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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부동명왕전(不動明王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alskg
작품등록일 :
2024.03.21 06:14
최근연재일 :
2024.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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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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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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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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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 악연(惡緣)

DUMMY

“검격 경파의 흔적이 찢는 듯해. 벤다기보다 찢는 듯한 검로도 그렇고. 진기 구조가 눈에 익어... 이거, 명교의 낭아검법(狼牙劍法)의 흔적인데.”


나는 다른 시체의 상흔을 살폈다. 


“외상이 다 드러난 장법. 마공 진기가 패도적인 성향인데. 내가중수법도 일부 섞여 있어. 그리 고강하지는 않지만, 축기량 때문에 고강한 것처럼 보이네. 암벽천수장(暗僻千手掌)이야.”


낭아검법과 암벽천수장 둘 다 기본적으로 그리 상위의 마공은 아니다. 몇 번 이용해 먹다 버릴 잡병들에게 익히게 하는 마공. 이걸 사용했다는 것은 범인들이 명교에서도 별로 높이 있었던 놈들이 아니라는 의미. 


본단에서 깊게 관여한 일은 아니다. 간혹 마공의 구결에 잠재되어 있는 마성을 이기지 못하고 미쳐서 주화입마에 날뛰는 놈들이 있는데, 그런 놈들의 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여하간에 일단 명교라는 것이 확실해졌으니까. 


‘설마 본단인가..’


아니, 본단의 명일 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이 마을에 크게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설령 교에서 내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음을 안다고 해도 그렇다. 애초에 무공을 폐하되 나를 살리겠다는 것이 교주의 뜻이었고. 당장 그 교주의 명을 거스르면 배교자가 되는데, 나 하나 죽이겠다고 배교자의 누명을 쓰고자 하는 자들은 없다. 


“.. 음, 아니... 생각해보니까 딱 하나 있긴 있네. 원로원 노괴들이라면..” 


교주 쟁탈전에서 도와준 것이라곤 마지막으로 교주로 옹립하겠다는 숟가락 얹기식의 말 한마디밖에 없었으면서, 내가 교주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유독 싫어하던 자들이었다. 


나와 교주를 가장 괴롭혔던 자들이, 이제는 교의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민초에게까지 그 마수를 뻗고 있다. 배교자를 살려준 자들도 배교자라는 의미일까. 아니, 생각해 보니까 그렇다.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니까. 


‘일단 주변 명교 지부부터 좀 뒤져볼까. 털면 뭐라도 나오기는 할 터.’


나는 내 무공의 고하조차 잊고서 일단 명교 지부를 털 생각을 했다. 내가 아직 금강무경의 기초만 닦았다는 사실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가기 전에... 시체부터 묻자.”


집 툇마루 구석에 기대어져 있던 선장을 떠올리고, 나는 그것의 날 부분을 삽처럼 사용하여 하루 종일 구덩이를 팠다. 열 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을 묻고, 도로 덮는 데에는 마찬가지로 하루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새삼스레, 이 사람들이 죽는 것에는 반 시진도 채 걸리지 않았을 터인데 수습하는 데에는 이틀이 넘어가는 시간이 걸렸다. 몹시 화가 나는 일이었다. 


나는 승려를 묻은 뒤에, 그가 목에 걸고 있던 염주를 무덤에 올려놓은 뒤 무공이 몹시도 고강한 그가 어찌 목숨을 잃었을지를 생각했다. 


‘사람을 의심할 줄 모르는 사내다. 모든 사람에게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내다.’


명교의 쓰레기들은 그런 승려의 심성을 이용하여 불쌍한 척, 감화된 척을 하여 끝내 이 승려를 죽이고 말았을 터였다. 신승(神僧)은 한낱 마귀 서넛에게 그 목숨을 잃었다. 저런 성인(聖人)에게 어울릴 만한 최후가 절대 아니었다. 


‘업’이란 것이 있다면 그래야 했다. 금강무경의 구결에 따르면, 업은 선과 악을 가리지 않고 생겨난다 했다. 그러니 이 승려에게 닥칠 업은 분명히 좋은 것이어야만 하는데. 


“.. 스님, 그간의 가르침 고마웠소. 이 천운강, 스님의 가르침 평생토록 잊지 않으리다.”


더 깊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수리에서는 열이 나고, 명치는 꽉 막히고, 하단전에서는 화염이 치솟는 듯하여 주화입마가 올 듯하다. 


생각해 보니, 승려와 만나기 전 설원에서 생각했던 바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열양지기를 연성하는 무공을 하나 만들자는 것. 그간은 경황이 없어서 크게 생각할 바가 아니었지만, 상황이 여기까지 치달으니 이제 생각이 났다. 


“.. 그래, 열양의 무공. 그랬지.”


