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비정현파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마법사가 수련을 마침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비정현파
작품등록일 :
2024.07.01 09:10
최근연재일 :
2024.07.05 12:35
연재수 :
6 회
조회수 :
488
추천수 :
22
글자수 :
30,245

작성
24.07.01 14:11
조회
116
추천
4
글자
12쪽

제적

DUMMY

“제적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옆에 있던 의자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제적.


그 두 글자가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학교에서 학적을 제거해, 학생 신분을 박탈한다는 것.


더 간단히는.


대학교에서 쫓겨난다는 뜻.


“...다, 다시 한번 확인이 가능할까요?”


가혹한 현실에 절로 더듬어지는 말.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냉랭했다.


“세 번이나 확인했어요. 이름이랑 학번 다시 불러드려요?”

“...”


반박할 여지를 없애버리는 대답. 나는 대충 대답을 건넨 후 힘없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사실 변명의 여지는 없다.


이건 오로지 내 잘못이었으니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출석에 문제가 생긴 것도, 등록금을 내지 못한 것도 아니다.


학사 경고 세 번. 즉, 그냥 모든 시험을 더럽게 못 봐서 생긴 결과물이라는 것.


“...”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며 이 사태에 대한 자세한 원인을 떠올렸다.


물론 가장 큰 건 당연히 게으름이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내가 몇 년 동안이나 학업을 등한시할 만큼 푹 빠져 있었던 게임, ‘천칭과 별’.


낭만 가득한 이름에 어울리는 방대한 세계관과 높은 자유도,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고 다양한 스토리와 설정 등.


물론 출시된지가 상당히 오래되어 이제는 서비스 종료만을 앞두고 있던 탓에 해당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수는 거의 없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인생 게임이었다.


아직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듯, 매 회차 플레이할 때마다 새로 발견하곤 하는 작은 이야기와 디테일들에 감탄하곤 했으니.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지워버려야지.’


제적의 원흉이 된 게임을 내 컴퓨터에서 영원히 없애버릴 생각이었기 때문.


물론 뒤늦은 후회에 가깝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무슨 행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막 학교 건물을 나와 자취방으로 향한 나는 곧바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바탕화면의 정중앙에 위치한 하나의 아이콘에 커서를 가져다 대었다.


잘게 떨리는 손. 중학교 시절부터 거의 십 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했던 게임을 막상 지우자니 조금 망설여졌다.


수많은 세이브 파일과 캐릭터는 단순한 데이터 쪼가리들이 아닌, 오랜 세월에서 비롯된 하나의 추억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데이터를 삭제하시겠습니까?


이내 떠오르는 문구. 망설이는 것도 잠시, 머릿속으로 내 처참한 학점이 지나갔다.


이 빌어먹을 게임.


-되돌릴 수 없는 작업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하시는 걸 권고드립니다. 정말 지우시겠습니까?


그리 일반적이지 않은 문구. 하지만 나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더 이상 지금처럼 살 수는 없다.


미약하지만 결연한 의지가 어린 동작.


딸깍─


그리고.


삭제 버튼을 클릭함과 동시에.


화아악!


눈부신 빛이 눈앞을 가득 메웠다.


***


깨질듯한 머리. 온몸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림.


아직 눈을 뜨지는 않은 상황.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천히 되새겼다.


떨리는 손으로 누른 삭제 아이콘. 그리고 갑작스레 차오른 빛.


극도의 스트레스로 헛것을 보며 기절이라도 한 걸까. 내적 한숨을 내쉰 후 막 눈을 뜨려던 순간 들려오는 인기척.


여러 명의 사람이 근처에 있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오래 기절해 있었던 걸까. 어쩌면 누군가의 신고로 병원 응급실에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한심하기 그지없군. 낙제생다운 멍청한 선택이야.”


그 갑작스러움보다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말의 내용이었다.


아니. 왜 다짜고짜 시비지.


하지만 그 어이없음에 대한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드는 생각.


잠깐. 근데 어떻게 알았지? 응급실에서 대학교에 연락해 성적 조회라도 했나?


