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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정의 고로케

토끼정 단편집 1일 1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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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정
작품등록일 :
2022.08.19 14:54
최근연재일 :
2022.09.1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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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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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달에 사는 천사들

DUMMY

달에는 천사들이 살고 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이다.

원래부터 달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한때 천사들은 지상에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과 섞여 살았다. 그것이 신이 그들에게 내리신 마지막 말씀이었기에.


'늘 인간의 곁에서 그들이 선한 길을 가도록 도우라'


그것이 천사들에게 내려진 지상명령이었다. 그러니, 인류가 마침내 달에 진출하고 식민 도시를 건설했을 때 일부 천사들이 그들 사이에 섞여 달로 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으와와... 감각이 이상해요, 선배님!"

"진정해라. 걷는 것과 나는 것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고 생각해라."


셀레스틴은 최근까지 지상에 남아 있다가 달로 온 케이스였다. 재앙 구호 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황폐화된 지구에서 사람들을 구해왔지만, 결국 그녀가 있던 단체의 본부마저도 초거대 토네이도에 휩쓸리면서 어쩔 수 없이 도망치듯 달에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굳이 이런 중력 무보정 지대에서 만났어야 했나요? 어차피 저흴 알아보는 사람도 없을 텐데요."


참새 부리처럼 입을 삐쭉 내밀고 투덜거리는 셀레스틴에게, 선임 천사 카이엘은 대꾸하지 않았다.

셀레스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세상에 악마가 사라진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다. 지상의 인류가 스스로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는 모습을 보고, 악마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하더라도 그들을 더 새까맣게 물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와아, 그래도 이런 곳이라면 자연스럽게 떠 있어도 위화감은 없겠네요! 요즘 날갯죽지가 뻐근했는데, 간만에 가볍게 날아다니면서 풀어줘야겠어요."


그렇게 말하곤, 중력이 약한 달의 대지를 둥실둥실 떠다니는 셀레스틴. 그 모습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한 어린아이와도 같아, 바로 전날까지 생과 사가 교차하는 전장에서 피를 뒤집어쓴 채 뛰어다녔던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자네에게 휴식이 필요할 것이라는 내 판단을 수정해야겠군. 그래도 괜찮나?"

"음... 네! 저야 쉬면 좋지만, 지금 임무가 있다면 즉시 수행 모드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알았다. 그러면 임무를 하달하도록 하지."


악마가 없어져도 천사의 임무는 계속 된다. 늘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악의 길로 빠지려는 인간들을 감시하고 계도해야 한다. 결코 의심하지 않고, 결코 유혹에 빠지지 않고, 결코 나태하지 않고, 언젠가 신께서 다시 말씀을 내려주실 그 날까지.


"A-3 구역에서 최근 지상으로부터 밀수된 마약이 유통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중심부에서 유통되는 걸 막지 못하면 모든 섹터로 퍼져나가는 것은 순식간이겠지. 유통 조직의 단서를 찾아서 보고하라. 필요하다면 선조치해도 좋다."

"네, 알겠습니다!"


설렁설렁 떠다니던 것이 언제였냐는듯, 셀레스틴은 온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서서 군인처럼 경례를 올려붙였다. 아직 저중력이 어색한지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카이엘은 낮게 한숨을 흘렸다.


***


A-3 구역은 달의 무역의 중심지다. 각종 화물선이 오고가는 우주항구의 역할을 하는 A-1 구역, 세관 및 방역 등을 담당하는 기관들로 이루어져 있는 A-2 구역과 일렬로 이어지며 최초로 거주구가 구성되어 있는 섹터인데다, A-4부터 A-8까지의 5개 섹터가 A-3를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고 이어져 있는 만큼 그야말로 달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구역인 것이다.


"어이~ 언니! 어디가? 보아하니 여기는 처음인가본데, 내가 좀 도와줘?"

"어머나~ 정말요?! 달에도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었구나!"


호들갑스럽게 총총거리며 뛰어가는 셀레스틴의 모습은 그야말로 세상 모르는 귀부인이 사기꾼에게 홀랑 속아넘어가는 모습이었으나, 베레모를 푹 눌러쓴 바람잡이와 그녀가 덥썩 맞잡은 손 사이에서 오고가는 것은 비밀 암호문이었다.


'정오, 리슐리외 거리. 오른쪽에서 세번째 골목인가. 대낮에 마약 거래라니 참 무모한 인간들이네...'


초콜릿 뒷면에 새겨진 암호문을 손으로 쓱 훑어 읽어낸 셀레스틴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된 초콜릿을 입안에 털어넣은 뒤 곧장 인파 속으로 섞여들어갔다. 어디에서도 눈에 띌 만한 화려한 드레스 복장은 어느 틈엔지 허름한 부두 노동자의 옷으로 변해 있었다.


'리슐리외 거리... 하나, 둘... 저기구나.'


