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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선생 님의 서재입니다.

슬픈 고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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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얌선생
작품등록일 :
2023.04.25 00:21
최근연재일 :
2023.05.19 16:47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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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
추천수 :
10
글자수 :
128,593

작성
23.04.2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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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화. 그따위 유전자 필요 없어(1)

DUMMY

“모두 자리에 앉아, 오 상사 떴어!”


회장인 민재가 교실 문으로 뛰어 들어오며 담임 선생님이 온다고 소리쳤다.


3학년 2반 아이들은 재빨리 자리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어지러운 발소리,

책상 끄는 소리,

의자 당기는 소리,


오전 수업 4시간, 조금 전에 여름방학 방과 후 수업이 끝났다.


방학이기에 종례를 하지 않는 다른 반 아이들은 점심을 먹으러 모두 식당으로 갔다.


하지만 오 상사는 꼬박꼬박 종례를 했다.


양볼이 복숭아처럼 통통하고 발그레한 제호는 동그란 뿔테안경을 고쳐 쓰며 오 상사가 나타날 교실 문을 쳐다봤다.


아침을 먹었는데도 10시쯤부터 배가 고팠다. 식당에서 번져오는 음식 냄새에 영혼이라도 내어줄 거 같았다. 제호가 이 정도니 아침을 굶은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제호와 아이들의 바람은 일류 대학에 합격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히어로가 되서 지구를 지키는 게 아니라, 제발 오 상사가 종례만 짧게 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오 상사는 교탁 앞에 버티고 서서 눈을 부릅떴다.


오동석.

국가 대표까지는 못 했지만

핸드볼 청소년 대표 출신 체육 선생.

키는 180cm가 넘고

근육질의 역삼각형 몸매

짧게 자른 옆머리에

바짝 세운 앞머리가

마치 군인 같다고

모두 오 상사라고 불렀다.


제호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스쳤다.


오 상사가 아이들을 제압하려고 눈을 부릅뜰 때마다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걷는 하마의 순박해 보이는 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니들 인생의 마지막 방학 방과 후 수업도 이제 3일밖에 안 남았다. 감회가 어떠냐?”


오 상사는 한마디를 하고 아이들을 왼쪽부터 쭉 훑었다.


제호는 오 상사가 그럴 때마다 자신의 몸이 코드화되는 기분이었다.



✭✭✭



지난 2월 10일 학년을 마감하는 종업식, 마지막 순서가 새로운 학년 담임 발표였다.


제호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있었다.


종업식에 오기 전 교실에서 2학년 담임 선생님이 3학년에 배정된 학급을 불러주었다. 그런데 절친들은 모두 3학년 1반이 되었는데, 제호만 3학년 2반에 배정되었다.


학생들에게 봄방학을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말을 마친 교장 선생님에게 교감 선생님이 다가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제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 신담임 명단을 적은 종이일 것이다.


제발 ··· 제발 ··· 오 상사만 아니길···


“다음은 여러분과 올해 일 년을 함께 하실 담임 선생님을 발표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여러분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먼저 제일 중요한 학년이라고 할 수 있겠죠. 3학년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들을 발표하겠습니다. 3학년 1반 담임은 박준우 선생님, 2반 담임은 오동석 선생님,”


“와!!!”


아이들의 함성에 강당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제호의 귀에는,

‘띠 -------------’,


중환자실에서 생명 연장 장치로 생명을 이어가던 환자의 심장이 멈출 때나 나는 그 소리만 들렸다.


3학년 2반에 배정받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제호처럼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졌으리라.


반대로 담임으로 오 상사를 피한 아이들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환호성을 그치지 않았다.



✭✭✭



오 상사는 분신인 박달나무 지휘봉으로 교탁을 두드리며 종례라기보다는 정신교육에 가까운 말을 이어갔다.


제호의 뱃속에서 꼬로록 소리가 났다. 이 소리가 오 상사의 귀에 들리면 얼마나 좋을까.


