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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몽환의 역

본 베히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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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토
작품등록일 :
2016.12.27 22:52
최근연재일 :
2017.02.21 12:09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8,480
추천수 :
326
글자수 :
174,063

작성
17.01.05 23:35
조회
586
추천
10
글자
10쪽

9. 급습

DUMMY

"그럼 재미도 봤겠다. 이제 말해 볼까?"


플루토는 그녀의 말을 빼놓지 않고 듣기 위해 청각을 집중했다. 여관 안이 부산스러웠기에 더욱 그렇게 했다.


"제국인이 가지고 있어. 그래서 통상적인 던전 공략으론 얻을 수 없는 게 이곳 최상층이야."


제국인. 그 단어 하나에 플루토는 눈매를 예리하게 바꿨다. 그걸 알아차린 그녀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 놈이 자기 저택에 틀어박혀 아무도 안 만나 준다는 게 문제야. 여기 사람들 모두 최상층에 도전할 실력은 있지만 이런 사정 때문에 손가락만 빨고 있지."


"그래서 그 제국인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돼?"


"어떻게 하긴. 그 녀석의 저택에 쳐들어가면 되지."


"엄청 쉽게 들려지는데 왜 여기 사람들은 못한 거지? 그래, 용병이나 기사를 고용해서 입구를 막았나 보군."


여자는 놀랍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었다.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맞아, 녀석은 제도에서 경비병을 고용했어. 그것도 모두 질 나쁜 녀석들로 말이야. 아마 제국도 손 놓은 녀석들을 데려왔겠지."


"그래도 여기 던전 수준보다 강한 녀석들을 데려왔겠지. 그것도 단체로 덤벼도 안 될 정도의 수준 차이일 거야."


여자는 이젠 눈까지 다 빛내며 감탄했다. 플루토는 얼른 대화를 끝내고 싶었기에 말을 끊은 거였지만.


"예절만 모르지 머리는 잘 돌아가서 다행이군."


뒤에서 비꼬는 목소리가 빠르게 접근했다. 아차 하고 고개를 돌렸을 땐 세 명의 우락부락한 남성들이 등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인파에 섞여 모르는 사이 접근해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걸 눈치 못 챘다는 건가. 플루토는 안일한 실책을 깊게 책망했다.


플루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견제했다. 들려온 말의 맥락 상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전부 들었던 것이다. 그 때 부드러운 손길이 턱을 어루만지더니 고개를 정 방향으로 돌렸다.


싸늘히 번뜩이는 안광을 즐기듯 여자의 입 꼬리가 매혹적이게 올라갔다. 플루토는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목적으로 내게 접근했지?"


"정식으로 이름을 밝혀야겠군. 나는 도니타. 떠나 버린 멍청한 제국 놈들 대신 이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지. 보안관이라고 불러주면 더 좋고."


도니타라 이름을 밝힌 여자는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건넸다. 긴 속눈썹이 나풀거리는 요염한 시선을 보내왔다. 플루토가 대꾸조차 하지 않자 도니타는 까륵 웃으며 천천히 손을 거뒀다.


왜 갑자기 인사를 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플루토는 의심의 눈초리를 한층 더 강화했다.


그러나 그 의미가 떠오르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재빨리 손을 휘둘렀다. 하얀 포대를 툭 열어 랜스의 손잡이를 반쯤 들어 올렸다.


등 뒤의 남자들도 맞춰 무기의 손잡이로 손이 갔다. 롱소드, 배틀 엑스 등의 병장기가 코앞의 소년에게 내질러질 채비를 마쳤다.


일촉즉발의 신경전. 긴장이 흘러가는 가운데에도 도니타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누추한 리프 타운에 오신 걸 환영해요. 도망친 제국의 황자님, 후훗."


플루토는 견제해오는 병장기들의 거리를 가늠했다. 모두 단번에 치고 들어올 수 있는 거리였다. 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제국 놈들이 널 무척이나 찾아다니더라? 그리고 그 중 한 여자는 으름장까지 놓고 갔어. 널 찾으면 꼭 자신한테 보고하라고."


