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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빛

던전이 어이없네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밀빛
작품등록일 :
2018.10.17 17:21
최근연재일 :
2018.11.12 22:12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1,415
추천수 :
22
글자수 :
85,315

작성
18.10.18 14:01
조회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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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첫날

DUMMY

머릿속이 휘몰아쳤다.


게임을 하면서 외웠던 정보들이 스파게티 면처럼 뒤죽박죽 꼬였다.


‘한수’로서의 삶, ‘누군가’의 삶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합쳐졌다.


<‘토끼 굴 던전’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던전을 육성하라’의 자그마한 던전 주인이 되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인식이 되어서 어이가 없었다.


“시발.”


욕이 절로 나왔다.


컴퓨터 망가진 게 문제가 아니었다.



* * *



‘던전을 육성하라’는 종족 불문하고 캐릭터가 다양했다. 왜냐하면 보통의 던전물과 다르게 주인장이 악마종만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 수인, 좀비 등등.


대대로 혈족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희귀한 케이스였다. 대개 갑자기 간택되기 마련이다.


지금 ‘이 몸’도 후자인 쪽이고.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을 멍하니 응시한다. 볼에 한두 방울이 떨어졌다. 갈라진 피부에 물이 스며드니 따끔했다. 귓가에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뻣뻣한 팔을 애써 올려보니 곳곳에 핏자국이 굳어져 있다.


이름 없는 농민의 노예.


나를 칭하는 호칭엔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욕설로 부르는 게 양호한 신분.


...근데 장난까냐.


왕족도 귀족도 아닌, 농민? 농민의 노예?


한숨을 뱉었다. 이건 나중에 떠올리고 지금은 던전이 우선이다.


당연하게 행동하는 자신이 웃겼지만, 위화감이 없었다. 기억이 섞여서 그런가. 추가된 기억은 현실감을 주지만 없애기도 했다.


근육이 뻣뻣해서 살짝 손을 오므렸다.


그러다 게임 시스템처럼 정보창을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지?


설마 싶어서 한껏 망설이다 속삭이듯이 말했다.


“···던전 정보?”


그러자 반투명한 창이 사진처럼 떠올랐다.


<Lv1. 토끼 굴의 던전>


등급: D

설명: 자이언트 토끼가 쓰다 버린 동굴입니다.

배산임수의 중앙으로 영험한 곳에 만든 덕분에 던전화 되었습니다.

효과: 생명력 회복 6 (4+2) [배산임수 Lv.1 (+2)]

마나 회복 3.3 (1+2+0.3) [배산임수 Lv.1 (+2), 축축함 Lv.1 (+0.3)]


- 더 자세한 내용은 습득이 필요합니다.


“와···아?”


신문물에 놀람은 잠시, 읽다가 점점 실망으로 바뀌었다. 던전의 상태가?


“속 빈 강정이네.”


혀를 찼다. 마나가 없으면 소환은 하지 못한다. 수식이 축축함이면 숲에 사는 고블린 류는 꿈도 못 꾼다. 눅눅한 늪, 어두운 그늘 아래서 사는 놈들만 가능하다.


“그래도 생명 1, 마나 1보다 낫지.”


한편으로 안도가 되긴 했다. 메이플은 4, 4가 좋기라도 했지, 너어는.


열세 번째 리셋 후였나, 사막에서 처음으로 1, 1을 봤다. 그 때 경기를 일으켰던 기억이 났다. 미련하게 오기로 플레이 했지만 10분 만에 죽었다.


...그딴 조합을 만들지 마! 아오, 엿 같은 제작자.


이를 박박 갈다가 안에서 뚝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뭐가 씹혀서 퉤 뱉었다.


주르륵, 툭.


피하고 부러진 이가 입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몸이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잠깐만.


“···상태창?”


<상태창>


이름: 없음

칭호: 새내기 던전 주인

종족: 인간

특성: 가사 Lv.3, 막노동 Lv.4

수치: 생명력 3.4/ 15, 마나 7/ 7

스킬: [몸통 박치기]


“허.”


헛바람이 절로 나왔다. 역시, 악명은 어디 가질 않았다.


이게 스텟이냐?



* * *



꼼짝없이 그대로 누웠다. 피 3이면 몬스터가 가볍게 한 대 쳐도 저승으로 날아간다. 그건 정중히 사양한다.


던전 효과는 12시간 마다 효력이 유효하다. 누적으로 다행히 계산되기 때문에 나가도 문제가 없었다. 이것까지 무효면 유저들이 멱살잡이 한다. 가뜩이나 난이도가 미친 게임인데.


“휴.”


이제 살 거 같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점점 활력이 채워지는 게 느껴졌다. 체력은 쉬면 나아지네, 신기하다.