“그러게. 얘 학사 경고 두 번 아니야? 어차피 이번 학기 끝나면 볼 일 없겠네.”

“하긴. 이미 꼴찌나 다름없으니까.”


듣는 이의 기분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대화. 나는 그 속에서 묘한 어긋남을 찾아낼 수 있었다.


...경고 두 번이라니. 나는 세 번 맞고 이미 제적당했는데.


대놓고 뱉어지는 험담이지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콤한 무례. 하지만 진짜는 그다음이었다.


“1서클 마법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놈이 뭘 하겠다고...”

“쥐꼬리만 한 마력량으로 여태껏 버틴 게 용하지. 그것도 한 달 후면 끝이겠지만.”

“이런 녀석은 우리 소보르비아 마탑의 수치라고.”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단어들. 그리고 뭔가 이질적인 감각. 나는 통증으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 힘을 주었다.


“...엇! 일어나는 거 같은데? 봐봐. 죽은 건 아니라니까.”

“괜히 재수 없게 엮이기 전에 빨리 가자.”


후다닥. 수군거리는 말과 함께 급히 멀어지는 인기척.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무슨 이유에선지 욱신거리는 몸.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병원, 혹은 자취방과는 거리가 먼 풍경.


파릇한 풀들이 자란 땅 너머로 거대한 건축물이 보인다.


푸르스름한 빛무리가 감돌고 있는 탑은 지구의 그 어떤 건물과도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저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마탑?”


내 인생을, 아니 학점을 갈아 넣은 게임 ‘천칭과 별.’


거기에 등장하는 마법사들의 교육기관 중 하나.


“이거 지금...?”


현실인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이쪽을 흘끔거리며 빠르게 멀어지는 녀석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게임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미쳐버린 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을 상황 속. 내 입에서 자연스러운 대륙 공용어가 흘러나왔다.


“...미치겠네.”


***


「이름: 이안

직업: 견습 마법사

부직업: -


*마력 갈증으로 제대로 된 마나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선천적인 마력 회로 뒤틀림으로 인해 복잡한 구조의 마법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따릅니다.

*마나 불감증으로 인해 마법의 세밀한 감각을 느끼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남은 포인트 : 10」


간단하기 그지 없는 상태창.


내가 미치거나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정말로 수많은 전설과 비밀이 살아 숨 쉬는 스타테라 대륙에 왔음을 알려주는 증거.


풀밭에 멍하니 주저앉아 시간을 보낸 지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필이면 최악의 조건을 가진 인물이 되었다.


삼류 엑스트라인 듯, 들어본 적도 없는 이안이라는 이름. 그리고 덕지덕지 달린 악조건.


마력 갈증, 선천적인 마력 회로 뒤틀림, 마나 불감증.


‘이건 뭐.’


애초에 마법 쪽은 꿈도 꾸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페널티들.


입고 있는 옷, 그리고 상황을 보니 마탑에서 수련하는 견습 마법사인 모양인데 여태껏 버틴 것이 신기할 정도다.


“...”


그때 느껴지는 시선들. 무려 몇 시간 동안이나 마탑 뒤쪽의 풀밭에 주저앉아 있는 나를 힐끔거리는 견습생들이 보였다.


...이 막막한 상황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는 것은 잠깐 미루고, 일단은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일 듯했다.


언제까지고 여기 멍하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으니까.


결정을 내린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이동해 가까이에 있던 마탑으로 들어섰다.


오로지 마법사들을 위한 건물 입구. 그 위쪽에 검게 탄 듯 새겨진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법사는 신의 천칭을 속이는 존재다.’


엄숙하고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글자를 바라보며 탑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눈앞에 낯선 문구가 떠올랐다.


-특전 ‘천칭과 지식의 도서관’을 획득하셨습니다!


‘...!’


갑작스러운 상황. 하지만 처음만큼 당황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특전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특전.


캐릭터의 특성이나 재능, 성격. 혹은 처음 직업을 각성한 장소 등의 다양한 변수를 바탕으로 주어지는 능력.


