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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성칭 밑의 피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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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23.05.20 20:59
최근연재일 :
2023.08.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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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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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DUMMY

첫눈이 내린지 일주일, 안드레스의 파티가 이번 타티아 미궁의 중층에 최초로 진입한지 4일이 지난 한겨울의 어느날.

태양절이 머지 않은 시기에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레아는 일감이 넘쳐나는 프리지야 쪽에서 평범한 모험자 길드 직원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로드리고가 프리지야 임시 모험자 길드 지부로 떠나는 걸 배웅하고 니키치나와 사람도 별로 없는 타티아 모험자 길드 로비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저, 지금 시간 괜찮으신가요?"


"예, 뭔가요 메건?"


"내일 예배당에 중요한 손님이 오셔서 그런데 휴가 좀 쓸 수 있을까요? 가비 씨한테 이야기는 해놨어요."



메건이 현재 소속된 모험자 길드 직속 탐색반은 드디어 미궁 중층 돌파 파티가 나온 것을 계기로 미궁 탐색을 활발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건은 타티아 모험자 길드에 완전히 소속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쌍둥이 여신 교단에서 파견을 나온 것이기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언제든지 휴가를 내주는 게 맞았다.



"탐색반 리더인 가비가 허락을 해줬다면 큰 문제는 없겠죠. 잘 다녀오세요."


"감사합니다!"



현재 마스터 로드리고는 프리지야로 떠났고 부길드장인 파우스는 로드리고의 명령으로 자택에서 신약 개발 중이라 타티아 모험자 길드를 지휘하는 건 니키치나였고 그녀는 탐색반의 탐색팀을 지휘하는 간부인 가비가 허락해줬다면 별 문제는 없을거고 생각하고 시원스레 메건의 휴가를 허락해주었다.

마침 직원구역 쪽에서 한참 원정 준비 중이던 가비가 로비로 나왔고 레아는 니키치나를 대신해서 가비에게 물었다.



"이봐 가비, 탐색반 힐러가 휴가인데 누구를 대체자로 넣을 거야?"


"어차피 미궁 공략이 아니라 수집한 정보 진위 판별이 목적이니 이번에 탐색 1팀이랑 2팀이 함께 샤론과 발레리안, 자크를 데리고 갈 생각인데"



모험자 길드 간부들의 자식이자 모험자 길드 예비직원인 샤론, 발레리안, 자크는 어느 정도 훈련이 끝난 모양인지 가비는 테스트를 위해 이들을 데려갈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럼 며칠동안 길드는 접수원 3명에 납품실 직원 3명, 나 하나만 남는 건가?"



길드 마스터 로드리고와 납품실 반장 헨리와 간부 필립은 프리지야로 떠났고, 탐색반 리더인 가비까지 탐색반의 팀들을 이끌고 며칠동안은 미궁에 처박혀서 지도와 공략서 작성에 들어가니 타티아 모험자 길드에 간부급 인원은 니키치나 하나 뿐이었다.



"이래서는 프리지야 쪽이 본체고 여기가 수족인 거 같네. 니키 언니, 애들 3인조 말고 길드 인원 보충은 언제야?"



레아는 완전히 주객이 전도되었다며 혀를 차고는 니키치나에게 길드 직원 채용에 관해 물었고 니키치나는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안 그래도 공고는 내고 있는데 지원자들이 대부분 백작 쪽 사람들이라 고민이 커. 역시 자격이 충분하면 타티아에 연고가 없는 사람이라도 뽑아야했던 걸까?"


"세네카 백작도 사람이 참 뚝심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보다 이렇게 인원 부족할 때 무슨 일 터지면 골치 아프던데 무슨 일 생기는 건 아니겠지?"



타티아 시에 머물면서 일해야 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기에 타티아 주민들을 상대로 채용 공고를 내다보니 더더욱 백작의 손길이 뻗기 쉬운 것이었다.

세네카 백작은 모험자 길드를 어떻게든 자기 수중에 넣으려고 지금껏 여러 행동을 해왔고 그 야망의 불꽃은 아직도 꺼지지 않은 상황.

레아는 니키치나의 말을 듣고 꼭 이럴 때 귀찮은 문제가 터진다면서 중얼거리고는 고민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니키 언니, 우리집 양반한테 혹시 아는 백수 중에 일 잘하는 사람 없냐고 물어볼까?"


