑 같은 어둠, 시원한 공기, 귓가에 들리는 풀벌레 소리.


분명 백수가 있는 곳은 야외가 분명 했다.


“정말 작동한 거야...? 타임머신이?”


고개를 돌려 보자 방금 타고 온 의자 모양의 타임머신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마치 증발이라도 하듯 타임머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 어? 뭐야?”


2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귀신이 다녀가기라도 한 듯 의자가 사라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불과 몇 분도 안 되는 사이, 장소가 바뀌고 주위마저 이렇게 어두워지다니 말이다.


“아~! 아~! 누구 없어요??”


백수가 입에 양손을 대고 소리를 질렀다. 손님을 맞는 주인처럼 메아리 여럿이 소리치며 백수를 반겼다.


일단 백수는 어둠을 조용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암순응이 돼야 앞이 보이는 상황이었다.


어둠을 응시한 지 3분 정도 되었을까, 그제야 자신이 있는 위치가 어느 정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른쪽은 낭떠러지, 왼쪽은 나무가 우거진 산 한가운데였다.


“아니, 왜 내려도 이런 곳에 내리는 거야, 니미!”


일단 상황 파악을 위해선 산 밑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었다. 절벽 아래쪽을 보니 100m, 200m 정도 밑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앞을 더듬거리며 걸은 지 30분쯤 되었을까, 갑자기 길이 넓어지더니 차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여보세요!”


차에 대고 소리쳤으니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트럭으로 보이는 차가 ‘털털’ 소리를 내며 마을 안 쪽으로 사라졌다.


아무리 봐도 시골이었다. 백수 자신이 내려온 산이 있었고 다리 밑으로 도랑도 흐르고 있었다. 개소리가 울리고, 불빛이 희미하게 비추는 게 절대 도시는 아니었다.


“어딘지를 알아야 사람을 구하던가, 말던가 하는데~”


콧노래를 부르며 개소리를 따라 걸었다.


그러다 앞 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한 노인의 기침도 들렸다.


“여보세요? 영감님? 영감님, 잠시 말 좀 물을 게요”


손을 휘저으며 다가갔지만 노인은 빠른 걸음으로 옆을 스쳐지나갔다.


“영감님?!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여기가 어디죠?”


겁이 난 모양인 듯 노인은 이미 다리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일단 사람을 만나야 했다. 아무나 만나 이야기를 해야 명확한 때와 장소를 알 수 있었다.


개소리를 따라 걸으니 포장된 도로가 나타났다. 말이 포장도로지 걷는 발이 휘청거릴 정도로 평탄지지 못했다.


“누렁아~ 누렁아~ 어딨니?”


개소리를 따라가자 꽤나 환한 빛이 앞에 나타났다.


파출소였다.


그제야 자기가 도구들이 들어 있는 가방을 메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배낭에서 랜턴을 꺼네 파출소 입구를 비췄다.


<의령경찰서 궁류지서>


“의령...? 궁류...?”


궁류는 모르겠으나 의령이 어디인진 알고 있었다.


경상남도에 있는 조용한 동네였다. 예전에 식구들과 함께 부산에 가다 들른 적이 있었다.


“의령...? 궁류...? 의령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산불? 지진? 태풍...?”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사건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다.


일단 백수는 파출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친절하게 해결해줄 거라 생각했다.


“컹! 컹!!! 컹컹!!”


정문 쪽으로 다가가자 옆에서 누렁개 하나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누렁이 착하지~ 아유, 예뻐라”


물 것 같진 않았지만 혹시 몰라 최대한 선량한 척을 하며 문을 밀었다.


“계세요? 누구 안 계세요?”


문을 열자 ‘쿠당탕’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뭐야?!”


안 쪽에 있던 순경 하나가 바닥에서 일어났다. 방금 떨어졌던 건 아무래도 순경 자신인 거 같았다.


“안녕하세요~ 뭣 좀 물어볼게 있어서요”


눈이 쫙 위로 찢어지고 광대가 나온 게 한 성질 할 것 같은 얼굴의 순경이었다.


순경이 넘어진 이유를 책상을 보고야 알았다. 순경의 책상엔 소주 한 병과 오징어가 놓여 있었다.


