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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이야기

문제유발동화 Parody 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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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6.03.07 21:39
최근연재일 :
2020.05.25 09:00
연재수 :
137 회
조회수 :
104,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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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2
글자수 :
76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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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5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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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07. 요정과 유리구두 (12)

DUMMY

“그러고 보니 왕자님, 다음 주에 폐하께서 연회를 여신다고 하는데 들으셨습니까?”


“들었네. 일주일씩이나 한다고 하더군. 뭘 그렇게 야단법석을 떠시는 지 모르겠네.”


“그거야 왕자님도 장가 갈 나이가 되셨으니 그런 거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인생은 착실하게 꼬여가고 있다.

신데렐라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며 요정님이라고 부르는 미친 여자.

‘나를 거부한 것은 네가 처음이야!’를 외치며 신데렐라를 찾는 왕자.

거기다 그 여자를 이용해 새로운 장난을 꾸미는 몹쓸 아버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나는 졸지에 세 사람의 신데렐라 이야기의 중심에 섰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다들 이러는 거야?’


제 12 기사단 기사들과 있을 때 바빠서 좋았다.

수도의 온갖 자잘한 일들이 돌아왔고, 미친놈들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진성으로 미친놈들이 엮이진 않았다.

그저 제 힘에 취한 용병들을 쓰러뜨리고, 술에 취한 취객들을 타이르느라 바쁜 날이었다.

그들은 적어도 내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어째서 기사로 돌아온 거야?’


적어도 이유를 말하지 못하는 내게 친구나 요정이 되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 덕에 그 때에는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하지도 않아도 되었다.

그저 눈앞에 들어온 일을 해치운다. 그것이 내겐 딱 맞았다.

그땐 이대로 계속 잡일만 하다가 다른 기사단 단장들처럼 나이가 들어 은퇴하거나, 아니면 전쟁터에서 전사하는 둘 중 하나의 미래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기사라면 굉장히 있을 법한 결말이지 않은가.

전쟁터에 많이 출장을 나가서 그런 결말은 맞이할 마음의 준비는 했었다.


‘이게 다······.’


설마하니 ‘마왕’을 잡아오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받아서 해고당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것 때문에 그런 상식 밖의 여행을 할 거라고 예상도 못했다.

그 와중에 구이드가 그렇게 죽을 줄 몰랐고, 이렇게 방황할 줄도 몰랐다.

내가 가장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복귀할 줄도 몰랐고, 그리고, 그리고···.


“그러고 보니 유이오페 경도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아닌가요?”


“아, 결혼을 하면 좀 철이 들려나.”


“결혼을 하면 사람이 좀 성숙한다고 하더라고요.”


별안간 화제의 화살이 이쪽으로 날아왔다.

왕자와 광대놈들의 희희덕거리는 목소리는 들렸지만 못들은 척 했다.


‘남이사 결혼을 하든 말든.’


과연 이것이 왕자와 호위기사들의 대화인가.

중요한 자리에 올라오면 바쁠줄 알았는데 한가롭기 짝이 없다.

이 생활은 백수 때랑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다르다면 월급을 받을 거고, 이전과 달리 항상 기사 정복을 입는다는 것 뿐.

그것도 활동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새하얀 천에 자수가 들어간 정복이다.

위협이 없는 왕자이니, 그의 호위기사는 과시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다른 기사들이 생각하면 아무런 일도 안하고 돈을 많이 버는 꿀 빠는 자리다.


‘꿀 빠는 자리는 무슨.’


기사놈이 무슨 꿀은 꿀이야! 벌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검사를 낭비할 거면 차라리 전쟁터에 보내버렸으면 좋을 텐데.

남들은 몰라도 나는 이렇게 한가로운 것은 견딜 수 없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접어두기로 했던 의문을 계속 떠올리게 되어버린다.


‘난 어떻게 해야 했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지?’


그 질문을 다시는 묻지 않으려고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시간의 여유가 넘치는 바람에 늘 머릿속에는 그 답 없는 질문으로 가득 찼다.

아무리 무시하려고 눈을 돌려도 여기저기에서 그 질문으로 나를 괴롭힌다.

자꾸만 버리지 못한 편지를 품속에 안고서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크라셴!”


“네, 전하.”


“무슨 고민이 있나? 낯빛이 좋지 않군.”


“아닙니다.”


왕자는 수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저 새끼, 또 뭐가 불만이라서 날 보는 거지? 저렇게 저 예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근데 이제야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무관심이 계속 되면 포기한다는데.

놈은 주변에서 하도 관심을 주니깐 오히려 무관심이 튀는 거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어도 좀 더 편하게 살았을까?

지금이라도 놈에게 살살 기면서 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왕자님이 저를 그렇게 염려해주시니, ···저는 ···무척 기쁩니다. 역···시 왕자님의 친구 생각은 각별하네요. 저를 생각해주시는 사람은 왕자님 ···뿐입니다.”


