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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조와 님의 서재입니다.

전생 후 역대급 마법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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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조와
작품등록일 :
2024.04.17 20:03
최근연재일 :
2024.05.07 20:0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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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8,390

작성
24.05.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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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2화

DUMMY

회색 마탑에 도착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나선을 그리며 탐색 중이었던 터라 직선상 거리는 그리 멀지 않기도 했고, 그나마도 길 안내를 내가 척척 해냈기 때문이다.


“저기 보이는 곳이 회색 마탑인 거겠죠? 안내 고마워요.”

“별말씀을. 그저 도움이 되었다면 만족합니다.”


걸음을 옮기며 코제트 상회의 지부장이라는 여자, 아리아와 내가 그런 말들을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칼잡이 하나가 앞으로 슥 빠져나가 재빨리 뛰었다. 그러더니 마탑의 정문에 달린 손잡이를 들어 문을 거세게 두들긴다.


쾅쾅쾅!


“코제트 상회에서 왔소이다! 썩 나오시오!”


아, 생각났다. 코제트 상회.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저토록 당당하게 문을 두들기는 모습을 보니 확실해졌다.


코세트라고도 쓰여있었고, 어디에는 코젯이라고도, 또 어디에는 커젯이라고도 쓰여 있어서 뭔가 싶었는데··· 어쨌거나 종합해 보면 우리 마탑과의 거래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상회였다.


그런데 어째서, 이토록 무례하게 구는 거지? 말투가 좀··· 지나치게 막 나가지 않나?


끼익-


“대체 어떤 새··· 어라.”


문이 살짝 열리고 고개를 내민 것은 익숙한 빨간 머리. 알폰스였다. 잠시 얼빵한 표정을 짓던 녀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외쳤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그리고 얼마 후.


“무슨 일이십니까?”


마탑의 정문이 활짝 열리고 길버트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작업을 하다가 다급하게 나온 모양인지 옷매무새가 그리 말끔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긴! 비키쇼!”


그러나 칼잡이는 그런 사정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듯 안하무인이었다. 문이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 길버트를 거칠게 밀친 그는 마탑의 안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돈 받으러 왔수다! 코제트 상회에서, 피 같은 돈 떼이기 전에 받으러 왔다고! 그러게 진 빚이 있으면 재깍재깍 갚으셔야지!”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빚? 빚이라고? 장부상에서 코제트 상회와는 전혀 채무 관계가 없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아니, 그보다. 뭐?


내가 세웠던 마탑이, 이런 구석탱이에 처박힌 것도 모자라서, 빚까지 지고 있었어?


게다가 저 칼잡이 놈이 행동하는 짓거리를 좀 보라. 한두 푼 정도의 푼돈으로는 저 정도의 당당한 스탠스가 나올 수가 없다.


마법사라는, 개개인이 인간 병기나 다름없는 자들이 뱀처럼 득실거리는 마탑에서 한낱 용병이 저리도 당당하게 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맥이 탁 풀린다. 내가 찾던 돈이 새는 무언가의 정체가, 밝혀진 듯한 기분이었다.


횡령이라면 자고로 내부의 구성원이 저지르는 만행인 만큼, 내 후예들을 의심해야 하던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차였는데.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던 건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아니, 다행이 아닌가? 제기랄. 대체 이놈들이 얼마를 빌린 거지?


그러한 생각들을 이어 나가던 찰나.


휘리릭-


어느새 위에까지 기별이 닿았는지, 회색 로브로 몸을 휘감은 칼이 떨어져 내렸다. 착지까지 멋들어지게 마친 칼이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내었다.


“그새 또 보는군요.”

“어머, 반가워요. 탑주님.”

“나는 그리 반갑지 않소만. 최소한 거기서 내려오심이 어떻소?”


칼이 아직도 인력거 위에 앉아 있는 아리아를 빤히 보았다. 아리아는 어느새 부채를 꺼내 들어 쫙 편 상태였다.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린 그녀가 인력거를 툭툭 두들겼다.


“아차차, 깜빡했지 뭐에요. 외출 중에는 여기서 내릴 일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그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기분이 많이 언짢으셨나요?”

“···괜찮소.”


고도가 낮아진 인력거에서 천천히 일어난 아리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마탑의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며 흐응- 하는 소리를 낸다.