“시원하냐? 날아갈 거 같냐? 이제 방학 방과 후 수업이라는 단어는 니들 인생에서 쓸 일 없을 거다. 그렇다고 끝이 아니다. 방과 후 수업이 끝났다고 해서 입시전쟁의 승자가 되는 건 아니란 말이다. 수능 전날까지 눈 빠지게 공부해서 내년 이맘때 쭉쭉 빵빵 여자친구하고 워터 파크에서 낭만을 즐기는 놈들만 끝이란 말이다. 공부하기 싫어서 어영부영하다가 내년 이맘때 재수생 학원에서 문제집 풀고 있을 놈들은 끝이 아니란 말이다. 내년 여름에 니들 몸이 워터 파크에 있느냐 재수생 학원에 있느냐를 결정하는 건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알겠냐?”


“예!”


아이들은 목청이 찢어져라 대답했다.


제호는 아이들의 대답 소리가 맘에 들었다. 이 정도의 함성이면 종례를 끝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오 상사는 떡 벌어진 어깨를 젖히며 이번에는 오른쪽부터 아이들을 훑었다.


“오늘은 니들 대답을 믿어보겠다. 오후 자율 학습 째는 놈들은 명줄대로 못 살 줄 알아라. 내일 아침에 지각하지 말고.”


“예!”


아이들은 발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이상!”


“감사합니다!”


오 상사가 교실을 나갔다.


우당탕 퉁탕,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가방을 둘러메는 제호의 어깨를 절친인 유석이 툭 쳤다.


“제호야, 나 청소니까 너 먼저 중식 먹어.”


“그래 그럼 이따 자율학습실에서 보자.”


학생 식당은 중식을 먹는 아이들로 왁자지껄했다.


제호는 식판을 받아들고 빈자리를 찾았다.


첫술을 막 뜨는데, 유석이 식당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청소가 벌써 끝났나?’


제호는 반가운 마음에 유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유석이 알아보고 다가왔다.


“제호야, 담임 선생님이 밥 먹고 교무실로 오래.”


담임을 오 상사가 아닌 담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는 유석을 포함해서 몇 명 되지 않았다.


오 상사가 부른다는 말에 입맛이 싹 달아났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밥을 끼적거렸다.


교무실에는 오 상사밖에 없었다. 점심 식사를 하러 간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오 상사는 컵라면에 김밥을 먹고 있었다.


오 상사는 다가오는 제호를 발견하고 티슈로 입을 닦았다.


“제호야, 방금 너희 아버님이 전화하셨어, 휴가시라며? 입시 면담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교무실로 오시라고 했다. 넌 자율학습하고 있다가 이따 2시에 교무실로 와라.”


제호는 깜짝 놀랐다.


어제는 엄마 생일이라 이태리 식당에서 오랜만에 가족 식사를 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만 보셨다. 어제 아무 말씀도 없으셨는데 갑자기 입시 면담을 오신다니.


자율학습실로 힘없이 걸어가는 제호를 발견하고 유석이 뛰어왔다.


오 상사에게 핀잔을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기운 내”, 하면서 제호의 어깨를 감쌌다.


출렁다리 위를 걷는 것처럼 발밑이 흔들거려 제호는 유석의 팔을 붙들었다.


제호는 수학 문제집을 펴놓고 있지만 멍한 시선으로 연습장에 의미 없는 낙서만 끼적였다.


벽에 걸린 시계로 2시가 지난 것을 확인하고도 몇 번이나 엉덩이를 들었다가 주저앉았다.


마침내 제호는 단두대의 칼날 속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표정으로 자율학습실을 나섰다.


제호는 교무실 문 앞에서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몸속의 수분이 빠져나가기라도 하는지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미라로 변할 것 같았다.


“제호 왔구나, 이리로 와서 아버님 옆에 앉아라.”


오 상사가 평소답지 않게 다정하게 말했다.


제호는 아버지를 곁눈질하며 의자에 앉았다.


“제호가 누굴 닮아서 동글동글하게 인상 좋게 생겼나 했더니 아버님을 닮았군요. 제호는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입니다.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고 유머가 넘쳐서 ······ ”


오 상사의 말을 한동안 듣고 있던 아버지가 덤덤하게 말했다.


“담임 선생님께서 부족한 제 아들을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근데 성격 좋고 인상만 좋다고 남자구실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비 입장에서는 저 녀석이 공부에 대해서는 시늉만 하는 것 같아 항상 불만입니다. 요즘 서울에 있는 대학 가는 게 서울대학교 들어가는 거만큼 어렵다고 하는데, 어떻게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는 가겠습니까?”


