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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라. 님의 서재입니다.

또 하나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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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라.
작품등록일 :
2023.01.1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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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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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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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장안성 공략

DUMMY

106밀리 2분대의 무반동총이 장안성의 정문을 향해 불을 뿜었다. 사수인 김 병장의 사격에는 이제 말이 필요 없었다. 덕물도 해전에서 긴장으로 손을 벌벌 떨며 하늘로 바다로 탄을 날려버리던 그때는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의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졌다.


7백여 미터를 날아간 탄이 성문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성문 전체가 화염과 함께 뒤로 폭사되며 날아갔다. 이어 발사된 3분대의 무반동총이 성문의 왼쪽 성벽으로 날아갔고 거대한 화염이 일면서 모든 것을 찢어버릴 듯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명덕문(明德門)이라 쓰인 성문 위쪽의 거대한 현판과 누각이 두 번의 충격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화약연기가 성문 위로 솟아올랐다.


그러나, 엄청난 시청각적 효과에 비해 성벽 자체는 아직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래쪽의 튼튼한 부분을 가격당한 성벽은 겉 부분의 석재만 부서지고 커다란 틈이 벌어졌을 뿐 아직 무너지지는 않았다. 106밀리 분대원들 뿐 아니라 원정군들도 그동안 보아왔던 106밀리 무반동총의 효과와 다른 결과에 놀랐다.


겉은 큰 돌로 마감하고 안쪽은 석회와 쌀 즙, 소금 등을 섞어 굳힌 장안성의 성벽이 돌보다도 더 단단하다는 소문이 헛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큰 충격을 받은 성벽은 겉으로만 형태만 유지하고 있을 뿐, 한 번 더 공략한다면 무너져 내릴 거라는 것을 여러 번의 사격으로 이미 경험해 알고 있었다.


아직 버티고 서 있는 성벽을 응징하겠다는 듯한 3분대 무반동총의 두 번째 탄이 날아가 폭발하자 표적 주위 반경 십여 미터와 그 위쪽의 성벽이 안쪽으로 터져 날아가면서 밑부분까지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사람 무릎 높이에서부터 ‘U'자 모양으로 말을 타고도 충분히 지날 만큼의 큰 통로가 생겼다. 피탄 지점 주변 성벽의 윗부분과 여장들도 우르르 무너져 내렸고 커다란 성돌들의 틈새도 대부분 벌어졌으며 성벽의 뒤쪽에서는 무엇인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106밀리 2분대의 사격이 이어졌다. 서로 맞물린 튼튼한 성벽의 한 곳이 무너진 뒤여서인지 이번 사격으로 다시 십 미터가 넘는 넓은 통로가 만들어졌고 성안의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성벽 안으로는 폭 백 미터가 넘을 듯한 주작대로가 정문에서부터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대로의 끝에는 황성이 있을 것이고 그 뒤에는 황제가 머무는 궁성이 있을 것이다.


성안에서 수많은 병사와 백성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마치 개미떼처럼 보였다. 전성기에는 이 성에 백만의 인구가 살았다고 하지만 당 고종 치세인 지금은 그 절반 정도가 거주하고 있을 것이다. 낙양성에서처럼 미리 피난가지 않았다면.


성문이 사라지고 성벽에도 큰 통로가 생기자 장안성의 방어벽은 거의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성문 위에 있던 당군들 수십 명이 사격의 충격과 누각이 무너지는 바람에 명을 달리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수백 미터 떨어진 곳으로 도망치듯 몰려가 있었다. 군의 위세를 나타내며 나부끼던 수많은 기치는 이제 그냥 헝겊조각에 불과했고, 백성들의 옷자락보다도 더 무기력하게 보였다.


원정군은 열린 곳으로 서둘러 들어가지 않은 채 이번에는 박격포 사격을 준비했다. 굳이 직접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적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대응을 해왔던 원정군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쯤 사신을 보낸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항복을 받아올지도 몰랐다. 그러나 당의 미온적인 태도와 시간끌기에 대해 대막리지는 단호한 대응을 할 작정이었다.


