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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공간 지도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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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플폴풀
작품등록일 :
2023.08.07 15:17
최근연재일 :
2024.08.07 20:00
연재수 :
1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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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20,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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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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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잉그 (5)

DUMMY


필연.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

그러나 그것은 사실 절대적이지 않았다.

그것의 기반이 마력이기 때문이었다.


마력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창조의 힘이 담긴 기이한 힘.

그리고 그것은 누구나 지니고 있었다.


지닌 양, 다루는 양이 생명에 따라 다르며 다루는 형태만이 다를 뿐.

본질적인 것은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필연은 절대적이지 못했다.

김윤이 마력으로 일으킨 운명의 길을 더 강한 힘으로 찢어발기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것이 변화를 일으킨 특수한 마력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반발이 생겼을 뿐.

그것은 결국 마력이니 말이다.


아무리 강력한 물줄기라고 해도 방대한 바다에는 집어삼켜져 사라질 뿐이다.


그것은 지금 그가 쏘아낸 죽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마력을 회복하고 쏟아부었다.

하지만 레자르에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창공으로 쾌속하게 솟구치던 새카만 마력 덩어리가 레자르와 충돌하기도 전에 무너져 내렸다.

똑같이 새카만 무언가가 그것을 집어삼켰기 때문이었다.


파멸의 힘이었다.


“빌어먹을······.”


쓸 수 있는 최후의 수단마저 막혔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김윤은 빠르게 생각했다.

현 상황에 대해 파악했다.

그리고 품고 있던 의문과 기이한 점을 떠올렸다.


‘애초에 이상하다. 아무리 놈이 강하다고 해도 길을 만드는 자들이 너무 무력하게 당했어.’


그들은 김윤과 같은 정신력을 지닌 이들.

그렇기에 김윤이 깨어났다면 그들도 환영에서 벗어났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 무력하게 죽었다.


셋이나 되는 한 세계의 정점인 이들이 말이다.


‘지금 이것조차 환영인 건가?’


김윤이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럼 대체 어디부터 환영인 거지? 이 세계에 올 때부터? 아님 배에서 내렸을 때부터?’


그는 다시금 코어에 담긴 마력을 흡수했다.

동시에 백민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가 품었던 의문.


-그 창조주라는 작자 말이야. 고작 자기가 만든 피조물을 못 막아서 우리를 보낸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그래, 이건 환영이다. 벗어나야 해.’


아니, 반드시 환영이어야만 한다.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게 환영 같나?”


레자르가 최초에 쏘아냈던 섬광을 다시금 쏘아냈다.

그것은 그대로 김윤의 어깨를 꿰뚫고 불태웠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통증.

그것은 마치 이것이 환영이 아니라고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현실을 받아들여라.”


레자르가 연이어 공격을 쏘아냈다.

섬광의 세례가 쏟아지며 김윤의 전신에 구멍을 뚫어냈다.


상처 곳곳에서 어둠이 피어나며 재생을 시작했다.


“너희는 실패했다.”


레자르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의 발이 땅에 닿자 폐허가 된 곳이 아물기 시작했다.


새로운 흙이 솟아나며 새싹들이 자라났다.

사방에서 수많은 식물이 그가 내뿜는 마력을 집어삼키며 순식간에 생장했다.


“포기하고 죽어라.”


압도적인 힘.

그가 조금만 조절해도 순식간에 자신을 죽어버릴 힘.

그런데 그는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

농락과는 결이 달랐다.


김윤이 쏘아진 섬광을 피해내며 단도를 내던졌다.

금방 지도를 불태우며 만들어낸 것이었다.


마력을 휘감으며 회전하는 단도가 맹렬한 기세로 날아가다 소멸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쏘아내는 마력도.

불태우는 지도의 또다른 무기들도.

길의 힘도.

그 어떠한 것도 레자르에게 닿지 않았다.


레자르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김윤이 당겨지며 목에 그 손이 채워졌다.


콰아아앙!


레자르가 김윤을 그대로 바닥에 처박았다.

갓 자라난 풀들이 짓이겨지고, 솟구치는 흙먼지에 뒤섞여 날아갔다.

그리고 소멸했다.

그리고 다시금 새로 태어나고 자라났다.


창조 그리고 파멸.

그것이 그가 숨 쉬는 것만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신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왜 날 죽이지 못하지?”


김윤이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자신의 목과 함께 레자르의 손을 찢어냈다.


어차피 자신은 재생할 수 있기에 한 공격이었다.

곧바로 회복되는 그의 목.


김윤은 또다시 단도를 만들어 레자르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레자르는 곧장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찢겨 나간 손을 창조로 새로 만들었다.


“아니, 죽이지 못 하는 건가.”


김윤의 목을 타고 어둠이 피어났다.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는 그대로 죽을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재생이 스스로 발동했다.

마치 그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말이다.


“내가 죽으면 이 모든 환영이 풀리는 거로군.”


지금까지 보여준 레자르의 공격.

그것은 모두 치명상을 피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의 공격을 막아내는, 모든 것을 없애는 파멸의 힘조차 자신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죽으면 이 환영이 풀리니 말이다.


김윤이 비틀거리며 손바닥에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런 짓을 한 건 내가 모든 마력을 소모하고 이곳에 갇히길 바란 거겠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뚱어리.

놈은 그것을 바란 것이다.

그가 이곳에 영원히 갇히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우리가 실제로 네게 위협이 된다는 뜻이겠고.”


김윤이 응축된 마력을 가슴팍에 가져갔다.

레자르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마치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설마 다 거짓말인가?’


만약 무언가 제약이 걸려 있어서 자신을 죽일 수 없는 것이라면?

