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토끼정의 고로케

토끼정 단편집 1일 1선

웹소설 > 일반연재 > 중·단편

토끼정
작품등록일 :
2022.08.19 14:54
최근연재일 :
2022.09.19 00:19
연재수 :
3 회
조회수 :
84
추천수 :
0
글자수 :
16,186

작성
22.09.19 00:19
조회
21
추천
0
글자
10쪽

인가 받지 않은 마법 사용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DUMMY

야근... 야근... 야근이 있는 한 직장인의 삶은 늘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과 같다. 시간외수당이라도 잘 챙겨주면 모를까, '모두들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는 분위기'라는 회사의 대내외적인 캐치프라이즈 아래 다들 눈치를 보며 야근 수당 신청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까.


"으... 으으... 힘들어... 힘들다 힘들어... 왜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 하지...?"

"방금 뭐라고 했나, 이 대리?"

"헉! 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끙끙대며 중얼거린 혼잣말을 어떻게 알았는지, 과장이 귀신같은 얼굴을 파티션 너머로 빼꼼 내민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업무만 끝내고 잠깐 보자고... 할 말이 있으니까."

"모, 몰라요! 전 아무 것도 못 들었어요!"

"뭐?"


과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귀신 -> 저승사자 -> 염라대왕급으로 험악해지며, 그 입에서 폭포수 같은 폭언이 쏟아져나오려는 것을 나는 애써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무시했다. 과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것마저 뚫고 고막으로 파고드려해서, 나는 새우처럼 몸을 잔뜩 움츠리고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하지만 과장도 그 정도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는지, 고개를 푹 숙이는 바람에 드러난 내 뒷목을 향해 강력한 당수를 날리며 소리쳤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

"띠리리리리리리리!!"


눈을 크게 깜박인다. 그런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띠리리리리리!"


08:07... 눈앞의 붉은색 디지털 숫자들이 나를 향해 명멸하며 외치고 있다.

지금부터 서둘러도 지각이라고.


"으아아악!"


잠버릇으로 굴러다니다 뒷목을 침대 모서리에 부딪친 고통도 잊은 채,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다. 방금까지 새우처럼 웅크린 채 자고 있던 내 등에는 악몽 때문에 흘린 식은땀이 가득하다. 재빨리 잠옷과 속옷을 훌훌 벗어던진 뒤 칫솔을 입에 물고,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물의 쾌감을 느낄 새도 없이 온몸을 박박 문질러 씻는다.


"아~ 큿소, 악몽 때문에 늦잠을 자버리다니... 지고쿠 지고쿠~!"


최대 강도의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눈에 보이는대로 대충 옷을 걸친 뒤, 입에 물 토스트는 없지만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대사를 외치며 현관을 뛰쳐나간다. 소싯적에 100m를 15초에도 달렸던 나의 빠른 발을 방해하는 하이힐에 원망섞인 눈길을 한 번 보내고, 아슬아슬하게 엘리베이터를 잡아탄 뒤에야 눈길을 줄 수 있었던 스마트폰에 표시된 시간은 08:23. 출근길에 타야하는 버스와 지하철께서 칼 같이 도착해주시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 회사에 도착하는데는... 최소 40분이 필요하다.


'아악,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게 지각이잖아!!'


부왕 독살의 진실을 알고난 직후 클로디어스에 대한 복수를 결의하는 햄릿처럼 절규(소리없음)를 외친 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아... 쓸까? 딱 한 번만? 한 번이면 눈치 못 채지 않을까?'


물론 눈치 못 챌 리가 없다. 인가 받지 않은 마법 사용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니까. 갑자기 감찰부 본관 건물에 천재지변으로 인한 비상상황이라도 걸리지 않는 한, 사람도 많은 아침시간에 마법을 썼다간 1분도 안 걸려서 득달같이 쫓아온 감찰관들에게 구속당하고 말 것이다. '변명은 취조실에서 마저 듣지'라고 중얼거리며 나를 끌고가는 감찰관들의 서슬퍼런 눈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온다.


'괜히 팔자를 망치느니... 에휴, 그냥 지각하고 오늘 하루 종일 털리는 게 낫지.'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스산한 기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감찰관 특유의 푸른빛을 내는 마력의 흔적이 두 줄기의 꼬리를 그리며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결국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또 한 명의 불쌍한 중생이 잡혀가는구나. 나무아미타불.'


우리 동네에서만 저런 일이 일주일에 서너번은 발생하는 걸 보면, 전국적으로는 수많은 감찰관들이 불법 마법 사용자들을 감시하느라 불철주야 고생일 것이다.


'스무 살 때 감찰관 공채로 유혹하던 배불뚝이 아저씨 말을 흘려듣길 잘했지...'


일반인들 사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이 있다면, 마법계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야근에 시달려도 감찰관보다는 낫다.'

그렇게 10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격무에 시달리는 감찰관과 그들에게 끌려간 이름 모를 마법사의 명복을 빌어주다보니... 어느새 내가 탄 버스는 회사 근처의 정류장에 도착해 있었다.


'윽. 이미 5분이나 지나버렸네... 뭐, 가방은 화장실에 숨겨놓고 커피 한 잔 들고 가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회사 앞 커피숍에 발을 들어놓으려던 순간.


파칭-!


순간적으로 전류가 온몸을 관통하고 지나간듯한 아찔한 감각에, 나는 발을 휘청였다.