“일단 저는 아무 것도 못 봤습니다... 죄송한데 지금이 몇 년 몇 월 몇 일이죠?”


책상을 잠시 흘겨보니 소주잔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책상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안경 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예요? 뭐예요? 이 시간에”


어깨에 달린 계급장이나 연식으로 볼 때 아무래도 방금 넘어진 순경의 상급자로 보였다.


“제가 길을 잃어버려서 말이죠. 지금이 몇 년 몇 월이죠?


그런데 질문을 하고도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 길을 잃었는데 언제인지 모르신다...?”


순경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새카만 권총집이 백수의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왔어요?”


나이 든 쪽이 물었다.


“네, 전 서울시 구로구에서 왔습니다... 이름은 조백수라고 하고요, 나이는 마흔 살입니다. 일단 순경님 진정하시면 안 될까요...?”


백수가 손을 들고 천천히 다가갔지만 경찰들의 표정은 몹시 좋지 않았다. 근무 중 술마시는 걸 들킨 게 가장 큰 이유 같았다.


‘딸깍’


그 때 백수의 귓가에 금속음이 들렸다.


“손을 하늘로 든다, 실시...”


젊은 순경이 총을 백수에게 겨눴다.


“아니, 경찰 어르신.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요...”


“말 들어! 손들어!”


나이 든 쪽이 일갈을 내질렀다. 직장 동료 간의 오붓한 밀월(?)을 빼앗은 것에 대한 댓가 같았다.


“네, 들게요 들어”


“그대로 무릎을 꿇는다. 실시”


“네, 무릎을 꿇습니다, 실시...”


그때 칠수의 눈에 순경의 이름이 들어왔다. ‘구범곤’이라는 이름이었다.


“구범곤 순경님 진정하세요...”


“내가 니 친구냐? 엎드려!!”


구 순경의 이마에 핏줄이 나타났다.


바닥에 무릎을 꿇자 나이든 쪽이 백수의 뒤로 다가와 배낭을 풀렀다.


“뭐야, 이 가방. 외제야? 어유, 비싸 보이는 가방이네. 밧줄에... 물컵에... 어이쿠, 칼도 있어? 등산객이야?”


어느새 백수의 손목엔 수갑이 채워지고 있었다.


“네, 네. 등산객 맞습니다. 그런데 수갑은 풀고 얘기하시면 안 될까요...?”


“등산객 맞으면 주민등록증 줘 봐”


구 순경이 총을 백수의 이마에 바짝 갖다 댔다.


“아이고, 등산하는 사람이 왜 민증을 들고 다니겠어요. 일단 풀고 말씀하시죠”


“야, 그냥 빵에 넣고, 내일 조사해. 난 간다”


나이 든 쪽이 의자에서 점퍼를 꺼넸다.


“아, 그럴까요, 서장님? 알겠습니다. 야, 일어나”


“네? 빵이라뇨.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어차피 이 날씨에 밖에 돌아다니다 멧돼지 밥 될 수도 있거든. 친절을 받아들이지?”


구 순경이 열쇠로 철창문을 열었다.


“아니, 제발, 순경님.... 소장님, 제가 뭘 잘못했길래...”


“아, 시끄러. 나 간다. 저 사람 입 뻥긋 못하고 잠이나 자게 해!”


서장이라 불린 사람이 문을 열고 나갔다.


“들어가!”


“구범곤 순경님, 제발...”


“이름 한 번만 더 부르면 이거 눌러 버린다. 얼른!”


어쩔 수 없이 감방 안으로 백수가 들어갔다.


그때 구 순경 너머로 달력이 보였다. 달력 전체에 날짜 하나가 찍혀 있는 오래된 스타일이었다.


“82년... 4월 25일?”


그러자 구 순경의 표정이 험상궂게 변했다.


“미친 놈이...”


그리곤 총을 칠수 쪽에 겨눴다.


‘탕!!!!!’


“으악!!!”


칠수가 급히 바닥으로 몸을 낮췄다. 이마를 땅에 박은 것도 모르고 엎드려 있었다.


구 순경이 정말 총을 쏜 것이었다.


“다음엔 니 머리 겨눈다. 조용해. 한 마디도 하지 마”


백수가 잠잠해지자 구 순경이 배낭을 집어 들었다.


