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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몽환의 역

본 베히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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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토
작품등록일 :
2016.12.27 22:52
최근연재일 :
2017.02.21 12:09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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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8
추천수 :
326
글자수 :
174,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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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0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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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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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4. 닿지 못한 의지

DUMMY

아이작 일행은 과묵 그 자체로 행진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던전임에도 적막감에 먼 길 가듯 지루했다.


저 멀리 황토색 탑이 태양 아래 거대함을 뽐냈다. 일행은 그 길로 쭉 걸어갔다.


뙤약 볕 속인데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육체로서의 아바타는 세상의 감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시선만 붕 떠 움직이는 역겨운 느낌이었다.


아이작은 태양을 똑바로 쳐다봤다. 반항심 섞인 충동이었다. 그러나 태양이 하얀 원처럼 생겼다 생각 할 무렵.


[# 태양을 똑바로 보지 마십시요. 시야가 3분간 암전합니다.]


망막이 어둠으로 가려졌다. 속으로 욕지거리를 곱씹었다.


부자연스러운 신체 작용에 넌더리가 났다. 잠시 후 눈이 뜨이자 아이작은 찡그리며 마노 쪽을 봤다.


여관 일 이후 마노는 줄곧 입을 열지 않았다. 분명 자신의 충고를 무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작 또한 상대가 상대이기에 대화를 즐길 마음은 없었다.


제국인. 그들은 이 세계의 주인이다. 모두 떠나 눈앞의 사내만이 유일하지만 한 땐 자기 자리를 지켰으리라.


모험가가 이 세계에 별이 되어 떨어졌을 때, 길을 안내하는 것이 제국인에게 정해진 역할이다. 그것이 정해진 서사였을 것이다.


모험가들을 더 높은 곳으로 보내는 것. 위대한 업적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숭고한 대의을 위해 헌신하는 것. 그게 그들의 존재 목적이자 이유이다.


그들의 진정한 이름은 NPC.


그저 그 뿐일 뿐. 시스템에 불과하다. 게임의 주인공인 플레이어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고정된 자리에서 퀘스트나 장비 교환이 그들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주인이되, 주인공이 아니다.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주인공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그 게임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NPC들은 언제나 플레이어를 도와만 왔다.


아이작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여동생의 의식을 앗아간 게임을 시작하기 전까진.


여동생이 이 게임을 시작한 게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긴 그는 출세가도를 뿌리치고 구출에 나섰다. 사람을 혼수상태로 만든 이 게임을 이상하리만치도 쉽게 구했다. VR기어에 몸을 맡긴 채 비장하게 이세계에 다달았을 무렵.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두 번의 사전 경험도 겪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첫 던전으로 가는 길조차 수치스럽게도 길을 헤맸다. 플레이어 설정도, 스테이터스 창도, 하다 못해 길을 안내할 NPC조차 없었다.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 안내 하나 없는 이세계는 지극히 달라 보였다. 무력함이 온 몸을 장악해 약한 속마음을 후벼 팠다. 어쩌면 자신도 카운터의 에버리스처럼 한심하게 제국인 흉내나 냈을지도 모른다.


석 달의 우여곡절 끝에 이곳까지 도달했다. 다행히 이젠 어떻게 할지 길이 보인다. 이대로 모든 던전을 클리어한다면 이세계 탈출도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아냐고 한다면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강해지고 또 강해져 이 세계를 전부 돌아본다면 해답을 얻게 되리라. 적어도 뒤를 따라오는 두 아이들을 지킬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의 어께는 의무감으로 무거워져 있었음에도 곧게 펴 있었다. 와이번으로 가는 탑이 웅장하게 다가오자 아이작은 미소를 지었다.


정복해주겠어. 이 세계를.


그를 곤경에 빠뜨렸던 존재들 중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없었다. 더 크게 되갚아 줬다. 사람이라면 맞은 것의 두 세배를. 학업이라면 열 배로 노력해서. 인간관계라면 백배로 노력해서. 그게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이 까짓 게 뭐란 말이지. 그저 게임일 뿐이야. 아이작은 긴장되어 고동치는 심장에 대고 속삭였다.


"뭔가 기쁜 일이라도 있나보군요."


앞장 서던 마노가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도 지루하긴 마찬가지였을까. 아이작은 입가에 번진 미소를 무너뜨린 후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옛날 생각 좀 했어요."


