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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 하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경계선
작품등록일 :
2020.09.16 11:37
최근연재일 :
2020.09.22 12:55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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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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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31

작성
20.09.1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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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독립

DUMMY

팀장 아저씨의 도움으로 미호와 둘이살 방두칸짜리 작은 오피스텔을 얻을 수 있었다. 아저씨께서 당분간의 생활비도 빌려주시기로 했다. 처음에는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지만 더는 과하다고 생각해 성인이 되면 꼭 갚기로 약속드렸다.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는지 궁금해서 아저씨에게 물은 적이 있다.


“너희에게 너무 면목이 없지만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에는 나의 책임이 크단다. 너희 어머니가 그렇게 힘들게 너희를 키우게 된 것도 너희가 아버지 없이 자란 것도. 다 내 탓이다. 속죄가 될 수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려고 하는 아저씨의 이기적인 마음을 이해해다오.”


브라질에서 전시회가 있었다고 하셨다. 팀장인 본인이 참가하기로 되어있던 전시였으나 갑자기 아들의 지병이 심해져 아저씨를 대신해 우리 아버지가 참가했다고 하셨다. 전시회가 끝난후 호텔로 돌아오던 아버지의 택시에 강도가 들었고 총에 맞은 아버지는 그렇게 타지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한 가정이 본인 때문에 남편, 아버지를 졸지에 잃게 했다는 죄책감이 항상 있었다고 하셨다.


“아저씨 잘못이 아니에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 알고 있을 겁니다.”


어머니마저 그렇게 갈 줄 몰랐다며 제대로 속죄도 하지 못했다고 한참을 우셨다. 좋은 사람이다.


***


산다는 것은 불가피하게도 돈이란 것과는 때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특히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더욱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경제적인 것만 해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고 스스로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힘을 길러준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모의 역활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보니 어머니가 더욱이 존경스럽고 그리웠다.


“미호야 밥 먹자. 학교 가야지.”

“미호 당근 싫어!”

“편식하면 안 돼. 한 번만 먹어봐.”

“알았어. 한 번만 먹을 거야.”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끝까지 안 먹겠다고 고집을 부렸을 텐데 왠지 마음이 짠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미호가 볶음밥에 들어있던 당근을 먹었다.


“어?”


미호가 한 번 더 당근을 먹었다.


“오빠, 당근이 왜 맛있지?”


첫 번째로 먹는 것.

건강히 잘 자라려면 편식하지 않고 영양소를 골고루 잘 섭취 해야 한다. 내 인생에서 요리란 메를린 대륙에서 노숙할 때 사냥한 고기를 구워 먹는 게 다였지만 에테르를 사용한다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모든 생명은 고유에 에테르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재료의 에테르를 북돋아서 더욱 신선하고 맛있고 영양소가 풍부하게도 만들 수 있었다. 막말로 도라지가 산삼의 효능을 내게끔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빠, 밥 더 줘!”

“미호야, 네 그릇 째야. 너 배 터질 것 같아.”


배만 볼록하게 튀어나온 미호는 마치 두꺼비 같았다. 식비가 많이 들 것 같지만 일단 먹이는 것은 해결이 된 것 같다.


두 번째로 교육.

이제 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게 당연시되는 풍토는 많이 사라졌지만, 무엇이 본인에게 맞는지 알려면 다양하게 접해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학원을 보낼 형편은 안되니 내가 공부해서 가르치는 수밖에 없었다. 뇌를 에테르로 풀가동 시켜 미호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 플랜을 짰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미호의 뇌를 어느정도 활성화해줄 수도 있었다.


“미호야 수학 공부하자!”

“싫어 미호 놀 거야. 수학 어려워!”

“30분만 응? 미호 착하지.”

“30분 만이야.”


문제를 풀고있는 미호의 뇌를 에테르를 움직여 활성화해줬다.


“오빠, 이게 왜 맞지?”

“자 이것도 풀어봐.”

“어 또 맞네? 신기하네?”

“재밌지? 그럼 우리 30분만 더할까?”

“그건 안돼.”


일단 시작은 나쁘지 않다. 뭐든지 한 번에 바꿀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세 번째로 건강.

내가 평생 미호 옆에 24시간 붙어 있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처럼 불의의 사고로 미호도 보낼 수는 없었기에 어떤 위험 상황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는 강인한 신체를 만들어줄 생각이다.


“미호야 오빠랑 태권도장에서 많이 하던 잡기 놀이 할까?”

“미호 이제 어린애 아니야! 이제 고학년이라고!”


그러면서 미호가 달려들었다. 머리를 제법 쓸 줄 알았다. 그렇다고 잡혀줄 내가 아니지만.


