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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님의 서재입니다.

일곱 개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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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작품등록일 :
2018.08.22 17:21
최근연재일 :
2019.05.15 02:56
연재수 :
1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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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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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글자수 :
577,838

작성
18.08.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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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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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3쪽

1장 염곡동 살인사건 (2)

DUMMY

“제보 전화 감사드립니다. 전화해 주신 이 번호로 잠시 후에 다시 전화해서 몇 가지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수사관들이 모여들어 녹음된 제보 전화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듣기 시작했다.


제보자의 목격 위치인 적십자라는 말을 듣더니, 곽 경사는 핸드폰 지도 앱을 열어서 위치를 확인했다. 곽 경사가 예측했던 동선과 일치했다.


어젯밤 곽 경사의 프로파일링에 따라 양재천을 수색하긴 했지만, 용의자가 자전거를 이용해 도주할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 게 한계였다. 경찰이 양재천을 수색했을 때 이미 용의자는 양재천을 빠져나갔다.


왜 자전거를 생각하지 못했냐는 아쉬움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야간이라도 차량용 블랙박스 감식을 좀 더 적극적으로 요청했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들려왔다.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분석이다. 결과론에 기댄 사후 질책일 뿐이다. 실패한 수사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판을 치기 마련이다.


용의자가 대중교통 이용해서 도주할 확률이 크다고 봤던 경찰은 허를 찔렸다.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소를 이용해 이동한 사람들의 동선에 집중하는 동안 용의자는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고 자전거를 이용해 도주한 것이다.



서초구 CCTV 통합관제센터는 방범용, 불법 주정차용, 공원 관리용 등 1,000대 이상의 CCTV를 운용하고 있다. 스마트 통합관제 시스템이 가동 중이라 특이상황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지능형 영상감시 기능이 작동한다. 소수의 관제 인력으로 다수의 CCTV를 운영하기에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역삼지구대에 위치한 강남구 CCTV 통합관제센터도 범인의 도주를 실시간 관제하는 투망 감시 시스템과 연동 가능한 1,200여 대의 CCTV를 운용 중이다.


하지만, 용의자는 지능적으로 CCTV를 피해 도주했다.



관제 인력이 사후추적에 집중하기로 방향을 바꾼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양재천 지능형 수위감지시스템 CCTV에 어렴풋이 용의자의 모습을 발견되었다. 곽 경사는 수사일지에 메모하며 CCTV를 몇 번이고 다시 돌려봤다.


MTB형 자전거.

헬멧 미착용.

전조등, 후미등 작동 중.

회색 계열 티셔츠, 청색 반바지로 환복.

범행 당시 백팩 계속 착용.


단서는 딱 거기까지였다. 일반 도로와 달리 자전거길은 거의 CCTV 사각지대나 다름없다. 양재천 이외의 탄천이나 한강에서는 유용한 정보가 확보되지 않았다. 이미 용의자와 시간 간격이 벌어진 데다가 동선 파악이 쉽지 않았다.



“도망가기도 바쁠 텐데 옷까지 갈아입었나?”

권 경위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회색 티셔츠와 청색 반바지는 범행 당시 착용한 트레이닝복 안에 받쳐입었던 옷일 겁니다.”

곽 경사의 예측을 듣고 권 경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위 트레이닝복 벗어서 가방에 넣는 건 10초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조 순경은 옷 벗는 동작을 흉내 내며, 용의자의 치밀함에 놀랐다는 표정을 과장해서 지었다.


오후 10시 32분 사건 발생. 구룡산 임도로 도주 후 양재대로 횡단.

10시 53분, 개포동 주유소 뒷길에서 운동화 갈아 신음.

11시 02분, 양재천 자전거길을 따라 동쪽으로 도주.


곽 경사는 수사일지를 들여다보더니 시계를 봤다. 오전 10시 30분이었다.

“용의자와의 시간차 11시간 28분.”

곽 경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혼잣말을 했다.



자전거는 매우 빠르고 효율적인 도주 수단이다. CCTV 사각 지역을 시속 20km 이상의 속도로 주행할 수 있고 체력소모가 높지 않아 장거리 이동도 가능하다. 게다가 도피가 쉽다. 어디든 자전거를 세워 두고 큰길로 걸어가 택시를 타고 이동하거나,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여차하면 미리 준비한 차량의 뒷좌석에 자전거를 싣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양재천은 탄천과 이어져 있다. 남쪽으로는 성남을 지나 용인으로 도주할 수 있고, 북쪽으로는 곧바로 한강을 만난다. 한강은 인천에서 시작해 부산까지 이어지는 국토 종주 자전거길의 길목이다. 남한강을 타고 양평을 지나 여주로 갈 수도 있고, 중랑천을 따라 동두천까지 갈 수도, 북한강을 따라 춘천 방면으로 갈 수도 있다. 자전거길 도주로 예측은 쉽지 않았다.


