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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 님의 서재입니다.

아이 그리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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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asinse0597
작품등록일 :
2021.08.04 03:37
최근연재일 :
2021.12.13 14:3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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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619

작성
21.12.0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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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Chapter. 16] 가파른 산책로

DUMMY

하늘과 같이 푸른 투구, 그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문이 막혀 있었다.


“어떠냐?”


검붉은 갑주의 기사가 자신의 뒤에 있는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거대한 건물 부지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길 이 부지에서 성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란다. 허나 이 부지에서만 이루어지냐 하면은 그것은 또 아닌 것이 이런 부지를 제국 전역에 고루 짓고, 능력과 의지에 따라 수도를 중심으로 퍼지는 형태로 진학을 가능케 할 것이라 한다. 능력이야 키우면 되니 아무래도 의지가 부족한 이들이 지방으로, 의지가 확고한 이들이 수도로 올 것이란다.


“미친.”


막힌 말문을 뚫고 한 마디가 겨우 나왔다.


솔직히 미쳤다. 어느 국가, 아니 제국에서 미쳤다고 전국 단위로 교육을 시키겠는가. 말이야 성숙하고 능력 있는 자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어리고 의지가 있는 자들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이상적인 체계. 그걸 눈앞의 친우는 해내었다.


“역시 황제는 황제인가...”


두 대검으로 악한 괴수들을 척살하고 민심을 끌어 모은 기사왕, 이다루가 그날따라 남달라보였다. 괜히 사람들을 이끌어 제국 단위로 국가를 운영해온 것이 아니었구나하고 생각했다.


“하! 이 내가 투기장에서 놀기만 한 것 같아?”

“논 거는 맞잖아.”

“그.. 세월이 기니까 작은 비율이라도 큰 것처럼 보이는 거야!”


솔직히 맨날 자기보다 낮은 수준의 싸움이나 보면서 즐기는 것을 보고 약간 의심을 품었었다. 인맥만으로 제국이라는 것이 운영이 되나? 분명 전제군주제일 텐데?


허나 그의 제국은 굳건했다.


황제가 자리를 오래 비움에도 잘 짜인 제국의 체계는 없는 황제가 있는 것처럼 운영되어왔다. 물론 그에는 붉은 갑주의 아래에서 자라온 충성심 깊은 후대 기사들의 몫이 크겠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의 체계라는 것은 무시될 수 없다.


이론만으로 가능해 보이는 것을 잘도 운영 중이고, 조금이라도 양심이 비틀린 자가 있다면 무너질 구조가 굳건히 유지되어 가고 있다. 이득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심성을 이용해 만든 절대 무너질 수 없는 거대한 체계망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다.


“내가 무작정 황제 자리 내팽겨 치고 너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니까.”


확실히 제국이 거의 신생 국가일 때부터 짜온 체계가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한 일탈이다. 잠깐만 뭐?


“날로 먹을 라고 아카데미 세웠구먼?”

“음... 그렇지.”


검붉은 갑주의 기사는 부정하지 않았다.


알아서 인재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오고, 자연스레 그들은 제국이라는 거대한 기계 속의 튼튼한 톱니바퀴가 될 것이다. 물론 힘 있는 자들이 이 톱니바퀴를 전부 빼버리고 자신들의 허접한 부품을 끼워 넣으려 할 수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런 힘 있는 자들을 견제할 이득을 좇는 제국의 또 다른 부품들이 존재하니 딱히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카데미는 능력 있는 자의 진심이 담긴 날로 먹기였다.



***



해가 얼굴을 내밀고 세상을 지켜보는 오전, 저택에서 출발해 여러 마을을 거쳐 마차는 이틀에 걸친 강행 끝에 제국의 수도인 ‘페스티스‘에 도착했다.


“아가씨, 거의 도착했어.”

“······음?”


자는 사이에 뭔가 알면 안 될 것을 알아버린 느낌이다.


“혹시 나 자는 사이에 일할 거리 있었어?”

“세 번 있었어.”


오는 사이에만 세 번, 이 정도면 무기를 들고 갈 명분도 있다. 작은 소녀가 몸을 지키기 위해 검 두 개와 방패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오...”


그보다 확실히 제국의 수도는 뭔가 다르다. 깼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마차의 흔들림이 확실히 줄어들 만큼 잘 정비된 길, 그리고 밖으로 보이는 다양하지만 일관성 있게 짜인 건물들이 이 때까지 이상한 곳만 노리고 다닌 나에게는 뭔가 신기했다. 근데...


“그보다 아저씨는 별 생각 없어?”


기사로서의 나를 밝히고 쭉 궁금했다. 아저씨는 어째서 아무런 의문도 더 이상 내보이지 않을까.


“음... 뭐 아가씨가 어련히 했겠구나 싶었지. 나 몰래 밤새 수련이라도 했을지 어떻게 알겠어. 밖으로 내보이는 활동량을 자제하며 늘 앉아있었는데, 그걸 풀기 위해 그냥 밤새 수련하다가 된 거겠지 했지. 아니야?”

“어... 맞을걸.”

