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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야기 이야기

금요일, 그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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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야기
작품등록일 :
2018.04.14 03:08
최근연재일 :
2018.04.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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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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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금요일 (05)

수 십번의 소개팅의 실패에 시우를 변명으로 삼는 재희, 3년 사귄 남자친구의 결혼 재촉에 목숨까지 위협받게 되는 유민, 존재도 알지 못 했던 동창에게 첫 눈에 반하게 된 서연. 세 여자의, 그녀들만의 현실에는 절대 없을 법한 사랑 이야기.




DUMMY

“나 이번 전시회 좀 미룰까.”

서연은 무릎에 묻었던 얼굴을 확 치켜들며 말했다.

“뭐?”

유민과 나는 깜짝 놀라 동시에 외쳤다.

“그게 방 깨끗해진 거랑 관련이 있는 거야? 너무 뜬금없는데?”

유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엄청 관련 있지. 이게 다 방 치우다가 일어난 일인데.”

서연은 맥주잔을 들이켰다.

“너희가 생각해도 여기가 그렇게 더러워?”

서연은 지금까지 자신의 작업실이 더럽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처럼 물었다.

“당연하지.”

“응.”

나와 서연은 차례로 대답했다.

“회사에서 새로 보낸 신입 담당이 내 작업실이 너무 더럽다는 거야.”

“담당?”

“회사?”

유민과 나는 서연의 입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을 법한 단어들이 나와 놀랐다.

“담당은 내 그림들 체크하고 완성된 것들 가져가서 전시회 준비하는 사람. 회사는 내 그림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나를 도와주는 중개인이라고 해야 하나.”

서연은 우리가 당황한 것을 알아채고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회사랑 계약했다고 예전에 말 안 했나?”

“누구한테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지금 처음 들어.”

나는 이런 중요한 일을 가르쳐주지 않은 서연에게 서운해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나도 처음 들어.”

유민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아니,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서연은 우리의 서운함을 얼렁뚱땅 넘겼다.

“그런데 진짜 서연이가 어떻게 그림들을 파는지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없네. 회사가 있었구나.”

유민은 술을 한 모금 넘기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신입 담당이 더럽다고 하니까 나는 그냥 ‘아, 그런가요?’하고 넘겼거든? 근데 나한테 더러우니까 좀 치우라고 하는 거야. 보기에 안 좋다고. 내가 이때까지는 날 걱정하는 줄 알고 그러려니 했지. 그런데 올 때마다 계속 질리지도 않고 나한테 치우라고 하더라?”

서연은 어이없는 듯 혀를 찼다.

“계속 그러니까 내가 짜증나서 내가 때가 되면 알아서 치우니까 관심 좀 끄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다음부터는 아무 말도 안하더라. 그러다가 며칠 뒤에 우리 집 초인종을 누가 누르더라고. 그래서 나가봤더니 여자애 두 명이 청소하러 왔다고 하는 거ㅇ...”

“신입 담당이 보낸 거야?”

유민은 초인종을 누른 그녀들의 정체가 엄청 궁금했는지 서연의 말을 듣다 말고 물었다.

“어.”

“헐, 신입이 막 그래도 되는 거야?”

유민은 버럭 화를 내며 물었다.

“그러면 안 되지.”

“그럼 그 신입은 왜 그러는 거야?”

“어디서 뭘 잘못 주워 들었나봐. 담당하는 사람들 처음에 잡아둬야 된다나 뭐라나 그런 거 있잖아. 그런데 그런 걸 하든 말든 상관은 없는데 사람을 봐가면서 해야지.”

“그런데 너 정도면 이쪽에서 좀 유명하지 않아?”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데.”

서연은 입을 씰룩 씰룩거렸다.

“좀 많이 유명하기는 하지.”

“그런데 신입이 너한테 막 한다고?”

“내 전 담당 분이 회사를 갑자기 그만둬가지고 회사 쪽에서 급하게 나한테 그 신입을 투입시켰나 보더라고. 나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이 업계 일은 하나도 모르지, 그런데 일은 해야 되지. 그래서 나한테 그렇게 행동했었나 보더라고, 아는 게 없어서.”

유민과 서연은 신입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아니, 그래서 여자애들 둘이 왔는데 어떻게 됐는데?”

나는 이야기의 초점을 벗어나버린 서연에게 물었다.

