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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o 님의 서재입니다.

누리와 함께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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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o
작품등록일 :
2024.01.13 16:54
최근연재일 :
2024.06.09 15:57
연재수 :
3 회
조회수 :
169
추천수 :
9
글자수 :
16,550

작성
24.06.0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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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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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재밌는 숨바꼭질

DUMMY

현관문에 달라붙어 조심스럽게 귀를 밀착시켰다.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옅게 들려온다.

예상대로 놈은 아직 있었다.


'바로 앞은 아닌 것 같네.'


숨을 크게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문을 열면 놈을 죽인다.

이 알루미늄 배트로 머리통을 박살 내서 단번의 숨통을 끊어버린다.


그러면 영화나 게임 여느 좀비 소설처럼 그렇게 죽어줄 것이다.

아니, 죽어야만 한다.

지금 내겐 그런 헛된 희망이 필요했다.


기도했다.

무교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신이 나와 함께 하기를 빌었다.

가슴속에서 읊조리는 이 작은 신념이 나를 지켜주기를 바랐다.


공포가 나를 괴롭혔지만, 소중한 존재를 위해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배트를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현관문을 열었다.


끼익-


망가진 문틀이 끌리자, 반사적으로 소름이 끼쳤다.

동시에 세찬 바람이 내 얼굴을 덮쳤다.

뒤이어 저 멀리 복도 끝 계단에서 배회하고 있는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어···!


문틀이 끌리는 소리에 녀석이 기척을 느낀 모양이었다.

공허했던 녀석의 눈은 점차 핏빛으로 물들었고 몸을 기이하게 꺾어대기 시작했다.

급기야 놈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내게 달려왔다.


"바라던 바다."


배트를 높게 치켜들었다.

놈의 대가리를 정확히 노려보며 배트를 크게 휘둘렀다.

공기를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휘두름.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뒤져!"


깡!


배트는 놈의 옆통수를 그대로 강타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진동과 함께 짜릿한 감각이 팔 전체를 휘감았다.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리자, 놈은 복도 옆 계단에 힘없이 고꾸라졌다.


"시발!"


쓰러진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놈의 머리통을 한 번 더 강하게 내려찍었다.

피와 살점이 얼굴을 스쳐 지나 계단과 복도 사이에 덕지덕지 튀었다.

난 정수리에 달라붙은 배트를 떼어내며 놈을 노려보았다.


죽었다.

확실하게 죽였다.

머리가 개 박살 난 채 바닥을 수놓는 검붉은 피를 보며 난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약간의 의구심.


"...뭐지?"


생각보다 약했다.

배트 한 방에 머리가 터져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바라던 결과였지만 사람 두개골이 이렇게 약했었나?

난 몸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끼며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시간이 없다. 서두르자.'


계단을 타고 흐르는 피를 따라 내 발걸음도 빠르게 내려갔다.

혹시나 있을 좀비를 생각하며 주변을 신중하게 살피었다.

다행히 녀석 말고는 이 빌라에 침입한 좀비는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한 녀석을 제외하곤 말이다.

1층에 내려오자, 난장판이 된 채 열려있는 민석이네 현관문이 눈에 들어왔다.

난 잠시 동안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민석이를 죽이고 내 팔을 정신없이 물어뜯던 그 녀석을 떠올렸다.

자연스레 고개가 내려갔다.

물렸던 오른팔과 깨어난 후로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해진 팔이 보였다.


내 팔이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지금 살아있다.

그리고 누리를 구할 수 있다.


그거면 충분했다.

난 열려 있는 현관문을 굳게 닫은 채 세상 밖으로 나섰다.


"끔찍하네."


곳곳에 깨진 유리조각과 피로 물든 잔디밭을 짓밟으며 읊조렸다.

거리 곳곳은 그들의 습격으로 인한 흔적으로 가득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각종 쓰레기, 부서진 채 수없이 방치된 차들, 그리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토막 난 시체까지.

빌라에서 본 풍경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난 황량하고 피폐해진 도시를 걸어 나갔다.

어둠에 잠긴 도시는 고요했다.

그 고요함은 마치 죽음을 선사하는 침묵과도 같았다.


산 자의 인기척과 냄새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역한 피비린내와 메케한 연기 냄새만 가득하였다.


'산 자들은 아마 날 지켜보고 있겠지···.'


굳게 닫힌 빌라의 창문들을 훑어보았다.

