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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랑(安郞) 판타지 팩토리입니다.

찍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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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랑(安郞)
작품등록일 :
2022.10.29 21:33
최근연재일 :
2022.12.07 16:24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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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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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글자수 :
194,564

작성
22.11.1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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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7화 - 장각진

DUMMY

합정은 늘 생기발랄하지만 토요일은 특히 더 그렇다.

온갖 맛집들이 즐비하고 아기자기 예쁜 카페들이 골목골목을 명소로 만드는 곳.

10~20대 젊은 청춘이라면 이곳을 놀이터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동네.


지금의 합정은 그런 곳이다.


90년대 말.

그러니까 '슬램덩크'라는 만화가 유행하던 시절.


그때만 해도 이 일대에서 '젊음의 거리' 하면, 신촌역과 이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의중앙선과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철도가 홍대입구역에 교차하게 되면서 신촌보다는 홍대입구쪽으로 사람들의 유입량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돈 냄새를 가장 먼저 맡은 건 역시 금융권.

순식간에 1금융권 시중은행들이 모두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땅값은 어마어마하게 치솟아 지방은행 중 몇 개는 아예 이곳에 점포도 못 내고 발만 동동 굴렀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동산 시장도 활황이었다.

그렇게 돈이 몰리더니 상권이 급속하게 커나갔다.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

가난한 예술인들이나 기웃거리곤 했던 동네가 10년도 채 안되어 서울 최대 상권 중 하나가 된 것이다.

홍대입구에서 넘쳐난 돈은 물이 아래쪽으로 흐르듯 한강 쪽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 합정이 있었다.

합정의 오래된 구 가옥들은 스타트업의 사무실, 퓨전을 내 건 전문음식점이나 카페들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 한 그곳, 합정동의 땅 한 켠엔 오래전부터 작은 건물 한 채가 들어서 있었다.



[K연예기획 본사 사무실]


'흐흐흐흐. 이곳에 땅을 사 둔 건 신의 한 수 였어. 이렇게나 비싼 땅이 되다니 말야. 한 10년쯤 뒤엔 이거 헐고 여기다 큰 빌딩하나 지어야 겠군.'


아무도 없는 사무실.


장각진은 감회어린 눈을 한 채 대표자리에 한 시간이 넘도록 앉아 있었다.

지금까지 수십 번은 한 짓 임에도 이 의자에 앉아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떠올리는 건 늘 남다른 느낌을 가져다 줬다. 


6.25를 지나 '보릿고개'라는 말로 모든 게 설명되던 시기에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일찌감치 돈 되는 일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20대가 되어서는, 그 당시 재력이 꽤나 되는 남자들이나 가질 수 있다던 취미 3가지, 즉 자동차, 오디오, 카메라 중 카메라 밀수에 뛰어들었다.

가까운 일본에 배를 타고 드나들면서 사들여온 카메라나 렌즈를 비싼 값에 파는 것이었다.

몇 대만 팔아도 한 달은 넉넉하게 먹고살고도 남는 돈이 생겼기에 이 일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팔려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이 월등히 많았기에 이 장사는 꽤 수지맞는 장사였다.

인터넷도 없이 모든 소식을 공중파 뉴스방송이나 신문, 잡지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차익거래 였던 것이다.


시대는 변해도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 당시 여자들 또한 잘나가는 남자들에게 끌렸고 그런 여자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남자라면 값비싼 취미 하나 쯤은 갖고 있어야 했다.

넓은 거실 소파에 앉아 오디오로 클래식을 감상하다가 연인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자동차를 몰고 나가는 남자.

옆 자리에 환하게 웃는 그녀를 태우고는 경치 좋은 지방 도로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남자.

그리고 그렇게 멋진 곳에서 밝게 웃는 자신을 담아 두고두고 좋은 추억이 될 사진 한 장을 건네는 남자.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평범하고 별 것 아닌 것들이어서 일부러 포장을 하려 해도 힘든, 오글거리는 장면들이지만.


