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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청명입니다

설검의 라푼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S.W.청명
작품등록일 :
2017.01.19 02:48
최근연재일 :
2017.03.15 00:20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3,195
추천수 :
22
글자수 :
61,030

작성
17.01.20 22:31
조회
194
추천
1
글자
9쪽

아빠와 딸의 냉전

DUMMY

“전달 사항이 뭡니까?”


“북쪽 변방에 있는 ‘모리아'라는 마을을 다들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 그 곳에서 백곰 무리가 나타나 대규모의 사상자가 나왔다.”



가주님의 대답에 연무장에 있던 기사들이 웅성거렸다.


아빠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가주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백곰 무리라고요?”



가주님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이었다.



“가브리엘 대공이 긴급 지원 요청을 하셨다. 홀리스테인 소속의 기사들은 전원 출전한다.”



아빠가 가주님의 뒤에 숨은 나에게 시선을 잠깐 돌렸다가, 다시 가주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견습 기사도 가야 합니까?”



아빠의 물음이 나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한 물음이라는 것을 눈치챈 가주님이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견습 기사는 후방에서 지원을 맡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아빠는 가주님의 대답이 못마땅했는지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시선을 흘겼다.


아빠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사이, 기사 오빠들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백곰 한 마리도 겨우 때려잡는데, 무리면 위험한 거 아니야?”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공이 직접 지원 요청을 할 정도면···.”


“틴크릿님, 마법사 지원은요? 제국민의 생명이 위협 받고 있는데 중앙 정부는 가만히 있어요?”



기사 오빠들이 가주님을 바라보자, 가주님이 대꾸했다.



“황성에서 황실 마법사와 의사 일부를 파견하기로 했다고 들었다. 자세한 건 대공만이 알겠지.”



가주님의 이야기를 들은 기사 오빠 한 명이 실소를 흘렸다.



“수도 녀석들, 허약해서 그 추위를 견뎌낼 수 있을지나 모르겠네. 도움은 되려나?”


“그래도 전투할 때 치료 마법이 있는 것과 없는 게 얼마나 차이가 큰데.”


“안 그래도 모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마법사가 몇 없다고 하더군.”


“모리아에 비하면 엔젤리엘의 추위는 애교 수준이긴 하죠.”



모리아는 가브리엘 대공 영지에서도 가장 춥고 혹독한 땅으로 유명한 북쪽 변방의 마을이고, 내가 살고 있는 엔젤리엘은 영지의 중심도시다.


샤르티니아 제국에 있는 다른 영지들은 가브리엘 대공 영지와 다르게 눈이 내리지도 않고, 1년 내내 파릇파릇한 식물이 자랄 수 있는 따뜻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난 태어나서부터 계속 이 곳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기사 오빠들과 대화를 나누던 가주님이 큰 목소리로 선언했다.



“내일 아침에 모두 모리아로 떠날 테니, 다들 일찍 돌아가서 떠날 준비를 하도록! 컨디션 관리 제대로 하는 것 잊지 말고.”


“틴크릿님, 우리가 전부 모리아로 가면 숙식은 어떻게 합니까?”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모리아 주민들의 협력을 얻어냈다고 하더군. 숙식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가주님과 기사 오빠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가주님의 뒤에 얌전히 숨어서 아빠를 바라보았다.


가주님의 이야기를 듣고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던 아빠는 아까부터 계속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는 아빠가 어쩐지 낯설었다.


평소라면 이렇게 쳐다보다가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거나, 두 팔을 벌려 이리오라는 포즈를 하거나 했었는데.


아빠랑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내가 먼저 말을 걸기에도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아빠가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아빠는 그 날의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까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바로 모리아로 떠날 예정이라 오늘은 평소보다 훈련이 일찍 끝났다.


아빠를 따라서 집에 돌아온 나는, 지금 아빠와 마주보고 앉아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는 중이다.


그릇과 식기가 부딪히면서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빵을 한 입 베어먹으면서 아빠의 눈치를 살폈다.


침묵이 무섭다.


뭔가 말을 하고 싶어서 입이 무척이나 근질거렸다.


아빠는 끝까지 말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결국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아빠를 불렀다.



“아빠.”


“이제 나랑 말 안 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빠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꾸했다.


나는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유치하게 자꾸 이럴 거야?!”



내가 발끈하자, 식사를 하던 아빠도 나와 똑같이 발끈했다.



“유치한 건 너지! 아빠 맘도 몰라주고 말이야. 못 된 딸내미!”



아빠가 그렇게 말하며 쥐고 있던 젓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아빠가 율리우스를 다짜고짜 패니까 그런 거잖아! 열세 살짜리 꼬마를 패는 어른이 어디 있어!”



그러자, 아빠가 답답해죽겠다는 표정으로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탕탕- 내리 치며 대꾸했다.