"그래, 누구 데려올만한 사람 없나 좀 알아봐줘."


"이참에 아예 한동안 길드 출근해서 일 좀 보라고 해?"


"무슨 일 생기면 그때 불러도 안 늦을 걸?"



니키치나는 아직 급한 일도 없는데 굳이 부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고 레아는 퇴근하면 바로 확인하겠다고 하고는 방금 막 사냥을 끝내고 귀환한 모험자 파티를 상대하기 위해 니키치나가 데스크로 돌아가자 로비 경비 업무로 돌아갔다.


오늘도 모험자 길드는 평화롭기 짝이 없었다.

신참 모험자를 괴롭히는 악질 쓰레기들은 옛저녁에 레아가 직접 청소해놨고, 가끔 생기던 길드 건물 내에서 일어나는 모험자끼리의 분쟁도 문제를 만들만한 혈기 넘치는 모험자들이 죄다 프리지야로 떠나서 생기지 않았다.

최근 레아에게 가장 성가신 적이 사람이 아니라 길드 정문이 열릴 때마다 몰려드는 한기일 정도였다.


평화로운 타티아 모험자 길드의 업무는 그날도 조용히 끝을 보았다.

레아는 퇴근하면서 레브메 저택이 아니라 예배당으로 가는 메건한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고 오라고 인사를 하고 홀로 집에 돌아갔다.

북쪽대로에 쌓여있는 눈을 밟으며 집으로 향한 레아는 저택 1층 로비에만 불이 들어와있고 평소 퇴근했을 떄는 어두운 대장간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저택이 아니라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간의 문을 열자 방금 전까지는 들리지 않던 전동 망치의 톱니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훌륭한 소음 차단 효과는 장인 길드의 드워프들이 방음 공사를 꼼꼼히 한 증거였다.


대장간 문을 닫고 안쪽을 바라보니 한창 뭔가를 마력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전동 프레스 해머로 내리치는 파우스의 모습이 보였다.

파우스는 평소 입고 있던 회색 수도복은 벗고 샐러맨더 가죽으로 만든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붉은 내열가죽 작업복 곳곳에 튄 불씨가 그대로 살아서 타오르고 있었고 레아는 파우스에게 물었다.



"뭐해?"



레아가 슬쩍 바라보니 파우스가 연신 프레스 해머로 두드리고 있는 건 다름이 아니라 두툼한 갑옷의 흉갑 부분이었다.

저 옆의 담금질용 기름 옆에는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건틀릿, 뱀브레이스, 허벅지보호대, 정강이받이, 금속 부츠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더 옆의 테이블 위에는 설계도가 펼쳐져 있었고 설계도에는 갑옷이 합쳐진 전체적인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선물 만들고 있었다."



"누구 선물?"


"생일이 태양절 전날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



그 훌륭한 갑옷 세트는 다름이 아니라 파우스가 레아에게 줄 선물이었다.

레아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갑옷 파츠들이 하룻밤만에 만들 수 있는 분량이 아닌 걸 보고 파우스가 최소 일주일 넘게 갑옷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화려한 갑옷은 필요없는데 그냥 건틀렛 부분만 받아갈게"



레아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설계도를 보고 이게 몇몇 관절부분이 비워져 있지만 그 비워진 부분들의 파츠를 보충하면 풀플레이트 메일이 된다는 걸 깨닫고 부담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걱정마라, 지난 번에 구해온 미스릴 주괴와 다른 금속을 섞은 미스릴 합금으로 만들어서 가볍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냥 넘긴 생일 선물을 한꺼번에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식사준비 해놨으니 식기 전에 가서 먹는 게 좋을 거다."



파우스는 계속 흉갑 부분을 두드리면서 레아에게 말했고 레아는 잠깐 고민하다 저택으로 돌아갔다.

레아는 최대한 빨리 씻고 미리 차려져 있는 저녁식사를 먹은 뒤 바로 대장간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레아는 웃으면서 내일 출근한 다음 니키치나한테 어떻게 티나게 돌려말하면서 자랑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자신이 파우스의 생일을 모른다는 걸 깨닫고 물었다.



"그러고보니 당신 생일은 언제야?"



파우스는 망치질을 하던 걸 멈추고 오랜만에 허를 찔렸다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로 레아를 바라보다가 다시 원래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대답했다.



"이쪽 역법으로 따지면 1월 6일이다."


