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밀빛

던전이 어이없네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밀빛
작품등록일 :
2018.10.17 17:21
최근연재일 :
2018.11.12 22:12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1,413
추천수 :
22
글자수 :
85,315

작성
18.10.18 22:05
조회
121
추천
1
글자
12쪽

내 별명은

DUMMY

“역시 안 돌아가졌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잠에 취한 한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평소 울리던 알람은 어디가고···아, 핸드폰이 없지.


결과적으로 몬스터에게 강제 기상을 당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면.


뿌릉.

보글.


방울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소리도 그렇지만, 자는 중 배에 무게감이 느껴져서 억지로 눈을 떴다.


그러자 먼저 보인 것은 복부에 슬라임이 광물을 뱉어내는 모습이다. 가끔씩은 가슴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 때마다 허파가 눌렸지만.


아까의 이상한 소리의 정체를 알았다. 슬라임이 내보내는 효과음과 몸에 부딪히는 소리가 순차적으로 난 것이다.


[‘철광석’을 발견하셨습니다]

[‘철광석’을 발견하셨습니다]

[‘구리’를 발견하셨습니다]


“오.”


아이템을 가져올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잠에서 막 깨어난 탓에 아직 팔이 뻣뻣했지만 기특함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연둣빛의 슬라임을 쓰다듬었다.


“뿌륵?”


이제는 몬스터가 예쁘게 보였다.


일을 시켰는데 선물까지 주는 애를 누가 싫어한단 말인가.


‘무조건 게임이랑 일치 안하네.’


사실, 게임에선 턱도 없는 수치지만 현실은 다른 모양이다.


<던전을 육성하자>에선 호감도 20 이하는 구리 동전 한 닢과 같았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관계. 인사하면 가볍게 무시하는 정도?


그러므로 깽판이나 도망 안치는 것도 용했다.


“고마워.”


한쪽으로 광물을 정리하며 솔직하게 말했다. 나중에 쓸모가 많은 아이템이니까. 개이득인 부분이다.


“부글.”


이내 전부 토해냈는지 몇 방울을 정돈한 후 느릿하게 기어왔다.


···근데 왜 내 쪽으로?


“뿍, 부글.”

“아, 피 말이야?”


언어가 일치하진 않아도 통하는 의도란 게 있다.


전과 다르게 빨라진 말투는 재촉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았다.


“부글부글.”


꿀렁하게 몸을 움직여 긍정했다.


“그래, 잠깐만. <상태창>!”


<상태창>


이름: 없음

칭호: 새내기 던전 주인

종족: 인간

특성: 가사 Lv.3, 막노동 Lv.4

수치: 생명력 9.4/ 15, 마나 5.3/ 7

스킬: [몸통 박치기]


12시 지나서 다시 소환할 만큼 찼다. 그렇기에 더 지체 하지 않고 시작했다.


“얼룩소 소환!”


[‘얼룩소’를 고르시겠습니까? 결과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오케이.”


피잉-


슬라임 소환과 달랐다. 땅을 상징하는 다크브라운 색이 마법진을 그렸다.


선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빛무리가 형태를 이루었다. 점점 선명해지더니 소가 나왔다.


“음메~”


<우람한 얼룩소>


레벨: Lv.1

특성: 육질은 부드럽게 Lv.1

수치: 생명력 2/2

호감도: 3/ 100


···하필 불쌍하게 특성이 저거냐.


[육질은 부드럽게]는 고기를 상품화 할 경우, 높은 등급을 받을 확률을 높여준다. 한마디로 맛있는 고기인 셈이다. 좋은 식사 거리로 충분하지.


곧 사라질 하얀 점박이 소는 내버려 두고 슬라임에게 물었다.


“이거 괜찮아?”

“보글.”


마음에 들었는지 울음 소리를 내면서 소에게 다가갔다.


아, 잠깐만. 타협은 해야지.


“먹으면서 고기랑 가죽을 분리해줄 수 있니?”

