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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 하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경계선
작품등록일 :
2020.09.16 11:37
최근연재일 :
2020.09.22 12:55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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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
추천수 :
19
글자수 :
62,731

작성
20.09.20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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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아이 이길 바랬다

DUMMY

이 인간 놈은 이상했다.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엄청난 힘을 다룰 수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힘이 있으면 쓰려고 하는 게 당연한 인간의 본성일 텐데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인다.


“강철. 너의 목적은 무엇인가? 세상의 정복? 대대로 군림할 위대한 나라를 세우는 것?”

“백수.”

“농담하지 마라. 큰 힘에는 큰 목표가 있는 법이다! 나한텐 사실대로 말해도 된다. 우리 계약한 사이다.”

“농담 아닌데. 부귀영화 그거 다 부질없는 거다. 백수 할 거야. 백수.”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럼 나는?”

“너는 뭐?”

“나는 언제까지 미호만 따라다니란 말인가?”

“싫으면 가. 내가 계약하자고 한 것도 아니잖아?”

“크아아아악! 치사하다!”


도대체 왜 난 그 긴 시간을 넘어 이런 놈에게 깨워졌을까? 그의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청아야. 내 마지막 부탁이다. 언젠가 너를 다시 깨우는 자가 나타나면 그자를 돕거라. 그러면 자연히 너의 사명도 알게 될 것이야.”


나같이 지고한 존재의 사명이 고작 애 돌보는 건 아닐 텐데 이대로라면 미래가 없었다. 마주한 현실은 처참했다.


“기가 필요하다뀨!”

“투정 부리기 없기다?”


녀석을 거부하기엔 저 녀석이 주는 기가 너무나 달콤했다. 마치 마약과 같았다.


“조밥이 대답해야지?”

“네 알겠습니다!”

“착하다. 많이 먹어.”

“히히히히힛!”


몰려오는 쾌감에 새어 나오는 나의 웃음소리. 자괴감이 몰려온다. 그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다시 잠들고 싶다.


***


조밥이 덕분에 미호의 안전에 대해선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내가 옆에 있기만 하다면 핵폭탄이 떨어져도 구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이날도 기쁜 마음으로 맞을 수 있었다.


“오빠 졸업 축하해!”

“강철아, 졸업 축하한다!”

드디어 내가 그렇게 바라던 중학교 졸업하는 날이 왔다. 부모님이 없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팀장 아저씨가 참석해 주셨다. 미호와 아저씨가 있으니 남 부러울 필요가 없었다.


“축하한다 강춀! 이제 중졸인가? 중졸과 고딩의 그 사이는 중간딩? 한국말 어렵다.”


존은 안 와도 됐을 텐데 요새 일이 없는 모양이다.


“강철아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될까?”

“그래. 나래야. 같이 찍자.”

“난 수민인데.. 3년째 같은 반인데...”


마치 사인회를 방불케 했다. 사진을 찍으려고 선 줄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졸업하는 3학년뿐만 아니라 1, 2학년 후배들도 있었다.


“강철이가 인기가 많구나.”

“우리 오빠지만 잘생기긴 했죠.”

“미호도 점점 이뻐지는걸? 나중에 연예인 해도 되겠어.”

“아저씨 농담하지 마세요. 호호호"


날마다 에테르로 정화시켜준 미호의 몸은 말 그대로 노폐물 하나 없는 아기의 몸과 다를 바 없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뛰어난 두뇌, 운동으로 다져진 비율 좋고 탄탄한 몸매와 티 하나 없이 하얀 아기 피부를 가지고 있는 미호는 이미 중학교에서 남자아이들에게 여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미호야! 안녕. 나야 나. 2학년 2반 서현주. 우리 베프 잖아! 그렇지?”

“누구...?”

“저번에 계단에서 한번 마주쳤잖아. 이거 너희 오빠한테 꼭 전달해줘. 부탁할게. 알았지?”

“그··· 그래···”


여자아이들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미호를 거스르지 못하는 듯했다. 이미 이 중학교는 미호의 손바닥 위에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 인생 마지막 하교를 시작했다.


***


백수가 되기로 마음 먹은 후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놀고먹는다. 이중 먹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뭘 하면서 놀아야 행복지수가 높은 백수가 될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해 봤다. 지금까지는 미호를 키우느라 바빠서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지만, 중학교를 졸업함으로써 상당한 여유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내 버킷리스트 중 한 가지를 해 볼 생각이다.


띵동~


“안녕하세요. 주식회사 드리머 입니다.”


내 생에 가장 설레는 순간 중에 손에 꼽힐 것 같다.


“어서 오세요. 많이 기다렸습니다.”

“캡슐 설치는 여기에 해드리면 될까요?”

“네 부탁드려요.”


이 세계에 와서 나의 흥미를 가장 끌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가상 현실 게임이었다. 그중에서도 ‘League of legendary’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League of legends’라는 게임의 포맷을 가상현실로 구현한 요즘 가장 핫한 게임이다.