"아무것도 없는 날이네. 나는 하필 태양절 전날에 태어나서 재수없게 제일 어두운 시기에 태어났다고 놀리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말이야."



태양절은 야간시가 가장 긴 날이며 이 태양절을 지나면서 태양이 다시 힘을 회복해 낮시간이 길어지고 야간시가 짧아진다.

그렇기에 태양절 전날에 태어난 사람은 가장 어두운 때에 태어났다고 해서 재수없다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태양절 당일이나 그 다음날 태어난 아이들은 힘든 고난을 넘어 영광을 회복할 운명을 부여받는다고 믿는 경우가 있었다.

레아는 그딴 미신 때문에 어렸을 때 놀림 받은 적이 있었다며 계속 투덜거렸다.



"아 맞다, 메건은 내일 교단에 일이 있어서 내일까지 집에 못 돌아올 거야.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네."



레아는 파우스와 대화하는 내내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메건의 소식을 전하는 걸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니키치나가 부탁한 길드 직원 보충을 위한 인재 추천에 관한 건 파우스가 만들고 있는 미스릴 합금 갑옷 세트 선물 때문에 새카맣게 잊어버린 상태였지만 레아는 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 기억해내지 못했다.


파우스의 흉갑 제조는 제2야간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고 파우스는 흉갑이 완성되자 지금까지 만든 갑옷들을 레아가 입어보게 하였다.

건틀릿은 엄지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거나 손등만 덮은 싸구려와 달리 손 전체를 보호하면서도 소리없이 열 손가락을 전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손바닥 부분에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꺼끌꺼끌한 패턴으로 압축 가공한 가죽이 붙어있는 일품이었다.

뱀브레이스는 건틀렛과 연결할 수 있도록 걸쇠가 있었고 건틀렛, 하박, 상박을 연결하는 관절 부위는 아직은 없지만 가동성을 보장하면서도 방어력을 위해 두툼한 몬스터의 가죽 위에 추가적인 판을 추가적으로 달아놓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허벅지보호대와 정강이받이 역시 뱀브레이스와 건틀렛처럼 흉갑과 부츠에 연결할 수 있는 걸쇠가 존재하고 역시 몬스터 가죽으로 관절부위를 가리고 그 위에 추가로 판을 덮을 수 있게 하였다.

부츠는 소리가 덜나도록 밑창에 가죽을 덧댔고 신을 때 편하도록 발목위로 올라오는 부분의 뒷편을 열고 닫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흉갑은 가슴이 꽤 큰 편인 레아를 배려한 것인지 가슴 부분이 허리보다 더 많이 튀어나와 있었다.

갑옷 표면은 매끄러운 평범함 판금갑옷 흉갑과 달리 공격을 흘려보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물결모양 패턴과 곳곳에 뭔가를 걸 수 있도록 걸쇠가 달려있었다.

레아는 갑옷을 입어보고는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거 살짝 헐렁거리는데"



레아는 어느 한부분만 헐렁거리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갑옷이 한 사이즈 정도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닫고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파우스는 오히려 그게 맞다는 듯이 말했다.



"안쪽에 충격흡수재를 넣어야 해서 고의로 크게 만들었다."


"그거 생각하면 딱 맞긴 하겠네. 그럼 이제 완성이야?"


"아니, 이제 머리를 보호해줄 헬멧과 어깨를 보호해줄 폴드런을 만들어야 한다."


"헬멧은 그렇다쳐도 폴드런? 그거 불편한데"



레아는 머리에 써야 하는 투구는 그렇다고해도 겨드랑이 안쪽까지 가리는 폴드런은 가동성을 극도로 떨어뜨리는 주범이기에 질색했고 파우스는 겨드랑이 보호에 대해 한소리 하려다가 곰곰이 생각을 하고는 대답했다.



"그럼 폴드런 말고 가동성 높은 스파울러로 만들면 되나?"


"이름이 폴드런인지 숄더패드인지 상관 안하니까 최대한 가동성 높은 형상으로 만들어줘"



파우스는 레아의 요구에 잠깐 고민을 하다가 대답했다.



"알았다. 최대한 가동성이 높은 걸로 만들겠다."



이제 헬멧과 어깨와 팔의 상박을 보호할 부분만 만들면 끝나는 상황이라 그런지 파우스는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할 심산인 모양이었다.