굳이 창제할 필요까지는 없다. 금강무경이라는 좋은 원본이 있으니, 구결을 개변하여 열양의 묘리를 덮어씌우면 그만인 일.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시간이 필요했다. 어차피 명교에서도 이곳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여기서 작업을 완료하면 된다. 내 손으로 묻은 사람들의 무덤 앞에서 구결 개변이라... 그래, 퍽 좋은 환경이다. 어느 쪽이든 확실한 결과물이 나올 터였으니. 


*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무덤에 기대어서 밥을 먹고, 때때로 귀곡성을 듣고 잠을 자면서 무공 구결 개변에만 매달렸다. 원한과 증오의 심상을 담은 무공은 강호에서 마공이라 불린다. 


불가의 신공을 그 근본으로 삼은 마공(魔功). 비록 마기를 연성하는 공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근본부터가 다른 개념을 하나로 묶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고, 외려 한 치라도 잘못된다면 무공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잡학으로 떨어질 터였다. 


‘하지만 그리되어도 괜찮아. 시간은 많다. 이곳은 항상 성공해야만 했던 명교가 아니야. 실패한다면 정신을 가다듬고 또 도전하면 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오히려 기대도 되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일에 골몰하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 좋아.”


열양의 진기. 불가 무학의 진중함과 장대함. 마공의 성취와 심상을 담은 공부의 완성이다. 마뇌 필생의 역작이라고 봐도 좋을 터. 이 이름 없는 무공의 일 성까지 운기를 마친 뒤, 나는 가만히 몸을 일으켰다. 웅크리고 숨는 것은 이만하면 충분했다. 


이제 복수를 할 시간이었으니. 


“스님, 이건 잠깐 빌리겠소. 원한을 해결하고자... 그대의 여행길을 방해한 자들을 모두 벌한 뒤에 분명히 돌려놓겠으니, 부디 노하지 마시오.”


나는 무덤 곁에 세워 두었던 그의 선장을 집어 들고 어깨에 가볍게 걸쳤다. 그러고 보니 금강무경에 선장을 사용하는 무공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니. 


“.. 조만간 또 들리겠소.”


무덤에 인사를 건넨 뒤, 금강무경에 수록되어 있던 경공을 펼쳐서 산의 봉우리로 가볍게 올랐다. 십만대산은 말 그대로 산이 십만 개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산맥이다. 


“산이 넓구나... 좋아.”


온통 만년설에 뒤덮인 산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마음의 불꽃을 일으켰다. 한서불침까지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열양의 성질을 지닌 진기가 전신 경맥을 휘돌면서 한기를 몰아내는 공능을 발휘했다. 


산맥을 돌아다니면서 명교 지부를 박살 내고자 하니, 이 불꽃을 내 걸음을 밝혀주는 등불이자 또한 삶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했다. 승려는 내게 인간으로 살라 했지만... 결국 그 말은 지키지 못할 듯했다. 겨우 말 몇 마디와 고작 몇 달의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 때려죽여야 할 놈들이, 몹시 많겠어.”


새삼스레 승려는 끝내 나를 인간으로 돌려놓지 못했으나, 이제 나는 그의 가사를 걸치지 않아도 춥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봉우리 끝에 다가가서 힘없이 떨어졌다가, 이내 용천혈에서 강렬한 기파를 터뜨리며 솟구쳐 올랐다. 진기 운용의 노련함과 불공 기파의 현묘함이 능공허도(凌空虛道)의 경지를 구현해낸 셈이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달렸다. 


하늘 끝까지 날아올라 천계에 닿아, 그리운 얼굴을 찾기라도 하듯이. 


*


허공에서 한참을 떠돌다 보니, 웬 흑의장삼을 입은 무인들이 드나드는 자그마한 장원을 발견했다. 확실히 명교의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웠기에 일단 땅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텁수룩한 머리로 최대한 얼굴을 가린 뒤에, 길을 지나는 탁발승인 것마냥 어깨에 걸친 선장을 쥐고 천천히 걸어서 정문으로 다가갔다. 문에 다가가서 두드리기도 전에 웬 사내 한 명이 내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치며 제지했다.


“이보시오, 여긴 아무나 오는 데가 아니오.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기 전에 얼른 떠나시오.”

“.. 나무아미타불. 실례합니다만, 보살님. 혹여 키 크고 나이 든 듯하면서도 젊기도 한 듯한 스님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제 사형입니다만..”

“사형..?”


내 차림새를 훑던 사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까, 며칠 전에..”

“며칠 전? 뭔가 아시는 것이 있는 모양인데, 부탁이니 가르쳐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공덕을 쌓는다 생각하시고..”

“어험! 그, 승려인지 뭔지... 우리는 모르는 일이니까 얼른 가시오! 괜히 또 들키면..”


나를 계속해서 밀어내는 사내에게 끈덕지게 들러붙자, 곤란하다는 듯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련이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러니 먼저 싸움을 걸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자극할 셈이었다. 


