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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모쿠

가든 오브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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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모쿠
작품등록일 :
2016.02.07 07:09
최근연재일 :
-
연재수 :
5 회
조회수 :
8,135
추천수 :
64
글자수 :
25,380

작성
16.02.17 18:12
조회
761
추천
6
글자
11쪽

안스리움

인생에는 오직 두 가지의 비극이 있다. 첫째는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고, 둘째는 바라는 것을 얻는 것이다. _오스카 와일드




DUMMY

-세상에. 엉망이잖아요! 턱은 들려있고, 다리 힘도 못 끌어올려서 어깨 힘으로만 치고 있어요. 전부 다 엉망이라서 뭘 먼저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입 닥쳐! 그렇지만 내 주먹은 또 빗나갔다. 놈은 입을 나불거려가면서도 여유있게 주먹을 피했다.


-역시 제일 안 좋은 점은, 주먹 내기 전에 기척을 낸다는 게 되겠네요. 그래서야... 어디 때릴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때리는 거나 다를 바 없잖아요.


그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주먹이 닿을 거리가 아니었다. 발을 들어 곧바로 내질렀다. 그러나 녀석은 또 스르르 비켜섰고, 앞차기는 허공으로 흘러버렸다.


-혹시 태어나서 사람 때려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건가요? 하하하. 나 이거야... 정말 실망스럽군요. 어찌 됐든 이제 카운트 시작합니다. 지금부터는 저도 공격할 거예요.


카운트, 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허공에 떠 있는 빨간 숫자를 바라봤다. 거리감도, 명암도 없어서 마치 이 세상의 글자가 아닌 듯한 숫자들.


03:00이 02:59로 바뀌는 걸 눈으로 확인한 순간, 뻐걱!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흙바닥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어? 왜 바닥이 보이는 거지? 언제 무릎을 꿇은 거야?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요, 싸우다가 말고 고개를 돌리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뭐 맞고 쓰러졌는지도 모르겠죠?


이 비겁한 새ㄲ... 아니, 지금은 일단 일어나야 해! 이렇게 있다간 또 공격당할 거야. 다시 일어나 싸워야 하는데. 다 알면서도 몸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억지로 일어서려다가 꼴사납게 다시 한 번 땅에 뒹굴었을 뿐이다.


말라붙어있던 땅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라 주변이 흐려졌다.


왜인지 추가 공격은 없었다. 대신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와는 다른 방향.


-어라? 이거 봐라? 피실험자님, 혹시 입안 다 터졌나요? 뭐지 이거? 나도 터졌네? 아니, 주먹에는 스치지도 않았는데 왜 피가 나지? 물리엔진 오류 났나? 아이 씨...


먼지 때문에 기침을 하고나니 흙에 핏방울이 뿌려졌다. 놈의 말대로 입안은 다 터져있었다. 턱을 맞았다는 얘기군. 간신히 머리와 눈을 들어올렸다. 놈은 멀찍이 떨어져있다. 나와 똑같이 생겨먹은 놈의 입가에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말할 때 벌어지는 입 속의 이[齒]들이 석류알맹이처럼 붉었다.


-당황스럽네요. 뭘까요 이게...? 어디 보자... 아하, 가장 증오하는 인물이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이제 알겠다. 이건 아무래도 아까 그 붙여넣기 때문에 그런 것 같네요. 복사본을 떠놓으니까 피실험자가 손상을 입으면 이쪽에도 반영이 되나 봐요.


정확하게는 몰라도, 내가 두들겨 맞으면 저놈도 타격을 입는다는 소리 같았다. 좋은 기회였다. 어차피 맞아봐야 같이 맞는 거니까.


꿀꺽. 입안에 고인 피를 마시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꿈속에서 이렇게 생생한 피비린내를 맛볼 수 있게 된 걸까. 마치 현실 속의 감각 같았다.


아, 그런데 저놈을 어떻게 해야 맞출 수 있지? 어떻게 해야 찢어죽일 수 있을까.


쓰러져 있을 때 걷어차거나 하지 않는 걸 봐서는 적극적으로 공격할 의도가 없어보였다. 역시 그보다는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쉴 수는 없어. 한번 쓰러졌다 일어난 사이에 시간은 02:37이 되어있었다.