이곳에 오기 전 창조나 파멸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주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아니야. 이게 답이다.’


김윤은 길을 정했다.

이것은 환영이고 깨어날 방법은 이것뿐이다.


그렇기에 그는 응축된 마력을 터트렸다.

마력이 폭발적으로 솟구치며 그의 심장을 그저 고깃덩어리로 바꾸었다.


“커헉.”


죽음.

생생한 그것이 그를 찾아왔다.


김윤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가 쓰러진 곳을 시작으로 붉은 웅덩이가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의 의식이 빠른 속도로 달아났다.


그것도 잠시, 달아났던 의식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본래의 몸으로 빠르게 돌아오는 의식.


“으윽······.”


김윤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자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디서부터 환영이었던 것일까.


김윤은 이곳이 어딘지 깨달았다.

그리고 충격에 휩쓸렸다.


그야 이곳은 아공간의 중심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그 모든 게 파멸의 시험이었다는 건가?’


애초에 잉그의 세계에 간 것부터가 환영이었던 걸까.


‘그럼 파멸이 했던 이야기는?’


대체 무엇부터가 진실인 것일까.


그는 우선적으로 창조와 파멸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라면 그에게 답을 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중심 어디에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와 똑같이 쓰러진 길을 만드는 자들만 있을 뿐이었다.


김윤은 그들을 흔들었다.

그러나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잉그의 세계에 있던 그들처럼 말이다.


“빌어먹을.”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하지만 답을 찾아야 했다.


그는 다시금 아공간의 중심을 살피며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졌기에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설마 이것도 환영인 것일까.


김윤은 자신의 뺨을 때렸다.

얼얼한 통증이 뺨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창조! 파멸!”


그는 이 공간의 주인을 찾으며 소리쳤다.


“그들은 없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의 대답이었다.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 환영에 있을 때 들었던 목소리.

레자르의 목소리였으니 말이다.


김윤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레자르.”


어째서 그가 이곳에 있는 것일까.


김윤은 마력을 끌어올려 스킬을 준비했다.

그러나 발동되지 않았다.


이곳은 아공간의 중심이었으니 말이다.


‘젠장.’


되는 것은 순수한 마력과 길의 힘뿐.

김윤은 그것이라도 끌어와 사용했다.

그의 몸 주위에서 새카만 실들이 나풀거렸다.


“설마 환영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이야. 특히 너는 내가 세심하게 조율한 환영이었는데 말이지.”


창백한 보랏빛 피부, 그것을 타고 그려진 검보라빛 기이한 문신.

새하얀 머리칼에 슬며시 가려진 붉은 눈동자.


레자르가 김윤을 직시했다.

그러자 위압감이 쏟아지며 그를 압박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창조와 파멸을 어떻게 했냐.”


김윤이 적대감을 내비췄다.


“창조와 파멸? 하하하.”


레자르가 두 팔을 펼쳤다.


“그들은 애초에 없었다. 네가 지금까지 만난 모든 것은 나였다.”


“맞아. 그들은 우리가 모두 잡아먹었다고.”


“음, 덕분에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됐지.”


레자르가 세 가지 다른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마치 인격이 분열되어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내 하나도 통일되며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다.


“네가 겪은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뜻이다. 아, 물론 전부는 아니지. 진정한 거짓은 진실을 섞어야 완성되는 법이니까.”


레자르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곳곳에서 어둠이 솟구치며 그의 손바닥 위로 뭉쳤다.


그것은 하나의 구가 되며 생명을 품고 작은 행성이 되었다.


“잉그라는 세계. 창조와 파멸. 그건 모두 진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 패배했고, 모든 우주는 이제 내 손아귀에 있지.”


레자르가 구체를 움켜쥐어 산산조각을 냈다.


“그리고 나는 레자르가 아니다. 나의 이름은 잉그.”


그의 붉은 눈동자가 김윤을 바라보았다.

마치 미생물을 보듯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빛이었다.


“모든 세계의 신이다.”

“잉··· 그······?”


김윤은 더욱이 혼란스러워졌다.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인가.


창조와 파멸이 거짓이라면 그동안 그가 보아온 것은 무엇인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애초에 멸망을 막을 수 없었던 건가······?’


김윤이 내뿜는 감정을 눈치챈 잉그가 씨익하고 미소를 지었다.


“무력감. 뜨겁게 타오르던 모든 것을 순식간에 냉각시켜버리는구나. 그리고 이어질 감정은 절망이겠구나. 극상이다.”


잉그가 마력을 움직였다.

김윤의 주위에 보이지 않는 압박이 가해지며 그를 짓눌렀다.


“······그렇다는 건 모든 세계를 멸한 건 네놈 짓이냐?”

“그렇다면?”

“왜 그런 짓을 했지······?”


김윤이 몸 주위를 휘감던 실을 사방으로 쏘아냈다.

그의 몸에서 시작된 실들이 대지에 박히며 팽팽하게 늘어났다.

그것은 그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흡수하며 사방으로 흩어뜨렸다.


“왜 우리를 이곳까지 오게 했지?”


그저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 끝에서 맞이하는 무력감과 절망을 맛보고 싶었던 것인가.


김윤은 분노가 치솟았다.


속았다.

놀아났다.


“레자르-!!”


김윤이 바닥에 박아두었던 실.

그것을 팔에 휘감으며 크게 휘둘렀다.


잉그가 선사하던 압박이 그의 힘이 되어 휘둘러졌다.

그러나 그에게 닿기도 전에 소멸하는 힘.


파멸이 그의 오른팔과 길을 통째로 앗아갔다.


“잉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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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잉그 (6) 24.07.11 32 0 12쪽
» 잉그 (5) 24.07.09 3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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