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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능저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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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범
작품등록일 :
2019.10.23 00:15
최근연재일 :
2019.11.13 00:23
연재수 :
5 회
조회수 :
1,139
추천수 :
34
글자수 :
20,281

작성
19.11.07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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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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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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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고재능저지능 4

DUMMY

남겨진 촌장과 사냥꾼은 결국 마을로 돌아가지 못했다. 머지않은 곳에서 흐느끼듯 들려오는 고블린들의 비명에 이도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있다가, 그 울음이 잦아들 즈음이 되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다 죽인 건가?”


중얼거린 촌장이 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았다. 사람의 비명은 하나도 없었고, 죄다 고블린들이 울부짖는 소리였으니.


“도, 돌아가시죠.”

“아니야, 기다려봐.”


불안에 떠는 사냥꾼에게 손을 뻗은 촌장이 생각에 잠겼다. 혹시나 그 여행자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건 아닐 거 같았다.


멍청해 보이긴 했어도, 덜미를 틀어쥐었던 그 힘만은 진짜였다. 사람이 아닌 것 같은 힘과 바위 같은 손아귀를 지닌 작자가 고블린 따위에게 죽어 나자빠질 것 같지는 않다.


“가보세.”

“어딜, 고블린 굴에 말입니까?”


사냥꾼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냈지만 그의 안중에는 없었다.


“확인을 해봐야지.”

“내, 내일 오는 건 어떻습니까. 이렇게 어두워서야 뭐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거고. 그 덩치도 살았으면 알아서 돌아오지 않겠어요?”

“아냐, 내 눈으로 봐야겠어.”


작은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만약에, 그 거인이 아무 상처도 없이 고블린들을 죽였다면 이용해먹을 곳이 무궁무진했다. 약초가 많이 남에도 곰 때문에 얼씬도 못하던 장소나, 고블린이 나타나기도 전부터 어슬렁거리던 늑대들까지. 죄다 청소할 수 있는 기회다. 저 머저리 거인이 아니라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


“분명 다 죽였을 거야. 사람 비명이 들리지도 않았잖나.”

“고블린 놈들 독침 쓰는 거 아시잖습니까. 제대로 맞으면 억 소리도 못 내고 골로 간다니까요.”

“아냐, 그런 걸로 골로 갈 놈이 아니야.”


윤석이 향한 길을 따라 촌장이 걸음을 옮기니, 사냥꾼도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어두운 숲을 횃불 하나에 의지해 헤쳐 가던 그들이 동굴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안쪽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 칼에 베었군요. 아니, 벴다기 보단 거의 찢어졌는데요. 사람의 힘이 아닙니다. 머리통은 무슨 바위로 내려찍은 거 같고. 살벌하구만.”


허리가 절단 난 고블린 시체를 보며 사냥꾼이 몸서리를 쳤다.


“왜 아무런 소리도 안 나는 거지?”

“죽은 거 아닐까요?”


여전히 마을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냥꾼을 보며 촌장이 혀를 찼다. 심장이 이렇게 작은데 잘도 숲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고 있다.


“다 죽인 거 같은데.”

“아무튼 돌아가시죠. 살았으면 돌아올 거고, 죽었으면....”

“그만 좀 징징대고 나잇값 좀 해. 자식새끼 보기 부끄럽지도 않나.”

“목숨 달린 일인데, 애새끼 얘기가 왜 나옵니까.”

“하여튼.”


촌장이 혀를 차며 동굴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가운데, 넘실거리는 붉은 빛을 받은 모습이 지옥으로 통하는 입구처럼 보였다. 들어가서 확인해보자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자네, 고블린 한둘쯤은 해결 볼 수 있지?”

“제가 밖에서는 네댓 마리도 잡겠는데, 동굴에서는....”


평소 으스대며 다니던 것과는 딴판으로 구는 게 못마땅해서 고개를 내젓던 그의 앞으로 시커먼 것이 훅 나타났다.


“으악! 아아악!”

“으아아악!”


두 사람이 놀라 나자빠진 앞에, 온 몸을 피로 칠한 윤석이 서 있었다.


안 그래도 험상궂은 얼굴이 줄줄 흘러내리는 피로 인해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와 같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허연 이를 보이며 씩 웃는 모습에 거의 졸도할 뻔했던 촌장이 간신히 심장을 진정시켰다.


“다, 다 죽이셨소?”

“어, 레벨업 했어.”

“보, 볼 수 있겠소?”

“레벨업?”

“아니, 동굴 안쪽 말이오.”

“봐.”


두 사람이 동굴을 가리키는 윤석을 힐끔거리며 내부로 들어섰다. 동굴은 고블린이 살기엔 제법 넓었다.


“햐, 어떻게 이런 델 몰랐지.”

“자네가 새가슴이라 그런 거겠지.”


달리 할 말이 없던 사냥꾼이 꾹 입을 다물고 앞장섰다. 점점 진해지는 누린내와 진동하는 피비린내에 짧게나마 이어지던 대화가 끊기고, 살육의 현장에 도착한 두 사람이 숨을 들이마셨다.


“흐읍.”


현장은 끔찍하다는 말로도 모자랐다. 찢어지고 조각난 고블린들의 시체가 내장과 한데 뒤엉켜서 피구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바닥에 질척거리는 피가 검게 굳어가는 걸 본 사냥꾼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우웨엑.”


촌장이 구토했다. 짐승 도축도 여러 번 했고, 마을에 숨어들어온 고블린이나 늑대도 몇 번 잡아 죽인 경험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견디기 힘든 참상이었다.


