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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o 님의 서재입니다.

누리와 함께 춤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비토o
작품등록일 :
2024.01.13 16:54
최근연재일 :
2024.06.09 15:57
연재수 :
3 회
조회수 :
170
추천수 :
9
글자수 :
16,550

작성
24.05.20 10:10
조회
42
추천
3
글자
12쪽

.

DUMMY

"...누리야."


텅 빈 공간, 홀로 남은 난 피 묻은 녹슨 철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놈에 대한 공포로 그만 사고회로가 정지되고 말았다.


비참했다.

병신 같은 겁쟁이 새끼는 복도에서 쓰러진 누리를 보고도 문을 닫았다.

그저 내가 살기 위해서.


'네가 사람 새끼는 맞냐?'


누리는 위험에 빠진 날 두 번이나 구해주었다.

평생을 어떠한 대가도 없이 오로지 나만 바라봐준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를 내 손으로 버렸다.

병신 새끼, 쓸모도 없는 이기적인 새끼.


"시, 시발···."


반쯤 떨어져 나가 너덜너덜해진 팔뚝을 바라보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너무 아팠다. 죽을 만큼 아팠다.

찢어지고 상처 난 팔뚝도, 찢긴 마음의 상처도 너무나 아팠다.


'지금이라도 나간다면···.'


치가 떨리듯 악문 이가 미친 듯이 떨려온다.

자멸감은 서서히 분노로 바뀌었고, 녀석을 죽이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문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차마 피 묻은 문고리를 돌리지는 못했다.


복도에서 옅게 들리는 놈의 그르렁 소리에 또 한 번 공포를 느꼈으니까.

피부 깊숙이 파고드는 무력감.

난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죽었을 거야. 이미···."


악한 감정이 밀려온다.

그러자 그 녀석이 비웃으며 내 귓가에 속삭이기 시작한다.

왜 그래? 너답지 않게, 넌 원래 그런 놈이었잖아.

이제 와서 같잖은 죄책감 따위를 느끼고 뭐 그러는 거야?

혹시 그,때,처,럼?


"아가리 닥쳐···."


나를 옥죄이고 있던 그날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내 정신을 뒤흔드는 녀석을 향해 난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바닥을 힘껏 내려쳤다.


"읏!"


순간 오른팔에서 극심한 고통과 함께 찌릿함이 느껴졌다.

분노가 극에 달해 그만 망가진 손을 내려쳤다.

반사적으로 시선이 손을 향했고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팔···. 팔이 변하고 있어.'


뜯어진 살점 주위로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팔이 보였다.

그러자 공원에서 온몸이 검게 변하던 경찰관이 떠올랐다.

놈에게 물린 뒤 급격하게 피부색이 변하고, 기괴하게 몸을 꺾던 그 모습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죽더라도 인간답게 죽고 싶었다.

덜컥 겁이 난 나는 무언가 홀린 듯 주변을 뒤졌고, 신발장 옆 공구함에서 검은색 케이블 타이 한 뭉치를 발견했다.

그것을 죄다 꺼낸 뒤, 오른쪽 겨드랑이 안쪽에 케이블 타이를 급하게 묶었다.


찌익!


"크윽···!"


거친 호흡을 몇 번 내쉰 뒤 케이블 타이를 이를 악물고 잡아당겼다.

그러자 팔이 조여지면서 혈류가 압박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효과가 없는지 팔은 계속해서 검게 변하였고, 어느새 케이블타이로 묶어놓은 겨드랑이 안쪽까지 변하기 시작했다.

난 썩어가는 팔을 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제발 제발 제발!'


속으로 연신 되뇌며 케이블타이를 악착같이 잡아당겼다.

살갗이 벗겨졌고 진물이 흘러나왔다.

짓이긴 입술에서는 피가 흐르는지 쇠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죽을힘을 다해 당겼고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한참이 지났다.

눈을 뜨자 썩어가던 팔은 케이블 타이가 위치한 곳에서 정확하게 멈춰 있었다.


조심스럽게 케이블 타이를 풀었다.

몇 분 동안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더 이상의 변색은 없었고 오른쪽 팔에서는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몸이 서서히 뜨거워지더니 순식간에 호흡이 가빠졌다.