레아는 오늘 침실에서 열심히 밤일을 할 생각이었다가 작업을 멈추지 않는 파우스를 보고 실망해서 혼자 침실로 돌아갔다.

장인 길드의 드워프 장인들이 만든 방음설비는 침실까지 망치질 소리가 들려오지 않게 해줬다.

다음날 아침 백작의 저택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듣고 깬 레아는 반사적으로 옆을 보며 말했다.



"당신 어제 언제 들어왔어? 무리하지 말..."



파우스는 옆에 없었다.

아예 들어와서 자고 간 흔적도 없는 것으로 보아 새벽 내내 작업을 계속한 모양이었고 레아는 기쁘면서도 걱정되는 마음에 화장실에 가서 용변만 처리하고 바로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간 문을 열자 어제와 달리 망치질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금속을 그라인더로 갈아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문을 닫고 들어와 안을 바라본 레아는 파우스에게 물었다.



"잠도 안자고 뭐해?"


"투구 마무리 작업 중이다."



파우스는 헬멧에 붙이고 뗄 수 있는 탈착식 마스크의 표면을 갈아서 광을 내고 있었다.

옆에 있는 마네킹에는 완성된 갑옷이 걸려있었고 파우스는 헬멧의 마스크 부분을 가공하면서 레아에게 말했다.



"일단 필수적인 부분은 다 완성되었으니 한번 시착하고 감상을 말해줬으면 한다."


"좋아 어디... 켁! 어깨부분 가동성을 중시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기어코!"



완성된 갑옷은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없던 관절 부분의 금속 판때기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고 흉갑 표면의 걸쇠들은 아니나 다를까 물고기 비늘을 닮은 추가 장갑판으로 뒤덮여 있었다.

헬멧은 전설 속의 발키리들이 쓰고 다녔다는 양옆에 날개장식이 달린 투구 그 자체였으나 여기에 지금 파우스가 가공하고 있는 탈착식 마스크를 붙이면 눈 말고 얼굴 전체가 가려진다.

종합해보자면 영락없는 훌륭한 풀 플레이트 메일 그 자체였다.



"내 말을 대체 뭘로 들은거야 이 양반아! 가동성을 중시해야 한다고 했잖아!"


"일단 입어봐라"



레아는 꼭두새벽부터 머리에 열이 뻗히는 걸 느끼며 외쳤고 파우스는 눈도 돌리지 않고 작업을 계속하면서 말했다.

레아는 일단 화가 나지만 그래도 몸 걱정해서 방어력을 보충한거라고 생각하며 갑옷을 마네킹으로부터 떼어내려고 하였다.



"고정이 안되어 있었어?"



그런데 갑옷에 손을 대는 순간 갑자기 관절 부분에 붙어있던 장갑판들이 우르르 떨어져 내려 갑옷은 흉갑에 걸쳐진 물고기 비늘 모양 추가장갑을 제외하고 어젯밤과 비슷한 형상으로 돌아가버렸다.

레아가 혹시 자신이 뭔가 실수한 게 아닌가 걱정하며 파우스의 눈치를 살폈지만 파우스는 무심하게도 마스크 가공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레아는 파우스가 아무 말도 없는 걸 보면 의도된 사항이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네킹에서 갑옷을 벗겨내 하나하나 입기 시작했다.

안쪽에 아무것도 없어서 헐렁거렸던 어젯밤과 달리 충격흡수 소재가 추가된 갑옷은 놀라울 정도로 레아의 몸에 딱 맞으면서도 움직이기 쉬웠고, 레아가 갑옷을 다 입는 순간 시끄러운 그라인더 소리가 멎었다.



"이제 갑옷에 마력을 흘려넣어라."


"이렇게? 으왓!"



레아가 갑옷에 마력을 흘려넣는 순간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장갑판들이 저절로 떠올라 관절부분들을 죄다 가려버렸다.

그러나 무작위하고 혼란스럽게 달라붙은 것이 아니라 장갑판의 형상에 맞는 제 위치로 날아간 것이었다.



"운동성과 가동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방어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석 마법을 응용해봤다."


"이거 진짜 편한데? 갑옷 입고 양팔을 위로 올릴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만 장갑판이 알아서 움직여서 약한 부위를 방어해주잖아?"



레아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면서 취하는 자세에 따라 장갑판이 알아서 이동해서 관절부위가 드러날 때마다 노출된 부분을 가려주는 것이 신기한지 계속 몸을 움직이며 관절 부위를 빠르게 움직이는 장갑판을 바라보았다.