“안에 더 있어.”


어느새 따라 들어온 윤석이 자랑하듯 말했다.


“볼래?”

“아니, 아니 됐소. 그것들도 다 죽인 거요?”


옷자락으로 토사물을 훔치며 촌장이 말하자, 윤석이 좀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새끼들 많았는데 다 경험치 됐어.”


촌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죽어 있는 고블린들의 수도 만만찮았는데, 시일을 더 끌었다간 마을이 씨몰살 당할 뻔했다.


“고맙소. 아니, 고맙습니다. 당신은 마을의 은인이요. 내 이 은혜는 언제고 꼭....”


공치사를 늘어놓는 촌장에게 윤석이 손을 내밀었다.


“그럼 돈 줘.”


그저 레벨업인지, 경험친지에 미친놈인 줄로만 알고 말로만 때우려던 촌장의 눈이 커졌다.


“어, 여길 내가 알려줬잖습니까. 그걸로 된 거 같은데....”


윤석은 그걸 그럴듯한 말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다른 말이 들려왔다. 잠깐 눈을 감고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듣던 그가 말했다.


“조까고, 일 했으면 돈 달래. 그러니까 돈 줘.”

“그 음식. 음식을 드리는 건 어떨까요. 마을이 가난해서 돈이 없는데....”


윤석의 머릿속에서 난리가 났다. 거의 두통처럼 머리가 지끈거리자, 윤석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으르렁거렸다.


“웃기지 말고 돈 내놔.”


촌장이 질끈 눈을 감았다.


*


마을에는 때 아닌 잔치가 벌어졌다. 닭이며 농작물을 훔쳐가던 고블린들이 죽은 기념으로 열린 잔치였다. 공터에 탁자며 의자를 늘어놔서 열린 조촐한 행사였으나, 주민들은 기뻐하며 물탄 맥주로 축배를 들고 그들의 영웅에게 찬사를 보냈다.


불행한 건 돈을 뜯긴 촌장뿐이었다.


“염병, 굶어 죽은 귀신이 붙었나.”


혼자서 돼지 한 마리를 거의 먹어치우는 윤석을 보고 촌장이 수염을 파들파들 떨며 중얼거렸다. 잠깐 시선이 마주치자 아무 말도 안 했던 것처럼 헤헤 웃고는, 시선이 떠나가자마자 도로 오만상이다.


“좋은 날입니다, 어르신.”


코가 빨개진 사냥꾼이 맥주를 들고 딸꾹거리며 걸어오는 꼴이 눈꼴시다.


“자네, 이번 일로 이득 좀 봤지?”

“예? 무슨 말씀이신지.”

“고블린 놈들 다 죽었으니까, 사냥하기 수월할 거 아냐.”

“아니, 그게 그렇기는 한데.”

“돈 좀 내놔. 마을 기금으로 쓸 거니까.”

“...제가 돈이 어딨습니까.”

“꼬불쳐 놓은 거 다 아니까, 좋게 말할 때 내놔.”


사냥꾼이 슬금슬금 도망가려고 꽁무니를 뒤로 빼고 있을 때, 약초꾼 둘이 촌장에게 다가왔다.


“헤헤, 촌장님. 거 엄청났다면서요?”

“끔찍했지.”


진저리를 치는 사이 사냥꾼이 도망갔다. 쫓아가려던 촌장이 짤랑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거 지출이 크셨다기에 성의 좀 보태겠습니다.”

“역시, 자네들이 뭘 좀 안단 말이야. 저 놈은 사냥꾼이랍시고 새가슴에 예의도 모르는데.”


슬쩍 주머니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촌장에게 두 사람이 말했다.


“촌장님이 저 외지인이랑 좀 얘기가 된다고 하셔서 말인뎁쇼.”

“어, 어? 그렇지. 내가 잘 구슬려서 고블린들 잡게 한 거지. 암. 그런데, 보아하니까 부탁이 있는 게지? 곰이야?”

“역시 모르시는 게 없으십니다. 그 놈만 없어지면 저희 벌이도 수월해지지 않겠습니까?”

“거야 그렇기는 한데....”


촌장이 돈주머니를 힐끗 보며 말을 끌었다.


“아유, 설마하니 저희가 이걸로 입을 싹 닫겠습니까. 잘 되면 마을 기금도 내고, 몸에 좋은 것도 따로 챙겨다 드리고 그런 거죠.”

“그렇지. 그게 다 사람 사는 거 아니겠나.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내가 가서 자알 처리해 줄 테니까.”

“예, 촌장님만 믿겠습니다.”


슬쩍 윤석에게 다가간 촌장이 돼지 껍데기를 깨작거리다가 물었다.


“거 맛은 괜찮으시오?”

“어, 맛있어. 좋아.”


바보처럼 헤헤 웃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새삼 속이 쓰려온다. 무서워서 되는대로 돈을 챙겨줬더니, 얼만지 확인도 안하고 받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억울했다.


“그 경험치란 거 말인데, 작은 놈이 경험치도 작겠지?”

“어...그럴 걸?”

“그럼 큰 놈은 더 많겠네?”

“어, 어.”

“내가 엄청 큰 놈을 아는데 말이오.”

“커?”

“아주 크지. 당신보다 훨씬 더.”


윤석이 들고 있던 돼지 다리를 한 입에 우겨넣고, 밍밍한 맥주를 들이부어 씹어 삼켰다.


“어딨어, 그거.”


촌장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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