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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안? 세비안?"
알리시아는 건물에 들어서자 세비안을 애타게 불렀다. 눈물을 글썽이며 강의실을 하나씩 열어보던 알리시아는 문득 세비안이 도서관에 항상 숨어있던 게 떠올랐다. 그녀는 펄럭이는 드레스 치마를 민망할 정도로 높이 치켜들어 올리곤 서둘러 도서관이 있는 4층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세비안을 만난 것은 3층 교장실 앞 복도였다.
"알리시아…?!"
갑자기 달려와 덥석 세비안의 양 팔을 붙잡은 알리시아는 눈물을 닦으랴 숨을 고르랴 세비안에게 말을 하랴 정신이 없어보였다.
"자자 천천히, 진정해 알리시아, 무슨 일이야?"
"흐흑… 펠릭스가… 필경사 건물 뒤 공터… 레온이…."
"…?!"
무슨 얘긴지 알아듣지 못한 세비안이 잠시 갸우뚱 하자 알리시아가 세비안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눈물범벅이 되어있긴 했지만 알리시아의 애절한 그 표정을 세비안은 기억하고 있었다.
1학년 도서관 사건으로 펠릭스가 칼과 남부 소년들을 처음 만났을 당시였다. 지나가던 세비안을 알리시아가 도와달라며 막무가내로 잡아채던 때의 바로 그 표정이었다.
"펠릭스가 또 위험한 거야?"
알리시아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알리시아, 잠시만 물러나!"
세비안은 알리시아를 잠시 벽 쪽으로 물러 세우고는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창틀위로 올라서고 있었다.
승부는 생각보다 싱거웠다. 심지어 순식간에 결정 나버렸다.
"퍽~!"
"크윽!"
레온이 휘청거리며 온몸으로 버텼다. 칼의 공격은 좀 전 레온이 칼을 날려버렸던 검의 궤도와 똑같은 우 상단이었다. 그러나 칼은 레온의 이 첫 공격을 막아냈지만 레온은 칼의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챙' 하는 제대로 된 소리가 아니라 격한 소리와 함께 검을 놓치지 않으려는 레온의 몸이 휘청하고 옆으로 흔들렸다. 이어서 칼의 수평 베기가 들어가자 레온은 필사적으로 검을 들어 올려 막았지만 역시 "퍽~!" 하는 격한 소리가 나면서 이번엔 반대편으로 휘청거렸다.
"이익, 이야아앗!"
다음에 들어오는 검격은 역시 좀 전 레온의 공격했던 수 그대로의 수평배기의 관성을 그대로 살린 내려치기였다. 그러나 레온은 피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맞받아 칠 생각이었다.
"난 지지 않아!! 난 절대…. 필립, 너!!!"
칼의 내려치기와 레온의 무리한 올려 베기가 맞부딪히자 다시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챙그렁~"
"크으윽…!"
검 하나가 튕겨 나와 바닥을 굴렀다.
레온이 손목을 부여잡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 앞으로 칼의 선명한 오러의 빛에 싸인 검이 다가왔다.
"레온!"
알렉시스가 서둘러 레온을 도우려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스릉!"
에드가 막아서며 슬쩍 자신의 검을 뽑았다. 그리고 고개를 살랑 살랑 흔들었다.
"와아~!"
칼이 레온을 이겼을 뿐 아니라 엑스퍼트라니, 지켜보던 소년들이 환호하며 칼에게 몰려들었다.
"이야~ 역시 칼이야!"
"그래도 너무했어. 엑스퍼트였다면 미리 언질이라도 줬어야지!"
"지는 줄 알고 간이 콩알만 해졌단 말이야!"
"좀! 놀라게 좀 하지말라구."
소년들이 소란스럽게 한마디씩 하자 칼이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아아, 미안, 나도 최근에 겨우 이룬 경지라…. 거기다 적을 속이려면 우선 아군부터라잖아?"
"하하하!"
그러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레온이 찬물을 끼얹었다.
"흥, 신들이 나셨군!"
"…."
"중요한 걸 잊은 거 아냐? 설마 아직 그 서자 놈이나 맥스들이 살아 있을 거 같아?"
손목을 부여잡은 레온이 스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저 뒤에서 에드에게 잡혀있던 알렉시스도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래! 죽었다구, 그놈들은 이미 죽었다고!"
그러자 소년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동부귀족소년들 세 명에게 내밀었다.