그곳엔 돈이 있었고 장각진은 그 중에서도 카메라 시장을 봤던 것이다.


장사는 꽤 잘 되었다.

경쟁자가 늘었지만 장각진이 내놓은 가격에 물건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일본에 카메라, 렌즈를 비롯한 영상 장비를 취급하는 대형 도매상과 친분이 생겨 남들보다 훨씬 싼 값에 물건을 떼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밑에 사람을 두고 자신은 차를 몰고 나가 드라이브를 하며 태워 간 여자의 사진을 찍어주는 그야말로 능력있는 남자들이나 하는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번 돈으로 합정에 땅을 샀다.


그 후로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심지어는 국내 1, 2위를 다투던 대기업 그룹이 생겼다간 해체되는 일도 일어났다.

그러나 장각진은 카메라를 밀수해 사다파는 장사로 돈을 벌면서부터 늘 하나의 시장에 꽂혀 있었다.

꾸준히 망하지도 않고 커져가는 시장.

그건 바로 연예 엔터테인먼트 시장이었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온갖 좋은 장비들을 만져본 경험과 고가의 렌즈로 찍은 그의 사진은 잡지에 싣는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고퀄이었다.

장각진은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잡지들이 늘고 있는 것과 시청률 높은 방송 시간대를 각종 드라마, 연예프로그램들이 점령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잡지를 만들어 팔자.'


장각진은 오래 전 사두었던 합정동 땅에 연예전문 잡지를 발행하는 회사 사무실로 쓸만한 작은 건물을 지었다. 


"근데 광철이 이놈은 왜 이렇게 안 와?"


광철이 놈이 돌아오면 아무래도 이번 만큼은 따끔하게 한 마디 해야겠다 생각한 그때였다.


- 덜컥!


"아이고 형님, 오래 기다리셨죠. 아~ 정말 이 시간에 차가 막혀가지고는. 죄송합니다. 헤헤."


고광철 아니 고대표가 이런 저 자세를 취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특히나 저런 비굴한 웃음소리로 마무리 하는 경우는..


"지금 이 시간에 강변북로가 막혀? 에라~ 이눔아. 대표란 놈이 핑계거릴 대도 이런 옘병."


장각진은 평소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전혀 상상하기 힘든 표정과 말투로 고광철에게 삿대질을 했다.


"헤헤. 그래도 일은 잘 됐으니 걱정 마십쇼. 형님. 최의원이 저희쪽에 힘을 실어준답니다."


"그래? 뭐 그렇게까지 했는데 모른 척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 최의원 그 인간도 참 밝힌단 말야.. 생긴 건 안 그렇게 생겨 가지고는. 에잉! 그런 놈들이 국회뺏찌 달고 있으니 이 나라가 이 모냥 이 꼬라지 지."


"헤헤. 그래도 우리야 그런 놈들한테 빨대 꼽고 사는데, 그런 놈들이 많으면 좋은 거 아닙니까 형님."


계속 비굴한 소릴 내는 고광철에게 장각진이 투덜댔다.  


"사무실에서 형님 형님 좀 하지 말라고 내 수년을 얘기하는데 이 노무새끼가 이거 말귀를 못 알아쳐먹네. 내가 왜 니 형이야 이눔아! 사고쳐서 진급 못하게 됐다고 울던 놈 손 한 번 잡아줬다가 이게 뭔 팔잔지 원. 에잉!"


그때 잠깐 고광철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변한 듯 했으나 장각진은 게의치 않고 물었다. 


"그래서. 걘 숙소로 갖다 놨어?"


"예? 아, 정혜요?"


"걔 말고 그럼 또 있냐?"


"예. 최의원은 만족한 표정이던데 애가 너무 울어서 진정 좀 시키느라 늦었습니다."


"흠.. 뭐 이제 한동안 편하게 데뷔준비나 하면 될 건데 울기는. 그럼 지금 숙소에 있다 이거지?"


"예."


"다른 애들은."