“항상 어떻게 피하는 거야!”


계속해서 달려드는 미호의 몸에 에테르를 불어넣어 몸을 강화했다. 미호는 느끼지 못했겠지만, 일반인의 눈으로 봤을 때 순간적으로 사라진다고 느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파삭!


“오빠 의자가 부서졌어...? 근데 미호 몸은 안 아파.”


훈련은 역시 밖에서 하는 게 좋겠다.


마지막으로 돈.

이것만큼은 도저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구해보려 했지만,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저씨가 빌려준 돈이 떨어지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 했다.


***


오늘도 돈을 어떻게 해결 할까 고민을 하며 집을 나섰다. 고등학생이 되면 자퇴 후 일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오늘도 어쩔 수 없이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깐춀, 학교 갑니꽈?”

“어··· 존 안녕. 출근하는 거야?”

“존 아뉩니다. 존 횽님 입니돠.”


외국인 놈이 위아래를 따진다.


미국에서 온 존은 옆집에 사는 이웃이다. 존은 영어 유치원에서 선생님 일을 하고 있었다. 케이팝 덕후인 존은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꼭 살아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지만 내가 봤을 땐 순전히 아이돌이 좋아서 온 게 분명했다. 존은 그중에서도 블랙펑크라는 그룹을 가장 좋아했다.


“내 타이어에 펑크를 뚜루뚜루뚜러.”

“존, 쪽팔리니까 내 옆에서 노래 부르지 마.”


나의 감성으로는 요새 노래 가사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래도 존은 다른 외국인과는 다르게 한국어를 정말 열심히 배우는 것 같았다. 나날이 일취월장하는 것을 보니 기특하기도 했다.


“존 바이!”

“존 횽님, 안뇽히카세요 입니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로 뛰어갔다.


***


중학교 생활은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중학교가 초등학교와 조금 다른 점은 애들이 좀 더 영악해지고 신분을 나누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없다는 것은 그중에서도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돈 벌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 내 머리 위로 무언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재빨리 피한 나는 원인 제공자를 쳐다봤다.


“뭘 봐? 눈 안 깔아? 너 고아 새끼라며?”


먹고 살기도 힘든데 이 가소로운 것들을 일일이 상대해줄 마음은 없었다. 조용히 그 녀석 책상으로 다가갔다. 반 전체가 흥미로운 듯이 이 일을 주목하고 있었다.


“뭐야? 한판 붙자는 거야?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내가 바로 벽산초 짱이야!”


조용히 그 녀석의 철제 필통을 한 손으로 구겨줬다.


“그래서?”


동전만 하게 구겨진 필통을 보던 아이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벽산초 짱은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중학교란 아직은 순수한 힘의 논리가 통하는 곳이다.


***


등굣길에도 봤던 존이 하굣길에도 보였다. 그런데 고등학생 정도로 돼 보이는 여러 학생과 같이 있었다. 유치원생들을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친구들인가보다. 별 생각 없이 존과 그 무리를 지나치려던 찰나 존이 나를 불렀다.


“깐춀, 여기 나푼놈들 입니돠. 깐춀 경촬 불러!”

“뭐야 저 애새끼는? 네 친구야? 저 새끼도 잡아.”


언뜻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지 않았으나 학생무리 몇 명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야 조용히 따라와.”

“싫은데요.”

“깐춀, 빨뤼 도망과. 경촬 불러!”


내가 도망칠까 봐 다급했는지 한 녀석이 내 어깨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가볍게 뻗어오는 손을 낚아채 한 바퀴를 돌려서 중력의 법칙을 몸에 새겨줬다.


“이 새끼 뭐야?”


옆에 있던 녀석들이 주먹을 휘둘렀다. 슬쩍 피한 후 복부에 한 놈씩 주먹을 먹여주었다. 순식간에 3명이 쓰러지자 나머지 녀석들도 다 같이 달려들었다. 오늘 왜 이렇게 귀찮게 하는 녀석들이 많은지 일진이 좋지 않은 듯싶다.


“야 저 새끼 조져!”


추가로 달려오던 5명의 덩어리도 가뿐히 쓰러뜨린 후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에게 말했다.


“귀찮게 하지 마라.”

“어린 새끼가. 죽고 싶어?”


대장 녀석이 떨리는 손으로 커터칼을 꺼내 들었다. 무기를 꺼냈다는 것은 주먹질과는 그 의미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죽이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무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너 피똥 싼다?”