벌써 제국군이 눈치챘다는 건가. 지금까지 무너뜨린 던전은 3개. 시작의 마을에서 부터 여기까지의 행보이다.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지?"


"들은 건 아주 조금. 하지만 던전을 부순다는 정신 나간 정보만으로도 널 만날 이유는 충분하지. 우린 거기에 목숨이 걸려 있거든."


플루토는 낮은 신음성을 흘렸다. 던전을 부순다는 정보만으로 충분히 진행에 방해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모험가들은 목숨을 걸고 던전을 지킬 것이고, 유혈 사태가 벌어지고 말 것이다. 그런 최악의 상황은 원하지 않는다.


이 이상 아는 게 없기를 원했다. 간절한 마음에 눈을 찡그렸다.


그러나 그녀의 다음 말에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도니타는 크게 한 번 웃은 후 여관 전체에 들리게 구호를 외쳤다."


"일백의 부정한 희망을 부수고, 일천의 공허한 기원을 흩뿌리고, 일만의 오만한 용기를 무너뜨린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구호가 심장을 관통했다. 플루토는 애써 모른 척했지만 불안감이 온 몸을 내달렸다.


"어때, 제대로 말했어?"


"네가 그걸 어떻게......"


"널 자기네들의 수호자'였'다고 하더라. 너, 우리 모험가들을 사냥하는 입장인데 이렇게 편히 앉아 있어도 돼?"


제길, 거기까지 알려준 건가.


플루토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숙였다. 앉아 있는 의자가 가시방석처럼 따가웠다. 목 뒤에서 날붙이들의 서슬 퍼런 기운이 느껴졌다. 시간이 멈추다 못해 역행하는 기분에 구역질이 났다. 이 짧은 대화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감정의 마지막 선에서 플루토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도니타의 눈빛에도 더 이상 장난기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적인가...역시."


"뭐, 그런 셈이지. 애초에 너희 제국 놈들이 다 제도로 꽁무니 뺀 그 때부터 너희는 적이었어."


서로의 안광이 허공에서 부딫쳤다. 쌍방에서 노려보는 기세에 여관 내의 분위기가 살벌하게 바뀌었다, 위협하듯 뒤에서 병장기들끼리 두드렸지만 플루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역시 충돌이 없긴 힘든 건가. 플루토는 손에 쥔 랜스를 거한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아주 천천히 꺼냈다. 곧장 머리 위로 날아들 도끼날에 손바닥에 땀이 쥐어졌다.


그리고 반쯤 꺼냈을 때, 긴장으로 멈춰서 있던 거한들이 눈치 채고 눈을 활짝 떴다. 놀란 기세를 감지한 플루토는 랜스를 포대에서 세게 잡아 뽑았다.


사납게 휘둘러진 검은 반원이 파쇄음으로 진동했다. 가공할 힘에 산산이 부수어진 무기들은 물론 둘러싼 거한들까지 다섯 걸음 나가 떨어졌다.


꼴사납게 다른 모험가들과 부딪쳐 몸이 엉킨 거한들을 무시하고, 플루토는 곧장 탁자를 발로 차 올렸다. 원형 탁자가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뛰어지더니. 뭔가가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관의 바닥에 곤두박질 친 탁자는 요란한 음성으로 반 토막 났다. 그 가운데 화살 하나가 박혀 공포로 부르르 떨고 있었다.


플루토는 석궁을 든 채 놀라 얼어 있는 도니타의 목에 랜스를 겨눴다. 최대로 뜬 눈에 뒷걸음질조차 못했다.


뒤 늦게 소리 지르며 달려온 거한들이 멈춰 섰다. 비통한 표정으로 찔러오는 눈빛이 느껴졌지만 자세를 유지했다.


"우리가 너희를 떠난 때부터 적이라고 했어?"


움찔하는 그녀의 목에 랜스를 갔다댔다. 공포에 압도 당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가녀린 목에 싸늘한 광채가 닿자 도니타는 숨이 멎은 듯 보였다.