“영어로 써 있네... 뭐야, 이거. 노스...케이스?”


지퍼를 열더니 내용물을 책상에 쏟았다.


“햐... 별 거 다 있네. 이건 먹는 거 같고, 어이쿠. 고글도 있으시네. 나침반에... 지도... 펜...”


구 순경이 펜을 눈앞으로 가져왔다.


“비싸 보이는 볼펜이네. 이거 내가 잠깐 빌려간다”


구 순경이 볼펜을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배낭과 짐을 한 구석에 몰아넣은 구 순경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한 대 펴? 말은 하지 말고”


구 순경이 불 붙은 담배를 감방 안으로 넣었다.


“당신 말처럼 서울에서 왔다고 치자. 그런데 지금 당신처럼 입은 사람은 서울에도 없을 거 같다고. 그냥 오늘 하루 여기서 자고, 내일 조사 제대로 받고 풀려나던가 산으로 가던가 하라고요.”


구 순경도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구 순경마저 나갔다간 영락없이 아침까지 감방에 갇혀야 했다.


“순경님 제발..”


“아이, x발. 말 하지 말라고!”


구 순경이 총을 창살 틈으로 갖다 댔다.


“민중의 지팡이를 개 x으로 아나...”


순경이 점퍼를 챙겨 입은 채 밖으로 나갔다.


구 순경이 나간 지 5분이나 지났을까. 담배를 다 피운 백수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아... 미치겠다... 지금 몇 시야?”


눈을 찡그려 벽 쪽을 바라봤다. 11시 20분을 지나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헤매고, 마을에 와서 30분 더 걸었으니까...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은 내일 밤 9시 45분 정도네. 미치겠다...”


기지개를 펴던 백수의 엉덩이에 무언가 느껴져 뽑아 들었다. 슈타인 박사가 특별 제작한 ‘재난 목록집’이었다. 가장 귀한 물건을 용케 뺏기지 않았다.


“82년 4월... 의령.... 의령...”


다행히 슈타인 박사는 책을 날짜 순서대로 꼼꼼하게 적어 놓았다.


책을 넘기던 백수가 사건을 발견했다.


사건명은 다음과 같았다.


<구범곤 순경 총기 난동 사건>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 든 백수였다.


구범곤 순경 총기 난동 사건은, 의령 지역의 구범곤 순경이 홧김에 동네 주민 60여명을 쏴 죽인 희대의 학살극이었다.


여자친구의 사소한 말다툼으로 일어난 구 순경의 흥분은 가라앉을 줄 몰랐고, 술기운까지 더해지며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


“구범곤..... 그 새끼가 살인마구나...”


혼잣말을 뱉고 있는데 문 소리가 들렸다.


“뭐야? 웬 총소리야?!”


헬멧을 쓴 두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당신 뭐야? 당신이 총 쐈어?”


“아뇨, 구 순경님이 쐈습니다!”


카빈 소총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백수의 등 뒤로 식은 땀이 지나갔다. 1시간도 안 돼 벌써 두 자루의 총이 백수를 겨눴다.


“미친... 구범곤 그 새끼 진짜 또라이다”


총을 겨눈 남자가 헬멧을 벗고 밖으로 나갔다. 뒤에 온 남자도 잠시 백수를 꼬나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군인으로 보이는 둘이 나가고 다시 백수가 재난 목록집을 살폈다. 사건 시간을 확인해야했다.


첫 사망자 발생시각은 26일 저녁 9시 40분이었다. 구 순경이 표구사를 하는 20대 남자를 총으로 먼저 쏴 죽인다. 그리고 장을 보러온 동네 아주머니 세 명을 죽이며 희대의 학살극이 시작된다.


“9시 40분... 그 전에 나가야 돼”


시계는 어느덧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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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궁류 총기 연쇄 살인 사건 - 선물과 파리 +1 20.01.09 549 9 9쪽
3 1.궁류 총기 연쇄 살인 사건 - 될성부른 문제아 20.01.08 607 11 9쪽
» 1.궁류 총기 연쇄 살인 사건 - 순경 구범곤 20.01.07 803 13 11쪽
1 프롤로그 - 1993년 남해 제리호 +1 20.01.07 1,309 1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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