“맞아, 맞아. 여자애들 둘이 왔었어. 그래서 내가 왜 왔냐고 물어보니까 청소하러 왔다는 거야. 이 부분에서 내가 정말 화가 나서 신입한테 전화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못 했지. 한숨 쉬고 관자놀이를 주무르면서 신입한테 뭐라고 따끔하게 말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여자애들 둘이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는 거야. 날 쳐다보는 걔네들이 엄청 어려 보여서 내가 몇 살이냐고 물어봤더니 고등학생이래. 여기서 또 어이가 없었어. 아니, 청소를 하라고 보내려면 업체를 보내던가. 뜬금없이 고등학생? 나중에 들어보니까 신입이 내 작업실은 치우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알바공고를 냈대나 뭐래나.”

서연은 잠시 말을 쉬고 맥주 한 잔을 벌컥벌컥 마셨다.

“어이가 없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그 친구들한테 청소할 필요 없다고 그냥 가라고 그랬다? 그런데 맙소사. 진짜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아르바이트 비 못 받으면 안 된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돈은 줄 테니까 그냥 가라고 했다? 그런데 신입이 그 친구들한테 뭐라고 말한 줄 알아? 나중에 작업실 확인해서 그대로이면 돈을 안 준다고 그랬다네. 신입 진짜 가지가지 한다고 생각하느라 머릿속에서 사고가 정지해 버린 거야. 그리고 그 상황에서 여자애들은 나보고 어떻게 하냐고 그러고. 그래서 신입한테 전화해서 말할 생각은 못 하고 일단 치우라고 해버렸어, 바보같이.”

서연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정말 바보 같다. 몇 년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쓰레기 같은 그놈이랑 사귄 나만큼이나 정말 바보 같네, 진짜.”

유민은 서연의 말을 듣고 ‘그 놈’이 생각났는지 술잔을 씹어 먹을 기세로 술을 들이켰다.

“그런데 신입 때문에 짜증나서 전시회를 그만둔다는 거야? 신입 엿 먹으라고?”

나는 서연의 말을 듣고 전시회까지 그만둘 정도로 그 사원이 심한 일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되어 물었다.

“설마. 여기까지였으면 그냥 회사에 있는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서 끝냈을 거야. 내가 이번 전시회를 하지 말까 고민하게 된 사연은 여고생 두 명을 이 공간에 들이고 나서부터 시작되거든.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서연은 다시 한 번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뭔 일이 있었기에 그러는 거야.”

“...었어.”

서연은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로 대답했다.

“뭐라고?”

서연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는지 유민이 물었다.

“엎었다고..”

서연은 얼굴을 들어 세상 모든 걸 잃은 표정으로 말했다.

“한 명이 내 그림 위에 쓰레기를 엎어버렸어. 그냥 플라스틱 같은 것들이었으면 그냥 치우면 되는데 하필이면 안에 음료수가 들어 있었네? 와, 순식간에 그림 전체가 주황색으로 물들었는데 내 눈 앞은 정말 깜깜해지더라.”

서연의 말에 유민과 나는 걱정이나 위로 같은 말을 감히 건넬 수 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서연의 이야기를 듣고 수많은 그림 중에 한 장 정도 망쳤다고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행동하는 그녀가 이상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는 위로랍시고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형식적인 말들을 건넬 수도 있다. 그들은 ‘윤서연’이라는 인간을 모르기에.

유민과 나는 허공에서 눈을 몇 번이나 마주쳤다.

‘재희야, 어떡해.’

‘나도 몰라. 이런 상황은 진짜 처음인데?’

“얘들아, 너네 무슨 이야기하는지 다 보이거든?”

서연은 술을 홀짝이면서 말했다.

“나 이제 괜찮아졌어. 생각해 보니까 그런 일이 일어난 건 처음부터 내 잘못이었어. 방바닥 한가운데에 그림을 펼쳐놓고 그걸 덮어놓지도 않고 청소를 하고, 처음부터 내가 확실하게 말도 못 한 게 문제지, 뭐. 하.. 진작 말할걸. 너희들한테 말하니까 엄청 후련해졌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도 좀 정리되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유민은 서연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유민의 말이 맞다. 서연이 한 말은 정말 거짓부렁이었다. 조금 과장을 해 말한다면 서연에게 있어 그림 한 장 한 장은 그녀의 인생이다. 그녀가 경제적으로 힘들 때 그녀를 실질적으로 도와준 건 ‘그림’이었고 그녀가 심적으로 힘들 때 또한 그녀를 도왔던 것은 ‘그림’이었다. 그랬기에 서연은 언제나 그림 한 장에 그녀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서연은 항상 그림을 팔고나서 유민과 나에게 자식을 떠나보냈다고 했다. 자신의 아이가 다른 사람에 의해 비명횡사하는 것을 본 부모들 중에서 아무렇지 않을 부모들이 있을까? 그걸 직접 본 서연의 마음은 그녀의 말대로 정말 괜찮은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겠지.