이 게임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가상현실 게임은 진정한 가상현실이라고 부르기에는 모자란 감이 있었다. 하지만 2035년 혜성처럼 나타난 Dreamer라는 개발사에서 출시한 이 게임은 사용자의 뇌파를 이용해 거의 현실과 흡사한 세계를 구현했다고 평가받으며 순식간에 전 세계를 휩쓸어 버렸다.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내 시간을 가져도 괜찮잖아?”


부푼 마음으로 게임에 접속했다. 수백 가지의 챔피언들이 내 눈앞에 실물 크기로 등장했다.


“이야··· 진짜 현실감 있는데?”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더니 메를린 대륙에 이런 것이 있었다면 대륙의 돈이란 돈은 다 긁어모을 수 있었을 거다. 게임이 매칭되고 대기 화면으로 들어왔다.



-저 탑이요. 선탑!

-전 미드


너튜브로만 보던 게임이라 아직 적응되지 않았지만, 긴장감이 돌았다. 영상으로만 접하던 시절부터 나는 서포터라는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전장의 판도를 읽으며 싸움의 시작을 여는 선봉장의 역할이랄까. 수많은 전투를 지휘하던 나에게 딱 맞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미호오빠님은 어디 가실 거예요?

-서폿이요.


대망의 첫 게임, 이번 주의 무료 챔피언 중 하나인 발리스타를 선택했다. 소를 닮은 챔피언이었다.


[소환사의 협곡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싱크로율이 맞춰지며 협곡으로 소환되었다. 정말 내가 고른 챔피언과 한 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몸의 감각이며 크기까지 마치 한 마리의 들소가 된 기분이었다.


-음머어어어어어!

-트롤의 냄새가 나는데...


메를린 대륙에서 혼돈의 군대를 상대하던 그 비장한 마음으로 첫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처참히 무너졌다.


-우리 서폿 뇌도 소가 된 거 아니야?

-서폿차이 오진다 진짜.

-미호오빠님 오늘 저녁은 여물인가요?


분노가 차오른다.


-음머어어어어어어!


딱 2시간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임은 미호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나서야 끝났다.


“오빠 이거뭐야?”

“음머어어어. 아니... 미호야 벌써 왔어?”

“벌써라니 항상 오던 시간인데···”

“시간이 벌써···”


무시무시한 중독성이다. 주의해야겠다.


“오빠 또 게임하고 있었어?”

“오늘 밤 사냥을 나선다.”

“오빠 왜 그래?”

“어··· 미호야 벌써 왔어?”


이 맛에 백수를 하는 것일까? 한동안 이 생활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미호가 아니었다면 이번 생은 캡슐 안에서 끝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


***


학교를 그만 다니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번역일이 어느 정도 자리는 잡혔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지만 앞으로 미호에게 들어갈 돈만 해도 한두 푼이 아니었다. 대학 등록금은 물론이고 시집갈 때 집 한 채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나. 부모 없이 컸다는 말 듣게 하지 않으려면 좋은 옷도 입혀줘야 하고 친구들하고 어울릴 수 있도록 용돈도 넉넉히 줘야 했다.


또 번역일이란 게 항상 꾸준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언어의 영역을 늘려가고는 있지만,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어디에 소속되는 건 원하지 않았다. 바로바로 입금되고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수입도 적당한 일. 바로 노가다였다.


“안녕하세요. 구인 광고 보고 왔는데요.”

“어려 보이는데 몇 살이야?”

“17살입니다.”

“미성년자는 안 받아. 돌아가.”

“저 일 잘해요.”

“아저씨 말 들어. 뼈 상한다. 어린애들이 할 일이 아니야.”


말로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옆에 있던 40킬로 짜리 시멘트 포대 두 개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어···. 라?”

“저 힘 세요.”


그렇게 작업장 최연소 인부가 되었다. 노가다의 신이 강림했다며 아저씨들이 웅성거렸다.


“김 반장, 저 학생 정체가 뭐야? 어떻게 8시간을 쉴 새 없이 일했는데도 땀 한 방울 안흘려?”

“사람이 아닌데?”


가만히 앉아서 머리 써야 되는 번역 일에 비해 나에게 노가다란 높은 데서 경치도 좀 구경하고 걸어 다니면서 돈 버는 아주 꿀 같은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미호가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다.


“오빠 어디 갔다 와?”

“어 친구 좀 만나고 왔어.”

“오빠 친구 없잖아?”


미호가 뼈를 때렸다. 아직 미호는 내가 일 한다는 걸 몰랐다. 그런 거에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호도 우리가 단순히 어머니가 남겨주신 유산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빠도 친구 있어.”

“거짓말.”


이럴 땐 빠르게 화제를 전환해야 한다.


“미호 오늘 저녁은 미호가 좋아하는 오향장육 해줄까?”

“꺄!!!! 오빠 최고.”


미호는 먹는 거로 꼬시는 게 최고다.


“오빠 근데 왜 고등학교는 안가? 오빠 공부 잘하잖아.”

“오빠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그게 뭔데?”