"하···."


이마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마치 열병에 걸린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진다.

눈앞은 아지랑이가 잔뜩 피어올랐고 세상은 온통 노랗게 보였다.

결국 난 주춤거리다 거실 한복판에 쓰러졌다.


"누리야···."


가쁜 숨을 내쉬며 누리를 불러본다.

떠졌다 감기기를 반복하는 내 시야에서 어느새 낑낑거리며 내 주변을 맴도는 누리가 보였다.

헛것을 보는 건가?

상관없다. 난 그런 누리라도 만지기 위해 손을 뻗었고 누리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내 품으로 들어온 누리를 껴안으려 할 때 쯤.

내 시야는 필라멘트가 꺼지듯 그대로 암전되었다.

그리고 끝없는 늪으로 빠져들어 갔다.


***


투둑투둑!


그날은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난 노란 우비를 쓰고 품 안에 인절미 한 마리를 안고 있는 김 씨 아저씨와 마주했다.


"되게 귀엽네요."

"그럼 당연하지, 이놈이 순종이라서 원래는 엄청 비싸."


"순종 확실해요? 뭐 구별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믿음으로 가는 거지 믿음으로."


"흠···."

"어휴, 가져가기 싫음 말어. 나도 그냥 주기 아까워."


손사래를 치며 품 안에 있는 인절미를 도로 차에 집어넣으려는 김 씨 아저씨.

난 그런 아저씨의 팔을 잽싸게 붙잡으며 품 안에 있는 인절미를 재빠르게 낚아챘다.


"아니 싫은 게 아니고 궁금해서 그랬죠. 제가 키울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이제 앞으로 자네 혼자 극복해야 할 텐데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어요."

"그래도 아직 무리하면 안 된다. 가끔 힘들 때는 나 대신 요 녀석이 널 챙겨준다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그래, 그동안 여기서 지내고 나 돕느라 욕봤다."


난 고개를 숙여 김 씨 아저씨한테 인사한 뒤 인절미를 보았다.

해맑게 웃고 있는 녀석을 보며 난 말 없이 쓰다듬었다.


"그래서 이름은 뭐로 하려고?"

"이름은···."


세상이 점점 어두워진다.

땅이 무너지자 부유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끝없이 추락한다.

그렇게 또 한 번 필라멘트가 꺼지며 세상이 어두워졌다.


"누리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곧바로 몸을 반쯤 일으킨 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리를 찾았다.

하지만 역시 없었다.


'그래, 있을 리 가 없지.'


쓰러지기 전 내가 본 누리는 결국 허상에 불과했다.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었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현실을 자각한다.


'팔은 멀쩡한가?'


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바로 녀석에게 뜯긴 내 팔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

난 재빨리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한쪽 눈을 찡그린 채 내 오른쪽 팔을 조심스럽게 돌려보았다.


"응?"


뭐지?

말 그대로 뭐지였다.

부패하고 썩어 문드러진 팔은 모습을 감추었고 오히려 생기가 가득한 팔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상황.

난 이 모든 것이 꿈의 연속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바닥 곳곳에 흩뿌려졌던 검붉은 피는 어느새 짙은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살기 위해 악착같이 잡아당긴 케이블 타이는 신발장 한구석에 어지러이 놓여있었다.

확실히 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이라는 것인가?

전혀 감흥이 오질 않는다.

민석이는 정말 죽은 걸까? 누리는 아직 살아있을까? 그리고 놈들은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설마 영화, 게임, 소설 속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바로 그 '좀비'일까?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하니 뭣하나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다.

뭐 상관없다.

이제 와서 그딴 것들은 내게 중요치 않다.


'슬슬 가볼까?'


머릿속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 피비린내가 불어오는 베란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난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좀비가 되지 않고 인간답게 죽을 수 있게 되었다.

이성을 잃은 채 인간을 죽이거나 인간에게 죽을 일 또한 없어졌다.

그리고 이기적일지도 모르지만, 난 마지막까지 누리를 생각하며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경치 좋네."


말도 안 되는 광경에 헛웃음이 픽하고 튀어나왔다.