-이거 성가시게 됐네요. 그래도 아직 싸우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는 거죠? 기특하네요, 하하.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주먹내기 전에 기척을 내서는 안 된다고 했지? 그걸 알려준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나는 왼 주먹을 낼 것처럼 팔을 크게 휘저었다.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내 등 쪽으로 움직여 주먹을 피했고, 나는 발을 한번 바꿔딛고 놈과의 거리를 좁혔다.


놈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놈의 어깨를 피해 오른 주먹을 높게 날렸다.


제기랄. 그러나 빗나간 것은 마찬가지였다. 약간 가까워졌을 뿐이었다. 놈은 다시 멀찍이 물러났다.


-아하, 복싱의 원투랑 비슷한 아이디어네요. 주먹내기 전의 기척도 좀 줄었고요. 배운 적 없이 해본 거라면 괜찮은 시도였어요. 그렇지만 공격 사이의 딜레이가 그렇게 커서야...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그걸 맞고 앉아있겠어요?


제대로 들어간 것도 없는데 숨이 거칠었다. 지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공격이 빗나갔다는 실의에 온몸이 무거워졌다. 이렇게 된 이상 계속 주먹을 휘둘러서 정원 가장자리로 몰아붙인 다음...


좋아. 맞든 말든 계속 휘둘러보는 거야. 놈을 구석으로 몰아넣을 때까지.


거리를 다시 잡고, 이번에는 왼손!


그러나 주먹은 다시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주먹을 다시 거둬들이려는데 별안간 아랫니와 윗니가 부딪쳐서 깍! 소리가 들렸다.


또다시 땅바닥이 보였다. 뭐야? 이번엔 뭘 맞은 거지? 감각에는 이상이 없었다. 보일 것이 다 보이고, 들릴 것이 다 들리는데 도저히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기둥에 매달아놓은 자루의 끈을 싹둑 자른 것처럼, 온몸이 떨어져 내렸다. 혀를 깨물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 시야 속에서, 놈은 가로로 길게 서 있었다. 그렇지만 놈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나를 공격하려들지는 않았다.


-어이쿠, 조심 좀 하지. 말했잖아요, 카운트 시작되면 나도 공격할 거라고. 방금 그건 카운터라고 해서 상대 움직임에 맞춰서 받아치는 기술인데, 이러면 더 큰 타격ㅇ... 아욱! 아야야야...


어? 놈의 그림자가 바닥에 쓰러질 것처럼 휘청했다. 이때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 딱딱한 바닥에 입원중이어서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아오, 머리야. 정확히 4.52초 걸리네요. 다행히 시간 오차가 있군요. 피실험자님의 손상이 곧바로 이쪽에 반영되는 게 아니었어요. 데미지가 발생하면, 그게 메인컴퓨터에 입력되고 또... 아, 이런 걸 궁금해 할 겨를은 없겠네요.


욕 한 마디를 해줄 수가 없었다.


-간단히 줄이자면, 피실험자님을 죽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겠다는 얘기예요. 피실험자님이 죽으면 실험은 끝나거든요. 4.52초면 아무런 영향 없어요.


정말 죽는 건가. 이렇게 현실감 넘치는 데서? 두려움이 일었다.


-아, 그나저나 이게 싸우는 건지, 수다를 떠는 건지 통 모르겠네요. 너무 한가해서 하품 나와요. 좀 바쁘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 저쪽에서 애들이 뭔가 발견한 것 같아요.


컹컹컹컹!


-이 미친...!


겨우 일어섰다. 시간은 02:03


-어라? 아직 기운이 남아있었네? 뭐야, 다 엄살이었나 봐. 하하하.


-누나한테 손대지마라. 죽는다.


정원수들 너머에서 짐승들이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고개도 돌릴 수 없었다. 한눈파는 순간 또 바닥구경을 하게 되겠지.


주먹질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학습능력이라는 게 조금은 있는 모양이에요? 너무 원망하지 말아요. 이게 다 피실험자님을 위한 거니까요. 이번에 죽게 되더라도 혹시 평가가 잘 돼서 적성검사를 통과하게 되면, 나중에는 고마운 마음이 생길 거예요.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지만...


좋아.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지. 주먹은 어차피 빗나간다. 그렇다면...!


-아, 맞다. 탈락하면 자동으로 실험기구는 파괴되고, 다시는 이곳에 올 수 없게 될 겁니다.


나는 보란 듯이 고개를 돌려 누나를 살폈다. 뒤로 넘어간 강철의자 주변을 검은 짐승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실제로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은 1초미만이다. 미안해. 곧 풀어줄게.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몸을 던졌다.


