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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ness - 작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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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입니다
작품등록일 :
2016.03.16 01:36
최근연재일 :
2016.05.31 03:5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0,854
추천수 :
85
글자수 :
215,996

작성
16.03.16 22:42
조회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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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1쪽

저는 하인입니까? - 1

DUMMY

누군가 죽음에 대한 경험담을 주제로 한 방송에 나온 걸 본 적이 있다. 그 방송에 주인공은 사고로 병치레를 하다가 결국엔 죽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단 하루 만에 다시 살아난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사후체험에 대해 말하길, 어두운 방 안에 있었는데 모습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다가와 어디론가 데려가려했지만 불길한 예감에 그 손을 뿌리치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덮쳐 사지를 찢는 고통을 안겨줬다고 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손길로부터 저항할 수가 없어 온몸에 생채기가 나는 폭력 속에서 겨우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길면서도 짧은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사위가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포근하고 따뜻한 빛이 몸을 감쌌고, 자신을 상처 입히던 사람들을 쫒아냈다고 했다. 그 빛은 몸에 났던 상처들을 치료해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고 했다.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에 자신을 도운 자가 누군가 확인하려던 그 사람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년 남자를 보게 됐고, 그 남자가 몇 번 손짓하자 주변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가 시간이 지나자 점점 빛이 잦아들어 문득 느껴지는 이상함에 슬며시 눈을 떠보니 놀랍게도 자신이 입원했던 낮선 병원의 천장이 보였다고 했다.


그의 기묘한 사후체험은 많은 논란이 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굳이 장황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되새길 수밖에 없는 지금 상황이었다.


뭐지? 이 기분은?


나는 왠지 모르게 온몸을 감싸는 포근함에 당황하면서도 그 포근함이 주는 안락함에 도취되었다. 나는 눈을 뜨지 않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각에 젖어 자연스레 미소가 띄어졌다. 마치 그 사후체험을 했다던 주인공이 말했던 것들이 내게도 실현되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은 감각이야. 이게 죽었을 때의 기분인가?


처음 겪는 죽음. 물론 죽는 거야 모두에게 가장 공명정대하다. 부자건 거지건, 건강한 사람이건 쇠약한 사람이건 언제나 죽음은 공평하게 찾아온다. 시기가 문제일 뿐.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게 약간 슬펐다. 아주 약간이지만. 하지만 만약 누군가 내게 죽어서 진정으로 슬프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질문을 던진 그 누군가에게 단호히 아니요, 라고 말하고 싶다. 이미 죽었기에,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미련도, 의지도, 신념도,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죽었기 때문에. 모든 걸 손에 넣는다 해도 죽었다면, 전부 소용없는 짓이니까.


그나저나, 어째 이 포근함이 익숙한 이유는 뭘까? 난 사후체험 같은 건 해본 적도 없는데. 왼뺨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따뜻함. 그리고 오른뺨으로 전해지는, 마치······.


“햇빛?”


순간 떠오른 익숙한 감각에 대한 정체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러자 작렬하는 따스한 햇볕이 눈에 들어왔다. 낯익은 태양의 모습. 주홍빛으로 빛나는 태양이 보이자 싱숭생숭해졌다. 평생 못 볼 줄 알았는데···.


“뭐, 뭐야? 어라? 나 아직 살아있는 거야? 몸도 멀쩡하고. 옷도···. 내 가방도···.”


분명 도로 위에서는 죽을 때를 기다리며 누워있었는데, 익숙한 감각에 다시 눈을 떠보니 이상하게도 카펫 위에 엎어져 자고 있었다. 보기 흉하게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그것뿐만이 아니라 사고 당시 피로 얼룩졌던 옷도, 충격으로 바닥에 흩뿌려졌던 가방도 모두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심지어 사고 당시 충격으로 튕겨져 나갔던 가방은 바로 옆에 정돈돼 있었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된 거지? 나 죽은 거 아니었나? 그나저나 어째 몸은 가뿐해진 것 같다? 뭐지 대체?”


나는 얼른 입가에 한강수처럼 흐른 침을 옷소매로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휙휙 움직여봤다.


역시, 몸이 가뿐해진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손가락 하나 꿈적할 수 없었던 몸이 완치돼 있었다. 심지어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 것 같았다.


“역시, 몸도 말짱해. 아! 그게 문제가 아니지. 대체 여긴 어디야?”


느닷없는 상황 때문에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가 눈을 뜬 곳은 도로 한복판이 아니었다. 차갑게 식은 아스팔트가 아닌 따뜻한 카펫, 매캐한 매연에 가려진 어두운 하늘대신에 따스한 햇볕이 들어오는 작은 창문이 달린 집안. 딱딱하고 정형화된 빌딩들보단 투박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은 침대, 서랍, 책꽂이 같은 목재가구들.


분명 도로 한복판에 누워있었는데. 어째 눈을 감았던 곳보다 훨씬 더 인간미 넘치는 곳에서 눈을 뜬 것 같았다.


“뭐냐. 이거 설마, 꿈인가? 아니면 사후세계? 전혀 감이 안 잡히네. 그나저나 나는 번듯하게 침대가 있는데 왜 카펫에서 자고···, 있던 거지?”


일단 침까지 흘리고 있었으니 잤다고 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미심쩍은 구석이 너무 많아 답답함에 뒤통수가 긁적였다. 죽고 난 다음은 원래 이런 광경이 펼쳐지는 건가? 왠지 현실감 넘치는 공간인데.