"옛날이요? 언제쯤의 이야기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던전이 가까워지자 갑작스레 마노는 말이 많아졌다. 아이작은 귀찮았지만 코앞까지 온 발품이 아까워 아무거나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괜찮은 게 떠올라 당장 머릿 속 리스트를 새로 작성했다.


"7년도 넘은 이야기죠. 말했다시피 전 이곳이 세번째입니다. 첫번째는 7년전, 두번째는 6년전. 그리고 지금.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노는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이작은 천천히 머릿 속의 기억을 되새겼다.


"어느 한 마을의 제국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의무감 넘치는 목회자였지요."


아이작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마노는 경청하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뒤의 두 아이는 첫 구절을 듣자마자 재미없다며 자기들끼리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성실을 다해 신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던전이 일어나 온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가운데도 신이 우리를 지켜줄테니 걱정하지 말라 한 사람이었죠."


갑자기 마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이작은 그런 그의 표정을 즐기며 이야기를 지속했다.


"그런데 그조차도 던전이 생겨난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선 목회자로서 모범을 보여야 했지만 실은 그도 두려웠습니다. 정작 사람들이 안 보는 곳에선 안절부절 못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 목회자는?"


"모험가들의 손을 빌렸습니다. 홀로 들어가긴 두려우니 모험가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동행한거죠. 던전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원정이요. 모험가들은 이미 내부 사정을 알았지만 간단한 일임에도 대가가 높은지라 수락했고, 거기서 그 제국인은 충격적인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마노의 목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인정할 법도 한데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했다. 아이작은 선고하듯, 마노의 목걸이를 가리켰다.


"바로 제국인들이 신의 상징이라 여기는 그 십자성(Cross nova). 그게 던전의 최상층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바로 앞에서 그걸 본 제국인은 우습게도 졸도해 버렸지요. 두 번씩이나 봤는데도 질리질 않더군요. 이젠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국인들 모두가 제도로 떠나버려서요."


마노의 얼굴이 새빨개 졌다. 소심한 성격에 반박도 제대로 못하는 모양이다. 더군다나 그라는 언급은 안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정말 웃기지 않나요? 그렇게 믿어왔던 신이 불안했던 모든 것의 주동자라는 것이?"


그 말과 함께 마노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누구를 비꼬는 것인지 인정한 것이다.


아이작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다시 앞장 서라고 손을 뻗었다. 마노는 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돌리기 전, 그의 눈빛에서 이상한 느낌이 감지되었다. 을씨년스러운 광채가 두 눈동자에 스쳐지나간 듯 했다. 그러나 아닌 것도 같았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우릴 기다리게 한 대가다. 공략 시간을 늦춘 것도 그렇고.'


아이작은 마노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딱하게도 당신은 아직도 그 길을 걷고 있거든. 미련하게도 말이지.'


이야기가 끝나자 모험대는 이미 황토색 탑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탑 안은 오래된 유적지 마냥 낡고 어두웠으며 갈라진 틈새의 희미한 빛이 눈에 아른거렸다 사라졌다.


바닥은 밟을 때마다 불안하게 삐걱였고, 토굴 모양의 입구들 여러 개가 모험대를 원형으로 둘러쌌다. 그 위로는 나선 계단이 벽에 붙어 보이지 않는 천장을 향해 빙글빙글 달리고 있었다.


신비하면서도 오싹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모험대는 감흥이 없었다. 그 누구도 표정이나 행동에 변화가 없었다. 그들은 한결 같은 과묵한 표정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끝 없이 하늘로 나있었던 계단은 묘하게도 딱 한 바뀌 쯤 돌았다는 느낌이 들자 끊어졌다. 최하층에서 본 것이 무색할 정도로 억지스럽고 인위적이다. 아이작은 역시 게임이라고 생각이라는 감상을 떠올렸다.


멈춰선 모험대의 앞에 나타난 것은 이질적인 광경. 낡아 빠진 이 유적지에 유일하게 시간이 흐르지 않은 듯 한 거대한 문이 어둠 속 푸른 광휘을 뽐내고 있었다.


"여깁니다. 준비가 되셨다니 문을 열겠습니다."