놈이 날린 주먹이 정수리 머리칼을 훑으며 지나갔다. 그럴 줄 알았다. 아까처럼 턱을 날리려고 했겠지. 위험했어. 하마터면 맞고 또 쓰러질 뻔했네.


나는 놈의 허리를 낮아진 어깨로 들이받았다. 주먹을 날리느라 놈의 하반신은 낮게 내려가 있다. 그러나 놈의 무게중심이 크게 흔들린 것이 내게도 느껴졌다.


이 방향에서라면! 넘어뜨릴 수 있어. 어디 바닥에 깔린 뒤에도 주먹을 피할 수 있나 보자.


그러나 다음 순간, 놈이 양 다리를 뒤로 쭉 빼 자세를 더 낮췄다. 그리고 내 상반신을 잡아 끌어올렸다. 힘이 어찌나 센지 놈을 들이받은 내가 도리어 쓰러질 판이었다.


뭐야 이거? 나를 그대로 복붙한 거 아니었어? 실랑이가 길어지면 당한다!


할 수 없지. 플랜B. 바닥에 쓰러뜨리지 못해도 좋아. 있는 힘을 다해 나는 놈을 밀어붙였다. 이대로 날카로운 강철 정원수에 밀어붙인다면...! 너도 무사하지는 못할 ㄱ...


그러나 그것도 잠시, 별안간 놈의 무게가 어딘가로 빗겨 사라졌다. 그리고 내 몸이 붕 뜨더니 어딘가로 던져져 휙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리고 시야 가득 잿빛 하늘이 던져져 들어왔다.


처음에는 내가 정원수들 한가운데 던져졌다는 것도 몰랐다. 등부터 땅에 떨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 자리에 빽빽이 자라나있던 안스리움Anthurium의 군락이 온몸을 꿰뚫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칼날 같은 잎과, 젓가락보다 두꺼운 줄기가 온몸을 뚫고 자라나 있었다. 고슴도치 같은 몰골이었다.


-으아아악! 아으윽!


고통은 한 박자 늦게 포문을 열고 내 온몸을 찢어발겼다. 고통에 진저리칠수록 정원수들은 더 깊이 비집고 들어왔다.


-아, 지금에서야 얘긴데, 사실 적성검사는 동등한 신체능력을 가진 사람끼리 붙여놓게 돼 있어요. 매뉴얼이야 뭐 그렇게 돼있지만, 저도 이렇게 복붙 같은 거 해본 적은 처음이라서요. 하하.


-으으아아악...!


-...그리고 너는 내 심기를 건드렸잖아? 그래서 이쪽의 신체능력과 반사신경을 당신보다 한 단계 높게 설정해놨습니다. 뭐,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 꼬맹이의 특수한 상황이니만큼, 우리 전능한 설계자님께서도 이해해 주실 거예요.


그래서 힘으로 밀리지 않았던 건가. 빌어먹을. 그렇지만 이제 너도...


-으앗! 아욱! 으아악!!!! 이거 뭐 이래? 아악!! ... 아오, 이거 끔찍하게 아픈데요? 피도 많이 나네? 아, 나까지 이게 무슨 개고생이람? 봐요, 동등한 능력치로 설정해놨으면 내가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야. 그렇죠? 후후후.

그리고 무엇보다 피실험자를 복사해서 붙여넣기할 경우, 피실험자의 손상이 실험진행자에게도 반영되는 버그를 발견했잖아요?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아으으윽...


-이제야 신음소리를 내는군요. 근성이 좋은데요? 그리고 배워놓은 게 없어서 그렇지, 운동신경도 그리 나쁘지는 않네요. 마지막 순간에 목을 구부려서 뇌에 정원수가 꽂히는 것만은 면했던 거, 괜찮았어요.


졸음처럼 자꾸 눈이 감겼다. 이대로 끝인가.


-자, 이제 포기할 건가요? 이제 시간은 1분 20초밖에 안 남았는데. 아쉽게 됐네요. 참, 누나 쪽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한번 볼까요?



_계속


작가의말

제목변경하고 조회수 쭉 줄어드는 거 보니 또 “철의 정원”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이...


아 이놈의 변덕 진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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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스리움 16.02.17 762 6 11쪽
4 03:00 16.02.15 796 5 11쪽
3 강철정원 16.02.15 857 8 11쪽
2 집으로 16.02.15 921 8 11쪽
1 터미널 16.02.15 1,231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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