“감사해요. 여기는,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찾아온 용건만, 간단히 말하시오.”

“뭐, 좋아요. 앞뒤 다 자르고 본론만 이야기하기. 저도 좋아한답니다. 사실 저도 이렇게 외진 곳까지 구태여 찾아오고 싶지는 않았다구요. 그런데 아무리 독촉장을 보내도, 원금은커녕 이자만 겨우겨우. 그것도 시일에 딱 맞추거나 조금씩 늦장을 부려서 보내시니 어쩌겠어요?”


아리아는 자신의 다리를 톡톡 두들겼다.


“연약한 제가 힘겨운 발걸음이나마 해야죠. 아, 제가 직접 걷지는 않았지만요. 흣.”


부채로 가려지지 않은 눈꼬리가 위로 휘었다. 그럼에도 칼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솔직히 감탄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정신적인 수양만큼은 마법사가 아니라 도사의 경지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으니까.


당장 나만 하더라도 뒷목이 뻣뻣해지는 느낌이었으나, 칼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조금 식는 것도 같았다.


그러고 보면, 여기서 이 자들을 모두 죽여버리면 빚도 탕감인 건가.


잠시 그러한 생각을 떠올리다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 여자는 이 자리에 오지 않았을 것이니까.


상인이라는 족속들은 본디 제 살길을 두더지들이 땅굴 파듯 이중, 삼중으로 파놓곤 하는 것이다.


“···갚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쪽의 말마따나 이자는 꼬박꼬박 갚고 있었지. 굳이 이렇게 다시 찾아올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뭐가 문제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소만.”

“탑주님의 말씀이 실로 옳습니다. 상황이 그대로였다면 저도 오지 않았을 거에요.”

“무슨······!”


하지만 저런 소리를 늘어놓는다는 건.


“네.”


아리아가 다시금 눈웃음을 지었다.


“상황이, 변했답니다. 이제 원금을 갚아주셔야 할 것 같아요.”

“별다른 언급도 없다가 갑작스럽게 찾아와서는, 원금이라?”


칼의 무표정하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오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말장난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해야 한다고, 그리 생각하지 않소?”


아리아의 넉살을, 칼은 담담히 되받아쳤다. 그러나 그의 마력은 평정을 유지하는 겉모습과는 정반대로 미친 듯 날뛰고 있었다.


흉포한 기세가 회랑에 모인 자들을 향해 당장이라도 마법을 퍼부을 듯 휘몰아쳤다.


“탑주!”


그러자 상회에서 데려온 용병들이 무기를 뽑아 들며 아우성쳤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우리가 당한다면 늑대의 이빨에서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거고!”

“잘 생각하고 행동하쇼!”

“아아, 이런.”


그리고 아리아는, 짐짓 무섭다는 듯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전혀 떨리지 않아 그녀가 가식을 떨고 있음을 짐작케끔 했다.


“가녀린 아녀자를 이리 핍박하지 마세요. 무섭잖아요? 기껏 돈을 빌려드렸더니 돌아오는 것이 협박이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시려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칼은 눈썹을 까딱였다. 그러자 회랑을 메우고 있던 기세가 씻은 듯 사라졌다.


용병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아리아가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자 자신들의 무기를 칼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이거 참, 좋은 분위기에서 말씀을 나누고 싶은데 역시 돈이 얽혀있다 보니 그러기는 힘든가 보네요. 돈이란 건 참 무섭죠?

그래도! 분위기야 어쨌건 드릴 말씀은 드려야겠죠. 탑주님.”

“말하시오.”

“이미 돈을 갚을 시일이 지났다는 사실은 숙지하고 계시겠지요?”

“······.”


칼은 침묵했다. 그리고 침묵은 곧 긍정.


아리아도 그리 생각했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뭐,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솔직히 지금까지도 저희는 사정을 봐 드린답시고 기다려드린 거랍니다?

그런데 이번에 회주의 명이 떨어졌지 뭐에요. 내용인즉··· ‘상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이번에 사업을 크게 하나 벌리려고 하는데, 될 수 있는 대로 자금을 많이 긁어모아 본부로 송금하라.’”


엄숙한 톤으로 말을 잇던 아리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여기까지만 말씀드리더라도 현명하신 탑주께서는 충분히 뒷 내용을 짐작하셨겠죠?”

“······.”


