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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피글 님의 서재입니다.

전 여친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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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범고래
작품등록일 :
2020.07.19 11:13
최근연재일 :
2020.08.27 05:56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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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4
글자수 :
64,742

작성
20.07.3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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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기업이 이끄는 생존자 구역, '호텔' (5)

DUMMY

소장이 말한 것은 이랬다. 이 작전을 주도하는 무리 중 우두머리는 쩐이 있는 놈이다. 배산그룹 몰래 진행하는 이 은밀한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부분 그 놈이 댄다는 것인데, 이번 바다를 만드는 작전도 그 놈의 쩐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구석진 곳 부지를 사 들이고 주변에 철책을 둘러. 그리고 안에를 존나게 파는거야.’

무지막지하고도 무모한 말이었지만 소장의 담백한 말에 정말로 일어나고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일었다. 그 쩐주가 사들인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곳에 지에 철책을 두르고 그 안을 일종의 저수지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거기 공사 비용들까지.

“땅에 물 안 스며들게 또 뭐 깔아야 하고, 거기 파내는 장비들까지 다 하면 돈이 한두 푼으로 끝날 게 아닌 거 같은데요.”

“쩐주가 돈이 많아.”

“거기에 인부들 입막음 비용까지 한다고 치면 앵간한 게 아닐텐데.”

“쩐주가 돈이 좀 많이 많아.”

허어. 나는 상추에 회를 한 점 올리고 조물딱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



‘잘 생각해봐.’


집에 돌아와 벌러덩 누운 나는 곰팡이 핀 천장을 피곤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며칠 전보다 좀 늘었나. 옆에 먼지 낀 액자에 웃고 있는 여자가 사람 속도 모르고 킥킥거리고 있는 듯만 하다.


‘근데, 왜 전데요?’

‘엘레베이터 밑에서 시원하게 잘 지르길래.’

‘그거, 그거 가지고요? 아니, 사태 겪었던 사람들 중에 그 정도로 좀비 안 마주해본 사람 어딨겠습니까.’

‘밖에서야 아드레날린에 눈에 불키고 있는다 해도 이불 안에 들어와있는데도 예리한 새끼는 난 놈이거든.’


뭔가 하루종일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들을 들은 것 같다. 돈 버는 거 좋지만, 이건 모가지가 날라갈 일이다. 소장 앞에서 티는 안 냈지만 배 안 쪽이 꿀렁이는 듯한 불안감이 계속해서 일었다. 쥐새끼처럼 벽 밖에 나가 물건 밀반입해오는 범죄 정도가 아니다. 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배산그룹의 벽 안에서 물자의 핵심이 될 저수지를 만드는 일이다.


학교 다닐 때 책 펴는 취미는 없던 나도 알 수 있다.


이건 진짜 바다를 만드는 일이다.

이 구역 안에서 돈과 권력의 중추를 뒤틀어버리는 일이 되는 거다.

쩐주가 누군지는 몰라도 돈을 퍼붓는 이유가 있다. 이 작업에 성공해서 정말 만의 하나의 일로 배산그룹이 가진 장악력보다 높은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면 이 작전에 들이는 돈은 돈으로 보이지도 않게 되는 거다.


“거기에 내가 소장과 함께 공을 세운다면···.”


건들지 않으려 애썼던 액자를 손을 뻗어 들었다. 액자 속 여자가 고양이 같은 눈매로 나를 흘겨 보는 거만 같다.


“만들어 놓고 숨기고 있다는 치료제에도 다가설 수 있을까.”




-----------------------------------------------------------------------------


다음날이 되자 숙취에 가볍게 속이 쏠렸다. 예전에는 숙취란 걸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꼴에 나이가 든 것일까. 아니면 여기 ‘호텔’에 와서 술 먹을 일이 없다 보니 몸이 받아들이지를 못한 걸까. 나는 적당히 티와 반바지를 갈아 입고 밖으로 나섰다. 별 볼일 없는 자들이 모인 슬럼가. ‘호텔’ 내에서도 가장 땅값이 낮은 좀비 호텔 장벽 근처의 동네다. 전문직이나 고위 관료같이 배산그룹이 필요로 하는 놈들은 심리적 불안 요소인 좀비 호텔로부터 멀리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서 살아간다. 사태 이전이라면 좀비 호텔의 전신인 호텔 근처가 럭셔리한 있는 놈들의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뒤바뀌어진 셈이다.


소장의 사무소도 이 동네 근처에 있었다. 일을 찾는 놈들이 대부분 여기 살기 때문이다. 술이나 깰 겸이라 생각하고 사무소를 향해 슬리퍼를 끌며 걸어갔다. 늘 두터운 작업복에 작업화 조여 매고 가던 곳이라 은근한 배덕감까지 느껴져 살짝 짜릿하다. 소장은 사무소에 있을까. 보면 어떻게 대해야 하지? 어제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알코올과 뒤죽박죽 섞여 있는 느낌이다. 사무소의 철제 문을 열었다.


사무소의 단조로운 철체 책상에는 두 다리를 척 올리고 의자에 기대있는 소장이 있었다. 처음 보는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에 무슨 서류 묶음을 한 손으로 쥐고 펄럭거리며 읽고 있었다. 왠지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모습에 조심히 들어오자 옆에 있던 부소장이 빙긋 웃으면서 손짓했다.

