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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은 예술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갈고리곰
작품등록일 :
2021.02.20 15:53
최근연재일 :
2021.03.02 19:52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929
추천수 :
4
글자수 :
52,376

작성
21.02.20 15:55
조회
118
추천
2
글자
7쪽

당신을 후원하겠습니다

DUMMY

"배고프다···."


잡동사니들이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는 작은 방 안은 화구들이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고 얼룩덜룩 물감이 묻어 더러워진 장판과 벽지가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우주의 색채를 연상케 만드는 팔레트 안의 물, 잔뜩 구겨져서 더 나올 것도 없어 보이는 싸구려 물감 튜브들, 그리고 싸구려 물감으로 만들어진 작품들 몇 개.

쓰레기들 사이에 간신히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는 냉장고와 문 앞에 있는 냄새나는 부엌.


이 비좁은 공간이 바로 그가 사는 곳이었다.


이 역겹고 좁디좁은 돼지우리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것은 그의 그림.

그의 이름인 박세현(朴洗炫) 세 글자가 낙인으로 찍혀있는 그림들뿐.


하지만 빛을 발한들 무얼 할까.


사람은 생물이고, 생물은 먹지 않으면 고통을 느끼는 존재였는데.


세현은 배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굶주림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리는 데 쓰이는 열량마저 아까워져 다시 표정을 원상태로 돌리고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배고프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다는 표현을 아는가?

가난하면 꼬르륵 소리마저 일상이 되어버린다.

영양의 불균형과 값싼 간편식으로 때우는 식생활로 인해 툭 튀어나온 배는 그 크기에 걸맞지 않게 등가죽에 들러붙은 것처럼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하고, 오장육부가 텅텅 비어서 걸레를 비틀어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와중에 배가 꼬르륵거리는 소리는 마치 굶주린 내장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느껴지고.


'배고프다.'


그나마 먹을만한 것은 수돗물뿐.

하지만 물은 타오르는 목을 달랠 수는 있을지언정 굶주림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물을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물을 마시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는 순간이 찾아오고,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음에도 역하게 느껴져 밖으로 토해내기 위해 헛구역질이 나오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배를 어떻게든 채우기 위해서 꿀꺽꿀꺽 삼키다 보면 기분 나쁜 포만감이 배에 가득 차게 되고, 그렇게 헛배가 차오르면 잠깐이나마 꼬르륵 소리가 멎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요의에 결국 화장실을 가기 위해 들락날락하며 열량을 소모하게 되고, 배를 잠시나마 부르게 하려고 먹었던 물이 배를 더 고프게 만드는 악순환이 계속되게 되는 것이다.


'먹을 건 없고, 경구 수액이라도 마셔야 해.'


세현은 한숨을 쉬면서 근처에 두었던 물병으로 손을 뻗어 뚜껑을 열었다.

1.5L 생수통에 담겨있는 경구 수액은 반절 정도 남아 찰랑거리고 있었지만, 열자마자 느껴지는 물비린내에 순간 세현은 역겹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인 물질은 하나도 먹지 않고 며칠 동안 물만 주야장천 먹고 있으니 당연히 질리다 못해 역겨울 수밖에.


'라면이라도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


그는 보육원에서 나온 초창기를 떠올렸다.

라면을 상자로 쌓아놓고 매일 세 끼로 먹었던 그 시절을.


그 시절엔 라면의 냄새만 맡아도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고 구역질이 날 것 같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처지와 비교해본다면 천국이었다.


기름기가 맴도는 노란 면발. 매콤한 향기와 함께 올라오는 열기를 코로 맡으며 호로록 면발을 빨아들이면 탱글탱글한 면발이 입안에서 춤을 추고, 뜨거우면서도 감미로운 그 맛이 혀에서 춤추며 열기를 몸에 퍼트린다···


그렇게 정신없이 면발을 먹다가 그릇째로 들어 국물을 한 모금, 두 모금 꼴깍꼴깍 삼키면 목부터 위장까지 훑고 지나가는 매콤한 국물이 차디찬 방 안에서 만들어진 굳은 가래들을 싹 쓸어버리는 듯 행복감을 주었다.


그 행복감을 만끽하며 후-하고 숨을 내뱉으면 기분 좋은 해방감이 몸을 감싸고 포만감과 뜨끈하게 달궈진 위장이 몸에 퍼져나갔고, 잠시나마 난방이 되지 않는 좁은 방에서 덜덜 떨던 처지를 잊게 해주었다.


'상상하니까 더 배고프다···'


꼬르륵.


하지만 지금 집에는 먹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처지.


그는 이내 심호흡 한 번을 크게 해서 배고픈 배를 달래고 물을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경구 수액 특유의 짠 내와 약간의 달달함이 그의 혀를 적셨고, 메마른 목과 위장을 적시는 듯한 상쾌함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무언가 먹었다는 만족감도 잠깐.

그는 다시금 몰려오는 헛배의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 불쾌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자자···잠들면 잠깐이나마 괜찮겠지.'


그는 그렇게 잠들었다.

좁아터진 쓰레기 방의 안에서, 굶주림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하며.



그리고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게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 *



그는 꿈을 꾸었다.


그가 있는 곳은 온통 새하얀 공간. 대지부터 지평선, 하늘까지 그 모든 것이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그 하얀색은 하얀색이라기보다는 밝은 빛을 연상케 만드는 눈부심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다만 그가 눈이 멀지 않고 그것을 직시할 수 있는 것은, 그 빛이 하얀빛을 띠고 있지만, 태양보다는 달빛처럼 그의 눈을 포근하게 감싸주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오로지 하얀색밖에 존재하지 않는 무의 공간에서 서 있었다.


땅이 없었지만, 분명히 대지에 발을 딛고 있었고, 움직일 수는 없었으나 분명히 그곳의 풍경을 지켜볼 수 있었다.


마치 360도를 전부 볼 수 있다는 심해어의 눈이라도 가진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가 그 하얀 공간에 얼마나 있었을까.


또각, 하는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나타났다.


허공에서 빚어져서 땅에 내려오는 것처럼 여자는 갑자기 나타나 그를 마주 보았다.


"···이번엔 당신이로군요."


하얀빛을 그대로 빚어놓은 듯한 백발.

길쭉한 머리는 '흐른다'라는 표현을 해도 될 정도로 가늘고 섬세해 보였다. 웨이브 지는 머리는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사락사락 흔들리며 하얀 폭포를 연상케 했고, 하얀 속눈썹 뒤에서 빛을 발하는 붉은 눈은 사람의 심령을 제압하는 기세가 존재했다.


박세현은 여자를 마주 보았다.


"···당신을 후원하고 싶어요."


여자는 박세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당신은, 제 후원에 대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제가 후원해왔던 수많은 예술가처럼, 당신 역시 제게 충분한 대가를 줄 수 있으리라 믿어요."


여자의 마지막 말과 함께 박세현은 자신의 의식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꼈다.

입과 귀가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며 지면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의 눈과 정신은 그것과 정반대의 위쪽으로 솟구치는 느낌. 그것은 마치 그의 몸이 길게 쭉 늘어진 다음 배배 꼬이는 느낌이었고, 피륙으로 이뤄진 몸뚱어리가 영혼이 되어 회오리치는 것을 그대로 느끼는 감각이었다.


그 기묘함이란 차마 형언할 수가 없어서.


꿈에서 깬다 한들 잊어버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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