“그나저나 할 수 있는 게 뭐지.”


눈 떠보니 게임에 들어와 있다. 남들이 들으면 미친놈이라 하겠지. 근데 사실인데 우째.


가쁘게 쉬는 호흡, 서늘한 바람, 욱신거리는 육신. 생생하지 않은 게 없다.


심지어 게임의 캐릭터와 기억이 동화된 것 같았다.


그럼 죽으면 어떻게 될까.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알 도리가 전무하다.


한 번, 눈 딱 감고 죽는 것도 나쁘진 않아. 근데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망설임을 주기에 충분했다. 확인하려다 세상을 하직하는 결과가 생기면 누굴 원망 하겠어.


결정적으로 굳이 스스로의 손으로 죽긴 싫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조금 미루기로 결정했다. 당면한 일부터 해결하자는 결심이 섰다.


바로 그 자리에서 상태창을 띄웠다.


여기서 쓸모 있는 건 특성과 수치인데.


특성을 자세히 보니 가사와 막노동이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에 열심히 요리, 열심히 농사···안 해본 노가다가 없었다. 막노동 Lv.4를 가진 점이 이해된다.


Lv. 2가 평균치라면 Lv. 3부터는 더럽게 올리기 힘들다.

Lv. 4는 인간 기준으로 어디 가도 꿀리지 않는다. 그런 면에 있어 이 몸은 노동에 특화된 셈이다. 나머지가 특성이 전무하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 낫지.


하나 가질 아이템을 여러 개 더 챙겨주는 혜자 특성이다. 나쁘지 않지. 가사는 흔한 집안일 특성이고.


다음은 고대···하던 스킬.


<몸통 박치기>


등급: F

설명: 폭발적인 스피드로 달려가 대상자를 부딪친다.

효과: 피해, 스턴(랜덤)


그만 알아보자.


날카로운 검을 구해 마구잡이로 휘둘러도, 이것보단 잘 나온다. 가사가 있어서 요리 스킬을 기대했는데 전문직이 아니니 획득하지 못했나 보다.


“진짜 어떡하지.”


현재 보통보다 낮은 캐릭.


하물며 노예인 신분이라 배운 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맨 땅의 헤딩, 가진 건 지식.


“워후.”


상상해보니 훨씬 더 망한 케이스다. 검사도 못해, 마법도 못해, 나보고 뭘 하라는 거야.


좀비왕 훔구르트처럼 컨트롤 능력이 있어, 분노에 휩싸인 퍼굴의 잠재력이 있어?


별 볼일 없는 노예라고, 그것도 농민의!


······침착하자.


원래 이런 류란 걸 잘 알잖아? 밑바닥부터 기어서 정점에 올라가는 고생길.


혹시 몰라. 클리어를 하면 돌아갈지.


“소환창!”


그러니까 하나라도 먼저 해놓자.


<소환창>


‘ ’ 님의 리스트를 로딩 결과.


- ‘새내기 던전 주인’이 적용 됩니다

- ‘인간(종족)’이 적용 됩니다.

- 위치와 시간이 적용 됩니다.


“이름이 없으니까 공백이네?”


곰곰이 생각하다, 유한수라고 정했다. 그러니 ‘ ’ 사이에서 먹색의 잉크가 채워지더니 유한수가 새겨졌다.


띠링!


‘유한수’님이 소환할 수 있는 리스트: 슬라임, 스톤벌레, 머쉬룸 워커, 얼룩소···.


목록을 찬찬히 읽었다.


“다행이다. 동물 소환이 가능해.”


동물은 배산임수의 영향이 분명했다. 밖을 확인 안 해도 터가 좋으니 적합한 환경으로 측정된 모양이다. 굶어 죽을 일을 덜한 건 천만다행이다.


거기서 커피 콩 솎아내듯 고르자면 슬라임, 얼룩소인가. 쓸 만한 건 별로 없었다.


“흠.”


고민된다. 당장의 먹을 식량, 아니면 일꾼이라.


소환 시, 소비되는 마나를 체크하니 게임과 같은 5가 들었다. 하지만 몸의 총량은 7. 한 번 사용하면 1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슬라임을 선택하겠어.”


[‘슬라임’을 고르시겠습니까? 결과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응.”


건축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장점이 훨씬 많았다.


액체 몬스터에 속하니, 웅덩이에 놓아도 잘 산다. 인간에 대한 혐오감도 없고 혼자 있어도 무리 없이 지낸다.


반대로 오크처럼 사회성이 있는 몬스터는 둘 이상이 필요하다. 그 조건이 충족 되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다.


돌과 자갈이 섞인 바닥에서 물이 뭉글뭉글 솟았다.


놀란 한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


과정을 호기심 있게 관찰했다.


