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클랜시 님의 서재입니다.

배신당한 요괴는 복수를 계획중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하루살이18
작품등록일 :
2023.04.07 18:19
최근연재일 :
2023.04.09 18:0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87
추천수 :
2
글자수 :
49,037

작성
23.04.09 13:00
조회
13
추천
0
글자
11쪽

(9) 무한의 감옥

.




DUMMY

(9)


강원도 깊은 산골, 전쟁 당시 거대 악귀가 다수 출몰하며 벌어진 전투로 곳곳이 무너지고 패여 기암절벽을 형성한 아래엔 아직도 흉흉한 기운이 서려있었다.


물안개가 갈린 자갈길을 걸으며 은휘강은 중얼거렸다.


“냄새 지독하군. 무저갱이 닫히고 2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 정도 기운이 남아있다니.”


요력을 지닌 각성자만이 제대로 감지할 수 있는 악귀들의 잔재를 느끼며 휘강은 험준한 계곡을 나아갔다.


볕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계곡 안은 한낮임에도 어둑하고 습한데다 그늘 속에 무언가 숨어있다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덕분에 일반인은 물론 각성자들조차 발길을 하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휘강은 제대로 찾아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12방주의 행적을 따라 동분서주 할 시기였음에도 그가 이런 심심산천으로 찾아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엔 제대로 찾아온 것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계곡 깊숙한 곳, 양 갈래로 물길이 들어오는 길목에 선 휘강은 왼팔 소매를 걷어 올렸다.


‘흉(凶)’


광호에게서 빼앗은 인장이 불을 밝히자 그 위에 손을 얹고 휘강은 속삭였다.


“좌와 우, 악귀로 가득한 자를 피하려 한다.”


이어서 인장은 동전으로 바뀌었고 휘강은 이전처럼 그것을 튕겨 올렸다 낚아챘다.


손을 펼쳐 확인한 동전 윗면엔 좌(左)라는 글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의 선택은 흉조의 불길함이 서린 왼쪽 길이었다.


본래는 길흉을 파악하여 나쁜 일을 피하기 위한 능력이지만, 휘강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가장 불길하고 위험한 쪽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계곡을 따라 올라가자 주변은 해가 진 것처럼 어두워졌다.


계곡에 깔린 악한 기운의 농도 역시 함께 짙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이런 곳에서 있다는 건가?”


무저갱이 토해놓고 떠난 세상의 악기가 모두 모여든 하수구 같은 계곡엔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그나마 영향을 덜 받는 물길 속엔 유영하는 물고기가 간간이 보일 뿐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휘강은 멈추어 서더니 양쪽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더니 계곡물에 풍덩 머리를 담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에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다시 일어선 그는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거기 있는 거 아니까 이리 나와, 영감!”


곧 멀찍이 그늘진 바위 뒤편에서 땅딸막한 그림자 하나가 슬금슬금 걸어 나왔다.


그림자는 150이 간신히 됨직한 신장에 왜소한 체구, 허리마저 구부정한 백발의 노인이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외형이었으나 이쪽을 향한 눈빛만은 형형한 기운이 느껴졌다.


“넌 누구냐?”

“못 알아보겠어? 너무 오랜만인가.”


휘강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노인에게 친근한 척을 해보였다.


하지만 상대는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이쪽을 경계하고 있었다.


“너 같은 건 기억에 없다. 괜히 다치기 싫으면 여기서 나가.”


요력을 목소리에 실어 밀어내듯 쏘아내는 노인의 말에 휘강은 양손을 펼쳤다.


‘파즈즈즈.’


양손에 백색의 스파크를 일으켜 연결시킨 휘강은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자, 어두워서 못 알아봤을 수도 있으니까. 다시 한 번 자세히 봐.”


그의 번개를 본 노인은 안색이 변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 표정! 알아봤구나. 역시, 천하의 황경두라면 눈치 챌 거라 생각했지.”


반색하는 휘강과 달리 노인은 혼란에 빠진 모습이었다.


노인의 이름은 황경두, 12방주에 속하진 못하지만 그만의 특수 능력으로 손에 꼽히는 각성자였다.


그리고 휘강이 [흉조의 예감]을 써가며 경두를 찾아온 것은 그의 능력 때문이었다.


“영감, 아직 능력은 그대로지?”