"부소장님, 안녕하세요."

"왔니,도전아. 지금 소장님 인사드려도 못 받으실거야."

부소장이 소장의 어깨로 가 꾹꾹 주물러도 소장은 거들떠도 안 보고 가늘게 뜬 눈으로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부소장도 나긋나긋한 인상과 달리 괴물 같은 완력이라 웃는 얼굴로 해주는 저 안마에 보통 괴성을 지르는데.

"완전 일 모드셔, 일 모드."

확실히 소장은 손가락을 혀로 핥고 종이를 슥 슥 넘기기만 할 뿐 아는체도 하지 않았다. 뭘 저렇게 집중해서 읽고 계시는거지.

"당분간 일도 없을텐데 어쩌다 왔어."

"예? 아,아니요. 그냥 뭐 잠깐 근처에 걷다가 들렀다고 해야 하나... 그냥... 부소장님은 어떻게?"

"부소장 하는 게 소장님 시다바리 일이지 뭐. 소장님이 오늘 보자고 해서 호출하셨어."

부소장은 자판기로 가 믹스커피를 뽑아서는 나에게 건내줬다.

"아, 감사합니다."

"왔냐?"

소장이 종이더미를 테이블 위에 탁 내려놓으며 기지개를 폈다.

"예, 아, 저기, 주변에 산책이나 하다가..."

"산책? 팔자 좋다,야. 걸어다니면서 소주병 공병이나 주우며 한 푼 두 푼 모아."

이 양반이.

"저, 소장님. 저, 그 저번에 말한 거..."

부소장의 눈치를 봤다.

그러자 소장이 부소장을 돌아보더니 다시 나를 빤히 바라봤다.

"저번에 말한 거 뭐. 말을 해."

뭐라는거야, 이 사람이. 그런 중대한 걸 남 앞에서 어떻게 막 말하고 다녀?

소장이 껄껄 웃었다.

"정도전이. 너 뭐 착각하고 있나본데, 너 바다 작전 들어가는 거 한참 하꼬에 있는 거데이."

부소장이 소장이 내려놓은 서류더미를 들고 탁자에 탁 탁 정리하며 싱긋 웃었다.

"또 잘 부탁한다."

그렇다는 말은...

"소장님한테 얘기는 들어놨어. 니 배짱 보고 뽑으셨다고. 사무소에서는 나랑 소장님 그리고 이제 너만 바다 작전 알고 있어. 그리고 그렇게 함구하는 모습, 뭐 난 보기 좋아."

현장 일 나가서 작업복 입고 있을 때 빼고는 늘 세미 정장처럼 빼 입고 다니길 좋아하는 부소장은 특유의 우아한 제스쳐로 나에게 건넸다.

"너도 읽어 봐."


--------


총칭 바다 프로젝트.

사유화된 부지에 인조적으로 저수지를 만들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각종 제품들을 은밀히 생산하는 것이 목표.

현재의 권력인 배산그룹에서 새로운 권력 유망주가 생겨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아주 비밀스럽게 작업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서류에서는 계속해서 강조했다.

처음으로 알게 된 사유 부지의 장소는 확실히 엄청나게 인적이 드문 곳이긴 했다. '호텔'이 점차 규모가 커져 유입되는 인구수 또한 팽창했지만 그에 따라 요새화시킨 땅 넓이도 행정 구역상 하나의 '구' 정도까지 넓어졌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핵심적인 톱니바퀴는 이 대목이었다. '이 호수만한 크기의 저수지가 '호텔' 내에서 바다같은 힘이 되어 그걸 바탕으로 권력 이양에 성공한다면 프로젝트에 가담한 관계자 모두에게 보상과 지위를 보증한다.'라는 것이었다. 사실 믿을 구석이라고는 없지만 어차피 쩐주의 높은 인건비 단가로 일하는지라 인부들에게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확신은 없지만 잘 되면 떡 내준다는데 입 다물어주는 것 정도야 싫어할 자가 어딨으리라. 무엇보다 발설하면 이런 불법적인 일을 하게 된 자신의 안위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런데요, 소장님."

"와."

"그래서 저희가 하는 일은 뭐에요? 포크레인 끌고가서 땅 파댑니까? 근데 포크레인 기름 받으려면 배산그룹에 가서 현장 활동 보고서도 내야 해서 구라로 조작하려 한다면 꽤나 골치 아플텐데요."

"뭐라카노. 가라로 포크레인 옮기는 게 그게 한다고 되는 게 아이다. 배산 금마들은 기름 존나 아껴서 보고서에 적힌 현장 무조건 나가보거든."

"그러면..."

"뭐긴 뭐야, 삽 들고 존나게 파야재."

"예에?"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일 정도로 웃던 소장의 옆에서 부소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소장님이 농담하신거야. 우리가 하는 일은 시공 쪽이 아니고 다른 쪽이야."

"니가 보기엔 내가 거기 가서 땅이나 파면서 한 몫 챙기려고 한 줄 알았나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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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업이 이끄는 생존자 구역, '호텔' (3) 20.07.23 33 1 11쪽
2 기업이 이끄는 생존자 구역, '호텔' (2) 20.07.21 27 1 9쪽
1 기업이 이끄는 생존자 구역, '호텔' (1) +1 20.07.19 90 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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