“크라셴, 애 쓸 필요는 없네.”


‘맞춰줘도 지랄이야, 진짜!’


이제 와서 이러는 것을 보자니 어색했던 모양이었다.

기사들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왕자는 굳은 얼굴이었다.

대체 어떻게 해줘야 놈이 만족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어색해진 분위기에 앨런 경이 얼른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유이오페 경 나이가 올해로 27살이지요?”


“네, 그러네요.”


“이제 장가 갈 때도 되지 않았나요? 이번에 연회가 기대되겠습니다. 연회에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많이 올 테니 말입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전 아직 뜻이 없습니다.”


‘정신 좀 차려라. 왕자의 호위기사가 무슨 짝짓기에 매달려.’


이런 시답지 않은 질문을 받을 때면 사표를 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정말 앞으로의 일만 생각한다면 그만둬도 되는 데.

문득 마왕성에서 남기고 간 위자료라는 그 금화들이 생각났다.

뭐에 대한 위자료인지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짚이는 건 있다.

아마도 헛걸음하게 그 멍청한 아저씨의 행동에 입은 내 정신적 피해 보상이겠지.

그가 죽은 건 나 때문인데. 빚을 진 것만 같아서 더 찝찝하다.


“그러고 보니 폐하께서 아가씨를 데려와도 된다고 하셨죠.”


“아, 그랬지.”


이번에 왕은 왕자의 호위 기사들이 약혼녀나 애인을 데리고 입장해도 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쌍쌍으로 들어오는 게 더 모양새가 좋다는 모양이다.

그렇게 해야 왕자 놈도 짝을 찾는 데에 열중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자 기사들은 다시 떠들어댔다.

누가 남자들은 과묵하다고 했나. 내가 보기엔 가장 시끄럽고 수다스러운 일당들이다.


“저는 이번에 여동생과 함께 입장할 겁니다. 아무래도 애인이 없는 몸이라.”


“하하, 그렇습니까? 나도 사촌동생이 떼를 써서 말입니다.”


여동생, 사촌동생이라.

예전이었다면 별 생각 없이 들어 넘겼지만 그 미친 여자를 생각하니 무슨 속셈인지 알 것 같았다.

그 아가씨들도 왕자에게 눈에 더 띄려고 지인을 이용하는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호위 기사들이 제격이겠지.

그리고 이놈들은 자기 가문의 영애를 왕자와 이어주려고 노력할 것이 뻔하다.

애초에 그들이 호위기사 자리에 목을 맨 건 왕자와의 접점을 위한 것이었다.


‘그 여자가 생각한 걸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고 있어. 그럼 신분이 받쳐주지 않는 쪽이 불리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자에게는 유리할 게 없는 게임이다.

하지만 그 여자를 도와주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아버지까지 끌어 들인 여자다. 원하는 만큼 도와주지 않으면 정말 귀찮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역시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크라셴은 같이 입장할 아가씨가 있나?”


왕자의 질문에 다들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만약 없다면······.”


“네, 있습니다.”


“있다고?”


다들 놀란 눈치였다. 내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었나 보다.


“여동생이나 사촌동생은 아닐 거고.”


“그럼 설마 여자 친구?”


“크라셴, 언제부터?”


“그런 일이 있습니다.”


“어느 집안 아가씨인가?”


왕자는 물론 기사들은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아까의 시시덕거리는 분위기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런 게 있습니다.”


“크라셴, 자네가 좋아하는 여자도 있었나 보군.”


왕자는 그저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 여자는 내가 아니라 당신을 참 좋아하는데 이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빨리 그 골칫덩어리와 이 골칫덩어리를 연결해주고 손을 털어야겠다.


“왕자전하.”


한 시종이 문을 두드리더니 들어왔다.

한창 여자 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기사들은 시종들이 나타나자 거드름을 피웠다.

아 진짜, 못 볼꼴을 봐버렸다.


“폐하께서 보내셨습니다.”


시종은 긴장한 얼굴로 왕자의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무슨 일인가?”


“유이오페 경에게 특별히 임무를 내릴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


“유이오페 경에게?”


왕자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시종을 보았다.

그놈의 폐하가 나를 부를 땐 대체로 벌을 줄 때 뿐이라서 그런 거겠지.

이제는 좀 그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짚이는 것은 있다.

그 미친 여자가 정원에 들어온 걸 알아차린 게 아닐까?


“무슨 일인가. 이제 유이오페 경은 더 이상 폐하가 처벌할 대상이 아니네.”


“그런 게 아닙니다. 중요한 대사가 왔으니 접대를 맡아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중요한 대사?”


왕자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도 의외의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중요한 대사라니. 외국에서 외교관이라도 온 건가.