매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으며 묻는 휘강의 모습에 노인은 다시 경계했다.


“그건 왜 물어? 그보다, 너 정말 길달인 거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죽었다고 들었는데.”

“호들갑 떨지 말고. 뒤쪽부터 답을 하면. 죽었는데 어쩌다보니 이 몸으로 살았어. 그러니까 내가 길달이 맞다는 거지. 그리고 능력에 관해 물어본 건.”


휘강이 답을 끝내기도 전에 노인의 뒤편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그에게 달려들었다.


시커먼 그림자의 정체는 황소만 한 몸집에 악어 주둥이를 가진 악귀였다.


전격을 발사해 악귀를 튕겨낸 휘강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여전하네. 바로 이것 때문에 영감을 찾아왔다고.”

“꺼져라! 그렇지 않으면 악귀들을 더 불러내겠다!”

“얼마든지, 바라던 바야!”


자신을 향해 다시 달려드는 악귀의 주둥이를 양팔로 붙잡으며 휘강이 외쳤다.


뒤이어 거대한 뱀 형상의 악귀가 휘강 쪽으로 빠르게 기어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악귀의 대가리를 겨드랑이 사이에 붙든 채로 휘강은 오른팔의 인장을 활성화시켰다.


시뻘건 불꽃이 휘감은 손을 뱀 모양의 악귀에게 향한 휘강은 세차게 숨을 내뿜었다.


[염뢰(炎雷)의 숨결]


컴컴한 계곡 안에 백색과 적색의 빛이 번쩍이길 몇 차례.


통구이가 되어버린 두 마리 악귀가 계곡 바닥에 뻗어버리자 휘강은 한숨을 돌리며 경두에게 물었다.


“왜, 더 풀어주지 그래?”

“너야말로 왜 나를 공격하지 않는 거냐?”


여전히 경계는 풀지 않은 채 묻는 경두에게 휘강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래서 공격한 건가? 내가 무턱대고 능력을 빼앗으려는 줄 알고?”

“맞아. 하지만 그러지 않는군. 네 놈이 길달이라면 당연한 일이겠지.”

“대체 내 말을 어디까지 믿는 거야? 인장의 힘은 믿으면서 내가 길달인지는 확신이 없어?”


따지듯 휘강이 묻자 경두는 그제야 경계를 풀며 헛기침을 했다.


“그 꼴을 하고 있는데 쉽게 믿을 수 있겠냐? 능력이야 어떤 놈이든 가질 수 있는 것이고.”

“세상에서 하나 뿐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설득력이 없네.”


휘강도 피식 웃더니 노인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곤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쓰러진 두 악귀들을 살피며 허공을 휘저었다.


잠시 후, 다시 일어섰을 때엔 왼편 어깨 근처에 하나의 인장이 생겨났다.


뱀 형태의 악귀에게서 얻어낸 작은 크기의 인장은 ‘독취(毒臭)’라는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둘 다 하급이라 쓸 만한 게 없군. 혹시 나를 배려해준 건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정말 네가 길달이라면, 왜 찾아왔는지 말해 봐.”


경두는 꼬장꼬장한 태도로 재촉했다.


하지만 휘강은 느긋한 걸음으로 근처 바위로 다가가 걸터앉았다.


“먼저 영감 얘기부터 듣고 싶은데. 어째서 이런 곳에 숨어있는 거야? 다른 각성자들은 전쟁영웅 취급 받으면서 호의호식 하는 모양이던데. 당신 정도면 VIP 대우 받을 거잖아.”

“내 능력을 알면서 그런 소릴 하는 거냐?”


경두의 반문에 휘강은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까닥였다.


황경두, 성황의 힘을 각성한 그가 가진 단 하나의 능력은 [봉귀무간(封鬼無間)].


‘무한의 감옥’이라고도 불리는 능력은 만물의 이치와 단절된 이공간에 대상을 가두는 기술이었다.


거기 갇힌 악귀의 힘에 비례하여 이공간 역시 점점 강해지기 때문에 전쟁 말미의 경두는 마왕을 비롯한 최상위급 악귀 몇몇을 제외하곤 어떤 적이라도 붙잡기만 하면 봉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이나 강력한 힘이기에 따르는 제약과 위험도 동시에 감당해야만 했다.


우선 [봉귀무간]을 제외하면 그는 어떤 기술도 익힐 수 없었다.