양재천 자전거길과 연결되는 모든 도로의 CCTV를 분석하고 현장에서 발로 뛰며 자전거의 행방을 추적했지만 10km 반경 내에서는 이렇다 할 단서가 잡히지 않았다. 자전거에서 내릴 시간은 자정 이후라는 판단에 택시 운전사 제보도 요청했으나 허사였다. 한강은 수많은 지류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흔적 없이 사라질 방법은 수백 가지도 넘는다.




<2018.09.15. 토요일 / 서울>


도주에 사용된 자전거는 용인시 기흥구 탄천 자전거길에서 발견되었다.


분당선 구성역 북쪽 200m 지점 자전거길 길가에 버려진 것을 용인서부경찰서 관할 구성파출소 순찰 요원이 발견하고 광역수사대로 연락을 했다. 용의자는 빈틈없이 30km를 도주한 후 보란 듯이 길가에 자전거를 버리고 사라졌다. 용의자와의 시간차는 점점 벌어져 하루 이상의 차이가 생겼다.


용인 CCTV 통합관제센터가 녹화 영상에서 용의자를 발견했다. 용의자는 왕복 8차선 용구대로를 따라 태연히 걸어가고 있었다. 범행 당시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마스크를 착용하고 백팩을 메고 있었다. 회색계열의 티셔츠와 청색 반바지도 그대로였다.



수사본부는 용의자의 단서를 찾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활력을 되찾았지만, 곽 경사는 용의자가 찍힌 CCTV를 계속 돌려보며 중얼거렸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치고는 너무 태연하잖아, 이거.”


다시 한번 CCTV 영상을 돌려보더니 곽 경사가 다시 물었다.

“치밀하게 도주한 다음에, 용의자가 큰 대로변에 나와서 태연하게 걷고 있어. 너무 여유 있는 거 아니야?”

“이미 성공적으로 도주했다고 안심했겠죠. 힘들어서 좀 천천히 걷는 거 아닐까요?”


“그게 아니라 CCTV가 있는 줄 뻔히 알았을 텐데 왜 여기로 걸어가고 있냐고?”

“아, 그러게요.”


조 순경이 입을 연 채로 잠시 멍하게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저 같으면 큰길이 아니라 골목길로 나와서 택시를 한 다섯 번은 갈아타고 버스도 막 갈아타고 그렇게 도망갔을 것 같은데요.”


곽 경사는 조 순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가봐야겠지?”



광역수사대는 경기도 용인으로 신속하게 수사 대원을 파견했다.

용인 CCTV 통합관제센터 분석 결과 오전 01시 38분에서 02시 11분까지 33분간 용의자는 도보로 이동하여서 한 아파트단지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파트단지 자체 CCTV 감식을 위해 인근 경찰서에서 출동한 수사관 두 명은 벌써 아파트 관리소에 도착해 있었다. 용의자 소재지 파악 즉시 검거할 목적으로 광역수사대는 형사들을 줄지어 투입했다. 곽 경사도 조 순경과 함께 용의자가 사라진 아파트단지로 출동했다.


단지에는 정문, 각 동 입구, 엘리베이터 안, 지하주차장 곳곳에 41만 화소급의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저사양이라 선명한 영상을 기대할 순 없었지만, 용의자 동선 파악은 가능했다. CCTV 관제장비는 저장공간 효율화를 위해 움직임이 감지될 때만 녹화가 시작되는 방식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출입자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정문으로 걸어온 용의자가 OO 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에서 내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1402호로 걸어가는 장면까지 녹화되어 있었다.


강력계 형사들은 바로 1402호로 출동했다.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중년 여성이 문을 열고 나왔다.



문이 열리자마자 형사 5명은 신발도 벗지 않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관리실에서 나오신 거 아닌가요?”

중년 여성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곽 경사는 형사들에게 소리쳤다.


“일단 용의자는 아닙니다.”

중년 여성의 체형은 용의자와 확연히 달랐다.


“누구세요?”

중년 여성의 질문에 곽 경사가 대답과 동시에 질문을 했다.

“경찰입니다. 집에 누가 있습니까?”

“저 말고 아무도 없어요. 딸과 둘이 사는데 지금은 저 혼자 있어요.”


중년 여성은 차분하게 말했다. 집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꼼꼼하게 확인한 형사들은 곽 경사의 손짓을 보더니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벗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제 새벽 2시 20분에 집으로 들어온 여자분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딸은 지난주에 나가서 아직 들어오지 않았어요. 어제 들어온 사람은 없어요.”


“따님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저도 모르겠어요. 5일째 연락이 되지 않아요.”


“실종신고는 하셨습니까?”

“아니요.”


“왜 아직 실종신고를 안 했죠?”

질문하던 곽 경사의 눈빛이 날카롭게 찢어졌다. 입가에 찡그린 것인지 미소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이 보였다.

“종종 이런 일이 있었거든요. 근데, 무슨 일이죠?”


“9월 13일 발생한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어제 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살인사건이요? 그런데 들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중년 여성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CCTV와 족적을 보면 적어도 현관 앞까지는 왔습니다.”