“끄룩?”

“나도 먹고 살아야지.”


너만 사냐.


진심을 담아서 얘기했다.


얌마, 서로 공생해야지. 이쪽도 생명이 달려있어. 공평하게 분배하자고.


“꾹!”


이해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얘기를 들은 슬라임은 바로 소를 덮쳤다.


“음머어어어어─!”


코로 들어간 슬라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소는 놀란 듯 발버둥을 치다 곧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오우야.”


절로 질린 목소리가 나왔다.


가죽에서 공 같은 게 굴러다닌다. 한수는 정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피가 있으니 그 판은 슬라임에게 압도적이었다.


혈관에서 축구 한 판을 뛰는지 이리저리 난리도 아니다. 활동량만 따졌을 때 박지성이 칭찬했을 것이다. 그만큼 소의 곳곳에서 안 튀어나온 곳이 없었다.


환 공포증 있었으면 이 자리서 튀었을걸.


털썩.


슈르룩-


“뿍!”

“어, 응. 고마워.”


가죽과 상태 좋은 고기가 피라미드처럼 차분히 나열되었다.


쌓여진 물건의 위에서 슬라임이 만족스러운 소리를 냈다. 한수는 떨떠름하게 맞장구쳤다.


또 변화가 있었는데 색이 연두에서 핏빛으로 바뀌었다. 먹은 것에 따라서 달라지나 보다.


‘멀리서 보면 선지로 착각하겠네.’


심지어 지금은 성분까지 비슷하다.


···어쨌든 새로운 정보를 뇌에 쌓은 뒤, 슬라임 쪽으로 가까이 갔다.


“야, 이거 한우여? 때깔 곱네, 고아.”


하루 만에 익숙해진 한수가 아이템을 들어올렸다.


[‘맛 좋은 소고기’를 발견하셨습니다]

[‘휼륭한 점박이 소가죽’을 발견하셨습니다]


“인벤토리도 있을까···인벤토리!”


<인벤토리>


용량: 0/ 50


“?”


있, 있긴 한데. 상태 실화냐.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었다. 착각한 줄 알고 눈도 비볐는데 바뀌지 않았다. 정말 낫띵이다.


“진짜로?”


···이런 거지같은 캐릭터를 봤나.


‘노예라도 아이템은 가진 줄 알았지!’


<던전을 육성하자>는 주인공이 가진 사연에 따라서 소지품이 다르다.


복수를 위한 인물이면 ‘피가 젖은 펜던트’ 같은 상징물.

군락의 장은 ‘지휘관의 증표’.

몰락한 귀족 자제는 ‘귀족 증명서’ 등등 스타트 아이템이 있다.


그러니까 보통 하나는 있다, 한 개쯤은!


없으면 그 캐릭터로 하지 말라는 신호로 망설임 없이 리셋을 돌렸다.


근데 왜 텅벤토리냐고요.


“시발.”


만족하는 슬라임과 반대로 한수는 침울했다. 심지어 현실이니까 초기화도 불가능했다. 아직 상황이 나아지기엔 시간이 많이 필요한 듯 보였다.


한수 입장에서 욕이 안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 * *



“큼큼.”


제정신 차린 한수는 광물까지 싹삭 긁어서 인벤토리를 채웠다.


용량: 29/50


‘거의 반이 찼네.’


채워진 인벤토리를 확인하고 창을 껐다. 무소유로 시작했으면 끝은 창대하리라. 나중엔 금화로 가득 채워주마. 좀만 기다려!


‘그나저나.’


창수는 던전···아니, 아직까진 동굴인 내부를 살폈다.


“넓어졌네?”


누구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오바했다. 그러자 슬라임의 피부가 꿀렁였다.


지금 동굴의 상태는 고시텔이다. 어제는 고시원이었고.


무슨 말이냐고?


···별 차이 없다는 의미.


