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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뭐있남 님의 서재입니다.

전생에 마왕이었던 건에 관하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다작증후군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3
최근연재일 :
2022.05.20 08:27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571
추천수 :
59
글자수 :
110,507

작성
22.05.11 21:48
조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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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4화

DUMMY

오잉? 노예장이 울컥 피를 토하며 기괴한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더니 곧, 흰자위를 까뒤집으며 천천히 허물어져 버렸다.

카일은 자신의 몸 위로 쓰러지는 노예장의 몸뚱이를 진저리치며 밀치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벌판 저 편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화살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네이드였다.


뭐, 뭐지?

날 살려준건가?


상황파악이 되질 않아 멍하니 서 있는 카일을 바라보던 네이드가

천천히 화살을 시위에 올렸다.


씨발, 그럴 리가 없지!

카일은 즉시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조준을 방해하기 위해 지그재그로 뛰면서, 재빨리 벌판 저 편 숲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첫 번째 화살이 빗나갔을 때,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퍽퍽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이 날아와 나무에 박히고서야 카일은 깨달았다.


네이드가 작정하고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물론 이유는 몰랐다. 왜냐하면, 화살을 쏘기 전 네이드가 중얼거린 걸 못 들었기 때문에.


“노예 새끼들 때문이다. 부정을 타서, 전쟁에 진 거야!”


지가 내보낸 건 생각도 못하는 네이드의 집착은 숲 안쪽 까지 추격하는 걸로 이어졌다. 카일은 숲 여기저기를 내달렸다. 네이드의 광기를 피하기 위해, 여우에 쫓기는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며 살 길을 찾았다.


하지만 결국, 막다른 길 절벽 끝에 다다랐을 때

자신을 겨누는 네이드와 마주해야만 했고


“이런, 젠장···”


화살 대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상투적인 결말을 택해야 했다.


* * *


으···

온 몸이 쑤시고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카일은 힘겹게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방안 이었다.


딱딱하지만 침대였고, 희미하지만 등불이었으며

미약하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작은 방.


“일어났군요.”


그리고 때마침 방 문이 열리며 들어선 것은,

사제복을 입은 중년 남자였다.


“아직 움직이면 안되요. 깊은 상처는 없지만 타박상과 골절이 심해서.”

“신부님이 구해주신 겁니까?”

“네. 난 마르켈이라고 해요. 그냥 편하게 불러요.”


마르켈은 들고 있던 약과 붕대로 카일의 상처를 소독한 뒤 다시 감아 주었다. 카일은 푸근한 인상의 마르켈을 보며 뭔가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장 죽을 위기는 없을 것 같다는 안심.

그리고 지난 몇 개월 간 겪은, 노예로써의 힘겨운 삶의 고초를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기쁨.

그러면서도 자신이 당한 부당한 대접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짜증과 자괴감.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신께서 보우하심입니다, 정말. 절벽에서 떨어진 것 같은데, 맞나요?”



마르켈의 말에 카일은 상념을 걷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아니, 어쩌다 그런 고초를 겪은 겁니까?”

“아, 네. 뭐, 어쩌다보니.”


굳이 노예로 끌려갔다가, 다시 영지전에 끌려 들어갔다가.

가문의 주인이라는 자가 죽이려고 해서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싶었다.

자신이 원래 노예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도, 믿을 지 안 믿을 지도 모를 일이고.


“그런데, 여긴 어딥니까?”

“아, 브루헤 인근에 있는 교구입니다. 지금 성당을 증축 중이라, 임시로 사용하고 있는 성전이지요.”


브루헤라면, 남부의 자유 도시가 아닌가?

카일이 살던 ‘레온’ 영지는 북중부에 위치해 있었고, 카일의 아버지가 출정했던 드와이트 영지는 중부에 가까웠다. 황제가 있는 수도인 ‘아크샨’은 제국 ‘루인거스트’의 정중앙에 있었고, 브루헤는 루인거스트로부터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멀리 떠나왔단 말이지?