“철상아! 그놈 들여보내도록 해라!!”

“.. 예? 아..”

“뭘 꾸물거리느냐? 어서!”


안에서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진기를 담아, 넓게 울려 퍼지게 하는 음공과도 비슷한 기술이다. 아무래도 이 지부의 지부장 격인 듯하다. 


“그 참, 거... 떠나랄 때 떠나지시... 참..”


한숨을 가볍게 내쉰, 철상이라 불린 사내가 앞서 걸었다. 


“일단 들어오시지요. 저희 장주께서 할 말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 아, 물론입니다.”


방 안으로 들어오니, 웬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듯 했다. 생각해 보니까 피 냄새였는데, 몸에 깊게 밴 냄새가 가시지 않은 듯했다. 


“저기가 장주님께서 기거하시는 방입니다. 들어가시지요.”


나는 별 두려움 없이 안으로 걸어갔다. 그 안에는 텁수룩하게 기른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린, 뚱뚱한 체형의 거한이 있었다. 장주라는 고급스러운 호칭에 어울리지 않는 자였다. 


이런 자가 으레 그렇듯이 품에는 여인들을 네 명이나 끼고 있었는데, 추남인 본인과 몹시 어울리지 않는 용모들을 지니고 있어 절로 웃음이 났다. 삼처사첩(三妻四妾)도 영웅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 어디 한낱 명교 지부의 지부장 따위가. 


“.. 그래, 그 승려를 찾으신다고.”

“아, 그렇습니다. 혹시 아는 바가 있으신지.”

“아는 바라..”


사내가 킬킬 웃으며 나를 놀리듯이 입을 열었다. 


“뭐, 없지는 않지. 내게 죽었으니 말이다.”

“음...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내 되물음이 죽일 상대를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함이 아닌, 그저 놀라서 되묻는 것이라 여긴 사내가 다시 한번 흡사 음미하듯이 한 자 한 자를 씹어뱉으며 말했다. 


“.. 그 승려 놈, 내가 죽였다는 의미다.”

“아하. 그렇습니까.”

“그래. 그리고 이제, 네놈도 죽게 될 거고.”


무덤덤하게 말한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방 안에 호위마냥 들어서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검을 뽑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의외로 그냥 죽이고자 하는 것은 아닌 듯했는데, 바로 검을 휘두르지 않고 그저 기파를 뿜은 채로 겨누기만 했다. 


“뭐, 말은 죽인다고 했지만... 죽지 않을 방법도 있다. 사월아.”

“예, 주인님.”

“저 중놈 옆에 앉아서 술을 따라라.”

“받들겠습니다.”


사내의 명에 사월이라 불린 여인이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따랐다. 


“사월은 내 노예 중에서 가장 아리따운 물건이다. 네놈이 중이라 했지. 머리를 기르는 중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씩 웃은 사내가 턱짓을 하자, 사월이 제 앞섬을 헤치더니 상의를 어깨까지 헤쳐 내렸다. 날이 더운가 생각했으나, 눈 쌓인 산이 더울 리가 없잖은가.


성벽이 상당히 괴악한 것이 아니고서야 이처럼 갑작스러운 노출은 유혹의 의도밖에 더 있으랴. 


“죽기 싫다면, 사월을 품어라.”

“.. 그 말씀은?”

“동침하라는 말이다, 이 미련한 중놈아.”

“아하.”


나는 섣불리 움직이는 대신, 사내에게 물었다. 


“혹여 내 사형에게도 이런 짓을 하셨습니까?”

“아아, 네 말이 맞다. 그랬지. 마침 마을에 이쁘장한 아해도 있기에, 고것을 품으라 했더니 고개를 가로젓더군.”

“그런가.”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나는 잠깐 눈을 감고 극락에서 듣고 있을 승려에게 말을 건넸다. 


‘스님, 당신은 틀렸소. 업 같은 것은 없소. 나는 그것을 이제야 깨달았소... 그러니.’


나는 탁자에 기대 세워 두었던 선장을 쥐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저 악인들의 업이 되겠소.’


“그러니 두려워하라.”

“갑자기 뭐라는 거냐.”

 “.. 나는 지국(持國)이요, 광목(廣目)이며, 중장(增長)이고, 또한 다문(多聞)이다.”


낌새가 심상찮음을 깨달은 사내가 급히 장심에 진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하여 너희는 마땅히..”


뒤늦게 발경(發勁)한 사내가 패도적인 기세를 뿜는 장법을 펼쳤으나, 모든 면에서 내가 더욱 신속했다. 


“.. 나를 두려워하라.”


그리고, 나는 선장을 휘둘렀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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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중경(重慶) 24.03.30 70 2 13쪽
6 2. 중경(重慶) 24.03.29 8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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