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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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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작품등록일 :
2020.09.16 11:37
최근연재일 :
2020.09.22 12:55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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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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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수 :
62,731

작성
20.09.1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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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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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가족이란?

DUMMY

가족이란 무엇일까?

같이 사는 사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 메를린 대륙에선 생계를 위해 자식을 팔거나 나이 든 부모를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나와 같은 전쟁고아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몬스터, 도적, 해적 등 사람의 삶을 위협하는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있었다.


그런 세상에서 온전한 가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전생에 가족이 없었던 나는 더욱더 가족이라는 것이 잘 와닿지는 않았다. 그나마 나의 삶에서 가족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면 목숨 걸고 함께 싸운 동료들이나 나를 믿고 따르던 내 용병단 녀석들 정도일 듯 하다.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 중에는 정신적인 문제도 있었다. 실제로 살아온 기간을 따지자면 어머니도 내 딸뻘 정도일 것이다. 미호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마음먹으면 할 수도 있겠으나 정상적으로 5살짜리가 독립할 수 있는 길은 적어도 이 대한민국에서는 가능하진 않아 보였다. 지금은 이 울타리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그렇다. 필요로 인해 유지되는 관계. 나에겐 딱 그 정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가지 문제점이 생겼다. 나만의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어머니가 있을 땐 이제 능숙하게 걸을 수 있는 나와 미호를 데리고 시간만 나면 어딘가를 계속 데리고 다녔다. 5초마다 사진을 찍어 대는 어머니 때문에 딴짓을 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가 출근하시거나 출장을 가게 되면 이모에게 맡겨지지만 놀아달라고 칭얼대는 사촌 수철이와 미호때문에 TV 볼 시간도 부족했다.


“오빠!”


와다다다다!


“제발 뛰어오지 마!”


잘 먹어서 그런지 부쩍 힘이 좋아진 미호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지 뛰어다니면서 몸통 박치기 하는게 취미다. 문제는 수철이도 같이 뛴다는 거다. 아이들이란 무리 생활을 하는 짐승과 다를게 없었다.


“형아!”


와다다다다!


이 사고뭉치들을 놔두고 이모는 태평하게 낮잠을 주무시고 계신다. 다른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일도 일어나는데 왜 시간이 빨리 가게 할 순 없는 걸까. 요즘 혼돈을 상대하던 시절이 그리워 질 때가 가끔 있었다. 그나마 모두가 잠든 후에는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생활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빨리 밤이 되면 좋겠다.


***


오늘은 내 6번째 생일날이다. 어머니는 생일파티를 준비한다며 정신이 없었다. 문제는 어머니께서 바쁘시면 미호는 나에게 온다는 것이다.


“오빠, 공룡 놀이 하자. 키야야야약!”


미호는 또래 여자 아이와는 다르게 공룡을 참 좋아했다.


“공룡은 이제 없어.”


사전에 단호하게 차단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여지를 보이면 포기를 모른다는 것이 어떤 건지 진정 알 수 있다. 그런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미호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공룡모형을 들이밀며 얘기했다.


“아니야 여기 이렇게 살아 있잖아! 인사해 얘는 조밥이야."

“미호야, 그게 아니고 조바리아야.”

“나도 알아! 조밥이야"

“조! 바! 리! 아!”

“조! 밥! 이! 야!”


그냥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고아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요새 부쩍 자주 한다. 그래도 어머니와 같이 있으면 항상 어머니만 찾던 아이였는데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서인지 요새 부쩍 나를 잘 따라다니는 미호를 보면 귀찮으면서도 왠지 모를 뿌듯함 같은 것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오빠! 조밥이야는 날 수도 있어. 봐봐 오빠 잡아먹으려고 날아간다! 크아아아앙!”


미호가 나에게 조바리아를 집어 던졌다.


“미호야, 얘는 날개 없는 초식공룡이야···”


날 사냥감으로 생각해서 따라다녔던 것 같다. 뿌듯하다는 말은 취소다.


생일 파티 준비가 끝났는지 어머니께서 케이크를 들고나오셨다.


“생일 축하해 아들! 촛불 꺼야지.”

“후~”

“미호야, 오빠가 꺼야지. 미호는 미호 생일날 하자 알았지?”

“빨리 꺼야 케이크 먹을 수 있잖아.”