"통짜로 만든 것보다 방어력이 훨씬 떨어지고 장갑판의 이동속도보다 빠른 공격을 연타로 날리거나 점이나 선이 아닌 면으로 광역 공격을 해대는 적을 만나면 위험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아예 관절부위까지 통짜로 만들고 싶었지만 답답한 걸 싫어하니 최대한 타협한 거다."


"고마워! 진짜 진짜 고마워!"


"그리고 이걸 등에 대라"



파우스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예비용 대검을 건네며 말했고 레아는 이번에는 또 뭘 보여줄까 생각하면서 파우스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대검이 갑옷의 등짝에 닿았지만 레아가 찾고 있는 무기를 고정해줄 요철은 어디에도 없었고 당황한 레아가 왼손을 등으로 뻗어서 요철을 찾고 있자 파우스가 나지막히 말했다.



"이제 검을 쥔 손을 놔라"


"설마?"



그 말을 듣고 대검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자 대검은 땅에 떨어지는 게 아니라 얌전히 등에 붙어있었다.



"원래는 자석 마법으로 해보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자석이 안붙는 금속으로 만든 무기도 많아서 그냥 염동력 마법으로 등에 닿은 무기를 고정시키는 걸로 했다. 등짝 부분에 부여된 염동력 마법은 뒤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붙잡아줘서 데미지를 줄이는 역할도 한다."


"이거 있으면 검집도 필요없겠네."


"전설 속에 나오는 대마법사의 주문은 여기에 더해서 무기가 녹스는 것도 방지해준다고 한다. 나는 아직 연구가 부족해서 거기까지는 구현하지 못했다. 대신 이 탈착식 마스크에 독 중화 주문과 수중호흡 주문을 심어넣었다."



파우스는 완성된 탈착식 헬멧용 마스크를 건네줬고 레아가 마스크를 발키리 헬멧에 붙인 뒤 걸쇠를 걸어 고정시키자 눈밑부터 턱까지 기존의 헬멧으로는 방어할 수 없는 부분이 가려졌다.

고된 작업을 끝내고 목이 말랐던 것인지 파우스는 수통의 뚜껑을 열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고 레아는 갑옷을 입은 채 대장간 문을 열고 나와서 갑옷 성능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자석 마법과 염동력 마법 덕분인지 아니면 파우스가 추가로 뭔가 작업을 해놓은 덕인지 갑옷은 전력 질주하는데도 불구하고 쇠가 부딪쳐서 나는 찰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고 굉장히 조용했다.

게다가 미스릴 합금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평소에 레아가 입고 다니던 가죽으로 된 엉성한 갑옷 수준으로 가벼웠다.

레아는 갑옷을 입은 채 저택으로 들어가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위상도약 파우치와 포션이나 연막탄 등을 장비하는 유틸리티 벨트를 착용하고 다시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역시 갑옷 말고 파우치나 부속품 달아놓으면 그것들이 갑옷이랑 부딪치는 소리가 좀 나네."



아쉽게도 달릴 때 위상도약 파우치의 천과 갑옷 표면이 마찰하는 소음과 유틸리티 벨트에 달린 물건이 갑옷과 부딪치면서 나는 소음까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풀 플레이트 아머를 걸치고 이 정도 편안함과 은밀함을 챙길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큰 이점이었다.

레아는 대장간으로 돌아와 예비용 대검을 벽에 세워두고 마네킹에다 갑옷을 벗어서 걸쳐놓고 파우스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생일은 내일이긴한데 조금 일찍 앞당겨서 오늘 퇴근하고 파티할까? 저녁 시간이면 메건도 돌아올 테고"


"그래, 퇴근하고 내가 데리러 가겠다."


"좋았어! 이거 오늘 길드에 가져가도 돼? 자랑하고 싶은데"


"흉갑용 추가장갑판은 따로 빼놔라. 거기에 아직 방어 주문 심는 작업을 못 끝냈다."



레아와 파우스는 대장간 문을 닫고 저택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목욕탕에서 함께 흘린 땀과 대장간에서 묻은 먼지를 씻어냈다.

그 뒤 출근시간이 되자 레아는 자랑할 목적으로 위상도약 파우치에 흉갑용 추가장갑판을 제외한 나머지 갑옷 세트를 마네킹 째로 넣어서 길드에 가져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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