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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능저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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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범
작품등록일 :
2019.10.23 00:15
최근연재일 :
2019.11.13 00:23
연재수 :
5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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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글자수 :
20,281

작성
19.11.0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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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고재능저지능 3

DUMMY

아드득


단단한 이빨이 갈아내는 소리를 낼 때마다 보리빵이 부서지고 으스러져서 목구멍을 넘어간다. 밭을 일구는 것도 포기하고 윤석을 감시하고자 남았던 촌장은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린 것도 모자라 침까지 흘리는 중이다.


‘저게 사람인가? 오우거가 아니고?’


단단하기론 벽돌과 자웅을 겨루는 보리빵이 몇 번 입을 벌릴 때마다 사라지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살면서 저걸 생으로 처먹는 꼴을 볼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촌장의 귓가에 윤석이 푸념이 들렸다.


“맛없네.”


시무룩해하는 꼬라지에 촌장은 어이가 없었다. 남들은 며칠이나 먹을 분량을 앉은 자리에서 끝장내 놓고 한다는 게 맛없다는 말이라니. 물론 맛없는 건 그도 동의했지만.


“이제 갈 거요?”


촌장이 간절한 바람을 담아 물었다. 레벨업이란 사악한 의식을 하겠다는 미치광이가 마을에서 한시라도 빨리 떠났으면 싶었지만 이 미치광이는 그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자고 갈 건데?”


한참은 어린놈의 새끼가 씨부릴 때마다 반말을 찍찍 해대는 게 아니꼬웠지만 촌장은 참았다. 이 촌락까지 닿기에 법은 멀었고, 저 덩어리의 주먹은 무척이나 가까웠으니까.


머리를 굴리던 촌장은 이놈이 뭘 하려는 지에 대해서나 알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저, 그런데 레벨업이란 게 뭐요?”

“레벨업이 레벨업이지.”

“아니,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같지도 않은 개소리에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던 촌장이 어깨를 움츠리며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윤석은 개의치 않는 눈치다.


음 하고 생각하던 윤석이 말했다.


“레벨이 올라가는 거야.”

“레벨은 또 뭐요.”

“등급?”

“등급?”

“등급.”

“....”


촌장이 애써 웃었다. 입꼬리를 파르르 떠는 머릿속으론 돌대가리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놈하고 대화 할 바에야 고블린을 붙잡고 말을 가르치는 게 더 빠를 것이다.


“등급이 올라가면 좋소?”


촌장이 다시금 인내심을 발휘했다.


“쎄져.”

“쎄진다고?”


윤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능력도 올릴 수 있어.”

“...그럼 경험치란 게.”

“죽이는 거야.”

“뭘 죽인다는 거요?”


여태 맹하니 말하던 거구의 눈이 빛났다.


“적.”


흡사 동굴곰 같은, 짐승을 닮은 목소리였다. 짧은 한 마디에 불과했으나, 촌장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흉포한 맹수를 앞에 둔 것만 같은 기분에 손아귀에 땀이 맺힌다.


“적이라. 그럼 괴물도 잡소?”


윤석이 끄덕이자, 촌장은 아랫입술을 핥으며 생각에 잠겼다.


레벨업이란 게 사악한 의식이라기 보단, 수련 같은 게 아닐까. 아니면 전신을 모시는 의식이라던가. 혹시 악신을 모시는 의식일 수도 있기는 했지만 전보다는 두려움이 좀 가셨다.


두려움이 가시자, 이 얼빠진 놈을 어떻게 써먹을 수 없을까 생각이 들었다. 자기 말마따나, 레벨업이란 걸 해야 한다면 무상으로 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니겠나. 의식인지 수련인지를 하면 이 놈도 좋고, 마을도 좋고.


“내가 괴물 소굴을 아는데....”

“어디?”


말을 꺼내자마자 무는 꼴에 촌장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여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거든. 전엔 없었는데 어느 샌가 그것들이 자리를 잡았단 말요. 고블린 몇 놈인 거 같은데, 쫓아내는 건 어렵지 않지만 잡으러 가기엔 위험해서 놔두고 있었....”

“가자.”

“응? 벌써? 지금 바로 간다고?”