성벽으로부터 황성 입구까지의 거리가 4km를 조금 넘는다는 것은 사로잡은 포로와 협력자들로부터 알아낸 뒤였다. 이번 목표는 황성보다는 그 앞쪽에 늘어서 있는 관청 건물들과 즐비한 고급 주택가였다. 성벽으로부터 대략 4km가 좀 못 되는 거리였지만 포대로부터는 5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2소대 둘포가 길게 탄을 쏘아 올렸다. 상당히 먼 거리였기에 탄이 떨어지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뚫린 성벽 너머로, 화염과 함께 화려한 지붕을 한 건물 두어 채가 폭발하듯 날아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고, 십몇 초 후 아련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장안성의 남쪽 부분에는 시장과 도시의 삶에 필요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일반 백성들의 거주지가 있었다. 그러나 백 개가 넘는 방들 중 30개 이상이 논밭이었을 정도로 아직은 빈 땅이 많았다. 숲이 우거지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 유원지 역할을 하는 방도 있었다. 이런 곳은 굳이 공격할 필요도, 점령할 필요도 없었다.


이에 비해 황성에 인접한 북쪽은 고위 관리들과 부유한 상인들이 거주하는 고급 주택가였다. 일반 백성들이 사는 곳 보다는 관료들의 거주지를 목표로 하는 편이 나았다. 정책을 결정하는 자들이 직접적인 손해를 보면 그 대응은 빨라지게 될 것이다.


성을 지키던 당군들은 자신들의 뒤쪽으로 십 리나 되는 곳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폭발 지점 너머에는 황성이 있고, 그 뒤에는 궁성이 있었다. 곧 황제가 공격당할 지경인데 그냥 보고만 있다가는 부대 전체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선택은 나가 싸우던지 아예 항복하던지 둘 중 하나뿐이었다.


오래지 않아 당군은 선택을 했다.


성벽 위에 커다란 백기가 오르고, 잠시 후 당군 수십 기가 성 밖으로 말을 달려 나왔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포격은 멈추지 않고 몇 차례 더 이어졌다.


이번에도 을률 모달이 백여 미터 앞으로 나아가 일행을 맞았다. 당군 일행은 길지 않게 항복의사를 전하고는 모두 그 자리에 서서 대답을 기다렸다.


을률 모달이 급히 말을 달려와 아뢰었다.


“당 경사천방지군 상주대장군 정명진이 고려의 대막리지께 항복을 청하오이다. 어찌 하오리까?”


술탈 대모달은 대막리지에게 전령을 보내 답을 받아오도록 했다. 대막리지에게서 온 답은, 항복한 장수와 부대를 성 밖으로 모두 나오게 한 다음 무기를 쌓아두고 도열하여 항복의 예를 취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항복을 청했다는 정명진(程名振)은 645년 당 태종의 친정 때 요동반도 끝의 비사성을 점령하는데 공을 세웠고, 661년에 두 번째로 당이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는 누방도행군을 이끌던 총관의 자리에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당 주력이 바다를 통해 평양과 압록강 인근으로 직공할 때 정명진은 요동방어선으로 접근해 시선끌기를 했지만 이후의 행적은 묘연했다.


당서에는 정명진의 부하인 양사선이 죽고 상황이 암담함을 묘사하는 몇 구절이 있으며, 정명진은 누방도행군을 이끌다 죽은 것으로만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역사가 바뀐 탓에 목숨을 부지한 채 살아있는 또 한 명의 운 좋은 인물이었다.


정명진이 이끄는 당의 잔병들이 성안으로부터 꾸역꾸역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좀 전의 기왕 때와 마찬가지로 행렬은 쉽게 끝나지를 않았다. 한참이 걸려서야 당병들이 모두 밖으로 나온 뒤 성 밖에서 무리를 지어 집결하기 시작했다. 수만 명은 넘어 보였다.