때문에 강한 악귀를 잡아넣으려면 다른 각성자의 도움이 필수였다.


그리고 강한 악귀일수록 공간 안에 가둘 수 있는 숫자는 제한된다.


게다가 경두 본인은 항시 이공간과 연결되어 있기에 갇혀있는 악의 기운에 영향 받아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무한의 감옥은 황경두란 존재가 있기에 유지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두려워했겠지. 당신이 죽으면 그 즉시 갇혀있던 악귀들이 전부 세상에 풀려나올 테니까.”

“마기를 흘리며 걸어 다니는 폭탄을 반기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 전쟁 전에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환영받을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군.”

“세상 사람들에게 구세주 취급 받는 인간이 할 소린 아닌데.”


동의할 수 없다는 듯 툴툴거리는 노인의 모습에 휘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내 차례인 것 같군. 어쩌다 이 꼴이 됐는지. 그리고 당신을 왜 찾아왔는지 말해줄게.”


길달의 마지막부터 시작해 휘강으로서 지금까지,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필요했다.


모처럼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상대였기에 휘강 속 길달은 어느 때보다 수다스러웠다.


마침내 얘기가 끝나고 휘강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했다.


“그래서 난 당신의 힘이 필요해. 아니, 정확히는 그 힘으로 붙잡고 있는 악귀들이 필요해.”

“예전 힘을 되찾기 위해서 말이지?”


경두는 방금 악귀에게서 빼앗은 새로운 직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맞아. 속성으로 힘을 키우려면 노인장의 감옥 밖에는 답이 없더라고.”

“나로선 기쁜 제안이군. 만원인 감옥의 수감자를 줄여준다니 말이야. 하지만 아쉽게 됐어.”

“뭐가?”

“내 능력 말이다. 더는 예전 같지가 않거든.”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경두의 표정에 휘강은 다시 물었다.


“예전 같지 않다니?”

“하루에 풀어줄 수 있는 악귀의 수가 제한적이야. 아까처럼 약한 녀석은 많아야 셋. 조금이라도 강한 놈을 풀어주면 한동안 능력을 쓰지 못한다. 도로 잡아들이는 쪽은 어떤지 시험할 방법조차 없었고. 아마 비슷할 거야.”


예상치 못한 나쁜 소식에 휘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봉귀무간에 갇힌 악귀를 약한 놈부터 차례로 끄집어내 상대하며 빠르게 인장을 늘리고 힘을 키우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고민하던 휘강은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내려놓은 배낭을 다시 짊어졌다.


“그냥 돌아가려는 건가. 미안하게 됐군.”

“돌아가긴, 어딜 돌아가? 사정이 그렇다면 계획을 바꾸지. 꺼내는 대신 들어간다.”

“뭐라고?”


퀭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되묻는 경두였다.


“내가 무한감옥으로 들어가겠다고. 그럼 한 방에 해결이 되니까.”

“멍청한 소리군. 그 안에 어떤 게 갇혀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하는 말이잖아. 내가 필요한 힘이 전부 그 안에 있거든. 인장 쇼핑 하는 셈 치자고.”


몸을 풀어주듯 전신에 요력을 순환시키는 그를 보며 황경두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지금 당장 말이야?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완전 진심이야. 해줄 수 있지?”

“미친놈······.”

“언제는 안 그랬나?”


대꾸하며 웃는 휘강의 모습에 경두도 희미한 미소와 함께 수인(手印)을 맺으며 외쳤다.


“봉귀무간(封鬼無間)!”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배신당한 요괴는 복수를 계획중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 (10) 무한의 감옥 2 23.04.09 14 0 10쪽
» (9) 무한의 감옥 23.04.09 14 0 11쪽
8 (8) 장례식의 7인 2 23.04.08 16 0 11쪽
7 (7) 장례식의 7인 23.04.08 18 0 10쪽
6 (6) 야수사냥 3 23.04.08 17 0 11쪽
5 (5) 야수사냥 2 23.04.08 16 0 10쪽
4 (4) 야수사냥 23.04.08 16 0 11쪽
3 (3) 도깨비왕 3 23.04.07 19 0 12쪽
2 (2) 도깨비왕 2 23.04.07 19 1 11쪽
1 (1) 도깨비왕 23.04.07 39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