"뭐 연습실에 있을 겁니다. 데뷔한다고 말해 준 뒤 부터는 애들 눈빛이 달라져서. 아침에 나가서 밤 늦게까지 죽어라 하는 거 같더만요. 흐흐흐." 


"다른 애들 눈치 못채게 걔 입단속 잘 해 뒀겠지?"


"아 당연하죠. 그리고 그거 애들이 알면 7년동안 해온 거 앞으로 지 인생 쫑난다는 거 알텐데 지 입으로는 절대 못 꺼낼 겁니다."


장각진은 다소 못 미덥다는 표정으로 고광철을 쳐다봤지만 고광철은 이번에도 능청스럽게 화재를 돌렸다.


"저 근데 말입니다."


"응? 또 뭔 말 할라고 그래."


"이동수한테 하나 안 붙여도 되겠습니까?"


...

장각진은 좀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당장은 안 붙여도 돼. 그리고 이동수보다 조완이 놈이 좀 거슬린단 말야. 니가 추천해서 뽑긴 했는데.."


"네? 그 놈한테 무슨 이야기라도 들으셨습니까?"


"아니 딱히 얘길 들은 건 아닌데.. 그런 게 좀 있어. 두고 보면 알겠지. 근데 당분간은 얘들한테 붙인 애들 다 빼도록 해."


"네. 그렇게 지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어차피 이동수가 걔랑 관련된 일만 모르게 하면 되는 거니까.."


...



***


"역시, 주말엔 이런 데 좀 나와야 사는 거 같지 않냐?"


합정역에서 내려 이동수를 만나러 가는 길에 철혁인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여자들을 보며 또 흥분한 듯 했다.


어휴.. 이 놈은 전역한 지도 이젠 꽤 된 놈이 뭐 이렇게 맨날 시골에서 갓 상경한 놈처럼... 아우~ 쪽팔려.


내가 대꾸하지 않아도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철혁이와 난 어느덧 이동수가 기다리는 카페에 도착했다.


"어! 여기!"


우리가 자리에 앉자 이동수는 슥 한 번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걔들 조금 있으면 나올 거 같아. 아직 안나왔어."


턱짓으로 창밖 연습실이 있는 건물 현관 쪽을 가리키는 이동수를 보니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네. 어떻게 시간맞춰 오긴 했네요. 점심은 드셨어요?"


"아니 아직 못 먹었지. 얘네들 좀 보고 먹으려고."


"잘 됐네요. 애들 보고 윤정혜 확인하고 같이 식사하러 가시죠. 오늘 제가 점심 쏘겠습니다. 하하하."


난 이제 점심 값 정도는 낼 여유가 생겼다.

언제가 될지 정확히는 몰라도 '곧' 난 백억대 자릿수 부자가 될 테니까. 흐흐흐.


"이야~ 조완! 어제부터 왜이러지? 어디 꿍쳐둔 로또라도 있는 거 아냐? 1등짜리?"


헉. 이런 돼지코 같은 놈. 어우~ 무서워.


난 이 녀석의 로또 소리에 흠칫했지만 철혁이는 창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말했다.


"와 씨. 오늘 드뎌 난다걸스 보는 거야~"


그렇다. 

윤정혜가 속한 걸그룹 이름.


아 씨바 이름이 난다걸스가 뭐냐 난다걸스가. 이거 이름부터가 아주 기획사에서 포기한 애들 모아 논 느낌인데?


여성 5인조 댄스아이돌 그룹 '난다걸스'.


지난 번 철혁이가 합정에 와서 알아본 바로는 그랬다. 


그리고 오늘 난 연습실에서는 5명이 아닌 4명이 나올 거라 의심치 않았다. 


내 생각이 맞다면...


"어! 애들 나온다! 쟤네 아니예요?"


철혁이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아.. 아냐 쟤네. 봐바 쟤네 6명이잖아."


"아.. 그러네? 흠..."


다소 실망한 듯 하던 철혁이 녀석의 눈동자가 다시 커졌다.