곽 경사가 위협적으로 말했지만 중년 여성은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수사본부는 출동한 형사팀에 1402호 거주자 정보를 문자로 보내왔다.

곽 경사는 핸드폰을 열어 문자 두 통이 도착한 것을 보았다.


세대주 이희경 만49세. 1969년 7월생.

곽 경사는 중년 여성의 프로필이 담긴 문자는 그대로 넘기고 다음 문자를 열어 딸의 신상정보를 유심히 보았다.


김여원 만19세, 1998년 10월 경기도 용인 출생, 신장 166cm 체중 56kg.


문자를 확인한 곽 경사는 중년 여성에게 딸의 사진을 요구했다. 중년 여성은 핸드폰 사진첩에서 딸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곽 형사는 시간을 들여 김여원의 사진을 유심히 보았다.


“집에 자주 찾아오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요, 없어요.”


“딸의 인간관계는 어떤가요? 친구가 찾아오는 일이 자주 있나요?”

“집으로 누굴 데려오는 일은 별로 없어요. 근래에는 한 번도 없었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금 살인사건 용의자를 찾는 중입니다.”

중년 여성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용의자를 거의 잡았다고 생각했던 형사들의 들뜬 땀은 차갑게 식어갔다.



용의자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광역수사대장은 무궁화 네 개가 달린 총경 옷을 지킬 수 있을지 불안해했다. 큰 무궁화를 세 개나 달고 있는 서울경찰청장의 어깨도 떨리기 시작했다. 서울 한복판 대로변에서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알 만한 중견기업의 대표이사가 여성 용의자에게 살해되었는데 경찰은 아직 용의자를 검거하지 못했다. CCTV가 가득한 대한민국 서울에서 계획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났지만, 경찰은 이렇다 할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다.


추적에 실패한 경찰은 범행 동기에 맞춰 절차대로 수사를 재개했다. 형사 한 명은 아파트 CCTV 관제실로 되돌아가서 용의자가 1402호에서 다시 나가는 장면을 찾기 위해 분석을 시작했다. 다른 한 명은 아파트 베란다로 나가 행여 용의자가 밧줄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가진 않았는지 줄 묶인 흔적을 찾아보았다. 과학수사를 위해 집안 곳곳에서 머리카락과 각질 등 DNA 증거도 수집했다.



추가로 투입된 과학수사 대원들이 집 주변을 미세 감식하더니 그중 한 명이 곽 경사를 향해 다급하게 달려왔다.

“용의자가 계단을 통해 내려가다 13층에서 옷을 갈아입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곽 경사는 고개를 돌려 과학수사대원을 바라봤다.

“계단실 13층에서 양말 신은 발자국 10여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검정 스타킹이나 레깅스에 흔히 쓰이는 150 데니어 섬유가 계단실 구석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양말 신은 발자국 위에 먼지가 쌓인 거라서 용의자 몸에서 나온 거로 의심됩니다.”


“다른 건 없나요?”

“흰색 레이온 소재가 나오긴 했는데, 용의자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좀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저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곽 경사는 조 순경을 돌아보더니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까만 레깅스 위에는 뭘 입었을까?”

“레깅스라면 그 위에 긴 바지는 안 입었겠죠. 원피스 같은 거 입지 않았을까요? 부피도 적고 갈아입는데 시간도 얼마 안 걸리고.”


“원피스? 아무도 살인사건 용의자로 의심하지 못할 밝고 화려한 흰색 원피스.”

“그런 원피스라면 요일별로 갈아입을 수 있을 만큼 가방에 들어갈걸요.”


“흰색 원피스에 검정 스타킹 신은 여성으로 특정해서 CCTV 다시 돌려보라고 해. 여기서 놓치면 방법 없어.”


곽 경사의 말에 조 순경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작가의말

치밀하게 도주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왜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까요? 그녀가 숨기는 것은 무엇이고, 그녀가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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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바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 5장 잃어버린 아들 (1) +1 18.10.19 194 3 11쪽
13 4장 국적불명의 케이진 (4) 18.10.16 199 3 12쪽
12 4장 국적불명의 케이진 (3) 18.10.12 219 3 13쪽
11 4장 국적불명의 케이진 (2) 18.10.09 209 4 13쪽
10 4장 국적불명의 케이진 (1) 18.10.07 247 4 11쪽
9 3장 굴속의 너구리 (3) 18.10.02 219 4 11쪽
8 3장 굴속의 너구리 (2) 18.09.29 242 4 12쪽
7 3장 굴속의 너구리 (1) 18.09.26 260 3 11쪽
6 2장 유엔과 시노 (3) 18.09.25 270 5 12쪽
5 2장 유엔과 시노 (2) 18.09.20 271 3 12쪽
4 2장 유엔과 시노 (1) 18.09.13 298 3 11쪽
3 1장 염곡동 살인사건 (3) 18.09.06 328 6 13쪽
» 1장 염곡동 살인사건 (2) 18.08.30 364 8 13쪽
1 1장 염곡동 살인사건 (1) +1 18.08.22 582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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