'뭐지? 이렇게 강렬한 마력 공명 현상이라니... 이 정도면 1급 파괴마법 수준인데 대체 누가, 아니 설마...?'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눈을 돌려 바라본 회사 건물이, 20층에 달하는 건물의 모든 유리가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산산조각나 비처럼 떨어져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꺄아아악!"

"도, 도망쳐!"


카페인을 갈구하는 직장인들로 가득하던 거리가 아수라장으로 변모하는 데에는 1초면 충분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유리조각에 이어서 떨어지는 콘크리트 조각과 철골 구조물. 다리가 떨리고 속이 울렁거린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요동치는 발 밑의 대지.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온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마력의 파동.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아니,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애써 부정하는 것이다.

방금까지는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렀던 가을의 하늘을 검붉은색으로 물들이고, 재앙 그 자체인 불타는 암석 덩어리를 지상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이머전시 A0 발생. 수신 가능한 감찰관은 모두 집결하라. 반복한다. 이머전시 A0 발생. 전 인원 집결하라. 위치는 대왕..."

"그렇게는 안 되지..."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리며, 무전 신호를 보내던 감찰관의 등을 주먹으로 꿰뚫어버린 것은.


"역시... 너였구나. 이안."


검은색 해골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지만, 내가 그를 못 알아볼 리 없다.

천년 역사의 마법학교에서도 전무후무한 재능. 교사들조차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무제한 자유시간을 부여했을 정도로 촉망받던 천재. 입학하던 순간부터 감찰관이 목표였고, 역대 최연소 감찰국장이 될 것이라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소년.


"음? 이게 누구야, 영광의 길을 버리고 인간에게 꼬리를 알랑거리며 쓰레기를 받아먹는 길을 자처한 배신자 아니신가."


그런 그가, 이제는 테러와 살인을 눈 하나 깜박 않고 저지르는 악당이 되어 있다.


"그렇게 비꼬아봤자 아무 소용없어. 쓰레기 같은 놈아."

"하!"


이안은 어이없다는 듯 두 팔을 옆으로 펼치며 탄식했다. 그 손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에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그는 오른쪽 눈썹을 위로 치켜올렸다. 기분이 상했다는 뜻이다.


"열등종족들에게 하도 허리를 굽신거리며 살다보니 천지분간도 제대로 안되는가 본데... 쓰레기는 내가 아니고 너지. 대체 언제까지 우리 마법사들이 숫자만 많은 머저리들을 피해 숨어 살아야 하나? 마법의 힘을 자유롭게 쓰는 것만으로도 그 개미떼 같은 것들에게 재앙과 공포의 기억을 심어줄 수 있는데, 왜 우리가 참아야 하냔 말이다."

"그 개소리도 한 번만 더 들으면 백 번째야. 좀 닥쳐!"


그는 말을 잘한다. 심지어 논리를 전개시키는 속도도 매우 빨라서, 궤변조차도 그럴 듯한 주장으로 둔갑시키는 재주가 있다. 한때 나도 그의 언변에 속아넘어갔었지만... 으으, 떠올리기만 하는 걸로도 괴로운 기억이다.

잡념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세를 바로잡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전투 자세를 취한다.


"10년 전에나 네 미친 소리를 받아줬지, 지금은 어림도 없어. 그러니까 닥치고 덤벼!"

"오호... 너 정도 되는 도덕군자가 비인가 마법 사용을 해서라도 나를 막겠다는 건가? 마법으로 열등종자 몇 마리를 밟아죽이는 나와, 그런 나를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네 사이에 무슨 차이점이 있다는 거지?"

"아주 고오맙게도 네놈이 내 직장을 때려부숴줬으니까!"


두 주먹을 불끈 쥐자 순간 온몸의 혈관이 뜨겁게 끓어오르며, 심장으로부터 뿜어져나온 마력이 사지의 말단까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아... 진짜. 출근하기 싫은데 회사 폭파됐으면 좋겠다, 하는 것도 스트레스 때문에 홧김에 하는 말이지. 정말로 회사 건물이 운석에 직격당해서 뿌리부터 무너져 내리는 걸 기대한 건 아니라고!"


야근과 회식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한 번에 토해내듯이 소리치며, 나는 두 주먹에 마력을 한껏 불어넣고 쾅쾅 맞부딪친다.

묵직한 글러브를 낀 듯한 이 서늘한 감각... 거의 2년만이다.


"당분간 월급 못 받게 생겼으니 널 잡아서 현상금이라도 받아야겠다. 알겠냐?"

"...네 마음대론 안 될거다."


이안도 질세라 더욱 강하게 마력의 불꽃을 피어올린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나면 또다시 감찰국장이 이마를 짚고 괴로워하는 얼굴을 대면해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마법사란 원래 강함을 미덕으로 삼고 전투를 추구하는 종족. 단일 개체로서는 지구상에 비길 자가 없는 전투력을 가지고도,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벅찬 싸움이라도 피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한손에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않는 회사에 대한 원망을, 다른 한손에는 난데없이 직장을 잃어버린 실업자의 울분을 가득 그러모아 쥐고서.


"그럼... 간다!"


나는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작가의말

DJMAX의 ‘Running girl’ VGA에서 영감을 받은 글이에요.


지각할 거 같을 때는 빗자루를 타고 회사로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회사가 파괴되어버린다면 갈 필요도 없어지는 거겠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토끼정 단편집 1일 1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인가 받지 않은 마법 사용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22.09.19 22 0 10쪽
2 달에 사는 천사들 22.08.22 25 0 10쪽
1 불멸자와 시간여행자 22.08.19 38 0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