그러나, 낙양성 공략 때 퇴각한 당군의 전체 병력은 분명히 이것보다 훨씬 많았다. 군사들의 행색도 늠름하기는커녕 밭에서 일하다 온 사람에게 갑주만 입혀놓은 꼴이었다.


아무래도 미심쩍은 생각이 든 준혁이 소대장에게 말했다.


“소대장님! 당군 숫자가 많긴 한데 차림새도 그렇고 좀 이상합니다.”

“글쎄, 나도 세어보니 한 오만 정도 될 것 같은데 병력 수도 그렇고, 차림새나 움직임도 그렇고 정규군인지 의심스러워 보이네.”


옆에 있던 3소대장도 거들었다.


“나만 그렇게 본 게 아닌 모양이다. 당 황제가 미리 도망간 것 같지 않아? 그냥 가만히 기다리진 않았을 것 같은데?”

“낙양에서부터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게 눈에 띌 정도였지. 아까 당군이 나올 때도 느릿느릿했잖아. 여름 한낮이고 포로가 되는 심정을 감안해도 속이 터질 정도였으니까.”

“일반 백성을 군사로 위장한 건 아닐까요?”

“충분히 그럴 여지가 있어. 대막리지도 알고 있겠지?”

“당연하겠죠. 눈치 하난 남부럽지 않은 양반이니. 어쨌든 당나라의 수도를 쉽게 접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전쟁도 쉽게 끝날 텐데 말입니다.”


준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2소대장이 당군의 무리를 계속 지켜보았다.


원정군이 성 밖으로 모두 나온 거대한 당군 무리를 정렬시키는 동안 성안으로 진입해 들어간 일부의 고구려군은 아직 산개하지 않고 한곳에 모여 있었다.


하나의 성이라고 하지만 수도 전체를 성곽으로 둘러싼 형태였으므로 규모가 엄청났고 각 방에는 성벽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던 데다 매복의 염려도 커서 쉽사리 진입하기에는 위험해 보였다.


성 밖에서 당군 포로의 정렬이 마무리될 즈음, 고구려군의 대형(大兄) 하나가 중군 중앙 막사로 급히 말을 달려오면서 웬 영감 하나를 데려왔다. 성을 점령하면서 성의 유력자나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을 섭외해 정보를 얻는 것은 흔한 일이라 낯설진 않았으나 지금은 자못 긴박해 보였다.


마침 앞쪽으로 나와서 당군들을 지켜보고 있던 대막리지가 그 급한 모습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이냐?”

“군하! 급전이옵니다. 장안성 안에 당의 매복이 있다 하오이다.”


그러더니 이제 막 말에서 내려 읍하고 있는 영감에게 턱짓을 하자 영감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문을 열었다.


“소관은 한림원 학사인 박릉의 최순이라 하옵니다. 대막리지께 아뢸 것이 있어 대형에게 전갈을 넣었습니다. 지금 성안에 당의 매복이 십만은 족히 될 것이니 급히 고려군을 물리심이 좋을 것이옵니다.”

“이녘의 목을 걸고서 하는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거짓이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나이다. 다만 황조가 아직 자리를 내어줄 뜻이 없고 급습을 노리므로 기별하러 온 것일 뿐이리다.”


무척 급한 상황일 법한데 대막리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더니 옆에 있던 참군 예위를 흘낏 보며 말했다.


“내 대모달에게 매복에 대비하라 이르기는 했으나 생각보다 그 수가 많을지 모르니, 책사는 어찌하는 게 좋겠는가?”

“장안성이 워낙 넓으므로 수만이 아니라 수십만이 매복했다 하더라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외다. 쉬이 물러나는 품이 예사롭지 않아 대비하긴 하였으나 다만 그 수가 많으니 먼저 병력을 물려 진을 갖추시고 나아갈 때를 다시 가늠하심이 좋을 줄 아나이다.