오빠가 백수가 되겠다고하면 어린 미호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차마 지금은 미호에게 백수가 되겠다고 할 순 없었다. 먼 훗날 미호가 자리를 잡으면 그때 얘기할 생각이다.


“그런 게 있어. 미호는 아직 몰라도 돼.”

“치. 알았어. 오빠는 똑똑하니까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일은 잘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


“미호야 이거 봐봐. 이거 너희 오빠 아니야?”

“공사판 존잘남? 에이 우리 오빠가 왜 공사판에 있어. 아니야!”

“내가 우리 얼음 왕자님 얼굴도 몰라 볼 리 없잖아. 자세히 한번 봐봐.”

“음··· 우리 오빠랑 많이 닮았네? 여기가 어디야?”


오늘은 아주 기쁜 소식이 있었다. 반장 아저씨가 일을 잘한다며 시급을 1.5배를 쳐주겠다고 했다.


“강철아, 이거 정말 한꺼번에 다 들 수 있어?”

“그럼요. 문제없어요. 출발합니다.”

“강철아. 격투기 같은 거 해봐. 너 정도 힘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전 이게 좋아요. 그런 거 하면 방송에도 나가고 해야 하잖아요.”

“특이한 녀석일세."


인생이란 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다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만큼은 절대 사양이다.


"근데 요새 부쩍 공사장 주변에 여학생들이 많은 것 같네요.”

“카메라로 사진도 막 찍던데? 요새 젊은 애들은 이해를 못 하겠어.”


오늘도 꿀 알바를 마치고 정산을 하러 현장 사무소로 가고 있었다. 이렇게 날로 돈을 벌어도 되는지 약간 양심에 찔렸지만, 항상 정직하게 살 순 없잖는가. 좋은 게 좋은 거다.


“꺄아아아아 공사판 꽃미남! 진짜 잘생겼다.”

“안전모가 명품 같아...”

“오빠?”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결코 들리지 말아야 할 목소리가.


“미호야?”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미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저렇게 화난 모습의 미호는 처음이다. 이 사단을 나게 만든 조밥이 놈을 쏘아봤다.


“위험할 때만 알리라고 했잖아. 미호 안 위험하다.”

“조만간 네 인생이 위험해 질 것이다.”


복수를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오빠, 왜 공사판에서 일해?”

“그게···”

“고등학교 안 가는 것도 그것 때문이야?”

“미호야···”

“엄마가 남겨준 돈 많다고 했잖아!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나 때문에 고등학교 포기한 거야?”


미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자기 때문에 내가 진학도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미호야 그런 거 아니야 오빠 말을 좀 들어봐···”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비싼 운동화도 막 사고··· 맛있는 거 사달라고 조르고···”


그 후로 미호는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미호를 어떻게 달랠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빠 고등학교 안 가면 나도 안 갈 거야!”

“김미호!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공사판에서 일할 거야!”

"김미호!"


그때 존이 들어왔다. 존을 보니 미호가 그나마 번역 일 하는 걸 모르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미호. 눈이 빨갛다. 울었어?”

“존 오빠는 강철 오빠가 공사판에서 일하는 거 알고 있었어?”

“공사판? 노가다? 강춀, 돈 없어? 번역 일 많이 하잖아?”

“번역일? 오빠 번역일도 했어?”

“어... 음...”

“오빠 미워!”


미호는 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존 내가 미호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오마이갓··· 까먹었다.”

“모든 걸 영원히 까먹게 만들어 줄게. 실전이다.”

“강춀 잠깐만! 외국인 폭행이다! 끄아아아악!”


미호는 그날 내내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먹는 거로 꼬셔도 소용이 없었다. 안에서 흐느껴 우는 미호의 방앞에서 미호 때문이 아니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렇다고 오랫동안 얘기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다음 날 학교 갈 시간이 돼서야 미호는 방에서 나왔다.


“미호야 아침 먹고 가.”

“오빠 정말 나 때문에 그런 거 아니지?”

“당연하지! 언제 오빠가 미호한테 거짓말 한 적 있어?”

“알았어. 믿을게.”


그날 이후 미호는 어떤 것도 사달라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학창 시절 만큼은 이런 걱정 없이 아이처럼 자라길 바랐다. 나라는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투정도 부리고 심술도 부리길 바랐다. 이런 현실은 조금 더 큰 후에 생각하길 바랐다. 그렇게 미호는 철이 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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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하고 싶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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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주기 및 작가의 말 20.09.16 108 0 -
11 먹잇감(2) +1 20.09.22 83 3 13쪽
10 먹잇감 20.09.21 74 1 12쪽
9 첫 친구 +1 20.09.20 90 3 12쪽
» 아이 이길 바랬다 +1 20.09.20 100 1 14쪽
7 조밥이야 20.09.19 102 1 13쪽
6 넌 뭐야? +1 20.09.18 119 2 13쪽
5 독립 20.09.17 109 0 13쪽
4 나의 어머니 +2 20.09.17 122 2 13쪽
3 가족이란? +2 20.09.16 129 2 12쪽
2 백수 하고 싶다 20.09.16 142 2 12쪽
1 프롤로그 +1 20.09.16 17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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