나를 찾는 걸 보면 루칸의 외교관일 수도 있다.


“그런 것은 외교관을 보내면 되지 않나.”


“유이오페 경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전에 했던 일을 마무리 해달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전에 했던 일?”


“유이오페 경이라면 알 거라고 하셨습니다.”


점점 알쏭달쏭해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왕자도 다른 기사들도 금방 평정을 되찾았다.

왕자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유이오페 경, 괜찮겠나?”


“폐하의 명을 어떻게 어기겠습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유이오페 경.”


내 대답에 다른 기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헛기침을 했다.

아, 깜빡했다. 그놈의 ‘경호원’은 왕이 아니라 왕자가 주인이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왕자전하. 제게 엄벌을 내려주십시오.”


“아니야. 마무리 할 일이라면 해야겠지. 가도 괜찮네.”


“감사합니다.”


우와, 드디어 일다운 일을 하겠네.

나는 고개를 조아리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왕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니. 말이 외교 업무지 또 무슨 잡일이겠지.

오늘만은 왕의 은혜에 감사해야겠다.

난 바보같은 기사들과 왕자를 얼른 뒤로 하고 시종을 따라 나왔다.

드디어 저 숨 막히는 친목질에서 벗어나겠구나!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어쩌면 이번 일로 그 여자의 부탁도 거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종은 나의 눈치를 보면서 나를 흘긋 바라보았다.

왕자 앞에서는 말하기 그랬는지, 시종은 나를 데리고 왕의 알현실까지 갔다.

왕은 불안한 표정으로 왕좌에 앉아 있었다.

저런 표정을 짓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저 표정은 딱 한 번 봤다. 내게 마왕성의 회장을 잡으라고 명령할 때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런 엉뚱한 명령을 내리지 않겠지.


“유이오페 경, 이렇게 와주니 고맙네.”


“아닙니다. 저는 마땅히 왕명을 따르기 위해 온 것입니다.”


왕은 안절부절 못하면서 시선을 돌리다가 이마를 짚었다.


“한 가지만 질문하겠네.”


“네.”


“유이오페 경, 마왕성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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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1-07. 요정과 유리구두 (27) 19.04.17 31 0 13쪽
77 1-07. 요정과 유리구두 (26) 19.04.16 31 0 11쪽
76 1-07. 요정과 유리구두 (25) 19.04.15 77 0 12쪽
75 1-07. 요정과 유리구두 (24) 19.04.12 45 1 11쪽
74 1-07. 요정과 유리구두 (23) 19.04.11 42 2 12쪽
73 1-07. 요정과 유리구두 (22) 19.04.10 46 1 13쪽
72 1-07. 요정과 유리구두 (21) 19.04.09 48 1 10쪽
71 1-07. 요정과 유리구두 (20) 19.04.08 41 1 10쪽
70 1-07. 요정과 유리구두 (19) 19.04.06 40 2 12쪽
69 1-07. 요정과 유리구두 (18) 19.04.05 47 1 13쪽
68 1-07. 요정과 유리구두 (17) +2 19.04.04 96 2 14쪽
67 1-07. 요정과 유리구두 (16) +1 19.04.02 41 1 9쪽
66 1-07. 요정과 유리구두 (15) +1 19.03.30 39 2 10쪽
65 1-07. 요정과 유리구두 (14) +1 19.03.23 44 3 9쪽
64 1-07. 요정과 유리구두 (13) +1 19.03.20 42 2 9쪽
» 1-07. 요정과 유리구두 (12) 19.03.15 42 2 11쪽
62 1-07. 요정과 유리구두 (11) 19.03.13 38 2 11쪽
61 1-07. 요정과 유리구두 (10) 19.03.09 44 1 14쪽
60 1-07. 요정과 유리구두 (9) 19.03.04 41 1 13쪽
59 1-07. 요정과 유리구두 (8) 19.02.23 58 1 11쪽
58 1-07. 요정과 유리구두 (7) 19.02.19 72 2 12쪽
57 1-07. 요정과 유리구두 (6) 19.02.14 68 3 12쪽
56 1-07. 요정과 유리구두 (5) 19.02.09 64 2 12쪽
55 1-07. 요정과 유리구두 (4) 19.02.03 47 2 11쪽
54 1-07. 요정과 유리구두 (3) +1 19.01.21 92 3 12쪽
53 1-07. 요정과 유리 구두 (2) 19.01.17 75 4 12쪽
52 1-07. 요정과 유리 구두 (1) 19.01.15 70 2 14쪽
51 1-06. Intermission. 용사의 귀환 (7) 19.01.14 116 2 10쪽
50 1-06. Intermission. 용사의 귀환 (6) 19.01.11 63 3 13쪽
49 1-06. Intermission. 용사의 귀환 (5) 19.01.10 5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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