대장 녀석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휘두르는 손등을 때려서 칼을 놓치게 한 뒤 떨어지는 칼을 낚아채 녀석에 목에 갖다 댔다. 약간에 살기까지 흘려주자 대장 녀석이 바들바들 떨며 바지에 오줌을 지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유난히 지리는 놈들도 많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또 눈에 띄면 죽는다. 알았어?”

“네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꺼져.”


녀석들은 부리나케 뛰어갔다. 존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깐춀! 슈퍼 히어로다! 어메이징! 구게 바로 태권도 인과?”

“존, 그 녀석들한테 왜 잡혀 있던거야?”

“나푼놈들! 나 노래 불렀다. 블랙펑크를 모욕했다! 내가 따쥐니까 나 때룟다! 그리고 존 횽님이다.”


‘블랙펑크가 아니라 널 모욕한게 아닐까?’라는 말을 할까했지만 더 힘 쏫고 싶지 않았다. 오늘 일진이 안 좋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갔다.


“깐춀! 가치가자!”


그 후로 존은 한동안 슈퍼히어로라며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사람들의 이목이 쪽팔린 나는 한동안 존을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늦은 시간 존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깐춀, 할말이 있돠.”

“이 밤에 무슨 일이야?”

“깐춀, 나 태권도 가르쳐줘라.”

“밤늦게 웬 개소리야.”

“나 개소리 아뉘다! 그리고 횽님한테 욕하는거 아뉘다!”


이사를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존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눈빛 만은 무엇보다 진지했다. 문득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배우려고? 블랙펑크를 모욕한 사람들 패주기라도 하게?”

“농담아뉘다! 나는 싸움 시로한다. 강해지고 싶다. 날 바꾸고 싶다.”


존의 말에 문득 용병단의 돌격대장이었던 알렉스를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올랐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변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유약한 자신 때문에 누이가 힘든 상황에 처했다고 했다. 누이를 지키기 위해 강해지고 싶다고 하던 녀석이었다. 벌써 오래전의 추억으로 한동안 잊고 지내던 기억이다. 알렉스와 닮은 존의 눈빛에 아련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존과의 인연을 맺을 생각은 없었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이번 생은 남의 인생에 신경 쓰지 않기로 하지 않았던가.


“싫어.”

“컴온 깐춀! 우리 이웃이다. 한쿡에서 이웃 돕는다. 동빵예이지국이다.”


나날이 늘어가는 어휘력이 놀랍다. 바로 옆집이니 거절해도 이렇게 계속 괴롭힐 게 불 보듯 뻔하다.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존은 못 해. 그렇게 약한 몸으로 버틸 수 없어.”

“깐춀, 나 다 할 수 있다. 진짜다.”

“그래? 도중에 관두면 다시는 이런 얘기 하지 않는 거다?”

“약속한돠!”


예상과는 다르게 존은 악착같이 버텼다. 케이팝 덕후로 굳어진 첫인상과 다르게 필사적이었다. 좋은 꼬투리를 잡아야 하는데 선 채로 기절할 때까지 버티는 존을 보니 마땅한 핑계거리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던 차에 존이 나에게 쭈뼛거리며 찾아왔다. 느낌이 왔다.


‘그래, 이만큼 버틴 것도 잘한 거다.’


채한게 쑥 내려가는 상쾌한 기분이었다. 방긋 웃으며 존을 반겼다.


“존, 안녕! 무슨 일 있어? 편하게 말해 편하게.”

“깐춀. 오늘만 트레이닝 멈춘다.”

“안돼. 그러면 존이 포기하는 거야.”

“아니다. 존 포기 안 한다. 알바가 밀렸다. 곤난하다.”

“알바? 무슨 알바?”

“번역 알바 한다. 며칠 동안 계속 못 했다. 내일까지 해야 한다. 시간 없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존, 내가 도와줄까?”

“깐춀, 영어 못한다.”

“쉣더퍽.”

“와우 어메이징!”


경제적인 부분을 어떻게 해결 할지 약간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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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하고 싶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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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주기 및 작가의 말 20.09.16 108 0 -
11 먹잇감(2) +1 20.09.22 84 3 13쪽
10 먹잇감 20.09.21 74 1 12쪽
9 첫 친구 +1 20.09.20 90 3 12쪽
8 아이 이길 바랬다 +1 20.09.20 100 1 14쪽
7 조밥이야 20.09.19 102 1 13쪽
6 넌 뭐야? +1 20.09.18 119 2 13쪽
» 독립 20.09.17 111 0 13쪽
4 나의 어머니 +2 20.09.17 122 2 13쪽
3 가족이란? +2 20.09.16 130 2 12쪽
2 백수 하고 싶다 20.09.16 142 2 12쪽
1 프롤로그 +1 20.09.16 18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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