당연히 그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성능 역시 천차만별에 가까웠고.


‘천칭과 지식의 도서관?’


나는 미간을 좁히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이안

직업: 견습 마법사

부직업: -


*마력 갈증으로 제대로 된 마나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선천적인 마력 회로 뒤틀림으로 인해 복잡한 구조의 마법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따릅니다.

*마나 불감증으로 인해 마법의 세밀한 감각을 느끼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남은 포인트 : 10

-특전, ‘천칭과 지식의 도서관’이 적용 중입니다. 현재 익힐 수 있는 모든 마법에 대한 지식을 검색하여 열람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설명.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실망이었다.


‘천칭과 지식의 도서관’은 매우 희귀했지만, 게임에서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로 평가받는 특전이었으니까.


전투에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도 없다. 심지어 체력이나 마력을 올려주지도 않는다.


그저 설명대로 ‘지식’만을 제공할 뿐.


‘하필이면.’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정의 친구’나 ‘불을 다스리는 자’, 혹은 ‘금강성골’과 같은 s급 특전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천칭과 지식의 도서관이라니.


이론과 지식을 알면 뭐 한단 말인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페널티들로 마법사 구실도 하기 힘든 상황인데.


물론 추가 특전을 아예 얻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게임의 고인물이었고, 추가 특전을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편법과 히든 피스들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해.’


그 장소와 조건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난이도와 위험성을 요구한다. 즉, 현재 상태로는 힘들다는 말.


“어이, 낙제생. 길 막지 말고 비켜.”


그때 들려오는 불쾌한 목소리. 뒤쪽에서 누군가가 내 옆쪽을 스쳐 지나갔다.


마탑의 입구에 잠시 멍하니 서 있던 탓인 모양.


“...”


이 빌어먹을, 애증 어린 게임에 대한 소리 없는 분노의 표현으로 주먹을 꽉 움켜쥔 나는 일단 시선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절망적이기 그지없는 현재 상황에 대한 고민과 함께 막 마탑의 중앙 홀에 들어선 순간.


화아악!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문구가 떠올랐다.


<튜토리얼 메인 퀘스트- 졸업>


그리 명석하지 않은 머리, 그리고 마법사에게는 최악인 선천적 조건들을 가지고 이곳 소보르비아 마탑에서 어렵게 5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온 당신. 이제 졸업까지는 2년가량이 남았지만 마탑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퇴학까지 단 한 번의 학사 경고만을 남겨놓은 상황. 단 한 번의 실수도 치명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극악의 조건들을 극복하고 무사히 마탑을 졸업해 견습 마법사로의 수련을 마친다면, 그에 상응하는 결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보상: 현재 적용 중인 모든 종류의 페널티 삭제, 특전 ‘위대한 대마법사의 자질’ 부여, 500포인트 획득.


“...!”


난데없이 떠오른 퀘스트 문구. 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마지막 부분이었다.


‘현재 적용 중인 모든 종류의 페널티 삭제, 특성 ‘위대한 대마법사의 자질’ 부여, 500포인트 획득.’


지금까지의 고민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어마어마한 문구.


이곳이 아무리 나에게 익숙한 세계관이라고 해도 낯선 배경에 곧바로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어떤 방향성을 잡고 나아가건, 일단 갑작스레 떠오른 이 퀘스트의 보상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


“...”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 빙의의 후유증으로 머리가 어질거리는 현재 상황 속에서도, 내릴 수 있는 결론과 다짐은 단 하나였다.


앞으로 졸업까지 이 년.


내 인생에 두 번의 제적은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재 마법사가 수련을 마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 속성 선택 (3) NEW 18시간 전 47 4 11쪽
5 속성 선택 (2) 24.07.04 69 4 11쪽
4 속성 선택 (1) 24.07.03 77 4 11쪽
3 낙제생 (2) +1 24.07.02 84 3 11쪽
2 낙제생 (1) 24.07.01 95 3 11쪽
» 제적 24.07.01 117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