“농담이야. 그리고 난 기사가 아니라 이제는 용병 나부랭이야. 그저 아가씨 말에 수긍 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는 아저씨와의 여행이 없어진 만큼 관계가 소홀해진 것 같다. 때문에 아저씨도 나를 좀 더 고용인으로서 보게 된 것 같다. 그만큼 시녀 언니와 지내며 그녀와의 관계가 생겼지만, 전 생들의 대부분이 아저씨와 지낸 나로서는 뭔가 아쉬움이 느껴졌다.


“도착했수다!”


마차 밖 마부의 말이 들려왔다.


조심스레 아카데미 앞에 내딛는 발걸음, 나는 마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금속으로 위가 덮인 사바톤이 아니라 깔끔한 황갈색의 가죽 구두인 것이 뭔가 마음에 안 들었다. 왠지 이제는 갑옷이 없으니 불편한 느낌. 그나마 교복 안에 사슬갑이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아니지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되지.


또래의 여자 아이들에게 사바톤이 아니라고 불평할 수는 없잖은가. 헌데...


“좀 일찍 왔나 보네.”


언뜻 보이는 아카데미 부지 내로 같은 색의 교복을 입은 학생이 얼마 없었다. 확실히 아카데미와 밖의 경계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시계를 보니 아직 입학식 시작 때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식사 한 번은 하고 와도 될 정도?


“아저씨 근처에서 간단하게 한 끼라도?”

“좋지.”


뭔가 먹으려고 하는데... 어째 근처에 고급스러움이나 귀여움을 강조한 작은 식당들 밖에 없을까.


그렇게 주변을 살펴보던 중 한 식당이 눈을 잡아끌었다. 뭔가 낡은 것 같으면서도 깨끗하고 담백하게 석재와 목재를 섞은 외형의 식당이었다. 왠지 교복보다는 전신 갑주를 입고 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지만, 잡생각은 집어 치우고 약간 출출해진 배를 때우기에는 딱 좋아보였다. 그저 기사의 감이었다.


“저기 어때?”

“아가씨 솔직히 사실 중년 남성이지?”

“아니 왜.”


그저 감이 이끄는 데로였을 뿐인데 말이지.


딸랑-


“어서 오시게. 두 명인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친근하게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말하는 폼이나 앞치마를 둘러매고 있는 점이나 누가 봐도 식당주인이었다.


“넵. 혹시 여기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거 있을까요?”

“간단한거라... 우리가 육포를 참 잘 만드는데 어떤가?”

“그거면 될 거 같네요.”


대충 음식을 시키고 나와 아저씨는 널린 빈자리들 중 하나를 잡아 앉았다.


바쁜 수도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일을 나가기 때문에 이렇게 오전에는 사람이 잘 없다고 시녀 언니에게 들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맞는 듯하다. 이곳을 포함에 주변 식당들에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우리를 제외하고는 한두 명 있을까 하고, 거리에는 가끔 무언가 들고 바삐 뛰어가는 사람 외에는 바람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뭐, 덕분에 이렇게 여유를 즐기고 있다.


“물이랑 수저, 젖은 수건 나왔습니다.”


목재 벽에 있는 창문으로 밖을 보던 중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보니 한 자그만 소녀가 테이블 위로 물잔, 수저, 젖은 수건을 각각 두 개씩 차례로 놓고 있었다. 나와도 나이차이가 조금 있을 것으로 보이는 그녀는 주인과 똑같은 모양에 크기만 줄인 앞치마를 쓰고 있었는데, 아마 그의 딸인 것 같다.


“음? 부녀지간인가?”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스윽-


헌데 갑자기 소녀가 우리에게 손을 펼쳐 내밀었다. 뭔가 원하는 듯한...


“직원 교육이 확실하군. 여기.”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무언가 하나를 꺼내서 그녀의 손 위에 얹어 주었다. 이에 만족한 표정으로 소녀는 “우리 아빠 맞아.”라고 말하고선 쪼르르 주방을 향해 달려갔다.


그래서 도대체 뭘 준걸까.


“팁 준거야. 아가씨도 나중에 이런 자영업 식당에 오게 된다면 이런 식으로 직원들에게 팁을 줘야 돼. 물론 저렇게 질문에만 받거나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지간해선 무조건 소액이라도 주는 게 좋아. 그럼 서비스가 좋아질 거야.”


직원에게 동전 몇 개를 던져 준다... 언젠가 아카데미에서 사귄 친구들이랑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된다면 써먹을 일이 있겠지. 아마도.


“음식 나왔습니다.”


아저씨에게 팁에 관한 설명을 다 들었을 때쯤, 소녀가 이번에는 넓적한 육포가 쌓인 그릇을 들고 나타났다. 먹음직스러운 것이 투구 너머로 침이 흐를 것 같았다.


투구? 그러고 보니 나와 아저씨 둘 다 투구 쓰고 있는데 왜 별 반응이 없지?


“잠시 만요.”


나는 동전 하나를 테이블 위에 놓으면서 말했다.


“혹시 저희 투구가 이상하다고 여기진 않으신가요?”