넓어지긴 해도 확연하진 않았다. 하긴, 슬라임 혼자서 얼마나 할 수 있겠어. 곡괭이로 파는 것도 아닌데. 액체 몬스터는 손이 달렸어, 발이 달렸어?


그래도 부탁을 들어준 일을 수행한 거니까, 겉으로 칭찬한 셈이다. 떠나지 않게 남아달란 의미로.


‘가지마!’


언제 떠날 지 몰라 애가 탔다. 그래서 사탕발림을 빼놓지 않았다.


“완전 잘했어.”

“부륵.”


엄지를 높게 치켜들었다. 손톱에 때가 묻어있지만 가볍게 무시하자.


어쨌든 그에 맞춰서···.


띠링!


<‘케이브 슬라임’의 호감도가 3 상승하였습니다!>


‘됐다!’


점점 올려놓자. 나중엔 무보수로 일해도 아무 말도 안 나올 때까지 잘 구슬리자.


‘여기에 잘~ 남아있어, 알았지?’


현수의 생각을 모르는 슬라임은 평소처럼 기포를 몸에서 터트릴 뿐이다.


“보글보글.”



* * *



현수는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준비는 할 것도 없었지만 몸 상태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더불어 가죽은 옷 대신 걸쳤다. 이미 있던 옷은 누적대기가 된 지 오래다. 물론 처음부터 제대로 된 옷은 아닌 것 같지만.


“다 나았네.”


의학 기구가 필요 없네.


깔끔한 피부를 보며 감탄했다.


던전 주인으로서 소유한 던전에 짱 박히면 회복이 된다. 내 몸에 적혈구가 맴도는 기분이야! 분명 피가 많이 난 흔적이 있음에도 빈혈기가 없었다.


“그래도 너무 방심하면 안 돼.”


나중에 포션은 필수니까 생기기 전까진 멀리 나가진 말자.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빼고.


오늘은 주변 탐색 정도.


“갔다 올게!”


외출의 의미로 팔을 휭휭 저었다. 하지만 웅덩이에 풍덩 빠진 슬라임은 아무 반응이 없다.


‘역시 호감도 13.’


가볍게 무시하기.


고개를 주억거린 한수는 햇빛이 비추는 입구를 응시했다. 다행히 시간은 알맞은 듯하다.


“가자.”


한 걸음. 두 걸음. 몇 발자국.


진해지는 볕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와아."


눈 앞에 펼쳐진 대자연이 믿기지 않아 입이 절로 벌어졌다.


“엄청 멋있어!”


상쾌한 공기가 절로 맡아지니 저절로 함성이 나왔다. 누구라도 이 웅장함의 앞에선 소리를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절경은 이런 뜻일까.


태양 아래에 하천과 우뚝 솟은 산이 동등했다. 새가 저 멀리 날아다니고 풍부한 녹지공간과 끝이 보이지 않은 물길이 있다. 곳곳에서 들린 벌레 소리는 전혀 불쾌감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함을 연상시키는, 아주 멋진 곳이다.


양지가 바르다는 말은 이런 거구나.


자신도 모르게 걸은 한수는 실수로 흙을 밟았다.


“오.”


푹신해!


딱딱한 동굴을 걷다 흙을 접하니 짜릿함이 끝까지 차올랐다. 느끼지 못한 낯선 감동에 빠지다 아차 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플랜을 상기한 한수는 차분히 살피기 시작했다.


노예의 경험을 되살려 어떻게든 주변에 몬스터가 사는지 확인부터 했다.


‘좋아.’


발자국이 없어. 사소한 자취도 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나무에 발톱 자국, 구덩이가 덮인 흔적 등등. 꼼꼼히 확인해도 못 찾았다.


다음은···.


“진짜로 시작해볼까?”


고안해낸 방법을 위해 한수가 눈을 빛냈다.



* * *



‘나는 몬스터를 잡을 수 있을까.’


절대. 네버.


여기서 시작된 고민은 골머리를 앓기엔 충분했다. 동굴에서 머리를 끙끙 잡은 한수는 세 가지의 방법을 떠올렸다.