카일은 새삼 자신이 당한 일이 얼마나 큰일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남부는 북부에 비해 귀족 및 중인 층의 권한이 막강했고, 노예에 대한 처분이 엄격하다고 배웠었다. 때문에 노예를 이용한 돈벌이가 짭잘했고, 일반 시민이나 하층민들을 납치해 인신매매하는 일도 잦았고.

그런 남부의 분위기에 편승해, 북부에서 사람들을 납치해 남부로 빼돌리는 집단도 많았던 걸로 들었었는데.

그런 일을 자신이 당했던 것이다.


감히, 미천한 인간 놈들이.

마왕을···

부들부들.


“잠시 쉬고 계세요. 곧 저녁 식사 시간이니.”

“아, 네. 고맙습니다.”


마르켈은 성호를 긋고 천천히 방을 나섰다. 고통을 삼키며 천천히 침대에 드러누운 카일은, 밥이라는 말에 식욕을 느끼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래, 우선은 먹고 치료하며 힘을 내는 게 급선무다.

그리고 집으로···


그러다 곧 생각을 고쳐 먹었다.

지금 이렇게까지 집에서 멀리 떨어져 나왔다면, 가장 가까운 대도시로 가서 ‘천상의 서’에 대해 알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집에 갔다가 또 언제 나올 수 있겠는가? 만약 빠르게 나오지 못한다면, 카일은 또 그 의미없는 인간 생활을 계속해 나가야 할 텐데.


그래. 어떻게든.

집을 떠난 김에 어떻게든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

지긋지긋한 생활을 지속해 나갈 이유가 없으니까.


“어머, 그랬어요?”

“그렇다니까? 낮에 마을에 갔는데, 마크라는 녀석이···”

“그래도, 키가 아주 훤칠하던데요? 호호호!”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는데, 방 밖에서 수녀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거참, 조잘조잘 말도 많구나.

카일은 싱긋 웃었다. 인간들은 어찌하여 이리도 말이 많단 말인가.

특히나 여자들은.

그러고보니, 카일은 인간 여자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럴 나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이 (본능적으로) 없다보니

이리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뭐, 그게 무에 중요하겠어.

물론, 흠···여자란 종족에 대한 관심은 조금 있긴 하지만.


“정말 귀뇰 대사제님이 오신다고?”

“언제?”

“내일 아침이래요. 교구 점검 차 방문하신다던데요?”

“아이고, 이 누추한 곳에서 모시게 생겼네. 어쩐다지?”

“아, 오찬만 하시고, 바로 브루헤로 떠나신다니까 다행이지 뭐예요?”



응?

들리는 잡담을 들으며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카일은 문득

몸을 벌떡 일으켰다.

끄아악!


“어머, 괜찮으세요?”



갑자기 몸을 일으키다 밀려든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 때문에 밖에 있던 수녀 하나가 깜짝 놀라 고개를 내밀었다.

카일은 고통을 꽉 눌러 참으며 힘겹게 웃음지었다.


“아아, 괘, 괜찮습니다.하하.”

“정말이요?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아, 아니에요. 그런데···”

“네?”



문을 닫으려던 수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일이 주저하다 말했다.


“우연히 들었는데 대사제님이 방문하신다고 하던데. 맞나요?”

“아, 맞아요. 열 두 사제 중 한 분인 귀뇰 님이 방문을 하신답니다.”

“제가 잘 모르지만, 듣기로 열 두 사제님은 ‘천상의 서’도 열람하실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으로 알고 있어서요. 정말 대단한 영광이시겠어요.”


카일이 아는 체를 하자, 수녀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에? 아, 그저 소문으로···”

“그건 나름 대단한 기밀인데. ‘천상의 서’는 교황 성하님, 마그누스 세 분, 그리고 열 두 사제님 외에는 열람이 금지되어 있지요. 그것도 열람하는 건 ‘거스트 헤븐’에서 밖에 안 되고요!”