역시나 커튼 사이에서 음침하게 나를 쳐다보는 인간들이 보였다.

그들은 내가 쳐다보는 걸 알았는지 급하게 커튼을 치며 모습을 감추었다.


그어어-


어디선가 좀비의 신음이 들려왔다.

도로에 접어들자, 주변을 배회하는 좀비가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난 그들이 보기 전에 재빨리 나무 틈에 몸을 숨겼다.


"아까는 좀비가 없었는데···."


운이 좋지 않았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좀비를 만나고 말았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위치를 확인했을 때는 이쪽에는 좀비가 없었는데 역시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재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곳곳에 부서진 채 정차된 차량이 수두룩했다.

그 말인즉슨, 엄폐물로 삼기에 최상의 조건이었다.


'생각보다 쉽게 갈 수도 있겠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좀비의 움직임에 맞추어 조심스럽게 차량과 차량 사이를 넘나들었다.

이대로라면 공업소까지는 문제없이 도착할 것만 같았다.


"하···!"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좀 먹이듯, 차량은 도로 한복판에서 끊겨 있었다.

심지어 그 앞을 막고 있는 좀비 두 마리가 보였다.

혹시나 지나쳐 갈까 하는 마음에 기다렸지만, 놈들은 시간이 지나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시간이 흘러간다.

내가 지체할수록 누리가 위험해진다.

그렇다면 싸워야 한다.

난 마음을 가다듬으며 한 가지 방법이 떠올렸다.


"소리에 민감한 녀석들이라면."


현관문을 열었을 때도, 문지방에서 넘어졌을 때도 놈들은 소리에 반응했다.

그만큼 청각에 예민할 녀석이길 바랐다.

고개를 끄덕이며 배트를 앞쪽으로 당겨 잡았다.


조심스럽게 콘크리트 바닥에 두들겼다.

도로에서 팅팅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딱 두 명의 녀석이 들릴 만한 그 정도 힘으로 조절했다.

그러자 놈들은 고맙게도 나의 노크에 반응해 주었다.


그어어-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놈들은 소리만을 유추하고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난 계속해서 바닥을 두드리며 그들을 유인했다.

차량 뒤에 쪼그려 앉은 채 놈들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숨죽이며 기다렸다.


심장이 뛴다.

녀석이 가까워질수록 내 심장박동은 제곱이 된다.

숨이 터질 듯한 긴장감은 공기마저 묵직하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이성을 잃은 것 같지만 심호흡하며 의지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녀석의 발바닥이 타이어 뒷바퀴에 가까워졌을 때쯤.


깡!


크엑!


난 잽싸게 몸을 일으킨 뒤 그대로 배트를 휘둘렀다.

또 한 번 손끝에서 느껴지는 전류와 함께 놈의 얼굴이 뭉개졌다.

녀석의 턱이 돌아가며 이빨이 빠지고 피가 하늘로 솟구친다.

그걸 확인한 동시에 옆에 있는 녀석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깡!


날 물어뜯으려는 좀비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그러자 정수리가 움푹 파이면서 그대로 바닥에 내려꽂혔다.

멈추지 않았다.


쓰러진 좀비의 머리를 한 번씩 강하게 내려쳤다.

주변을 둘러본다.

근처에 혹시 날 발견한 좀비가 없는지 긴장 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다행히 없었다.

주변을 배회하는 좀비는 다행히 날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차량에 쪼그려 앉았다.

온몸이 벌써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꼴값 떨지 마. 이제 겨우 세 명 죽였을 뿐이야."


난 가방에서 물을 꺼낸 뒤 목을 축이며 주변을 확인했다.

도로를 가로질러 모퉁이로 들어가면 공업사가 나올 것이다.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았다.

난 자신을 다독이며 물통을 집어넣은 뒤 모퉁이를 향해 뛰어갔다.


그으으-


"···!"


모퉁이를 돌자, 공업소 근처에 몰려 있는 수많은 좀비를 발견했다.

난 숨도 내뱉지 못한 채 마트 옆 카트 진열대에 다급하게 몸을 숨겼다.

생각보다 좀비가 많았다.

요란스럽게 도망친 누리와 여자 때문에 좀비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몇 걸음만 더 가면 공업소인데 하필이면···.'


하늘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지고 땅거미가 서서히 내려앉는다.

드문드문 어둠이 주변을 잡아먹고 있었다.