메를린 대륙에선 내가 태어난 날이 언제인지도 몰랐었는데 이렇게 매번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작년 생일에 생일선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얘기했다가 어머니가 한동안 매일 밤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고선 올해는 어린아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이 뭔지 열심히 공부했다. 내 반응을 잔뜩 기대하시는 눈치인 어머니를 보니 리액션을 잘 해줘야만 될 것 같다.


“아들 눈 꼭 감고 소원 빌어.”


눈을 감았다가 떠주니 어느새 어머니가 내 선물을 앞에 가져다 두셨다.


“짜잔! 아들이 갖고 싶어 하던 로봇 장난감이야!”

“와아, 정말 기뻐요”

“아들, 그런 말은 웃으면서 해야지···”


그날 밤 어머니는 또 우셨다.

선물의 종류가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가족생활은 참 힘들다.


***


어머니는 이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의료기기 회사의 해외 영업팀 차장이 되셨다. 넓은 세상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보니 어머니도 식견이 높은 편이셨다. 그래서 그런지 교육에도 관심이 너무 많으셨다. 너무. 뛰어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피곤한 법이라고 하더니 맞는 말이다.


수학, 영어, 국어, 컴퓨터, 피아노, 태권도, 미술 이제 7살인 나와 6살인 미호가 기본적으로 다니는 학원만 해도 무려 7개나 된다. 문제는 내 수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게다가 학원에는 미호 또래의 애들이 수십 명씩이나 있었다. 사촌 수철이랑 미호 둘을 상대하는 것도 힘든데 그런 애들이 무더기로 있는 것이다.


“오빠! 뒤차기를 받아라!”


미호가 또 달려든다. 간단히 피해줬다. 헛발질을 한 미호는 약이 올랐는지 태권도장 전체를 누비며 뒤차기를 맞추려 들었다. 문제는 계속 피하는 내가 신기했는지 다른 아이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강철이 잡자! 와아아아아아!”


무슨 수를 내야 한다. 이번 생은 다른 의미로 너무 힘들다. 성인이 돼서 독립하면 다 괜찮아지겠지? 나의 꿈, 포기하지 않을 거다.


한번은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묘안을 생각해 낸 적이 있었다. 내가 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는 수준이란 걸 보여주면 어머니도 굳이 학원에 보내지 않으려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와유 마더?"


그래서 어머니에게 영어로 대화를 걸었다. 10년을 넘게 해외 영업을 하는 본인보다 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나를 보신 어머니는 영어 학원을 보내지 않았다. 내 계획이 적중한 것이다. 어떻게 다른 것들도 증명할지 고민을 하던 나날 중 어머니가 처음 보는 사람을 집에 데리고 오셨다.


“우리 천재 아들 강철! 영어신문 읽고 있었어? 누굴 닮아서 이렇게 똑똑해? 당연히 엄마 닮았지?”


평소보다 굉장히 들떠 계셨다. 느낌이 좋지 않다.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바르게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이 어린아이의 소양이라고 배웠다.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친구분이신지요?”

“안녕, 똘똘하게 생겼네. 네가 강철이구나. 어머님, 아드님이 참 어른스럽네요.”

“저희 아들이 천재다 보니 조숙한 면이 좀 있어요 호호호.”

“강철아, 나는 영재발굴단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작가 이모야. 영재발굴단 알지?”


망했다.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 굴로 들어왔다. 인생이 꼬일 수 있었다.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강철이가 그렇게 영어를 잘한다면서? 이모한테 들려줄 수 있을까?”

“강철아, 엄마한테 말했듯이 편하게 말하면 돼.”


두 쌍의 눈이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메를린 대륙을 멸망시키려고 했던 혼돈의 기운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어머니에게 미안하지만, 방송에 나가서 주목을 받는 일만은 피해야 했다.


“A 애플, B 바나나, C 켓, D 도그, F fxxk···”


어머니가 많이 초조해 보였다.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강철아, 엄마하고 했던 대화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해봐!”


작가 이모의 눈빛이 약간 의심스럽게 변했다.


“아임 어 보이, 유아 어 걸. 마더 파더 젠틀맨.”


작가 이모는 그러면 그렇지라는 눈빛으로 어머니를 쳐다봤다.