“네 말대로 그냥 쉬어.”

유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이 참에 깡그리 다 잊어버리고 할머니 모시고 어디 멀리 놀러 갔다 와. 당분간 그림 그릴 생각하지 말고. 마음 내킬 때 그 때 다시 시작해. 지금 그 마음으로는 뭘 해도 안 될 거 같으니까.”

유민은 이 상황에서 내가 서연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가 무안하게 서연의 등을 토닥이며 그녀에게 위로가 아닌 충고를 해주었다.

“그럴까. 재희는 어떻게 생각해?”

유민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서연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처음에 네가 전시회 미룬다고 했을 때, 슬럼프가 온 건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을 줄은 정말 몰랐어. 나도 유민이 말에 찬성이야. 유민이가 이야기하는 것 중에 틀린 게 없는 거 같은데?”

솔직히 나는 서연이 전시회를 미룬다고 말했을 때, 나는 절대로 그녀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런 일이 있었을 줄은 짐작도 못 하고 말이다. 아무 생각도 없이 서연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고 그녀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진지하게 해결책을 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서연의 이야기를 농담으로 듣던 나와는 달리 처음부터 진지하게 들은 유민은 서연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유민이 서연에게 낸 의견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그런데 그 뒤는 어떻게 됐어? 알바가 그림 쏟고 나서는?”

유민은 뒷이야기가 궁금했는지 멋진 의견을 내고 서연에게 물었다.

“어떻게 되기는. 그림에 음료수를 엎은 그 고등학생은 순식간에 얼굴이 새파래졌지, 뭐. 아무 말도 못 하더라고, 옆에 있던 다른 한 명도.”

“그래서 그 친구들한테 뭐라고 했는데?”

사건의 마지막 부분이 궁금해진 나는 느긋하게 말하는 서연에게 다음 말을 재촉하며 물었다.

“벌벌 떨고 있는 고등학생들한테 그림 물어내라고 화내는 그런 전개를 원하는 거야? 그런 거 면은 꿈 깨라. 그 반대였으니까.”

서연은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그 애들 고등학생인데 일하는 거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는 거야. 아르바이트하다보면 실수할 때 많잖아, 나도 많이 그랬고. 그런데 내가 어떻게 걔네들한테 뭐라고 할 수 있겠어. 그냥 치우던 것들 마저 치우고 가라고 했지. 나가면서 끝까지 죄송하다고 하더라고, 머리가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고개 숙여서.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하고 어서 가라고 했지, 뭐. 신입한테는 따로 말 안 했어. 알면 또 골치 아파지니까.”

서연은 말을 마치고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우와, 개구리가 올챙이일 적 생각한다더니. 이제는 완전 어른이네.”

나는 서연의 행동에 감탄하며 말했다.

“뭔가 이상한데.”

유민은 중얼거리며 서연의 옆에 누웠다.

“하하하하. 옛날부터 느낀 거지만 쟤는 국영수 다 전문가한테 배웠는데 속담은 야매로 배운 거 같아.”

서연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야, 의미만 통하면 되거든, 의미만.”

나는 서연에게 발끈해하며 바닥에 누웠다.

“야, 근데 이거 어떻게 치워.”

나는 술과 먹을 것들로 가득 채워진 방바닥을 보며 말했다.

“몰라아. 내일 치워, 내이일.”

유민은 잠을 청하면서 대답했고 서연은 이미 자고 있었다.



커튼을 치고 자지 않아 내 눈에는 햇빛이 정면으로 쏘였고 그 덕분에 나는 셋 중에 제일 먼저 일어났다. 일어난 나는 제일 먼저 물을 마시고 핸드폰을 들고 정 대리에게 문자를 보내기 위해 베란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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