“눈 떠보니까 방안이라니. 악몽이라도 꾸고 일어난 것 같네. 몸도 멀쩡하고. 단지 이 방 안이 내 방이 아니라는 거랑 피랑 먼지로 범벅이라는 것만 빼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이었다. 오히려 이런 집이 대한민국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전적인 풍경이었다. 그렇다고 전통가옥이라기엔 서양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 침대부터가 서양문물이니까 말이다. 구태여 침대만 짚고 넘어가지 않더라도 방안은 오래된 서양 영화에서나 볼 법한 분위기였다.


“일단 나가보는 것도 좋겠지만, 함부로 돌아다니는 건 좀 그렇고. 그래도 명색이 방이라고 방문이 있긴 한데 말이지. 흠···. 어떻게 할까.”


방이라는 명색답게 일단 방에서 나갈 수 있는 문은 보였다. 다만 조금 걸리는 게 있다면, 누군가 날 분면 이곳으로 데려온 건 확실한데 대체 왜 그 사람이 과연 무슨 목적으로 나를, 그것도 성하지도 않은 몸을 말끔히 치료해줬냐는 거였다. 카펫 위에다가 패대기쳐놓은 걸 보면 그리 호의가 있는 건 아닌 듯했고 납치가 목적이거나 혹은 다른 이유가 있다면, 대체 내게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이미 다 죽어가는 몸을 완치시켜가면서까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졸부의 자식도 아닌 내가 사회적으로서 그리 귀중한 몸이라곤 생각하지 않는지라 의구심이 솟았다.


“음···. 영 의도가 뭔지 알 수가 없네. 이런 건 국어 지문에도 안 나온다고.”


나름 문학 영역은 잘 푼다고 자신했다. 가령 인물의 의도를 파악하라는 식의 문제들 말이다. 하지만 이건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의도건 목적이건 일단 뭔가 짚이는 게 있어야 파악할 수 있으니까.


가만히 서서 어떻게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움직이느냐 기다리느냐, 과연 무엇이 현명한 선택일까···.


“흠···, 그래도 멍청하게 앉아 있는 것보단 움직이기는 훨씬 낫겠···.”


벌컥.


“느쉽샹마깡!”


느닷없이 열리는 문에 기겁한 나머지 기괴한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그 자리에서 뒤로 자빠져 엉덩방아를 찌기까지 했다. 진짜 제대로 모양 빠졌다.


“아오오오오오!! 드럽게 아프네!”


하지만 순간 전기가 지나가는 것처럼 짜릿한 고통에 입에선 거친 말이 툭 튀어나왔다. 모양이 빠지고 나발이고 아픈 건 아픈 거였다.


“오, 드디어 깼나보네? 괜히 생고생만 한 거 아닌가 보네.”


“응?”


꽤나 미성이었다. 여자인 듯했는데, 아무래도 이 사람이 날 치료하고 여기로 데려온 사람인 것 같았다.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 반, 날 치료하고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를 모르기에 의심 반이 섞인 뒤숭숭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으려하는데,


“으각!”


느닷없는 발길질에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실내슬리퍼 바닥과 먼저 아주 찐하게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눴다. 첫 대면 치곤 굉장히, 아주 굉장히 대담하면서도 짜증나는 인사였다.


“어디서 고개를 들어! 감히 함부로 주인 얼굴을 보려들고 있어!”


“뭐?!? 주인?!”


얘 지금 뭐라니? 주인? 지가 주인?


도를 넘어선 발언에 아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말 중 가장 기가 찬 소리였다.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에 나를 밟은 발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그러자 내 주인이라고 자청한 사람의 목소리가, 나하고 또래로 느껴지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어디서 발목을 잡아? 당장 안 놔!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건방져? 듣자듣자 하니까 아주 지 하고 싶은 대로 지껄이네!”


아무리 은인이라지만 이건 아니었다. 호희를 베풀었다고 해도 갑을관계가 아니라 완전히 주종관계를 형성하려 했다. 도가 너무 지나쳤다.


“지껄여? 지금 나한테 지껄인다고 말한 거야? 이게 말버릇도 고약하네? 당장 이 손 안 놔! 곱게 말할 때 들어라?”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말하는 모양새···, 어? 어?! 야! 너! 아아!!!”


발목을 놓으라는 여자의 명령 같은 말에 욱해 여자의 발목을 잡은 채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초면에 발길질 당한 것도 짜증나는데 대놓고 싸가지 없게 나오니 더욱 짜증이 치밀었다.


여자는 뒤로 넘어가지 않으려 허우적거렸지만, 건장한 사내가 발목을 잡고 일어나는 마당에 나보다 힘도 약한 여성이 넘어지지 않을 리 없었다.


쿵!


충돌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아!!”


“진짜 말하는 게 너무하네! 어디다가 되고 하인 취급이야!”


결국 뒤로 넘어진 여자는 등을 타고 전해지는 고통에 찬 신음성을 내며 넘어졌다.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긴 했지만, 제아무리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도 어디서 계약서도 없는 노예계약서를 들이미니 내 입장에선 감정이 무진장 상했다.


“아으···. 등 아파···.”


“아픈 걸 알면 남한테 상처를 주지 말아···.”


이따금 내 우연에 관해 생각해본다. 나한테 우연이란 건 어쩌다가 지나친 단순한 사건에 불과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걸 우연으로 치부하려니 왠지 모르게 낯이 붉어졌다.


그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말하기에는 너무나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내 시선으로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그 여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뒤로 넘어지면서 접혀 올라간 폴라니트 원피스에 가려져 있던, 은밀하면서도 절대 함부로 보여줄 수 없는 것이 드러났는데···.


“···곰돌이 팬티?”


작가의말

주인공의 인성이 아주 그냥.......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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