혼잡한 인파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목적지를 찾아낸 셀레스틴은, 허드를 푹 눌러쓴 채 좁은 골목 안으로 발을 옮겼다. 이내, 그녀는 골목 한가운데에서 포장된 택배 상자들을 손에 들고 있는 한 무리의 불량배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넌 뭐냐?"


그들 중 제법 대장격으로 보이는 불량배가 삐딱하게 서서 물었지만, 셀레스틴은 대답 대신 두팔을 한껏 옆으로 펼쳐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비상을 준비하는 거대한 알바트로스와도 같았다.


"형님, 저 녀석 눈이 이상한데요?"

"뭐야, 취했냐? 그렇게 서 있어도 여기서는 못, 아니 안 팔아. 저기 론 씨네 가게에나 가보라고."

"..."


관자놀이에 대고 손가락을 빙빙 돌려보이는 모욕적인 자세에도 셀레스틴이 아무런 반응 없이 부동자세로 서 있자, 불량배는 약간 위축된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허름한 후드티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두 팔을 벌린 셀레스틴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마약에 잔뜩 취한 중독자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자고로 중독자란 마약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거주구 건물의 파괴 위험성 때문에 암흑가에서도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총기나 폭발물조차도, 약을 구하지 못해 한계까지 몰린 중독자라면 사용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생각의 끝에 불량배들이 슬금슬금 발을 뒤로 빼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형제여, 참회할 준비는 되셨나이까?"

"...뭐?"

"그렇다면, 신의 심판을 받으소서!"


그야말로 문답무용이자 동문서답, 아니 막무가내였다. 말귀를 알아 듣지 못한 불량배가 멈칫하는 사이, 그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파지직!!


불량배들의 눈을 순간 멀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벼락이, 돔으로 갇힌 거주구 내에 절대 일어날 리 없는 번개라는 기상 현상이, 그 어떤 전조도 없이 골목을 가득 채운 것이다.


"우아아악!"


불량배들의 비명은 소름끼치는 스파크 소리에 묻혔다. 비명 뿐만이랴, 그들의 가엾은 목숨도 함께 이 골목에 묻히고 말았다. 20만 볼트에 달하는 강력한 전격이 그들의 온몸을 한순간에 태워, 한 줌 잿더미로 만들고 만 것이다.


"아아, 신이시여. 이 어린 양들을 당신의 품에 거두소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를 올리는 셀레스틴의 두 눈은, 마약 중독자의 눈에서 번들거리는 광기만큼이나 위험한 광신으로 찬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빛나는 두 눈이 향한 곳은, 방금까지 불량배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으나 용케도 전격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고 바닥에 떨어져 끝부분이 살짝 찌그러진 택배 상자였다.


[MM 로지스틱스]


"아하."


택배상자에 새겨진 물류기업의 로고를 본 셀레스틴의 입에서 낮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갈 곳을 찾은 천사의 날개가 활짝 펴져 골목 안을 가득 채웠다.


***


"선배님, 임무를 마치고 무사 귀환하였음을 보고합니다!"

"...수고했다."


떠날 때처럼 깍듯이 경례를 붙이는 셀레스틴의 온몸에서 풍겨 나오는 피냄새가 신경에 거슬렸지만, 카이엘은 굳이 말을 더하지 않았다.

인간의 사회에 섞여 살고 있다고 해서, 천사의 정의를 인간의 잣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물론 천사 자신 또한 너무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살다보면, 때때로 신의 저울을 인간의 기준으로 가늠해보려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극히 천사적이고 고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바로 어제까지는 한 명의 인명이라도 더 구하려던 헌신적인 봉사자가 다음날 바로 냉혹한 학살자로 돌변한다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의의 천칭은 언제나 굳건히, 선을 장려하고 악을 심판한다는 단 하나의 원칙에 의해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당분간 급한 명령은 없다. 호출이 있을 때까지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피냄새를 풍기며 발랄한 발걸음으로 멀어져가는 셀레스틴의 뒷모습을, 카이엘은 말없이 흘긋 쳐다보았다.

사실 이번 임무는 셀레스틴에 대한 시험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오랫동안 인간 사회에 섞여 살아온 그녀가, 과연 아직 천사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았을까. 그것은 걱정일 수도, 어쩌면 기대일 수도 있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바가 지상에서 뿐만 아니라, 이 월면에서도 모두 이루어질 날이 머지 않았다."


때가 되면 성스러운 불이 모든 것을 태우고 정화할 것이다. 카이엘은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의심하는 것이 있다면, 자기 자신뿐일까.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그 자신도 모르게, 카이엘의 두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낡고 흠집이 난, 장식 하나 없는 은반지가 그의 손가락에서 약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언젠가 쓸 장편 소설의 인트로입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천사의 이야기.

훗날 쓰게 된다면 카이엘과 셀레스틴 이외에도 더 많은 천사들이 등장할 예정.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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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가 받지 않은 마법 사용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22.09.19 21 0 10쪽
» 달에 사는 천사들 22.08.22 25 0 10쪽
1 불멸자와 시간여행자 22.08.19 37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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