"틀렸다. 제국인들은 몰라도 나, 플루토는 너희들을 한 번도 적이라 생각한 적이 없어! 이렇게 공격해오지 않았다면 말이야! 그런데 너희들은 내가 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적으로 돌렸다. 내 의사가 어떤지는 관심도 없고 말이지!"


플루토의 일갈에 도니타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것이 떠오르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목에 들어온 창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답답함이 가슴 한군데를 죄어왔다.


"날 제국인이라는 빌어먹을 한 통속으로 엮지 말란 말이야! 내가 뭐 때문에 굳이 여기에 온 건데? 수호자니 뭐니 명예니 뭐니 다 얻을 수 있었는데 뭐 때문에 여기에 와 있는지, 너흰 궁금하기는 해? 내가 뭘 했는지 뭘 할지만 관심있지 왜 그런 건진 티끌도 관심이 없잖아! 너희들이랑 직결된 일인데도!"


흥분 상태가 가라앉지 않았다. 에버리스 때에도 그렇고 모험가니 제국인이니 왜 그렇게 그런 것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런 말도 안 된다는 심정에 휘둘려 플루토는 비밀로 하자고 다짐했던 것마저 내뱉고 말았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뻔히 알면서도.


"던전이 너희를 가두고 있단 말이다! 그렇게 너희들이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던전이 너희를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못 나가게 하는 거라고!"


좌중에 서리가 내려 앉았다. 차갑게 내려앉은 정적에서도 플루토는 씩씩 거리며 분을 삭였다.


그러나 이미 끓어오를 때로 폭주한 감정이 제어가 될리 없었다. 이빨을 꽉 씹었음에도 설움이 해소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알지도 못하면서. 그 이면에 가려진 순수한 의도는 다 내버리고 원하는대로 가공해서 듣는다. 모험가나 제국인이나 인간. 간사하긴 매한가지다.


아무도 뭐가 잘못 되었는지는 관심도 없다. 눈앞의 생존에 눈이 멀어 바로 뒤에서 노려오는 비수를 보지 못한다. 뒤 돌면 보였던 문제는 이미 등을 뚫고 심장을 죄어 든다.


플루토는 허무감에 고개를 숙였다. 창의 손잡이에 힘이 빠져 나갔다. 그러나 도니타가 천천히 창끝을 피해가자 혐오감이 밀려 들었다. 창을 다시금 사납게 들어올렸다.


움찔하는 목에 플루토는 충동적으로 창을 찔러 넣었다. 그녀는 단념으로 눈을 감았다.


혈액이 분수처럼 튀어오르는, 좌중의 불안한 표정에 서린 상상과는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플루토는 경직된 채 목덜미를 만지는 도니타를 무시하고 천천히 랜스를 포대에 넣었다. 눈빛을 처연함으로 내리깐 채 포대를 힘없이 어깨에 매었다.


플루토는 자신의 창끝이 뭉뚝하다는 걸 잘 알았다. 그만큼이나 자기 자신이 무른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몇 번이나 바꿀 기회가 있었음에도 플루토의 창은 뾰족하지 않았다. 죽여야만 할 상황이 생겨도 찔러선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은 베이거나 관통당하는 것 외에 부숴 져도 죽을 수 있다. 살인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끝만 뭉뚝하게 한 어리석음. 혈기에 불타올라 모험가들을 구하겠다고 나온 무른 자신과 같게 느껴졌다.


작가의말

과연 플루토는 어디서 온 녀석일까요. 그리고 결국엔 어디에 도착하게 될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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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기도 +2 17.01.02 537 10 12쪽
5 4. 닿지 못한 의지 +5 17.01.01 645 12 17쪽
4 3. 제국인 +8 16.12.30 673 14 20쪽
3 2. 최상층 +4 16.12.29 677 15 14쪽
2 1. 불순물 +5 16.12.28 1,014 17 12쪽
1 서장. 방황의 운명 +8 16.12.27 1,416 1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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