마노는 열쇠를 들지 조차 않고 문 가까이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살포시 문에 닿자 얇은 빛이 모험대를 비추었고, 선이었던 광체가 문 한가득 뿜어져 나왔다.


내부는 어두운 동굴임에도 문 자체가 가진 마력이었다. 다른 차원으로 연결되는 것마냥 빛은 단 한 번 번쩍인 후 서서히 잦아들었다.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열렸다.


"자, 이제 여러분의 몫입니다. 전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안에 뭐가 있는지 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뭐가 있는지 정돈 저도 압니다. 얼른 들어가기나 해요!"


이제 마노는 으르렁거리듯 싸늘한 눈빛을 보내왔다. 아이작은 어께를 으쓱이며 다른 두 명을 이끌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이 문을 여는 게 그에게 부여된 역할인 것이다. 그가 아니라면 이 문을 열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의 역할을 이제 끝난 것이다. 더 이상 그의 도움은 필요없다.


그래도 아이작은 모험대에 일러둘 게 있어 뒤를 돌아봤다. 절대 마노를 향해 고개를 돌린 것이 아니었다. 두 아이의 어깨 사이로 우연히 그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그 순간, 오싹한 기운이 몸을 파고 들었다. 거대한 문이 천천히 닫혀갔다. 그리고 좁아지는 문 틈새 사이로 마노의 얼굴이 서서히 사라졌다.


완전히 문이 닫히기 직전, 제국인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고 있었다......


아이작은 이미 닫혀버린 문에 충동적으로 달려갈 뻔했다. 소름이 돋아 팔꿈치를 문질렀다.


찰나의 순간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헛 것을 보았나하는 기분이 밀려들었다. 어두운 동굴 안이라 잘못 봤을 것이다. 마음 속 한구석은 이미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미 들어와 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자신이 무너진다면 뒤의 아이들 또한 무너지리라. 아이작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천천히 저은 후 앞의 길을 따라 걸어갔다.


한참을 걸었다. 필드 만큼은 아니지만 동굴이 그들 앞에 끝이 안 보이게 펼쳐져 있다. 아이작은 어디선가 잠들어 있을 와이번을 찾아 다녔다.


원래라면 입구에서부터 습격해 왔을 와이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적막감이 내려 앉은 거대 동굴 속에선 모험대의 걸음 소리만이 타박타박 메아리 쳤다. 동굴의 길이가 이질적으로 길게 느껴졌다.


원래 와이번을 입구에서 퇴치하고, 동굴의 끝에서 십자성의 문양을 봐야 했기에 이 정도의 길이가 맞다.


하지만 너무나도 낯설다. 아이작은 온 몸에서 불안감이 피어 올랐다.


"오빠, 괜찮아?"


뒤에서 여동생이 옷깃을 잡아 당겼다. 그의 어두워진 낯빛을 감지했는지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험대 전체가 동요하고 있다. 실책이다. 어떻게든 이끌어 가야 하는데 겨우 이 정도의 변화에 자신감이 꺾이다니.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


아이작은 불안감을 떨쳐내고 살짝 미소지었다. 그럼에도 여동생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셋은 서로를 마주 보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저 너머 에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굴의 끝이다.


아이작은 모험대를 재촉해 달렸다. 새하얀 빛을 따라 발걸음이 빨라졌다. 불안감에 얼른 확인해보고 싶어서 였다.


자신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건지.


잘못된 길로 온 것은 아닌지.


뭔가 바뀌어 버린 건 아닌지 말이다. 느껴지는 감각이 너무나도 서툴고 이상했다.


그 때 아이작이 달리다 말고 멈춰섰다. 뒤에서 따라오던 일행은 급정지에 발을 끌 수 밖에 없었다.


그들 앞엔 동굴이 끊겨 있었다. 더 넓은 공간으로 오게 된 것이다. 광활하다고 형용할 크기의 새로운 동굴이었다.


아이작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원래 이런 곳이었던가? 기억 속 그 장소임에도 아이작은 의심으로 눈을 흘겼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십자성(Cross nova)이었다. 네 방향 모두 첨예한 은색 십자가. 인외의 기술로 조각한 기분이 드는 십자 문양이 동굴 벽에 완벽한 대칭으로 새겨져 있다. 광택이 없는 그림일 뿐임에도 눈 한가득 빛이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새된 비명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멀지 않은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여동생이 입을 가린 채 주저 앉아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부들부들 떨고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아이작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비명의 원인을 노려봤다. 별 것 아니었다면 핀잔을 주려 했으나, 그 광경에 벌어진 입이 닫힐 생각을 안했다.