“아, 아아. 그렇군요.”


카일이 겸연쩍게 머리를 긁자, 수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닫았다.

카일은 흥분으로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수녀를 통해 확인 받았으니, 확실하다.

그 사기꾼 놈이 무심코 흘린 정보가, 틀리지 않은 것이다.


-흐흐, 이 놈은 대체 무식한 거야 순진한 거야?

-무식한 거지.

-아무리 무식해도 그렇지. 천상의 서를 아무나 볼 수 있을 줄 알고 있던 거야? 교황이나 마그누스 밖에 보질 못하는 걸?

-그, 누구냐. 대사제? 걔네들도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아, 맞다. 열 두 사제인지 뭔지.


짐짝처럼 실려가는 와중에, 약에 취해있는 가운데에서 의식이 돌아온 어느 때인가 들은 말.

노예 생활을 하면서 떠올려보려고 애쓴 기억들 중에 끄집어낸 것이었다.

그 때는 괴로움만 더해줄 뿐이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카일은 눈을 빛냈다.

‘천상의 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대사제라는 작자만 어떻게든 요리하면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요리한다?


다음날 아침.


“대사제, 귀뇰 님께서 방문해 주신 축복이자 영광스런 날, 교구를 대표해서 귀뇰 님께 감사드립니다!”



마르켈의 인사말을 신호탄으로 해서 연회가 벌어졌다. 임시 성당 앞 마당에 커다란 테이블이 마련됐고, 그 위로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마르켈을 비롯한 신부와 수녀들이 나란히 앉은 가운데, 상석에는 백발이 성성하고 피부가 쪼글쪼글한 노인이 온화한 웃음을 띄며 잔을 들었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신의 가호가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카일은 손님 자격으로 그 자리의 말석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엊저녁, ‘천상의 서’로 대화를 나눴던 수녀가 마르켈에게 입방정을 떨어준 덕택이었다.

카일은 음식을 먹는 내내, 귀뇰과 어떻게 말을 터야 할 지, 어떻게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을 지 고민했다. 하지만 딱히 마땅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오찬이 끝나면 떠난다던데. 그 때까지 무슨 수를 써야 할 텐데.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는 마음을 누르며 생각을 거듭하고 있는 카일이었다.

그때,


팍!


“꺄악!”



난데없이 날아든 화살에 수녀들이 비명을 질렀다.

마르켈을 비롯한 신부들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귀뇰도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시에 저 편에서부터 귀뇰의 호위를 맡은 성기사들이 주위를 경계하며 다가왔다.


그런데,


카일은 저 편 숲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알란!’


카일에게 진, 그 수습기사였다.

저 인간이 왜 여길···

설마, 나를 쫓아왔단 말인가?

카일은 그 다급한 와중에도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안 되지 않는가?

일개 노예 따위를 죽이기 위해서 이렇게 끈질기게?

네이드야, 전장에서야 패전에 대한 울분을 풀 대상이 필요했을 수도 있지만.

저 인간이 왜?

굳이 다 끝나고 난 뒤에도 이렇게까지 한다고?


상상할 수 없는 이유다.

자기 명성(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에 금이 가도록 만든 노예 놈을 죽이려는 건가?


“어디냐!?”

“대사제 님을 보호하라!”


그 와중에도 멍청한 성기사들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리고 카일은,

네이드가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 듯, 당당히 화살을 시위에 걸고 겨누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가 겨누는 방향은.

식탁의 정 가운데였다.


그건 바로, 귀뇰?

아니면, 나?


에이 씨발. 모르겠다!


뒤죽박죽 흔들리며 난장판이 되는 머리 속 생각의 실타레를 놓아버리며

카일은 귀뇰을 향해 냅다 뛰었다.


그리고.


퍽!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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