"챙!"
"히이익…."
겁이 많은 베릴이 알렉시스의 팔을 잡고 늘어지며 비명을 뱉었다. 맥티어넨이 레온을 보며 말했다.
"어디 두고 보자구, 과연 어떻게 될지 말이야…."
뒤이어 칼이 말했다.
"만약을 위해 말해 두는데,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펠릭스와 다른 녀석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말이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말을 마친 칼의 검에 다시 선명한 오러가 맺혔다.
"…."
그러나 레온은 두렵지 않다는 듯 칼을 노려봤다.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열심히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에드가 알렉시스와 베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렉시스의 검 실력도 상당한 수위였지만 에드에 비견 할 바가 아니라는 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레온을 제외하면 아마도 칼과 맞설만한 이는 학교에서 에드 뿐일 것이었다.
그때였다.
"어이! 저기 좀 봐!"
소년들 중 누군가가 동편 학교건물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모두 돌아보자 학교 건물 3층 창문에서 누군가가 뛰어내리고 있었다. 착지한 소년은 내려서자마자 전혀 충격을 받지 않은 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연병장을 엄청난 스피드로 가로지르며 정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저거 설마 세비안이야?"
뛰어내린 소년의 금발머리를 보고 누군가 말했다. 도저히 평범한 인간이라 볼 수 없는 몸놀림이었다.
"설마…?!"
레온도 벌떡 일어났다. 그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 뒤에서 칼의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말했잖아? 세상일이란 모른다고…."
"도 도련님?!"
"세 세상에…."
세비안이 교장실을 나서자 밖에서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스튜어트 교장이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와 보니, 세비안이 막 창틀에서 뛰어내리고 있었다. 알리시아는 갑작스런 그 광경에 놀라서 비명도 못 지르고 있다가 세비안이 창틀에서 사라지자 서둘러 창가로 다가가 바라봤다.
"세비안! 이를 어째?!"
그러나 착지한 세비안은 전혀 충격을 받지 않은 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교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세 세상에!"
알리시아가 입을 떡 벌리며 놀라고 있자니 옆에서 스튜어트 교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경고를 한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저런…."
스튜어트 교장은 교문에 도착하는 세비안을 보며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저~, 세비안은 괜찮은 건가요? 교장선생님?"
알리시아가 스튜어트 교장에게 묻자 교장은 계속 시선은 세비안에게 두고 말했다.
"아, 저 정도면 엑스퍼트 급이니 괜찮을 거야."
교장의 시선에 교문에서 대기하는 제시 교관에게 제지당하는 세비안이 보였다.
"엑스퍼트?"
알리시아가 아리송한 듯 스튜어트 교장을 바라보자 갑자기 스튜어트교장이 교문을 향해 손을 들어 막 흔들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니까 교관님 그게…. 꼭 나가봐야 한다니까요!"
"글쎄 외출시간은 이미 지났다니까!"
교문에선 제시 교관과 세비안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세비안에겐 다행스럽게도 제시 교관은 학교 건물에서 세비안이 뛰어내리는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 모습을 봤다면 이런 대화를 나누기 전에 붙잡혀 곤욕을 치렀을 것이었다.
하지만 엑스퍼트나 선보일법한 속도로 기세 좋게 달려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교문에서 그만 외출통제를 하고 있는 제시 교관에게 막힌 것이다.
"잠시만, 잠시 기다려보게!"
실랑이를 벌이던 교관의 시선이 잠시 건물을 향했다. 누군가 3층 창문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들어왔다.
"영수증? 계산서?"
한창 교장의 수신호를 보던 교관이 중얼거리자 세비안은 그때서야 아차 하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들었다.
"여기요, 여기."
제시 교관은 페트리시아가 교장에게 건네주었던 계산서를 보더니 교문밖에 누군가를 손짓해 불렀다.
"헤헤헤, 부르셨습니까! 교관나리?"
교문 밖에서 검은 조끼를 입은 까무잡잡한 피부의 날렵한 체형의 웨이터 한명이 다가왔다.
"큼, 자!"
교관은 그 남자를 마주하기 민망한 듯 자리를 비켰다. 그리고 세비안이 계산서를 들고 다가가자 그 남자가 아는 체를 했다.
"이야~ 세비안 공자님이 아니십니까?"
"아아…. 당신은 크리스탈 펠리스의…."
남자는 페트리시아가 있는 크리스탈 펠리스의 점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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