1. 히든을 노리자.


‘그건 초반부터 너무 운에 맡기는 거야.’


무협처럼 천년 산삼이나 판타지처럼 대마법사가 쓴 마도서를 발견하면 좋지.


근데 어디서 찾아, 이 대륙에서?


농담이지?


물론 <던전을 육성하자>를 파고들었던 한수는 대부분 알긴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있는 곳조차 몰라.’


게임의 지도를 현실화하면 어떤 장소인지 바로 모르는 게 당연하다.


본인과 같이 게임에 떨어진 사람이 주변을 둘러보고 ‘엇, 여기는 이 부근이야!’를 외친다면, 당장 그 새끼를 잡아야 한다. 천재 아니면 여기에 이동시킨 놈의 연관자다. 거의 그 정도 급이라고.


물론 수십 번 클리어 했으니 암시를 보거나 사건이 일어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래도 그 전엔 순서가 있는 법이다.


고로 1번은 제외.


2. 몬스터 사냥.


안타깝게도 한수는 전투에서 살아남을 능력이 없다.


몸통 박치기? 피부가 돌로 된 것도 아니고 더욱이나 종족이 포켓몬이 아니다. 수인이면 몰라도.


훨씬 떨어진 스펙을 가진 한수에겐 이기는 것은 희박한 확률에 가까웠다.


음. 거의 불가능.


2번 제외.


마지막 하나는···.


“찾았다.”


빽빽한 나무를 거쳐서 겨우 초원 같은 평지를 발견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풀도 가득하니 무럭무럭 잘 자라겠구나.


무릎을 굽혀서 만졌다. 싱싱한지 잎이 매우 억셌다. 더욱 마음에 드니 미소가 진해졌다.


“여기밖에 없어. 아니, 여기야!”


한수가 생각한 마지막 방법은 이렇다.


3. 목축.


얼룩소를 목축하면서 가죽과 고기는 물론, 스펙 올리기.


비록 몬스터 죽이는 것보다 많은 것이 덜하지만 가축도 가능하긴 했다. 빙 도는 방법이긴 해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한수가 남들은 쉽게 하지 못한 클리어를 많이 한 이유가 있다.


남들이 어려운 정공법을 선택할 때.


“꾀를 써야지!”


잔머리를 풀로 돌렸다. 그래서 클리어 하는 방법도 남달랐다.


더불어 그걸 이루기 위한 인내도 겸비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악독한 새끼라고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유저들이 그런 한수를 칭한 별명이 있었다.


“독종벌레.”


독종의 끈질김을 맛 봐라.




···며칠 후, 얼룩소들의 비명이 메아리를 타고 울렸다.


작가의말

 일이 있어 조금 늦었습니다.

 피들스틱 님! 첫 코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ㅎㅎ!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던전이 어이없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누르칠라 (6) +3 18.11.12 44 0 11쪽
16 누르칠라 (5) +2 18.11.09 57 2 11쪽
15 누르칠라 (4) 18.11.08 52 2 14쪽
14 누르칠라(3) +2 18.11.07 62 1 11쪽
13 누르칠라 (2) 18.11.05 51 1 12쪽
12 누르칠라 +2 18.11.01 63 2 12쪽
11 새로운 만남 (2) 18.10.26 61 2 12쪽
10 새로운 만남 +2 18.10.25 78 1 12쪽
9 결과 (2) +2 18.10.24 67 2 8쪽
8 결과 (1) 18.10.24 62 2 7쪽
7 실수들 +2 18.10.23 70 1 12쪽
6 발각 +4 18.10.22 106 1 13쪽
5 경비병들 18.10.20 91 2 11쪽
4 마을이다 18.10.19 88 1 13쪽
» 내 별명은 +4 18.10.18 122 1 12쪽
2 첫날 +2 18.10.18 155 0 12쪽
1 갓뎀 18.10.17 185 1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