“그건 네가 몰라서 그래! 그 녀석은 단순한 꼬마가 아니라고. 눈꽃제전엔 아무나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감히 우리 공주를 넘보다니, 겉모습만 꼬맹이인 그 영악한 놈은 맞아도 싸!”


“으휴- 됐어!”



내가 고개를 팩-하고 돌리자, 그 모습을 보던 아빠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렇게 삐친 표정 지어도 소용 없다 뭐, 흥.’


여기서 그냥 넘어갔다간 아빠는 분명히 또 그럴 거다.


그렇게 되면 난 결혼도 못하고 아빠 곁에서 평생 혼자 살아야만 하겠지.


그건 싫었다.


아빠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언젠가 나만의 왕자님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잘 먹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양 볼을 잔뜩 부풀린 아빠가 시선을 피하며 혀를 찼다.



“치.”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애써 무시하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빠, 그럼 난 내일 떠날 때 가져갈 짐 좀 챙기러 갈게.”


“치.”


“계속 그럴 거야?”


“치!”



아빠는 끝끝내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으로 향했다.


나는 등에 매는 가방에 짐을 챙기다가, 방 한 구석에 놓아둔 동화책을 발견했다.


나는 가방에 챙기려던 옷을 잠시 바닥에 내려두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동화책에 쌓인 먼지를 툭툭 털어내니, 빛 바랜 동화책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어릴 때 엄마가 자주 읽어줬던 동화책이었다.


내가 왕자님과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게 해준 책.


나는 그리움에 잠겨, 오래된 책을 넘겨보다가 동화책을 책상 위에 얌전히 올려두었다.







다음 날 아침, 홀리스테인 저택 앞에 집합한 우리는 조를 나누어 썰매에 올라탔다.


썰매를 이끄는 개들은 귀엽게 생겼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덩치가 커서 조금 무서웠다.


나는 아빠와 같은 조에 배정됐다.


원래대로라면 아빠가 가르치는 정식 기사 오빠 중의 한 명이 있었어야 할 자리지만 아빠는 끝끝내 나와 함께 가겠다고 우겼다고 한다.


나와 같이 있게 해주지 않으면 아예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나는 할 수 없이 아빠가 있는 조로 옮겨왔다.



“아빠, 잘 부탁해.”


“치.”



정작 내가 무어라 말을 걸면, 이렇게 대답도 제대로 안 해주면서 말이다.


‘이럴 거면 왜 나랑 같이 있겠다고 한 거야?’


괜히 나 때문에 다른 조로 가게 된 오빠한테 미안해졌다.


엔젤리엘에서 썰매를 타고 출발하면 모리아에 도착하기까지 3일에서 4일 정도는 걸린다고 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여관 방도 아빠와 같이 사용했다.


아빠는 며칠이 지나도 나랑 제대로 대화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같은 방까지 쓰고 있는데 저러니까 더 힘들었다.


보통 하루 정도 지나면 아빠가 펑펑 울면서 서로 사과하고 원래대로 돌아오기 마련인데 이번만큼은 제법 오래 갔다.


대체 언제까지 저럴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냉전 아닌 냉전이 계속 됐다.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내 피부를 스쳐 지나간다.


옆에 앉은 아빠가 말 없이 내 어깨를 잡아당겨 붉어진 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빠의 손은 따뜻해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썰매를 열심히 타고 달려서 모리아에 도착하자, 아빠가 아무 말 없이 내 목에 두른 목도리를 다듬는다.


얼굴 가득 잔뜩 삐친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 손은 여전히 나를 챙긴다.


썰매에서 내리니, 다른 조에 있던 율리우스가 나를 찾아왔다.



“야! 라푼젤.”


작가의말

그 꼬마 녀석의 흑심은 아빠만이 알아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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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검의 라푼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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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설검의 라푼젤 리메이크합니다! +2 17.03.15 157 0 -
14 빨간 장미와 검은 장미 17.03.15 219 0 9쪽
13 라벤더의 향기로움에 매료되다. 17.03.14 158 0 10쪽
12 이래도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정말로? 17.03.11 176 0 8쪽
11 여자는 검을 들면 안돼? +2 17.02.10 228 1 13쪽
10 설검의 여기사 17.02.01 152 1 9쪽
9 그게 아빠와 딸이니까. +4 17.01.27 220 2 12쪽
8 오늘은 왜인지 몸 상태가 이상해. 17.01.26 255 2 9쪽
7 다시 만나다 +2 17.01.26 210 2 10쪽
6 아이시아스 = 미소년 ? +4 17.01.24 264 2 10쪽
5 설검의 정령, 아이시아스. +2 17.01.22 202 2 9쪽
4 율리우스! 그 고백, 진심이야? +2 17.01.21 212 2 9쪽
» 아빠와 딸의 냉전 17.01.20 195 1 9쪽
2 네 놈이 내 딸에게 헛바람을 불어넣은 그 놈이냐 +2 17.01.19 290 3 10쪽
1 열세 살, 딸바보 아빠를 거부한 외동딸 +4 17.01.19 412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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