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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령2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2.01.10 16:57
최근연재일 :
2012.01.10 16:57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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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8
추천수 :
730
글자수 :
257,382

작성
11.10.21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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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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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미령(美靈)2-(31)

DUMMY

거기엔 손에 리포트를 들고 있는 총장의 노기에 찬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 교수의 머릿속엔 교수회의 때마다 총장이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매번 말하는 거지만 항상 품의를 잃지 말고 존경받는 교수가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더구나 자신 보다 막강한 배경을 지닌 총장이었으니 툭하면 요즘 임용되지 못해 놀고 있는 석박사 많은 거 아느냐며 수시로 압박을 가하기도 했던 것이다.

아직도 노기에 찬 총장의 얼굴이 눈에 선한 교수는 혹시 총장실에서 호출하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오금을 저려야했다.

다행히 30여분이 넘도록 아무런 호출이 없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책상위에 흐트러진 리포트들을 하나하나 챙겨드는 교수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조금 전 강의실에서 교수의 가슴이 철렁했을 때 총장은 전혀 다른 장소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교수의 뇌리에 남아있는 총장은 누구였을까?

같은 시각, 버스에서 내린 영선은 강준과 가게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 교수 정말 재수 없어. 아까 얼마나 화가 나던지 총장이 저걸 봐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 자식 총장 앞에선 말 그대로 생쥐 꼴이지. 나이도 어린 새끼가.”

“어떻게 그 나이에 교수가 됐지?”

“다 제 아버지 덕이지. 아버지가 정당 대표거든. 그런데다 키도 작고 말랐으니 빤한 일 아니겠어?”

“병역비리?”

“당연하지.”

“저기야. 빨간 간판.”

“영선아트라 가게가 아담한 것이 예쁘네.”

영선은 이 기회에 강준을 엄마한테 소개할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아직 그러기엔 이르기도 하고 어색해 생각을 바꾸었다.

“고마워. 바래다 줘서.”

“천만에. 갈 게.”

강준도 이왕 온 김에 인사나 드리고 갈까 했으나 영선이 원치 않는 눈치여서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잠시 후, 버스에 오른 강준은 강의실에서 보았던 이상한 것을 떠올렸다.

멀리 있었으면 착시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바로 옆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잘 못 볼 이유가 없었다.

‘그럼. 누가 얘기한 것이 이것이었나?’

강준은 누나한테 다녀오던 날, 영선을 집 앞에 내려주고 돌아가는 길에 받았던 전화를 떠올렸다.

“미처 말하지 않은 게 있어서.”

그것은 영선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아가씨 있잖니.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이야. 너 때문에 태연한 척 했는데 그 아가씨 음기가 보통이 아니더라. 다른 여자들한테선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대단한 것이었어.”

“하지만 그것 때문에 가까이 할 수 없다는 건 좀.”

“그게 그렇지가 않아.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아가씨하고 합궁했다간 양기를 빼앗겨서 제명에 못 죽는 수가 있어.”

누나한테는 그냥 과 친구일 뿐이라고 했지만 이미 영선의 야릇한 매력에 마음을 빼앗긴 강준의 심정은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영선이 자신도 모르는 변화를 겪는 사이 역술원에선 어느새 상당한 신통력을 발휘하게 된 도희가 유명세를 키워가고 있었다.

그 덕에 점괘를 받은 손님들로부터 신이라는 찬사까지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어떻게 그런 점괘를 나왔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신통력은 도희의 모든 것을 장악한 요령의 잔재주였다.

한번쯤은 의심할 만도 했지만 자신이 빙의에 걸린 것을 모르는 도희는 날이 갈수록 목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저 년은 여전히 모르고 있지?”

“당연하죠.”

“머리보다는 몸으로 먹고 살았던 년이니 눈치 챌 리가 없지.”

“그런데 너무 답답해요. 멀쩡한 애로 바꾸면 안 될까요?”

“이 년아. 내가 한 말 잊었어? 멀쩡한 계집은 잡아둘 수 없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암흑 속에서 소리만 듣고 살려니까 미칠 것 같아요.”

“어쩌겠니? 눈이 이지경이라 성한 년은 마음대로 못하니. 아무튼 그 년을 잡아야 고치든지 말든지 할 텐데.”

자신을 이렇게 만든 귀신을 생각하며 이를 가는 무휘의 소리를 들은 요령은 전에 도희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것을 생각했다.