각종 엄폐물을 기준 삼아 움직이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음은 급한데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은 발걸음도 컸다.

어둠이 몰려올수록 불안감의 사슬이 서서히 내 몸을 지배한다.


'진정하자.'


그래, 성급함은 곧 자멸이다.

내가 살아야 누리도 구할 수도 있다.

난 조심스럽게 공업소 근처 좀비의 행동을 관찰했다.


'같은 방법으로는 무리겠다.'


배트를 두들긴다면 저 많은 좀비가 한 번에 몰려올 것이다.

한 번의 잘못된 판단 착오는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좀 더 괜찮은 방법을 떠올려야만 한다.


저 수많은 좀비 사이를 뚫고 갈 방법은 무엇일까?

일단 난 영화처럼 무쌍을 찍을 만한 힘도 그리고 능력 없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명석한 두뇌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다.'


난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내 머릿속에서 저 수많은 좀비를 뚫고 갈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

내게는 나아가야만 할 이유가 있다.


"그래 이판사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강행 돌파를 결심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팅!


삐익 삐익 삐익!


어디선가 날아온 음료수 캔 하나가 자동차를 명중했다.

자동차 경보음은 미친 듯이 울렸고 난 곧장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수많은 좀비가 자동차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난 의아함을 느끼며 음료수가 날아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창문 틈새로 날 바라보는 한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갓 초등학생이 된 듯한 앳된 얼굴.

난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고개를 꾸벅였다.


"덕분에 살았다."


경보음을 따라가는 좀비 덕분에 주변이 순식간에 휑해졌다.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바닥을 기어다니는 좀비의 머리를 내려찍으며 난 공업소로 뛰어갔다.


***


"드디어 도착했네."


어둑한 내부, 정비를 준비하기 위해 정렬된 여러 대의 차량이 보였다.

비릿한 피 냄새와 진득한 기름 냄새가 뒤섞여 코를 자극했다.

바닥은 페인트인지 피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로 뒤범벅 되어있었다.


"누리야...·"


공업소 안으로 들어가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누리는 아직 살아있을까?

만약 살아있다면 나 같은 배신자를 반겨줄까?


아니, 누리는 똑똑한 녀석이라 그럴 리는 없을 것 같다.

나 같은 쓰레기를 반겨 줄 리 없을 것이다.


'쓸데없는 고민은 나중에 하자.'


누리가 나를 용서 할 지 안 할 지는 나중 문제이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공업소 내부를 천천히 배회했다.

폐품을 처리하는 곳에 좀비 몇 마리가 보였다.

다행히 주변만 서성거리고 있을 뿐 별다른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 역시 괜한 유혈사태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난 그들을 무시한 채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저 멀리 직원 사무실이 보였다.

좀비 무리를 피해 도망치기 적합한 장소였다.

아마 나였으면 저기에 몸을 숨겼을 거다.


'가보자.'


배트를 강하게 말아쥐며 걸어 나갔다.

조심스럽게 유리창을 통해 천천히 사무실 내부를 확인했다.


'...!'


난 숨을 머금으며 문 앞에 몸을 숙였다.

하필이면 사무실 창가 너머로 좀비가 벽에다 머리를 쥐어박고 있었다.


'벌써 여기까지?'


사무실이 안전하지 않다면 대체 어디로 도망친 것일까?

공업소로 들어간 것은 확실했다.

이곳에 숨을 만한 곳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난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공업소로 다시 돌아왔다.

아무리 찾아도 그들이 있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폐품처리장에 숨어 있는 건가?


'좀비가 그쪽에 있다는 것은···"


좀비가 있다는 것은 그들이 있을 확률도 높아진다.

결국 저 녀석들을 처리해야 하는 건가?

서성이는 좀비를 보며 난 혀를 잘근잘근 씹었다.


'해야만 하잖아. 정신 차려!'


그래, 저 녀석들만 처리하면 누리를 만날 수 있다.

심호흡하며 처리장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처리장을 향해 나아가려 할 때, 페인트가 묻은 발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자그맣게 찍혀있는 강아지 발자국까지.


'설마?'


난 침을 꿀꺽 삼키며 그 발자국을 따라 걸어갔다.

그 발자국은 하부 검사를 준비하는 차량 앞에서 귀신같이 사라졌다.

차량 밑을 내려다보았다.


하부 검사를 하는 공간은 널찍한 판자로 덮여있었다.

그리고 난 그 판자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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