동그랗게 원이 그려지더니 빛무리가 발했다. 어두운 동굴을 약간이나마 환하게 해주었다. 겉에서부터 점차 물이 채워지고 곧 한 뼘만큼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보글.”

“안녕.”


귀여운 소리와 함께 소환이 끝났다. 연둣빛의 슬라임이다. 호감도를 생각해서 인사를 했다. 실제로 보니까 나쁘지 않은데?


손을 흔들다 알람이 떴다.


<케이브 슬라임>


레벨: Lv.1

특성: 물 먹는 하마 Lv.2

수치: 생명력 6/ 6, 마나 2/ 2

스킬: [슬라임 흡수]

호감도: 10/100


오. [물먹는 하마]랑 [슬라임 흡수]! 능력치는 완전 준수하다. 둘이 잘만하면 시너지가 생기니까. 호감도는 저 정도면 감지덕지고.


한수는 만족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 정도면 뽑기 성공이지!


"보글."


근처에서 꾸물꾸물 움직이는 모습을 보자니 순간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생전 처음 소환에 성공한 것이 기뻤지만, 던전 생활의 첫걸음을 내딛은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빼도 박도 못한 결정을 넘기고서 손으로 조심스럽게 슬라임을 들어냈다.


꿀렁.


거부하지 않고 올라탄 슬라임의 촉감은 생각 외로 부드러웠다. 물에 넣은 느낌이랄까. 생각만큼 점액질이 있지 않았다.


“동굴 확장을 부탁해도 될까?”

“꾸륵.”


최대한 공손하게 부탁을 했다. 그러나 하기 싫은지 소리가 낮게 울렸다. 싫어할 줄 알았다, 이놈아.


“해주면 12시간 뒤에 피 많이 줄게.”

“보글.”


혹했는지 기포가 올라왔지만 더 이상의 제스처 없이 한참을 꾸물거렸다.


그러나 한수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먼저 성내봤자 손해는 슬라임이 아니라 이쪽이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인내하며 기다린 끝에 슬라임은 결정했는지 스스로 바닥에 떨어졌다.


“보글보글.”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듯, 꾸물렁하게 끄덕이곤 땅으로 스며들었다.


주변에서 사라진 걸 확인하고 한수는 추욱 늘어졌다.


“에휴.”


몸에 힘이 빠졌다. 소환 뒤에 더 심해졌다. 아무래도 체력과 마나 둘 다 없는 탓에 극심한 피곤을 느낀 것 같았다. 그래서 아까와 같은 자리에 다시 누웠다.


“12시간 동안 할 게 없으니까, 그냥 자야겠다.”


회복도 할 겸.


한수는 수마가 몰려오는 걸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잠에 빠지면서도 할 일을 되뇌었다.


‘일어나면 체력과 마나가 찼겠지? 그러면 얼룩소 소환해서 나랑 슬라임 밥 먹고···밖으로 나가서 주변 탐색도 하자.’


우둘투둘한 땅을 등으로 느끼며 점점 눈을 감았다.


‘클리어라.’


<던전을 육성하라>의 세 가지 조건. 그 중 하나라도 절대 쉬운 길은 없었다. 하지만 한수는 자신감을 갖기로 했다.


‘유저들에게 지독하다고 들은 나야. 수십 번을 깼는데 현실 모드로 한 번 깨주마.’


물론 난데없이 게임 속 세상에 와서 엄청 놀랐다. 하지만 부정보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난리치다 시간을 헛되게 놓치기 싫었고, 당장 돌아갈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전주인의 기억이 괴리감을 없애는 큰 일조를 한 덕도 있고.


‘대신 잘 살아 볼게.’


피투성이인 사정이 있겠지. 하지만 이젠 농민의 노예가 아닌 던전 주인이다.


과거의 꼬리를 자르도록 노력하자.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함부로 하지 않겠다.


한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은혜 갚기로 결정했다.


차곡차곡 정리하다 이제 눈꺼풀이 닫혔다. 시야는 밖의 장면을 완전히 차단했다.


“눈을 뜨면 원룸이겠지.”


마지막에서야 숨겼던 본심을 무의식적으로 읊조리고 잠에 청했다.


“···쿠울.”


그렇게 다른 세계의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작가의말

 오늘 한 편 더 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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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결과 (1) 18.10.24 62 2 7쪽
7 실수들 +2 18.10.23 70 1 12쪽
6 발각 +4 18.10.22 106 1 13쪽
5 경비병들 18.10.20 91 2 11쪽
4 마을이다 18.10.19 88 1 13쪽
3 내 별명은 +4 18.10.18 122 1 12쪽
» 첫날 +2 18.10.18 156 0 12쪽
1 갓뎀 18.10.17 185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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