빛도 보지 못하는 도희와 어른거림뿐인 시력의 무희와 달리 요령은 눈이 멀기 전 도희의 눈에 비친 그 존재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여태껏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훗날 무희와의 거래에 히든카드로 쓰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원망이 큰 것을 보면 이것은 눈이 보이지 않는 무희의 크나큰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희가 남의 기억을 읽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한편 잠자리에 누운 도희는 요즘 들어 찾아 온 몸의 이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손님을 받기만 하면 어느 순간, 정신 줄이 끊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이 끝나버리기 일쑤였고 손이 닿는 곳마다 뼈가 만져지는 것이 몸무게도 현저히 줄어있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움푹 꺼진 눈꺼풀은 거의 종잇장처럼 얇아져 제대로 감겨지지도 않았다.

병이라도 생긴 것 아닌가 하여 병원에 가보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돌아온 것은 무희의 거친 말뿐이었다.

“이 년아. 네 몸은 내가 다 꿰뚫고 있어. 병난 거 아니니까 그럴 시간 있으면 신력(神力)이나 키워. 남들은 살 못 빼서 안달이구만.”

무희의 호통에 병원에 갈 생각을 포기한 도희는 습관처럼 수시로 얼굴을 더듬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얼굴은 그것을 더듬는 도희에게 지금의 모습을 전하고 있었다.

예전엔 통통했던 볼 살은 사라진지 오래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눈두덩은 전보다 더 움푹해져 당겨진 눈꺼풀 사이로 손끝이 들어갈 정도였다.

도희는 이런 상태라면 아이들이 말했던 빨간 속살이 훤히 보이겠다는 상상르 하면서 옛날에 책에서 보았던 늙은 마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미 옛날의 모습이 사라진 도희의 얼굴은 하루하루 요령의 얼굴로 변해기고 있었다.

그러나 바짝 마른 얼굴과 달리 군살 하나 없는 몸은 개미허리와 발달된 젖가슴으로 육감적인 몸매로 변해 있었고 요령은 그런 몸을 갖게 된 것을 매우 흡족해했다.

그런데 요령에게는 크나큰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거울이었다.

살아생전 비만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요령은 주로 몸매가 뛰어난 여자의 몸에 빙의로 들어가 하루 종일 거울속의 몸을 감상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요령 때문에 빙의에 걸린 여자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거울 앞에 붙어 있는 바람에 가족이나 친지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령의 행각은 빙의에 걸린 여자를 가족들이 무희에게 데려오면서 끝이 나고 말았다.

가족들로부터 퇴마의뢰를 받은 무희는 요령에게 어떤 원한이 있는지 알아내어 그것을 이용해 몸에서 나와 거울 속에 갇히도록 만든 것이다.

무희가 눈이 먼 도희를 선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만약 요령이 다른 사람 거울에 갇히게 되면 눈이 보이지 않는 자신은 그 거울을 찾아낼 도리가 없어서였다.

영선과 도희가 변화해 가는 사이 실의에 빠졌다가 차츰 안정을 찾은 마정과 나미는 가끔씩 안부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럼 밖엔 안 나가겠구나?”

“이 꼴로 어떻게 나가. 낮엔 문턱도 넘기 싫어.”

마정의 목소리는 예전에 비해 풀이 죽어있었다.

“그러면 방안에서 꼼짝도 안한단 말야? 화장실은 어쩌고?”

“밤에 가면 돼.”

“도대체 얼마나 심하기에?”

“얼굴은 반쪽에다 애꾸눈까지 됐으니 안 봐도 알 거야. 그나마 장님 안 된 게 다행이지. 넌 어때?”

“나도 재활 시작한지 이제 한 달밖에 안됐어.”

“많이 힘들었겠구나?”

“당연하지. 그동안 자살기도도 수없이 했었어.”

“미안하다. 나 때문에.”

마정의 입에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말을 들은 나미는 만감이 교차했다.

자신감을 잃은 말투엔 지난 세월에 대한 후회가 섞여 있었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는 거잖아. 이제부터가 중요하지.”

이것은 둘 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장은 둘 다 바깥출입이 불가능해 만나는 것은 훗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한편, 강준의 오피스텔에선 핸드폰을 통한 심각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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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미령(美靈)2-(39) 11.10.31 423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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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미령(美靈)2-(33) 11.10.24 352 8 7쪽
31 미령(美靈)2-(32) +1 11.10.22 443 9 8쪽
» 미령(美靈)2-(31) +1 11.10.21 460 11 8쪽
29 미령(美靈)2-(30) +1 11.10.19 388 8 7쪽
28 미령(美靈)2-(29) +1 11.10.18 389 10 7쪽
27 미령(美靈)2-(28) +2 11.10.17 419 12 7쪽
26 미령(美靈)2-(27) +1 11.10.16 434 8 7쪽
25 미령(美靈)2-(26) +1 11.10.14 410 8 7쪽
24 미령(美靈)2-(25) +1 11.10.13 418 10 7쪽
23 미령(美靈)2-(24) +1 11.10.12 511 6 7쪽
22 미령(美靈)2-(23) +1 11.10.11 498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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