"어!! 쟤네다. 맞죠 쟤네. 어? 근데.. 하나, 둘 .. 네 명이네? 쟤네 아닌가? 윤정혜도 안 보이는 거 같고.."


나와 이동수는 동시에 철혁이가 가리킨 곳을 봤다.

걔네들이었다. 난다걸스.


"어 맞아. 걔네들. 역시.."


역시 윤정혜는 없었다.

오늘 연습실에 못나온 것이 분명했다. 

이로써 어제 이동수와 함께 있던 현장에 대한 의심이 더 강해졌다.


이동수가 말했다. 


"니 말대로네. 완아 쟤들 따라가 볼까. 뭐.. 가능하면 옆 테이블 같은데 앉아서 무슨 얘기 하는지도 함 들어보고."


철혁이는 윤정혜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놀라지 않고 말했다. 


"그래! 그러자! 형님 그거 참 좋은 생각 같은데요? 어제 완이한테 전화했을 때 윤정혜 따라간거죠. 맞지 완?"


이동수를 봤다 날 봤다 해가며 철혁이는 어제 있었을 법한 정황을 추리해냈다.


하여튼 눈치는 빨라가지구.


난 일어서며 말했다.


"그래 가보자. 근데."


...?


둘은 다음 내 말이 뭔지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우리. 지금. 너무.."


"구려."


- 푸확!


남은 커피를 입에 털어넣다가 날 쳐다보고 있던 철혁이는 커피를 쏟았고 이동수는 그저 고갤 끄덕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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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 윤정혜와 이동수의 사정 22.12.07 16 2 13쪽
31 31화 - 윤정혜를 찾아라(3) 22.12.06 15 1 12쪽
30 30화 - 윤정혜를 찾아라(2) 22.12.05 18 1 12쪽
29 29화 - 윤정혜를 찾아라(1) 22.12.03 18 2 13쪽
28 28화 - 이동수가 사라지다 22.12.02 20 1 12쪽
27 27화 - 윤미혜, 내 심장을 보관중 22.12.01 26 1 12쪽
26 26화 - 이동수의 전화가 끊어지다 22.11.30 26 1 13쪽
25 25화 - 윤식당 22.11.29 30 2 12쪽
24 24화 - 최병두가 확실하군 22.11.28 33 1 13쪽
23 23화 - 마산에서 최영두를 만나다 22.11.26 43 2 13쪽
22 22화 - 마지막 만찬 22.11.25 38 2 14쪽
21 21화 - 카페주인은 장각진 22.11.24 40 2 13쪽
20 20화 - 민식이냐 +2 22.11.23 45 2 12쪽
19 19화 - 고광철 22.11.22 49 2 13쪽
18 18화 - 난다걸스 22.11.21 50 3 12쪽
» 17화 - 장각진 22.11.19 51 3 12쪽
16 16화 - 정태 아버지라구? 그 박소령이? 22.11.18 59 4 12쪽
15 15화 - 윤정혜 22.11.17 65 4 13쪽
14 14화 - 로또 1등 당첨번호가 내가 알려준 번호라구? 22.11.16 73 5 12쪽
13 13화 - 꿈 꿨다며 찾아온 특임대 녀석들 22.11.15 75 6 17쪽
12 12화 - 장각진과의 밀당 22.11.14 78 5 13쪽
11 11화 - 작당모의 22.11.12 91 5 13쪽
10 10화 - 윤정혜를 안다구? 22.11.11 109 4 12쪽
9 9화 - 미친! 이게 누드냐 임마! 22.11.10 109 5 14쪽
8 8화 - 셋이 모이다 22.11.09 116 3 13쪽
7 7화 - 지수.. 라구? 22.11.08 150 6 13쪽
6 6화 - 장선생의 본모습 22.11.07 146 5 13쪽
5 5화 - 이동수가 로엔 오빠? +1 22.11.05 161 6 19쪽
4 4화 - 이동수 22.11.04 173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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