윤석이 고개를 끄덕이곤 창고 밖으로 나섰다.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둑하니 내려앉은 하늘 아래로, 마을을 에워싼 숲의 나무들이 흔들거리는 것이 음산하기 짝이 없었으나 윤석은 신경 쓰지 않았다.


“가자.”


촌장이 눈을 끔뻑였다.


“나보고 한 소리요?”

“맞아.”

“어, 날도 어두우니 일단 한잠 자고 내일 가는 게 어떻겠소? 밤중에 나가기엔 위험하니까.”

“가자.”


말이 통하지 않는다. 촌장이 뭐라 더 말하려 했지만 성큼 다가선 윤석이 뒷덜미를 잡아 달랑 들어올렸다.


“가자고.”


목을 조여 오는 옷자락과 못생기다 못해 흉악한 얼굴을 코앞에서 마주한 촌장이 미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갑니다. 암, 가야죠.”


*


숲이 깊어질수록 어둠도 더 빨리 다가온다. 나무들의 그늘로 횃불 없이는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어둠을 횃불로 밝혀나가며, 사냥꾼이 촌장에게 속삭였다.


“이 시간에 꼭 와야 했습니까?”

“나도 가니까 입 다물어. 나라고 지금 오고 싶은 줄 아나?”


사냥꾼에게 으르렁거린 촌장이 힐끔 뒤를 돌아봤다. 사냥꾼만 불러다주고 자신은 빠지려고 했는데, 덜미를 잡은 손을 놔주질 않아서 기어코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다. 밤중의 숲은 위험하기 짝이 없으니, 이제 와서 혼자 돌아갈 수도 없다.


“아무튼 저 덩치에 저 힘이면 고블린 따위에게 당하진 않을 거네. 오늘 밤만 넘기면 그 귀찮은 각다귀들을 영영 안 볼 수 있단 말이야. 자네도 요즘 사냥감이 시원찮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기는 했죠. 그런데, 이거 밤이 어두워서 그것들 소굴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끝까지 따라갔던 게 아니라서.”

“못 찾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촌장은 저 못생긴 놈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재수가 없다면 밤새도록 숲을 빙빙 맴돌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짐작에 벌써부터 피곤이 밀려오는 것 같다.


“이쯤이었던 거 같습니다.”


일전에 고블린을 발견하고 추적했던 자리까지 어찌어찌 찾아온 사냥꾼이 당시 기억을 더듬어 손을 뻗었다.


“저리로 갔던 거 같은데, 그게 그놈들 소굴인지는 모르겠군요.”


사냥꾼이 가리킨 방향엔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잎사귀 사이로 흘러내린 달빛 몇 가닥이 나무들의 형상을 어렴풋이 밝혔다. 음산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어릴 적 이야기 속의 악령 들린 나무 같아, 촌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날이 밝고서 다시 오는 게 어떻겠소?”


윤석을 돌아보며 말했지만, 돌아본 자리에 윤석은 없었다.


“냄새가 나.”


어느새 사냥꾼의 앞으로 나온 윤석이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다. 숲내음의 사이에서 냄새가 풍겨왔다. 짐승의 노린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좀 더 비린내에 가까운 냄새다.


“이쪽이야.”


고블린인지는 몰라도 괴물의 냄새임을 확신한 윤석이 몸을 날렸다. 거구가 표범처럼 숲을 가로지른다. 덩치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민첩성으로 유령처럼 움직인 그의 뒷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남겨진 사냥꾼과 촌장이 서로를 마주봤다.


“...돌아가는 게 어떻겠나?”

“좋은 생각인 거 같습니다.”


둘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찢어지는 비명이 숲을 깨웠다.


*


“키에엑!”


하반신이 찢겨나간 고블린이 비명을 질렀다. 두 손으로 바닥을 박박 기는 밑으로 피로 이루어진 선이 구불텅 거리며 이어진다. 고통에 겨워 악을 지르는 고블린의 머리 위로 발이 떨어졌다.


으직


머리통이 터진 고블린을 뒤로하고, 윤석은 굴의 입구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 안에서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비릿한 노린내. 지금 여기, 죽어서 경험치로 화한 고블린과 같은 냄새다.