또다시 칼은 침묵을 택했다. 그러나 그 무게 자체는 방금 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회랑을 둘러싼 회색 마탑의 다른 이들도 질식할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코제트 상회의 전언. 상황이 변했으며, 따라서 돈을 갚아줘야겠다는 그 내용은 회색 마탑의 사정은 고려하지도 않으며, 그럴 가치조차 없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


거기에 맞서 뭐라고 한 마디조차 꺼내놓지 못하는 칼을 보며, 나는 가슴에 무언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후후, 원금을 갚지 못하신다면 그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어 있답니다.”


아리아가 짐짓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저희 상회와의 연을 유지해 주시면 되는 것이니까요. 단, 그때는 다른 곳과의 거래를 전부 끊으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상품들에 회색 마탑의 표식 대신, 저희 코제트 상회의 표식을 새겨주시는 것이 조건입니다.”

“···논의해보겠소.”

“그럼 좋은 답변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만 물러나 볼게요. 할 일이 많은 몸인지라.”


아리아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인력거에 올라탔다.


“가자.”


상회의 인원들이 마탑의 정문으로 줄줄이 나가고, 마침내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힐 때까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가서, 일들 보거라.”


칼의 나지막한 음성. 그와 함께 등을 돌리는 회색 마탑주의 걸음이, 다른 이들의 눈에 어쩐지 무겁게 비추었다.




***




코제트 상회, 웨스트우드 지부.


커다란 건물이랄 것도 몇 없는 한적한 마을에 어울리지 않도록 거대하게 지어진 건물의 정문이 벌컥 열렸다.


“오셨습니까, 지부장님!”

“가셨던 일은 어떻게, 잘 해결하셨습니까?”


쏟아지는 상회 직원들의 인사에 손을 들어 답하며, 아리아는 상회로 들어섰다.


“후후, 잘 해결되었지. 그렇지 않으면 뭐하러 내가 직접 행차하겠어?”

“역시 지부장님!”

“멋집니다!”

“아아, 잠깐, 잠깐. 거기 좀 나와주겠어?”


아리아가 지시하자 북적이던 인파가 반으로 갈라졌다. 지부장실로 올라갔던 아리아는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를 꺼내와 기다리고 있던 용병들에게 건넸다.


“섭섭치 않게 넣었어. 다음에도 잘 부탁한다고 단장에게 전해줘.”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칼잡이들이 걸음을 돌려 빠져나가자 비로소 아리아가 상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아마 십중팔구, 회색 마탑은 이제 더 이상 제 색을 유지하지 못할 거야. 우리 상회 밑에서 공방이나 다름없는 꼴을 면치 못하겠지.”

“오오.”

“대단하십니다!”

“그래도 명색이 색을 부여받은 마탑인데··· 저희 밑으로 들어오려 하겠습니까? 그, 마법사들은 상인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저들이 그러지 않고 배길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겠지. 빚의 액수가 액수이니만큼 그를 회수할 수 있다면 써먹을 곳이야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아리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회색 마탑이 일어서지 못하길 바라는 것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닌걸. 자세한 정체야 나도 잘 모르겠다만··· 회주께서는 뭔가 더 알고 계시는 게 틀림없어.”

“아, 그렇다면!”

“그래. 우리는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돼. 어떠한 결과가 나오건 간에 이건 우리 지부랑은 이미 상관없는 일이야. 손해 따위를 볼 걱정일랑 말고 찬찬히 경과를 지켜본 뒤에 보고만 잘 하면 된다고. 다들 알겠어?”

“알겠습니다!”


우렁찬 대답들을 들으며 아리아는 노예들에게 따로 지시를 내렸다.


“오늘은 연회를 준비할 수 있도록. 다들 충분히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제대로 준비하라고 주방에 일러라.”

“오오오오!”


단번에 분위기가 들끓었다. 상인들은 환호와 함께 아리아의 이름을 연호하며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게 얼마만의 연회야!”

“그러니까!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들어가야겠구만!”

“그러다가 마누라가 저녁 안 먹냐고 바가지 긁으면 어쩔 텐가?”

“이 사람아, 마누라가 대수야? 집에서 먹는 것보다 연회 음식이 수십 배는 맛있는데!”

“그것도 그렇지, 하하하하!”


떠들썩하게 몰려가는 그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상회의 구석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시선이 하나 있었다는 것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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