궁금했다. 이에 대답 하나로 기사라는 존재의 유무와 밖에서 투구의 인식을 알 수 있으니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한 답장은 내가 말을 건 소녀가 아닌 주방에서 나오는 주인장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카데미에 관해서 그리 밝지는 않나 보군. 별거 없네. 그저 기사 가문 자녀 중에 그런 차림을 한 학생이 꽤 있다네. 매년 한 둘씩은 여기를 자주 찾으니 익숙하지.”


여러 상식을 채울 수 있는 꽤나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첫 번째, 제국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온 기사 가문의 자녀 중 나와 비슷한 차림을 한 이들이 조금이나마 있다. 아마 또래 중 한 둘은 기대해도 되겠지.


두 번째, 갑주와 무기 자체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별 언급이나 눈치가 없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세 번째, 이 식당을 고른 나는 절대로 중년 남성의 취향이 아니다. 이미 선례 학생들이 있다고 하지 않은가.


이제 의문도 해결했으니 음식을 먹는 일만 남았다. 투구는 벗어 옆에 두고 머리를 한 번 위로 쓸어 넘긴 나는 포크를 집어 들어 진한 소스가 발려 있는 육포 한 조각을 찍어 입에 넣었다.


입 안에서 진득하게 달라붙으며 골고루 퍼지는 육향과 특이한 향신료 맛이 꽤나 인상적인 육포였다.


그렇게 별 말없이 출출함을 달래는 데에만 집중한 나는 마지막 육포를 목구멍으로 넘겼을 때 생각했다. 혹여나 식당에 아카데미로 싸갈 만한 음식은 없을까. 아무래도 안에서 중간에 잠깐 출출해진다면 건빵 같은 것이 도움 될 터이다.


아니 이런 생각은 접어두자. 시녀 언니가 아카데미 내로 음식 출입은 금지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저기요, 돈은 얼마면 되나요?”

“5동화면 된다네.”

“에이, 이러면 장사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잘만 되고 있으니 그냥 두고 가. 입학식은 조금 일찍 들어가 놓는 게 편할 거야.”


넉살 좋은 주인장의 말에 동화 다섯 개를 테이블에 두고 나는 자리를 일어나 식당 밖으로 향했다. 식당 앞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시계를 보니 얼추 시간에 조금 남은 것 같다. 딱 적당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아저씨는 잘 돌아가.”

“허, 누구 걱정이야.”


어째 하는 말이 케레스 언니랑 똑같았다, 그때 인사치례로 조심히 들어가라 하니 저 말을 했었지.


그렇게 아저씨는 내게 손 한번 흔들어보이고선 마차 쪽으로 걸어갔다. 아마 그대로 온 길 그대로 되돌아가서 저택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장소를 향해 가야할 것이고.


“하...”


막막했다.


따지고 보면 몇 십 년을 살았건만 다수의 또래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그럼에도 나는 홀로 걸어 들어가 어떻게든 친구라는 존재들을 만들어야 했다. 말 그대로 앞길이 막막하다.


그렇게 한숨을 푹 내쉬며 아카데미로 발을 들이길 처음, 나는 세상이 마냥 터있는 길이 아예 없는 산길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가파른 산책로가 보였기에 그저 고된 산길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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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Chapter. 19] 복잡한 인관 간계들 21.12.09 9 0 12쪽
19 [Chapter. 18] 해와 부딪히는 하늘 21.12.07 17 0 12쪽
18 [Chpater. 17] 고고한 사자, 학생대표 21.12.04 16 0 11쪽
» [Chapter. 16] 가파른 산책로 21.12.03 15 0 12쪽
16 [Chapter. 15] 기사라는 정체성 +2 21.11.30 20 0 12쪽
15 [Chapter. 14] 일상은 부수라고 있는 것이지 +3 21.11.29 24 0 11쪽
14 [Chapter. 13] 훈련, 휴식은 다분한 일상? 21.11.27 13 0 10쪽
13 [Chapter. 12] 선물을 받는다 21.11.25 16 0 8쪽
12 [Chapter. 11] 이번에야 주어지는 기회 21.11.22 11 0 10쪽
11 [Chapter. 10] 바스라지는 정원 21.11.15 16 1 11쪽
10 [Chapter. 9] 우물을 퍼내어 하늘을 펼치다 21.11.11 14 0 11쪽
9 [Chapter. 8] 단련된 호흡 21.11.05 18 0 8쪽
8 [Chapter. 7] 열리는 정원 21.10.26 18 0 8쪽
7 [Chapter. 6] 기나긴 꿈이 지나가고 21.10.21 19 0 7쪽
6 [Chapter. 5] 21.10.14 16 0 9쪽
5 [Chapter. 4] 21.09.24 16 0 10쪽
4 [Chapter. 3] 21.09.15 26 0 11쪽
3 [Chapter. 2] 21.09.04 29 0 9쪽
2 [Chapter. 1] 21.08.23 51 0 10쪽
1 [프롤로그] 숲 속 버섯 +1 21.08.04 98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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