방금의 비명을 들었는지 안쪽에서 키샤샷 고블린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울려온다. 그의 머릿속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죽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윤석은 두 번 생각도 않고 목소리에 이끌려 동굴로 진입했다.


불빛 하나 없는 동굴은 지독하게도 어두웠지만 윤석은 거침없이 안쪽으로 전진했다. 사람이라기보다 괴물에 가까운 발달한 감각을 통해 본능적으로 벽과 바닥의 거리를 가늠하고, 짐승이나 다름없는 후각으로 적들과의 거리를 잰다.


저벅저벅 바닥을 밟는 소리를 따라 앞에서 미세한 발소리가 들리고, 더 이상 고블린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도 않게 된 순간 윤석이 동굴의 벽을 잡아 뜯어내며 달려 나갔다.


숨죽여 살금살금 다가오는 고블린들의 기척을 향해 팔이 휘둘려졌고, 뜯어낸 돌조각들이 산탄처럼 날아갔다.


퍼퍼퍽


마구잡이로 날아간 돌조각이 조용히 다가오던 고블린들의 전신에 박혀들었다. 가죽과 근육이 터지며 비명소리가 요란하게 동굴을 울린다.


“꺄아아악!”

“께엑, 께이잇!”


어둠속에서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진 고블린들이 고통을 소호하며 나자빠진 위로 거구가 들이닥쳤다. 들고 있던 독침을 쏠 시간도, 도망갈 틈조차도 없이, 순식간에 접근한 윤석이 쓰러진 고블린들을 밟아죽이며 낡아빠진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싸구려 칼이 어둠을 가른다. 갑작스런 공격에 얼이 빠져있던 고블린의 목이 찢어지고, 장검을 앞세운 윤석이 그대로 고블린들을 향해 돌격했다.


외뿔소처럼 돌격하는 경로에 있던 고블린들이 줄줄이 칼에 꿰여 비명을 질렀다. 무딘 칼날이 뱃가죽이고 머리고 상관없이 꿰뚫어 박혀들고, 재수 좋게 칼을 피한 놈들이 밟혀 으스러진다.


칼의 움직임을 따라, 꿰여 있던 고블린들의 몸뚱이가 찢어지고 부러지며 튕겨나가고, 내려찍힌 칼날이 고블린의 몸을 두 갈래로 찢어 갈랐다.


뜨거운 혈액이 쏟아졌다. 지독한 피비린내가 고블린들의 체취를 뒤덮으며 퍼져나갔다. 갹갹거리며 울부짖는 고블린들의 비명이 어둠 속에서 하나둘 꺼지고, 얼마 남지 않은 울음이 공포에 질린 애원으로 바뀌었을 때, 살아남은 고블린은 단 한 마리에 불과했다.


구석에 웅크린 최후의 고블린이 숨을 죽이고 바들바들 떨었다. 그들 종족 특유의 시야에 담긴 풍경은 야만적인 괴물의 기준에서도 끔찍하기 짝이 없다.


널브러진 시체들과 그 파편들로 얼룩진 동굴의 광경은 차라리 악몽이 더 나을 정도.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얕은 숨을 헐떡거리는 고블린의 눈에 피에 젖은 거대한 인간이 보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인간이 동굴의 안쪽으로 향한다. 꼼짝도 하지 않고 그를 지켜보고 있던 고블린이 안쪽의 암컷과 새끼들을 지킬 것인지, 이대로 달아나 목숨을 부지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바람총을 입에 가져다 대던 그 순간, 멀어지던 거구가 홱 돌아섬과 동시에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들이마신 숨을 내뱉기도 전에 커다란 손아귀가 머리통을 붙잡았다. 끔찍한 힘이 두개골을 옥죄어 온다.


“갸아아악! 갸갸갹!”


울부짖는 고블린을 보며 윤석이 헤죽 웃었다.


“레벨업.”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고블린의 머리통이 두부처럼 으스러졌다. 죽어버린 고블린을 내던진 윤석이 눈을 감았다. 고양감과 충만감이 몸속 깊은 곳에서 샘솟아 오른다.


손아귀에 묻은 피를 털어낸 윤석이 활짝 웃으며 동굴의 안쪽으로 향했다. 아직 살아있는 경험치들이 움직이는 기척과 냄새가 느껴졌다.


공포에 질린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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