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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열쇠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갈고리곰
작품등록일 :
2012.11.30 20:01
최근연재일 :
2012.12.30 22:57
연재수 :
4 회
조회수 :
1,032
추천수 :
10
글자수 :
10,388

작성
12.12.30 22:26
조회
184
추천
2
글자
8쪽

평범함, 그 이하의 인간 - 1

DUMMY

일단 주변을 파악해야만 한다.

이곳은 다른 세계.

이곳에 대해 파악을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인 것이다.

내가 예전에 가지고 있던 상식대로 움직인다면 나는 바로 이 세계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다.

나는 살아났다.

그럼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살아남는다.'


악마와의 거래로서 얻은, 나의 소중한 권리.

한 번은 잃어버렸던 나의 소중한 권리.

나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나의 입가가 비틀리고 소름끼치는 웃음이 지어졌다.

온 몸에 한기가 퍼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그 사람을 당장 찢어버리고 싶은 그런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의 세계였다면 잔뜩 억눌러야만 했을 것이다.

힘들게 살아가면서 희망조차 잃어버린 채, 그런 마음만을 깊숙하게 간직한 채 계속해서 지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 번의 죽음으로 무언가가 풀렸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다.'


브레이크.

한 번의 죽음과 악마와의 거래가 그것을 완전히 풀어버렸다.

나는 다른 사람은 절대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그 브레이크가 사라져 있었다.

누구든지 눈에 띈다면…….


'흐흐흐흐.'


그 때, 타이밍 좋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너 찌질이 명헌이 아니냐? 뭐하냐 여기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교복으로 추정되는 하얀색과 갈색이 섞인 옷을 입고 있는 남자아이 한 명.

아니, 남자아이라고 표현하기는 힘들었다.

얼굴이 어찌나 삭았는지 성인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말투나 행동거지, 그리고 입고 있는 옷을 보았을 때 내 세계의 고등학생이랑 큰 차이가 없었다.

아니, 차이가 있기는 있을 것이다.

결정적인 차이가.

그때 악마가 보여주었던 것이 진짜라면 저 녀석도 내가 모르는 어떠한 힘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총과 버금가는 내가 알 수 없는 기술로 만들어진 호신용 도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살상력은 지니지 않았지만 스턴건이나 가스총이나 치한용 스프레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쯧. 찌질이 좁쌀아. 너 여기서 그 병신같은 능력 연습하는거냐? 그 시간에 네가 좋아한다는 연희나 따라다녀라. 혹시 알아? 걔 따라다니다 보면 네 능력이 좁쌀에서 쌀알 정도로 커질지? 하하하하하! 어이구, 운 것 같네? 뭐 여자애들한테 안 좋은 소리라도 들었나봐? 병신 소리 들었지? 어이구 이 병신새끼!"


그 남자아이는 나에게 다가와서 미친듯이 비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여러가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이 녀석은 또 다른 나를 알고 있다.'


나는 그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뭘 야리냐? 눈 안깔아?"


그 녀석은 내가 쳐다보자 기분이 나쁜지 거칠게 소리쳤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운이 좋아.'


* * *


"크흑. 훌쩍. 흑."


너무 낡아 올해 허물어버리고 다른 건물로 지어버린다는 말이 있는 구 교사.

그 구 교사에서도 가끔 청소만 할 뿐 들르는 사람이 없는 도서관 안에서 한 남자가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뽀얗게 바닥에 쌓인 먼지와 남자 주변에 꽂혀있는 책 위로 쌓인 먼지층이 이 도서관이 청소된 지 오래됐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있으면 먼지를 잔뜩 마셔서 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남자는 전혀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남자에게는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구 교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 능력은 왜 이런거야! 왜!'


남자가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것은 한 여자였다.

윤기 흐르는 긴 생머리에 오똑한 코, 순수해보이는 눈망울과 붉은 입술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키도 크고 늘씬한 몸매를 가진 완벽한 미인!

연예계에서도 엄청나게 러브콜이 오고, 하루가 멀다하게 고백을 받는다는 엄청난 미인이었다.

남자는 그 여자를 떠올리며 미친듯이 울었다.


"크흑, 크흡. 나는, 나는 왜. 크흐흑."

'내가 능력이 조금이라도 쓸만한 것이었다면 고백이라도 했을텐데! 차인다고 해도 고백이라도 했을텐데!'


남자는 자괴감에 휩싸인 채 미친듯이 울었다.

그가 울고 있는 것은 아까 어떤 여학생에게 들었던 말 때문이었다.


'김소연, 김소연.'


남자는 이번에는 다른 여자를 떠올렸다.

흑발의 긴 머리를 곱게 땋은 여학생.

남자가 좋아하는 김연희와는 단짝 친구 사이로 유명했다.

김소연은 단아해보이는 모습으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그 인기가 김연희에 거의 근접한다는 이야기도 돌 정도였다.

그런 김소연이 오늘 그에게 찾아와서 했던 소리가 있었다.


'너 역겨워! 스토커처럼 연희 근처에 맨날 돌아다니고! 연희가 너같은 쓰레기 인생 패배자에게 한 번이라도 눈길을 줄 것 같아? 주제를 알면 꺼져!'


단아하고 착하던 평소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언어였다.

마음이 약하고 소심했던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안날 정도로 정신줄을 놓은 채 도서관에 도착했다.

그리고 구석에 앉아서 하염없이 계속 울기만 하고 있었다.

남자의 머릿속엔 김소연이 했던 말들이 미친듯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남자의 심장을 잔뜩 찌르고 있었다.

마치 난도질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크흡. 흐흐흐흑."


남자의 능력은 보잘것 없었다.

보통 경우라면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아무리 허접하다고 해도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남자는 도무지 자부심을 가질 수 없었다.

마력을 다루는 행위는 어울리지 않았고 육체가 형편없어 힘도 약해 싸우는 것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그 보잘것 없는 초능력 뿐이었는데, 정말 그의 초능력은 보잘것 없었기 때문이다.


'작은 것을 다루는 능력이라니.'


남자의 초능력은 바로 작은 것을 다루는 능력.

능력이 발전할수록 작은 것을 다룰 수 있었다.

그 뿐이라면 '대단하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수가 많으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남자의 초능력은 안타깝게도 작은 것을 다루는 것 뿐, 많은 숫자를 다룰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보잘것 없는 능력을 진화시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그 때문에 능력은 발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갈을 다룰 수 있던 게 이제는 먼지마저도 마음껏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양이란 너무나도, 너무나도 형편없는 양이었다.

손으로 먼지 많은 곳을 한 번 훑었을 때 묻어나오는 정도의 양 밖에 조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정도 양을 가지고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옷을 더럽히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왜 이모양인거야!'


남자는 다시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은 그 남자와 똑같이 울고 있는, 하지만 전혀 다른 장소에 있는 한 남자와 꼭 닮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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