동굴 구석, 어둡고 을시년스러운 곳에 방치된 시체였다. 하얀 갈비뼈가 회색 암벽을 배경으로 하늘에 원망의 손을 뻗고 있었다.


날개로 추정되는 부분은 심하게 꺾여 뒤틀려 있었고, 다리라 확신지을 부분엔 선홍색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머리 뼈는 뭔가에 으깨진 듯 네 갈래로 쪼개져 있었다.


밀려오는 생리적 혐오감에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조차 판단하려 하지 않고 도망칠 뻔했다. 침착해지자는 마음의 소리가 공허하게 메아리쳤고, 팔다리가 제 멋대로 동굴 밖으로 머리를 돌렸다.


"뭐, 뭐야. 이건...설마."


으깨진 용의 눈구멍이 한스럽다는 듯 공허하게 열려 있었다. 영혼이 떠나버린 생물에게서 아이작은 서늘한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이성이 돌아왔을 땐, 오히려 패닉에 빠져버렸다.


와이번이었다. 그토록 찾던 던전의 보스 몬스터. 흉폭하게 달려들었어야 할 그것을 죽은 상태로 보게 된 아이작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도데체 어떻게 된 일인 거야...?"


여동생의 입가에 신음소리가 흘렀다. 어떻게든 상황을 이해하고자 머리를 돌리려던 순간.


그 때였다. 얼음장이 어께를 타고 온 몸에 흘렀다. 손 끝 신경이 찌릿한 느낌에 아이작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서늘해진 뒤를 돌아 보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가 돌아본 공간엔 허무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아이작은 깊은 한 숨을 내쉬었고, 중간에 막혀 헛숨에 목이 턱 막혔다.


"어이...이봐..."


한 명이 없었다. 여동생의 친구인 마법사 소년.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장난하지 말라고... 어디야?"


길을 잃은건가? 가능할리 없다. 일직선의 동굴에선 어떤 짓을 해도 길을 잃을 수 없다.


사고를 회전시키려 하자 다시 섬뜩한 기운이 덮쳐왔다. 와이번의 시체 쪽에서 뿜어 온 살의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장난처럼 기운이 사라졌다.


그 때, 아이작은 어렷품이 들은 것 같았다. 여동생이 자신을 부르는 일순간의 소리를. 그러나 머리는 귀가 기억하는 감각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눈으로부터 오는 질책에 머리가 공황 상태에 빠져 버렸다. 이젠 여동생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고립된 느낌에 머릿 속이 뿌옇게 가려졌다. 심장 박동이 한계선을 향해 뛰고 있다.


공포에 오장육부가 굳어갈 무렵, 대기에 숨은 그것이 일순간 눈 한가득 덤벼들었다.


아이작은 반사적으로 검을 뽑았다. 시야를 검게 채우는 괴물에 맞서 땀을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예리한 감각의 발도술이 빛을 일자로 뿌렸다. 깜빡이면 사라질 시꺼먼 기운에 그의 검이 눈보다 먼저 따라갔다.


하지만 눈은 끝까지 따라가지 못했다.


"어...?"


번쩍이며 나타난 형체를 따라간 검이 묵직한 느낌에 막혀 부러져 있었다. 아이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참동안 부러진 도면을 쳐다봤다.


도면 너머에 희미하게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보고 싶지 않다고 마음 속에서 울부짖어 왔지만, 눈의 초점이 바뀌자 그것은 현실로 찾아왔다.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다. 자신의 신장을 세 개 반 가량 이어붙인 길이가 눈을 압박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길이만으로 아이작은 남은 검의 손잡이를 떨어뜨렸다.


새까만 무언가가 있었다. 흑요석으로 만든 것 같은 육체엔 칼날의 돌기가 무차별적으로 찔러 나와 있었다. 움직이지 않아 검은 암석 같았으나, 동시에 입에서 뿜어 나오는 뜨거운 입김이 생물이라는 걸 증명했다.


돌기 중 하나가 심장으로 날아들 때, 아이작은 자신의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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