“그러면 그렇지··· 이번 달만 몇 번째 헛걸음인지.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니 작가님··· 그게 아니라···”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이 천재처럼 보인다고 했다. 어머니를 그들 중 한 명으로 만들어 드렸다.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강철아 왜 그랬어? 분명 엄마랑 있을땐 잘했잖아.”


나는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대답하지 않았다.


“김강철! 말을 해봐!”


어머니는 화가 나신 듯 했다. 한참을 침묵 속에 나를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기 시작했다.


“강철아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화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니야 강철아, 강철이가 싫은 건 하지 않아도 돼.”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사죄의 의미로 독립한 후에도 한 번씩은 어머니를 보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나는 학원이라는 지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좋은 세상이란 건 없는 모양이다.


***


사람이 왜 그때가 좋았지라며 과거를 추억하는지 아는가? 정말 그때가 더 좋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들어오니 야생 본능이 아직 남아있는 짐승무리가 수백 명씩 있었다. 수업 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 가릴 것 없이 혼돈의 카오스를 방불 캐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인 게 틀림없다.


“강철이 어머님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무엇 때문에 저를 보자고 하셨나요? 혹시 강철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어머니를 부르셨다.


“아니에요. 어머님. 문제라기보다는 논의를 드릴 것이 있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논의요?”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강철이 시험 점수 평균이 82점입니다.”

“네 저도 그건 알고 있어요, 높은 점수는 아니지만, 수업은 잘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벌써 강철이에게 공부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는 않아서요.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그게··· 모든 과목이 정확히 각각 82점이에요. 마치 일부로 그런 것처럼요...”

“우연...이지 않을까요?”

“1년 내도록 매 시험이 똑같습니다.”

“네?”

“저도 처음엔 잘 몰랐는데 강철이 생활기록부를 기록하다 보니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어머니와 선생님이 나를 쳐다봤다. 저번 영재발굴단 사건 이후로 절대 과한 능력을 보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건 적당히.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알아채다니 역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을 버티고 있을 만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강철아?”


어머니가 해명해보라는 듯 나를 쳐다보신다. 어리다는 것이 가끔은 좋은 무기가 되기도 할 때가 있었다. 이럴 땐 적당히 어린아이인 척하는 것이 가장 좋다.


“강철이는 모르겠다요?”

“문제가 확실히 있는 것 같네요. 선생님, 강철이는 제가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어머님. 강철이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요.”


무엇이 문제였을까. 요새 완벽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많이 빗나가는 것 같다. 인생이란 살아도 살아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온 후 어머니는 나를 앉혀두고 얘기하셨다.


“강철아, 엄마는 우리 강철이가 다른 아이와 다르게 어른스럽다는 것도 엄마가 시간을 같이 많이 보내주지 못해서 엄마한테 비밀이 많은 것도 알고 있어. 부족한 엄마라서 항상 미안해. 엄마는 강철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항상 강철이를 믿어줄 거야. 왜 그랬는지는 더 묻지 않을게 대신 강철이가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다 말해야 해 알겠지?”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준다는 것. 살면서 잘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왠지 마음 한쪽이 간질거리는 것 같다.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우리 강철이 말투로 돌아왔네.”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54
    작성일
    20.09.16 12:49
    No. 1

    추천했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개스바
    작성일
    20.09.20 16:43
    No. 2

    그래도 다른소설이였으면 반지하 단칸방에 살면서 어머니는 식당일하시며 하루벌어 사는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이건 어머니가 능력이 좋아서 재미있네요 ㅋ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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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하고 싶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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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주기 및 작가의 말 20.09.16 108 0 -
11 먹잇감(2) +1 20.09.22 84 3 13쪽
10 먹잇감 20.09.21 74 1 12쪽
9 첫 친구 +1 20.09.20 90 3 12쪽
8 아이 이길 바랬다 +1 20.09.20 100 1 14쪽
7 조밥이야 20.09.19 102 1 13쪽
6 넌 뭐야? +1 20.09.18 119 2 13쪽
5 독립 20.09.17 110 0 13쪽
4 나의 어머니 +2 20.09.17 122 2 13쪽
» 가족이란? +2 20.09.16 130 2 12쪽
2 백수 하고 싶다 20.09.16 142 2 12쪽
1 프롤로그 +1 20.09.16 18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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