아마도 지금 성 밖에 있는 자들은 노쇠한 잔병이거나 갑주를 걸친 백성에 불과할 것이니 따로 모아두시고, 당 잔병들 또한 차례로 모아 각각 흩어져 있게 한다면 큰 위협은 되지 않을 듯 하나이다.”

“정작 군사는 아직 매복해 있다 함은 학사의 말대로 저들이 아직 성을 내어줄 마음이 없고 여전히 때를 노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혼잣말처럼 나직이 읊조리던 대막리지가 전령들을 모은 뒤 일렀다.


“중군 전관은 가서 성안에 있는 중군 1당과 4당을 뒤로 물리고 2당과 3당은 그 자리에 머물러 흩어지지 않고 각 사방을 경계토록 하며, 선봉과 후위에도 성문을 밖에서 단속할 뿐, 함부로 안으로 진입하지 말도록 전하라. 다만 성벽 위와 장대는 먼저 점거하여 성안을 자세히 살피되 적의 준동이 있을 시에는 즉시 나팔로 알리도록 하라.”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만약 성안에 매복이 있다면 지금 저 포로들도 곱게 있지는 않을 것이며 무언가 명을 받았을 것이다. 지금 즉시 포로들을 성안의 빈방 하나에 모두 몰아넣고 경계를 더욱 엄히 하며, 혹여 불손한 움직임이 있거든 먼저 궁시로 고슴도치를 만들고 신군이 포격하도록 준비하라.”


전령들은 명을 받자마자 총알같이 말을 달려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대막리지의 명을 받은 소대에서도 원정군을 지원하고 방 안을 바로 포격할 수 있도록 탄착점을 수정했다. 그리고 조명탄 사격도 다시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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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133. 또 하나의 새벽(최종화) +10 23.04.11 513 20 13쪽
132 132. 마지막 독대 2 +1 23.04.10 347 20 14쪽
131 131. 마지막 독대 +6 23.04.10 321 14 12쪽
130 130. 간극 +1 23.04.07 375 20 12쪽
129 129. 귀환 3 23.04.07 324 15 12쪽
128 128. 귀환 2 +1 23.04.06 335 18 13쪽
127 127. 귀환 1 23.04.06 364 14 13쪽
126 126. 다시 낙양으로 +1 23.04.05 336 12 13쪽
125 125. 서하 +1 23.04.05 323 13 12쪽
124 124. 파촉 23.04.04 345 14 12쪽
123 123. 한중 23.04.04 350 13 11쪽
122 122. 사천정벌 +1 23.04.03 393 16 12쪽
121 121. 태극전 23.04.03 336 15 14쪽
120 120. 다시 장안성으로 +2 23.03.31 413 17 12쪽
119 119. 달빛 전투 23.03.31 335 15 12쪽
118 118. 반격 +1 23.03.30 362 15 12쪽
117 117. 추격 23.03.30 356 13 12쪽
116 116. 금원 +1 23.03.29 398 17 12쪽
115 115. 황성 +1 23.03.29 349 13 14쪽
114 114. 장안의 밤 23.03.28 420 19 14쪽
» 113. 장안성 공략 +1 23.03.28 404 19 12쪽
112 112. 장안성 앞 2 +2 23.03.27 372 21 12쪽
111 111. 장안성 앞 1 23.03.27 354 16 12쪽
110 110. 장안으로 2 23.03.24 435 15 13쪽
109 109. 장안으로 1 +2 23.03.24 415 15 13쪽
108 108. 진입 +1 23.03.23 433 19 13쪽
107 107. 심문 23.03.23 439 19 13쪽
106 106. 낙양성 전투 4 +3 23.03.22 441 18 14쪽
105 105. 낙양성 전투 3 23.03.22 397 16 14쪽
104 104. 낙양성 전투 2 23.03.22 427 1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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