길가에 수 놓인 핏자국,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잔뜩 토막 난 시체들, 그리고 곳곳에서 크고 작은 화재와 그 사이로 올라오는 검은 연기가 보였다.

그리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좀비들까지.

마치 세상이 나를 향해 '아포칼립스에 온 걸 환영해'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생각보다 많이 낮구나."


베란다 펜스에 몸을 기댄 채 밑을 내려다보았다.

생각보다 터무니없는 높이였다.

죽기는커녕 운 안 좋으면 반 병신이 된 채 살아남아 녀석들에게 물려 좀비가 될 가능성이 컸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해 질 녘, 붉은 태양 아래 음산하게 울부짖는 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훑고 지나갔다.

그 안에 섞여 있는 메케한 가스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난 그것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


잡고 있는 펜스를 밀어내며 생각했다.

그래, 차라리 목을 매달자.

집안을 뒤져 의자 하나를 거실에 세워두고 밧줄 하나를 천장에 매달아 고정했다.


의자 위로 천천히 올라간다.

밧줄을 목에 걸고 핏빛으로 물들어 가는 베란다 밖의 노을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엿 같은 인생이었다."


마지막 숨을 내쉰다.

마음속 깊이 채워진 족쇄를 서서히 풀어낸다.

날 괴롭히던 죄책감이라는 악마를 향해 중지를 힘껏 날려준다.


발끝으로 천천히 의자를 밀어낸다.

스쳐 지나갔던 누리와의 행복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은 누리의 꼬순내처럼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멍! 멍!


"허···!"


누리가 짖는 소리에 숨이 덜컥 막혀왔다.

눈은 자동으로 떠졌으며 시선은 곧장 베란다로 향했다.


환청인가?

역시나 기괴하게 생긴 놈들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열에 쓰러지기 전 헛것을 본 것처럼 이제는 누리가 짖는 소리까지 들리는구나.


'누리야 걱정 마, 형 곧 따라갈게.'


멍 멍!


또 한 번 들려오는 울부짖음에 난 밧줄을 걷어내고 베란다로 뛰어갔다.

환청이 아니다.

분명 누리가 날 부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디야? 어딨는 거야?"


난 미친놈처럼 정신없이 눈알을 굴렸다.

하지만 빌라 전체를 이 잡듯이 훑어보아도 좀비 새끼들 말고는 당체 보이는 게 없었다.

그렇게 불안감과 다급함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멍! 멍!


상가 옆 사거리.

공업사 바깥쪽에 주차된 포터 차량 근처에서 인절미 한 마리가 짖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뒤로는 한 여성이 좀비 무리에 쫓기고 있었고 이윽고 인절미와 함께 공업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살아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보는 순간 저 인절미는 누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생김새부터 짖는 소리 그리고 체형까지, 나만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누리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눈앞이 흐려졌다.

뜨거운 액체가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난 눈물을 닦아내며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 옆에 있는 검은 가방을 집어 들었다.


'서두르자.'


시간이 없다.

일분일초가 골든 타임이며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급해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식량부터 챙기기로 했다.

우선 평소에 비싸서 자주 못 주던 고급 사료 통조림을 가득 담았다.

만나면 다 못 먹었을 정도로 배 터지게 먹여줄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살아만 있어···.'


그다음엔 생수 세 통과 에너지바, 그리고 각종 초콜릿을 전부 담았다.

무게를 최소화 하기 위해 열량이 높은 제품들로만 우선하였다.

뒤이어 베란다 창고로 뛰어갔다.


끼익···!


"널 다시 볼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창고를 열자 서늘한 공기와 함께 습한 냄새가 코청을 뚫고 들어왔다.

안쪽 깊숙이 먼지가 수북이 쌓인 검은색 알루미늄 배트가 보였다.

난 그것을 꺼낸 뒤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내었다.

그리고 배트 손잡이 부분을 빨간색 배트 테이프로 돌려 말았다.


찌익!


가방을 메고 배트를 강하게 말아 쥐어본다.

나쁘지 않은 감각.

크게 심호흡을 내쉬며 신발장으로 걸어갔다.


지옥이 된 세상에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 하나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희망이 존재하는 한, 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갈 것이다.


"누리야. 난 너만 있음 뭐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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