팔짱을 끼며 대학 진학으로 화제를 돌리는 아버지의 말에 오 상사가 머쓱했다.


“제호가 고삼이다 보니 아무래도 온 신경이 대학에 가 있으시겠지요.”


오 상사는 푹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제호를 슬쩍 보고는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제호의 성적 자료였다.


“이건 지난달에 실시한 모의고사 점수로 지원 가능 대학을 뽑아본 자료입니다. 이 자료에 의하면 제호는 현재 경기도의 A 대학이나 B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입니다. 지금 현재 성적으로는 아버님께서 원하시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는 못 미치지만 수능 시험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고 ······.”


그때부터 아버지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아버지는 그 표정대로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고 입도 열지도 않았다.


제호는 고개를 ㄱ자로 숙인 채 발끝만 바라봤다.


면담이 끝난 후, 아버지의 마지막 인사는 짧았다.


“선생님 덕분에 제 자식의 위치를 정확히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목례를 하는 둥 마는 둥 돌아서서 교무실을 나가는 아버지를 보고 오 상사의 얼굴이 굳었다.


“제호야, 아버님이 너 때문에 실망이 크신 가보다. 빨리 따라가 봐라.”


제호는 꾸벅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가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 아버지에게로 뛰어갔다.


“내가 가는 길을 모를까 봐, 넌 가서 공부나 해.”


제호는 몸서리를 치며 멈춰 섰다.


또, 그 목소리였다. 영화 ‘배트맨’의 ‘조커’가 말하는 것 같은 섬뜩한 목소리.


자율학습실로 통하는 구름다리를 걷는데 바닥이 젤리처럼 물컹거렸다. 무릎에 힘이 없어 비틀비틀 벤치에 가서 풀썩 주저앉았다.


여름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 제호는 넋 나간 표정으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삼삼오오 건물 밖으로 나오는 아이들이 보였다. 자율 학습 쉬는 시간이었다.


“제호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 상사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제호는 벤치에서 구부정하게 일어났다.


“자율학습실에 없어서 어디 갔나 했는데 여기 있었구나. 그늘에라도 좀 있지, 뜨겁다 이리로 좀 와 봐라.”


햇볕에 눈을 찡그리며 오 상사는 앞장서서 강당으로 걸어갔다.


강당 로비는 열기가 한결 덜했다.


멍하게 서 있는 제호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오 상사가 다정하게 말했다.


“아버님이 가신 다음에야 봤어.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놓고 있어서 메시지가 왔는지도 몰랐구나. 어머님께서 보낸 메시지를 내가 미리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나 어머니한테 미안하구나.”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인 제호의 눈앞으로 오 상사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엄마가 보낸 메시지였다.


‘제호 엄마입니다 선생님께 해서는 안 되는 부탁인 줄 알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서 부탁을 드립니다 제호 아빠하고 면담하실 때 제호 성적을 사실대로 말하지 말아주세요 전 제호가 잘해야 경기도에 있는 대학에 간다는 걸 잘 압니다 근데 제호 성적이 그 정도란 걸 알면 제호 아빠는 무섭게 화를 낼 겁니다 제호 아빠가 다른 애들 아빠보다 학벌에 대해서는 정말 유별납니다 조만간 선생님을 찾아뵙고 자세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거짓말을 부탁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문자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는 제호의 얼굴이 점점 흙빛으로 변했다.


그 모습에 오 상사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제호야, 무슨 일인지 말해 줄 수 있겠니, 내가 알면 아무래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제호는 혼란스러웠다. 엄마와 누나가 지금 얼마나 불안해할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오 상사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선생님 죄송해요.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집에 빨리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오 상사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두 팔을 들어 제호의 어깨 위에 가만히 올렸다.


“그래 자율 학습 감독 선생님에게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빨리 집에 가 봐라. 그리고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괜찮으니까 꼭 전화하고.”


영혼이라도 빼앗긴 표정으로 자율학습실로 걸어가는 제호를 오 상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작가의말

행복한 글 읽기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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